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75)
#75화 특이한 영업직 (1)
“흐음.”
고개를 갸웃거리는 담임의 모습은 선도부에게서 의아함을 사기에 충분했다.
“왜, 그러세요?”
“아니, 이거 봐봐.”
담임이 잡지의 한 페이지를 보여 주자, 선도부 역시 윤기와 잡지를 번갈아 바라보기 시작했다.
“뭐야, 왜 그래?”
이번엔 선도부장이 잡지 쪽으로 다가서더니 둘과 똑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잠시 뒤.
“아, 여기…….”
선도부장이 잡지의 한쪽을 가리키자, 이내 셋이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윤기야, 이거 혹시 너냐?”
담임은 윤기의 책상에 잡지를 내려놓았고, 그러자 주변 학생들 역시 윤기의 책상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네, 맞아요.”
“세상에 아니, 네가 어쩌다가 잡지에 나온 거야? 머리 스타일이 달라서 긴가민가했잖아.”
“에르메스에서 아시아 모델이 되어달라고 해서 촬영하고 왔어요. 저번에 저 일본 다녀왔잖아요? 그때 촬영한 거예요.”
“에르메스? 그거 무진장 비싼 거로 알고 있는데……, 그나저나, 살다 보니 현역 모델이 우리 반에 있는 경우도 다 있네.”
신기한 표정을 짓는 담임을 향해 장사꾼이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윤기는 아예 일본 잡지에 나왔는데 혼 안 내요?”
따악!
완벽한 뒤통수 소리와 함께 담임이 장사꾼을 향해 연타로 꿀밤을 날렸다.
쿵-!
그야말로 묵직한 소리.
“야 이, 멍청한 자식아. 생산성이 있는 행동이랑 생산성이 없는 행동이랑 같냐?”
담임의 말은 이어졌다.
“쯧쯧, 멍청한 놈. 이럴 때 입 다물고 있으면 조용히 넘어갈 텐데 꼭 화를 만들어요. 너 이따가 종례 끝나고 학생부로 와라.”
“헉!”
결국, 본전도 못 찾은 장사꾼은 선도부의 제재로 인해 더 이상 말을 못 꺼내게 되었고, 덕분에 담임은 윤기와 다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나저나 윤기야. 아시아 모델이라고? 그런데 왜 일본 잡지에 나온 거냐?”
윤기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에르메스를 구매할 만한 여력이 있는 나라가 아시아에서는 일본 정도거든요. 뭐, 다른 나라 부자들도 해외여행을 통해서 구입이야 한다지만, 현재 에르메스가 진출을 고려할 수 있는 나라는 일본 정도예요.”
“이런 젠장, 우리가 쪽바리들한테 밀린다고?”
윤기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뜻 모를 미소를 지어 보였다.
“쳇.”
현실을 깨달은 담임이 쓴소리를 하며 교탁으로 돌아가자 선도부의 소지품 검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학교에는 윤기가 나온 잡지가 불티나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 *
“한국인이 일본 잡지에 나오는 건 매국 행위 아니야?”
진수는 자신을 향해 이야기하는 다른 반 친구의 뒤통수를 후렸다.
“등신아, 그게 왜 매국 행위야.”
“왜, 한국인이 쪽바리 잡지 나온 거잖아.”
“헛소리하지 마. 오히려 애국 행위지.”
“뭐? 왜?”
의아한 표정을 짓는 다른 반 친구를 향해 진수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야, 일본에 얼마나 사진발 안 나오는 놈들만 있으면 윤기가 그 비싼 에르메스 모델을 했겠냐? 윤기가 한국인이 일본인들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증명한 거야.”
“아!”
이러한 대화를 하는 것은 원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윤기는 한국인인데 일본에 가서 일을 했잖아. 그러면 일본 돈이 한국으로 들어온 거라고. 이것보다 더 애국이 어디 있겠어?”
“와, 진짜 그렇네?”
진수와 원희의 이러한 말 덕분에 윤기는 순식간에 애국자가 되었고, 잡지 역시 불티나게 퍼져 나갔다.
비록 일제 잡지이긴 했지만, 모든 학교에는 장사꾼이 있게 마련이었고, 이러한 소문은 저번처럼 다른 학교에도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에르메스가 뭐야?] [우와, 이거 엄청 비싸다.] [이런 엄청 비싼 상표의 모델을 우리나라 사람이 했다고?] [이거 어디서 살 수 있는 거야?]학생들이 에르메스에 관심을 가져봤자 직접적인 구매로 이어지긴 힘들지만, 간접적인 홍보 효과는 확실히 가져다준다.
그걸 알기에 윤기는 에르메스 본사의 요청을 승낙한 것이다.
더불어서 이런 잡지를 보는 것은 비단 학생들 사이에서만 있는 게 아니라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볼 터.
학교가 아닌 곳에서도 소문이 퍼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뭐, 스트레스 해소도 어느 정도 되었고 말이지.’
와타나베의 뒤통수에 발을 올린 것뿐만이 아니라, 야마다 역시 에르메스 재팬에서 해고되었다.
파비앵에게 야쿠자 사건을 이야기하기가 무섭게 파비앵이 불같이 화를 냈던 것이다.
[아니, 분명히 제대로 처리하라고 지침까지 내려 주고 돌아갔는데 또 그랬단 말입니까?]결국, 파비앵은 또다시 프랑스에서 일본으로 와야만 했고, 지사의 일을 직접 지휘했다.
결과는 야마다의 해고와 와타나베와의 해약.
덕분에 윤기는 편안한 마음으로 일본에서 귀국했고, 이처럼 여유로운 마음으로 학교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서종훈은 귀국하지 않고 윤기의 지시를 수행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간접적인 홍보 효과는 이쯤이면 되었고, 슬슬 직접적인 홍보를 할 때인가?’
개장을 반년 정도 앞둔 시기.
윤기는 직접 광고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느꼈다.
* * *
“하긴, 슬슬 광고를 생각해 봐야 할 때이기도 하지.”
최철규의 말에 류근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신문사들의 광고 지면도 예약이 꽤 밀려 있을 것이기 때문에 시기를 생각해 본다면 미리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역시 직접 광고를 하는 게 좋다는 게 두 분 생각이신 거죠?”
류근태와 최철규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와이케이 백화점에 대한 입소문이 나고 있다고는 해도 신문 광고에 비할 바는 못 되죠.”
“맞아. 거기에 텔레비전 광고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신문이나 TV로 광고를 해야 지방에서도 사람들이 올라오지.”
“글쎄요. 사실 지방에서까지 올라오게 할 필요성이 있나 하는 게 제 생각이에요.”
“왜?”
최철규의 의아한 반응에 윤기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야, 서울 인구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돈 많은 지방 사람들은 와이케이 백화점에 대해서 자동적으로 알게 될 텐데, 굳이 텔레비전 광고까지는 생각이 들지 않거든요.”
“흐음……, 틀린 말은 아니네.”
“그리고 TV 광고에 대해서는 개장 이후에 생각해 보도록 하자고요. 미니 백화점 점주들을 위해 전국적으로 광고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면, 그게 훨씬 더 운영적인 측면에서는 좋지 않겠어요?”
최철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게 생각해 볼 여지도 있겠네.”
신문 광고만 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이던 시점에서 윤기가 새로운 의견을 꺼냈다.
“신문 광고도 좋지만, 신문 광고의 서브적인 면모도 하나 추가하는 게 어떨까요?”
“서브적인 면모요?”
“네. 신문 광고는 결국 누가 올리는 걸까요?”
“신문사죠.”
류근태의 대답에 윤기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당연한 거고요. 하지만, 또 다른 경우가 있을 텐데요?”
류근태가 이해했다는 듯 ‘아’ 소리와 함께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기자들도 광고에 도움을 줄 수 있겠네요. 우리가 광고 초안을 보내면 구독자들의 니즈를 파악해서 우리에게 수정하는 게 어떻냐고 알려 줄 수도 있을 테니까요.”
윤기는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고개를 저었다.
“나쁘지 않은 분석이지만 그것도 제가 말하려던 게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그러면 혹시 어떤 내용인가요?”
“죄송하실 것까지야 있나요. 사실 조금 특이한 접근이라서요.”
류근태와 최철규의 눈이 윤기의 입으로 향했다.
“어디까지나 제가 명명하는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광고는 포지티브, 그러니까 긍정적인 느낌이죠. 그렇죠?”
류근태와 최철규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네거티브한 경우도 있을 거예요.”
최철규가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내리치며 외쳤다.
“알겠다! 기자들이 와이케이 백화점에 대해서 안 좋게 쓰는 경우를 말하는 거구나?”
“정확해요! 아무리 비싼 돈을 들여서 광고를 넣는다고 해도 기자들이 안 좋은 내용을 쓰기 시작한다면 굉장히 위험해지는 일이죠.”
윤기는 우지 파동이나 쓰레기 만두, 벌집 아이스크림과 같은 매스컴의 민낯을 기억하고 있었다.
“현재 와이케이 백화점에 안 좋은 내용을 쓸 기자들이 있을까요?”
류근태의 근거 있는 지적에 윤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말해 보세요.”
“현재 우리는 신군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군부의 관계자들이 미니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상황이고요. 만약 이 상황에서 누군가 와이케이 백화점에 대해 비난하는 기사를 쓴다면 목숨을 건다는 얘긴데, 그럴 기자가 있을까요?”
“그래서 더욱 기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얘기죠.”
“네?”
류근태는 윤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윤기는 류근태와 최철규 앞에서 조그맣게 폭탄선언을 내질렀다.
“신군부가 과연 계속 이어질까요?”
* * *
만약 윤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한 말이었다면, 류근태와 최철규는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것이다.
그만큼 현 세태에서 신군부를 비판한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행위였으니까.
“어휴, 순간 식은땀이 다 났네.”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최철규가 윤기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윤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나조차도 말이 쉽게 이해가 안 가는데.”
“잘 생각해 보세요. 평생을 이어질 것 같았던 P의 독재도 허무하게 끝이 났죠. JD 역시 마찬가지일 거예요. 심지어 제국이라 불러도 무방할 소련조차도 요새 상황이 꽤 메롱한 편이고요.”
“으음…….”
은근히 객관적인 윤기의 말에 최철규는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은 명칭은 다르지만 옛날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죠. 만약 기자를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신군부가 갑자기 망한다면? 와이케이 백화점은 어떻게 될까요?”
류근태가 침음성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집중 공격을 당하게 되겠죠. 2차 신군부가 와이케이 백화점과 손을 잡는다면 모를까, 버리는 패로 쓰게 된다면 엄청난 공격을 받게 될 겁니다. 게다가 만약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면…….”
“거국적인 적이 되겠죠.”
윤기가 짐짓 싱긋 웃어 보이자 심각했던 둘의 반응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러니까 우리는 기자들과 미리 괜찮은 관계를 다져둘 필요가 있는 거예요. 독이 든 사과를 먹여 두면 최소한 네거티브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까요. 더군다나 독 사과에 대한 기록을 장부에 남겨 두면 나중에 정권이 바뀌더라도 기자들이 함부로 비판하지 못할 겁니다. 지금은 언론의 시대예요.”
2010년 이후 인터넷 속도가 굉장히 빨라진 시대에는 언론 조작보다는 여론 조작의 시대가 오지만, 적어도 80년대 지금은 언론이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이 굉장히 강했다.
이때의 언론에 영향받은 사람들이 2010년대에 60~70대가 되어서도 인식이 굳어져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기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접대 준비를 해 보겠습니다.”
“계획서를 보고하는 데에 며칠 정도 걸릴까요?”
“일주일 정도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 접대라는 게 생각보다 적성이 필요한 분야라서 현재 와이케이 백화점 관계자 중에 괜찮은 사람을 물색해 봐야 하거든요.”
“더 필요하지 않겠어요?”
윤기의 말에 류근태는 약간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더 뒤로 미룬다고 해도 특별히 나아질 보고서가 아닐 것 같으니, 일단 일주일 안에 1차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이후에 방향을 세부적으로 잡아 주시면 그에 따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윤기는 조청우 때와 달리 류근태에게는 시간의 압박을 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둘이면 대하는 방식도 다르게 하는 것이 윤기의 인사 관리법이었으니까.
“윤기야,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조용히 윤기와 류근태의 대화를 듣던 최철규가 슬며시 말문을 열었다.
“어떤 건가요?”
“접대가 통하지 않는 ‘진짜 기자’들은 어떻게 하지? 현시점에서 신군부를 공격할 기자들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잖아.”
“아아, 그건 정말 쉬운 해결법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