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74)
#74화 일석오조 (4)
그리 길지 않은 통화를 마친 윤기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종훈을 바라보았다.
“방금 통화에서 JSD가 언급된 거 같은데……, 혹시 JSD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야?”
“아아, 제가 JSD 집안의 전속 과외 선생님이거든요. 예전에 비해 횟수가 확 줄기는 했지만, 아직도 종종 찾아가곤 해요.”
JSD의 아들들이 무난히 반에서 1, 2등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윤기는 JSD의 집 방문 횟수를 꽤 줄였다.
물론 비정기적인 과외 활동은 계속하고, 성적이 떨어지는 순간 다시 정기적인 과외로 바꾼다는 조건으로 줄인 것이지만 말이다.
“세상에……, 그런 건 전혀 못 들어 봤는데…….”
“저희 아버지는 유쾌하신 거지 입이 가벼우신 것이 아니니까요.”
미소 짓는 윤기의 말에 서종훈이 확실히 그렇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그런데,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를 한 거야? JSD랑 둘이 통화를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제가 하는 말을 들으셔서 대충 아시겠지만, 둘째 작은아버지예요. 둘째 작은아버지도 JSD랑 친하거든요. 그래서 JSD한테 연락이 왔는데, 지금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 JSD에게 전달이 된 모양이더라고요.”
“대충 눈치는 채긴 했는데, 와타나베 녀석이 그런 힘까지 있었나…….”
80년대까지도 한국과 일본의 민간교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상층부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일본에서 힘이 있으면 능히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고, 한국에서 힘이 있으면 일본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시대.
물론 후자보다는 전자가 좀 더 우세였지만, 신군부의 황태자인 JSD라면 어지간한 일본의 영향력쯤은 무시하는 게 가능했다.
“연락까지는 한 거 같은데, JSD 쪽에서는 오히려 우리한테 미안해하더라고요. 최소한 자신은 중립을 지킬 것이고, 혹시라도 신체상의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다는 작은아버지의 전갈이에요.”
“어쨌든 우리 편이라는 거구나.”
“그런 거죠.”
윤기는 굳이 추가적인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JSD가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말을 한 배경에는 분명 미군이 이미 자신을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미군이 보호해 주고 있는데 굳이 JSD까지 도와줄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JSD는 윤기에게 충분한 체면치레를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설명을 해 봤자 모양만 빠지고, JSD라는 우군에 대한 감동이 희석될 수 있기에 윤기는 입을 다물었다.
“그나저나 윤기야. 이런 것들 나한테 얘기해도 돼? 거스터 님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것 같던데…….”
서종훈의 말마따나 현재 일본행에는 류근태와 최철규가 포함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조청우 역시 최측근이 아니기 때문에 윤기의 비밀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
그런데 윤기는 이런 특급기밀을 서종훈에게 드러낸 상황이었기에 서종훈은 여러모로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조금 ‘근원적인 불안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제가 그만큼 아저씨를 신뢰한다는 사실을 보여 줘야 했으니까요.”
“응?”
서종훈이 의아한 듯 곧바로 반문했다.
“저는 아저씨를 제 일본 사업의 선봉장으로 삼을 생각이에요. 그런데 선봉장이 의문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요? 안심하고 싸울 수 있겠어요?”
“음…….”
“선봉장이 의문을 가지게 되면 당연히 다른 병사들도 제대로 싸울 수 없게 되겠죠. ‘증원은 언제 오는 거지?’, ‘후발대는 제때 도착하려나?’, ‘보급은 제대로 이루어질까?’ 같은 생각이 가득할 텐데 이렇게 되면 전투는 어떻게 될까요?”
윤기는 손날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보였다.
“그대로 나가리 되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아저씨에게 신뢰감을 심어 줄 필요가 있었죠.”
“그래서 나한테 그것들을 다 보여 준 거구나.”
실제로 요정에 간 것은 조청우조차도 제외되었다.
오로지 서종훈뿐.
그런 만큼 서종훈은 윤기를 지키기 위해 우르르 몰려온 수십 명의 무장 미군을 직접 볼 수 있었고, JSD와의 연줄까지 간접적으로 확인했다.
“허……, 생각해 보니 진짜 믿고 따를 수 있을 만큼 능력이 있네……?”
혀를 내두르는 서종훈을 바라보며 윤기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까 질문했죠? 와타나베한테 그렇게까지 심하게 해도 되냐고요.”
“아, 맞아. 그게 조금 걱정이긴 했는데, 네 힘을 보면 솔직히 고민할 거리는 안 되는 것 같아.”
서종훈의 표정에는 어느새 안정감과 함께 신뢰감이 실려 있었다.
“맞아요. 하지만, 그건 제가 유도한 것이기도 해요.”
“나중에 더 밟아 주려고?”
“그것도 있지만, 쳐낼 대상을 확대하기 위해서였죠.”
“쳐 낼 대상을 확대한다고……?”
서종훈은 무슨 말인지 전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네. 아저씨는 와타나베가 보기에 제 측근으로 보이겠죠. 하지만, 와타나베가 아저씨를 건드릴 순 없을 거예요. 아저씨를 건드렸다간 야쿠자 하나쯤이야 우습게 벌집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까요.”
“그건 그렇지. 생각해 보니 미군 안 보여 줬으면 큰일 날 뻔했네……. 일본에서는 야쿠자가 한국 조폭과 달리 정말 힘이 세거든. 요즘 한국은 JD가 검경들 말 안 듣는 조폭들 삼청 교육대로 다 보내 버리잖아. 하지만, 일본은 그런 게 없으니…….”
삼청 교육대.
겉으로는 사회 교화를 주창하지만, 실제로는 ‘민영’에 가까웠던 조폭들을 ‘국영’으로 바꾸기 위해 만들었던 유명한 시설이다.
삼청 교육대로 잡혀간 조폭들의 빈자리를 검경의 입김이 닿는 조폭들이 채웠으니까.
물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표면적인 한국의 범죄율은 줄었지만, 일본은 오히려 야쿠자가 국가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영향력이 셌기에 서종훈의 걱정은 충분히 근거가 있었다.
“미군 덕분에 자신감이 생기시죠? 주일 미군 쪽에도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종종 미군들이 자택을 방문하도록 손을 써드릴 수도 있어요.”
“그럼, 나야 좋지. 나는 미군을 직접 봤지만, 가족들은 아직 못 봤으니까.”
윤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해 드릴게요. 아무튼, 야쿠자들이 아저씨나 아저씨 가족들을 건드릴 수는 없겠지만, 와타나베 정도의 힘이라면 아저씨의 ‘사업’을 방해할 수는 있겠죠.”
“아……!”
서종훈은 무언가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는 듯 탄성을 질렀다.
“아저씨는 앞으로 몇 년 동안 일본에서 사업을 하려는 척을 하세요. 그러면 분명 방해가 들어올 거예요.”
“확실히, 그러겠지.”
“그러면, 그 방해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다 기록해 놓으세요. 나중에 제가 일본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때, 저는 그들의 적들과 손을 잡을 거니까요.”
일본 진출 자체는 버블을 통한 토지의 시세 차익을 위한 것이었지만, 추후 세계적인 사업을 위해서는 적을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서종훈에게 이 단계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일렀기에 생략했지만.
“진짜…… 대단하구나!”
서종훈은 상상만 해도 신이 난다는 듯 입을 떡 벌리면서도 환희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해야지, 애초에 그러기로 약속하고 일본에 온 거니까.”
“만약 아저씨가 과제를 제대로 수행해 내신다면…….”
“수행해 낸다면?”
“3대가 놀고먹어도 될 부를 거머쥐게 해 드릴게요.”
아직 서종훈에게는 크게 현실감이 와닿지 않는 말.
하지만 서종훈은 현실감과는 별도로 윤기라는 아이에게 남은 인생을 배팅해 볼 만한 가치를 느꼈다.
* * *
“나는 진짜 맨 처음에 딸이 결혼하겠다고 남편감을 데려왔을 때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니까? ‘어디서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남자를 데려왔냐.’라는 생각에 말이야.”
껄껄 웃음을 터뜨리는 서종훈의 장인, 마에카와의 말에 윤기 역시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어디서 이런 늙은이를 데려와서 결혼하겠다는 거냐!’라고 외치니까, 이 녀석이 그 앞에서 주민등록등본을 꺼내서 보여 주더라고.”
“주민등록증도 아니고 등본을요?”
“그렇다니까? 그래서 흥분한 상태에서 봤다가 나이를 보고는 1차적으로 의아했지. 아무리 봐도 액면가는 40대 후반에서 50대인데, 알맹이가 20대 후반이라니까 말이야.”
“아주 당황하셨겠어요.”
큭큭거리는 윤기의 맞장구에 마에카와가 더욱 신을 내며 말을 이어나갔다.
“무진장 당황했지! 하지만, 그보다 더 끝장인 이야기는 그 직후야.”
“뭔데요?”
윤기는 마에카와에게 술을 따라 주며 물었다.
“내가 ‘아니, 등본을 왜 가지고 온 거냐? 며칠 있다가 가져오는 거면 이해라도 되는데, 왜 등본을 가지고 다녀?’라고 물어보니까 이 녀석이 뭐라고 한 줄 알아?”
“뭐라고 했는데요?”
“‘당연히 오해하실 거라 생각해서 준비했습니다.’라고 하잖아. 크하하하핫!”
눈물까지 흘리며 웃음을 터뜨리는 마에카와의 모습에 서종훈은 쓴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런 서종훈의 옆에는 동글동글한 느낌을 주는 귀여운 상의 일본인 여성이 앉아 있었는데, 윤기가 보기에 나이는 대략 20대 중반으로 보였다.
‘확실히 겉으로만 보면 부녀지간으로 보이네.’
물론 이런 말을 바깥으로 내뱉을 윤기가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사토시 군, 자네 일본에서 사업을 할 거라며?”
서종훈은 자신의 이름에서 마지막 글자인 가르칠 훈(訓)을 따서 사토시라는 예명을 쓰고 있었기에 장인은 서종훈을 사토시라 불렀다.
“예, 윤기의 아버지가 한국에서 나름 이름 있는 사업가이면서 저와 돈독한 사이인데, 일본에 작은 사업체를 하나 운영해 보려고 하더군요. 그 과정에서 제가 법인 대표가 되게 되었습니다.”
“이야, 우리 사위가 생각보다 인맥이 대단하구먼. 일본에 와서 바로 자리를 잡을 수 있겠어?”
마에카와는 신나서 다시 술잔을 기울였고, 서종훈은 그런 장인과 술잔을 부딪치며 웃었다.
“그래도 제가 인복이 있나 보더라고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장인어른의 도움이 좀 필요합니다.”
“내 도움? 뭔데?”
“일단 법인 사무실은 아무 곳에나 세워도 상관없는데, 어떤 사업체를 세워야 할지는 아직 논의 중이라 일본 전역에서 부지를 물색해야 한다더군요. 게다가 윤기의 아버지가 제 말을 듣더니 장인어른을 통해서 토지 거래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도 했었고요.”
“나를 통해 거래를?”
“네. 아마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 지역이 대부분이 되겠지만, 그곳에서 괜찮은 토지를 찾는 게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수고료는 확실히 준다더군요.”
“그렇다면야 나야 거절할 이유가 없지. 이거 사위가 아니라 금덩이가 집 안으로 들어왔구먼?”
웃음을 터뜨리는 마에카와를 보며, 윤기는 일본 진출의 교두보가 무난히 세워졌다는 판단을 내렸다.
* * *
70년대까지 한국 사람들은 정말로 재미없게 살아야만 했다.
P의 대중문화 억압이 정말 살인적인 수준이었으니까.
장발, 미니 스커트, 야간 통행, 컬러 TV 등 지금에 와서는 당연시되는 것들이 하나같이 금지였는데, 이것은 정통성이 없는 신군부의 등장 후, JD가 민심을 얻기 위해 3S 정책을 시행하면서 상당수가 완화된다.
물론, 모든 규제가 풀리는 것도 아닐뿐더러, 82년이 되어서야 3S 정책이 시동을 걸기 때문에 81년 가을인 지금은 아직 P의 잔재가 남아 있는 시절이지만 말이다.
“이 새끼, 이거. 누가 학교에 이런 거 가지고 오라 그랬어?”
선도부가 돌돌 말은 잡지로 반에서 소위 ‘장사꾼’으로 통하는 녀석의 머리를 탁탁 내리쳤다.
“또 이 녀석이냐?”
교탁에서 선도부의 소지품 검사를 보고 있던 담임이 가까이 다가와서는 선도부에게서 잡지를 건네받았다.
“새애끼, 이거. 심지어 일본 잡지네? 야, 누가 일제 잡지 보라고 했어?”
“아니, 그게 구해 달라는 애가 있어서…….”
“뭐? 누가. 어떤 새끼가 쪽바리들 나오는 잡지를 구해 달라고 한 거야?”
선도부처럼 장사꾼의 머리를 탁탁 내려친 담임은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는지 잡지를 펼쳐 빠르게 넘기기 시작했다.
“한국 잡지랑 별로 다를 것도 없고……, 응?”
선생님의 시선이 잡지와 뒷자리에 있는 윤기 사이를 번갈아 이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