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77)
#77화 특이한 영업직 (3)
‘왜지?’
손민관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오로지 이것 하나뿐이었다.
‘왜, 나를 부른 걸까?’
공사장에 출근했더니 갑자기 사장의 집으로 옮겨진 상황.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손민관은 약간의 공포심마저 들 정도였다.
‘내가 담당한 부분에 혹시 문제라도 생긴 건가? 예전에 몇몇 사람들이 군인들한테 끌려갔다고 들었는데…….’
손민관이 와이케이 백화점 건설 현장에 온 것은 아직 6개월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장선과 관련된 이야기는 말로만 들어 본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손민관은 혹여나 자신도 삼청 교육대에 끌려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류근태가 올 때까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게 했군.”
류근태는 쫙 빠진 양복을 입은 상태로 사장실의 문을 열며 나타났다.
“아, 안녕하십니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류근태를 향해 허리를 90도로 숙이는 손민관의 태도는 그야말로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류근태 역시 그런 손민관을 바라보며 부담감을 느꼈다.
정확히는 손민관에게 느낀 부담감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윤기는 타인 앞에 자신을 드러내기 쉽지 않은 상황.
그렇기에 이번 일은 전적으로 류근태가 전담하게 되었다.
“앉지.”
“예.”
둘이 앉기가 무섭게 류근태의 집으로 따라온 직원 하나가 컵에 따른 콜라를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 방으로 들어갔다.
“커피도 좋지만, 아직 날씨가 조금 더우니 콜라로 했네. 괜찮은가?”
“예! 그렇지 않아도 목이 말랐습니다.”
컵을 집어 들려던 손민관의 손이 순간적으로 멈췄다.
‘어, 얼음?’
80년대부터는 냉장고의 보급화가 엄청난 속도로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70년대만 하더라도 냉장고의 보급률은 1퍼센트였는데, 1986년에는 95퍼센트가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81년인 현재는 아직 보급화의 단계였기 때문에, 손민관은 가정에서 얼린 얼음을 구경해 본 적이 없었다.
“왜, 그러나?”
“아, 아뇨. 얼음을 보고 조금 신기해서 그만……. 사 오신 건가요?”
“그럴 리가. 저기 냉장고가 있는데 뭐 하러 얼음을 사겠어.”
주방에 놓여 있는 냉장고를 본 손민관은 새삼 ‘부자’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느끼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만약 류근태가 바지사장이고, 이러한 모든 게 윤기에 대한 충성의 대가라는 것을 안다면 손민관은 그야말로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았지만.
“저번 주 일요일에 있었던 회식은 괜찮았는지 궁금하군.”
“아, 예. 정말 즐거웠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회식을 시켜 준 공사장이 전혀 없었는데, 정말 즐거웠습니다.”
“천만다행이야. 혹시나 주말을 뺏었다고 불만들을 가지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했거든.”
손민관은 절대 그럴 리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절대 아닙니다. 다들 정말 좋아했습니다. 어차피 쉬는 날에 할 거 없어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지라…….”
손민관은 여기까지 말하다가 아차 하는 심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류근태는 딱히 손민관의 말에 꼬투리를 잡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지게차 같은 것을 모는 식의 특수 인력이 아닌 이상에야 잡부 인생은 하루살이 같은 인생 아니겠어? 일급으로 받기 때문에 세금도 안 내고, 기본적인 페이가 높지만, 재수 없으면 한 달에 하루도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불안하게 살 수밖에 없지.”
현실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류근태의 말에 손민관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일급에 30을 곱해서 한 달 수입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일이 매일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솔직한 손민관의 태도에 류근태는 테이블에 놓인 담배를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한 대 태우겠나?”
“아, 아닙니다.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요.”
“그래?”
류근태는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찰칵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라이터에서 불이 붙지 않자, 손민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기름이 없는 것 같은데요……?”
말을 들은 류근태가 씨익 웃으며 입에 문 담배를 도로 케이스에 넣으며 내려놓았다.
“사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예?”
“그냥 자네를 시험해 봤을 뿐이지. 공사장 사람들에게 들어 보니 자네는 담배를 피운다고 하더군. 그런데 왜 지금 안 피운다고 한 거지?”
잠시 고민하던 손민관이 솔직하게 답하기 시작했다.
“높으신 분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기도 하고, 담배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어서 혹시 담배를 피우시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비흡연자 중에 담배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주머니에 항상 담배를 들고 다니니까요. 그런데 테이블에 담배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통찰력이 대단한데? 역시 추리 소설 작가 지망생다워.”
“헉!”
손민관은 깜짝 놀라 눈을 끔뻑이기 시작했다.
“뭘 그렇게 놀라나. 사업을 하려면 인맥이 있어야 하는데 자네에 대해 아는 사람을 찾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야. 뭐, 공사장에서야 비밀로 한 것 같지만, 세상에서 완벽한 비밀은 찾기 힘든 법이지.”
40대를 목전에 둔 류근태는 윤기의 앞과 달리 연륜의 면모를 보이며 손민관을 리드하고 있었다.
“그, 그렇습니까.”
“자네가 쓴 소설도 읽어 봤어. 순문학이 아니라고 등단도 실패하고, 출판사에서도 거절한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꽤 재미있게 읽었지.”
이 정보는 윤기가 알려 준 것으로 소설 내용 역시 윤기가 축약해서 알려 주었기 때문에 류근태는 소설의 세부적인 내용을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손민관은 자신의 소설을 상대가 입수해서 읽었고, 또 재미있게 보았다는 사실에 속으로 굉장한 감명을 받은 상황이었다.
“저, 정말 재밌게 보셨습니까?”
“그래.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출판이 되기 힘들겠지만, 한 10년 정도 지나고 사람들이 상업 소설에 관심을 가지면 충분히 팔릴 만한 느낌이야.”
“10년…….”
손민관은 희망과 절망이 섞인 어조로 한탄했다.
“내가 자네를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공사장에서 자네 평판이 대단히 좋기 때문이야. 특히 다른 사람들의 말을 정말 잘 들어준다는 말이 많더군.”
손민관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는 약간 흐려진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뭔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을 텐데 말이야. 사람이 좋아서라는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겠지?”
날카로운 지적에 손민관은 고민하다가 결국 또 솔직하게 답하기로 결정했다.
상대가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상황에서 속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추리 소설은 생동감이 제일 중요한데,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가장 쉽고 빠르게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에는 공사장이 최적이라 이 방면으로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 주는 것도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겠군?”
“그렇지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 변형하면 훌륭한 이야깃거리가 나오니까요.”
류근태는 몇 번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해.”
“가, 감사합니다.”
얼떨결에 고개를 숙인 손민관은 아직도 류근태가 자신에게 왜 이러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곧바로 풀리게 되었다.
“자네가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하나 하지.”
“예?”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고. 자네 생활 빈곤하지?”
손민관의 얼굴이 붉어졌다.
“당연히 빈곤할 거야. 우리 공사장의 임금이 높은 수준이 아닌 데다가, 자네가 매일 출석을 하는 것도 아닌 거로 알고 있거든.”
“글을 써야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아, 타박하는 게 아니야. 당연히 소설을 지망하면 글을 써야지. 그런 의미에서 내가 제안을 하나 하지. 현재 우리 백화점은 영업부 직원이 필요해. 그런데 자네는 영업에 재능이 있어 보이는군. 어떤가, 영업부에 들어오지 않겠나?”
“여, 영업부요? 하지만…….”
류근태는 손민관이 거절을 하지 못하도록 당근을 발칸으로 날리기 시작했다.
“영업부 직원이 된다면 월급도 충분히 주고, 냉장고 딸린 집도 무료로 임대해 주도록 하지. 이제 더운 여름날 가뜩이나 힘들게 글 쓰는데 뜨거운 물을 마시지 않아도 될 거야. 거기에 글을 쓰기 편하도록 책상과 의자도 아주 최고급으로 맞춰 주지.”
손민관의 목구멍에서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그, 그렇지만 제가 공사장에 나가는 이유는…….”
류근태는 다시 말을 끊으며 결정타를 날렸다.
“자네가 상대해야 할 상대들은 기자야. 자네가 공사장에서처럼 기자들을 상대한다면 훨씬 더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을 얻을 수 있겠지. 어떤가. 그래도 고민이 되나?”
결국, 손민관은 무너졌다.
* * *
기자들에 대한 접대는 순조롭게 이어졌다.
윤기가 직접 후보로 선정한 손민관.
손민관은 영업부 직원이 되자마자 냉장고가 딸려 있는 숙소를 지원받고는 행복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손민관만 있는 게 아니었다.
류근태는 윤기에게 약속했던 1주일 동안, 손민관과 다른 타입의 인재를 찾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손민관이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데에 최적화되었다면, 류근태가 뽑은 마석일은 음주·가무에 최적화된 타입.
원래 중견 기업의 영업 사원으로 지내다가 상사의 비리를 덤터기 쓰고 공사장을 전전하게 된 케이스였다.
기존에 능력 있는 영업 사원이었던 만큼, 마석일은 류근태의 제안을 곧바로 받아들였고, 둘은 콤비를 이뤄 기자들을 접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류근태는 윤기에게 올린 보고서를 토대로 손민관과 마석일에게 각 신문사의 편집부장과 연예부, 사회부의 기자들을 공략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민관아 너는 형만 따라와. 영업은 그냥 몸으로 부딪치는 거야. 다른 거 필요 없어. 빨리 나를 따라와야 나중에 글 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거라고.”
마석일은 영업 사원 출신답게 기자들과의 첫 만남을 마치 폭주 기관차처럼 성사시켰고, 이러한 마석일의 영업력을 바탕으로 손민관은 기자들의 환심을 사는 데에 성공했다.
고충이 많은 기자들 특성상 자신들의 넋두리를 끝내주게 들어줄 사람이 있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더불어서 유흥을 좋아하는 기자들은 마석일이 담당함으로써 12월이 될 때까지 와이케이 백화점의 영업부는 교류 중인 기자들에게 상당한 환심을 살 수 있었다.
실제로 작은 기사지만 일부 신문들에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으니까.
[청계천 와이케이 백화점, 개장 초읽기] [고급을 지향하는 와이케이 백화점은 어떤 곳일까?]이 기사들이 큰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이것은 영업부가 만들어 낸 성과였고, 윤기는 류근태를 통해서 보상의 지급을 명령했다.
특히 마석일은 보너스 지급에 굉장히 감동한 눈초리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마석일은 유부남이었기 때문이었다.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키우고 있던 마석일은 전 회사에서 잘린 이후로 공사장을 전전하며 생계를 꾸렸는데, 영업부에서 일을 하게 된 후로 근무시간은 늘었지만, 집에 풍족한 월급을 갖다 주게 되어 아주 만족하고 있었다.
“사장님,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지만 차를 운전하면서 액셀만 밟을 수는 없는 법.
한 신문사의 편집국장이 정치부에서 와이케이 백화점을 비판하려는 기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왔고, 마석일은 해당 기자와 친분을 쌓기 위해 온갖 노력을 들였다.
하지만 모든 노력이 허사.
심지어 편집국장이 아닌 보도국장의 힘으로 보도가 되려던 것을 편집국장이 며칠간의 말미를 겨우 얻어 낸 상황이었다.
“마 과장이 정말 일을 잘하고 있기는 한데, 그 기자는 진짜 말이 안 통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잘 해 왔는데 마 과장을 탓하기도 그렇고…….”
류근태의 말에 윤기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마 과장을 탓해서는 안 될 일이죠. 그리고 저번에 작은아버지하고도 말했잖아요? 이레귤러는 반드시 존재한다고요.”
“아, 그렇죠. 그럼,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을까요? 사실 저는 아직도 그 해결법이 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지시를 기다리는 류근태를 바라보며 윤기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기자의 부모님 집으로 최고급 가전제품들을 아주 풀 세트로 보내 버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