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78)
#78화 정의로운 기자? (1)
“예?”
류근태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 반쯤 확신했다.
‘내가 지금 잠시 정신줄을 놓은 건가?’
하지만 류근태는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그 기자의 본가에 가전제품을 풀 세트로 보내라고 했어요.”
“회장님, 지금 제가 말씀드린 기자는 와이케이 백화점에 안 좋은 기사를 쓰려고 하는…….”
류근태의 말을 듣던 윤기가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찡그렸다.
“류 비서.”
그동안 보여 준 적이 없었던 모습이었기에 류근태는 순간 자신이 무슨 큰 실수를 했나 싶어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예, 옛! 회장님.”
“요새 들어서 류 비서가 본분을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언제나 회장님을 보필하려는 생각에…….”
윤기는 류근태의 말을 끊었다.
“요새 보면 백화점 사장의 모습을 많이 보여 준단 말이죠. 류 비서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 줄 수도 있지만, 그게 정말 류 비서가 원하는 건가요?”
윤기의 비서와 와이케이 백화점의 사장.
그제야 류근태는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깨달았나요?”
“예, 정말 죄송합니다…….”
윤기는 절대 멍청이가 아니다.
그렇다는 것은 내린 명령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는 것.
지시를 내리면 수행해야 하는 것이 비서인 만큼, 윤기에게 기자에 대해 재차 설명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것은 조언이 아니라 설득의 단계로 들어갈 여지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비서가 회장을 설득한다?
이것은 명백한 월권행위다.
“알면 됐어요. 그리고 그만 풀 죽어요.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는 거죠.”
“예,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윤기는 실수할 수도 있다고 말해 주었지만, 류근태는 다시 한번 스스로의 끈을 조였다.
* * *
“호제야, 다시 생각해 봐라. 이거 올리면 너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니까? 남영동 끌려가고 싶어? 와이케이 백화점이랑 신군부 관계를 몰라서 그래?”
편집국장의 말에 정치부 기자인 김호제가 고개를 저었다.
“국장님, 저 이 기사 꼭 쓰고 싶습니다. 제가 안 쓰면 누가 이런 기사 씁니까?”
“미친놈아! 남들도 다 안 쓰는 기사를 네가 왜 써!”
이틀 넘게 철야를 하느라 머리조차도 감지 못해 포마드와 개기름으로 떡진 머리를 번들거리던 편집국장이 가슴을 쾅쾅 쳤다.
“국장님, 진짜 이해가 안 갑니다. 보도국장님이 허가해 주신 것을 왜 국장님은 안 된다고 하는 겁니까?”
“미친놈아! 그 녀석은 나중에 ‘편집국에서 처리한 줄 알았다.’라는 말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사실상 자기 책임이 없어!”
국장의 말에 김호제는 본인 특유의 실눈 바깥쪽을 위로 끌어 올리며 화난 표정을 지었다.
“국장님, 진짜 너무하십니다. 기자는 패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국장님은 어디 가신 겁니까? 설마, 벌써 신군부에 굴복하신 겁니까?”
“야,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굉장히 상처받은 듯한 편집국장의 모습에 김호제는 자신이 말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실언을…….”
편집국장이 밑의 기자들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니는지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에 김호제는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후우……. 그래……, 네가 다 패기가 있어서 그런 거겠지. 그런데, 호제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안 되겠냐? 다른 인맥도 아니고 JD랑 JSD까지 관여된 그룹이야. 잘못 건드리면 너 진짜로 죽는다.”
“상관없습니다. 국민은 알 권리가 있어야 하니까요.”
“알 권리……, 후…….”
편집국장은 담배를 한 대 꺼내 불을 붙인 뒤, 담뱃갑을 김호제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김호제 역시 담배를 하나 꺼냈고, 편집국장은 그 담배에도 불을 붙여 주었다.
“옛날 생각 안 나냐? P 인척 비리 하나 잡아 보겠다고 보름을 잠복 취재했잖아. 그때도 이렇게 둘이서 담배 피웠었는데…….”
친근한 말을 들은 김호제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호제야.”
“네, 국장님.”
“그래, 그 기사 올려라.”
“……!”
김호제는 감격에 찬 표정을 지으며 국장을 바라보았고, 그것을 본 국장의 말이 이어졌다.
“대신.”
“예?”
“딱 5일만 더 생각해 봐라. 5일 뒤에도 그 기사를 내보내겠다고 하면, 내가 내 목을 걸고 통과시켜 줄게. 설마 내가 거짓말하는 거라고 못 믿는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절대 아닙니다.”
처음부터 커트하는 경우는 있어도 거짓말을 한 적은 없는 편집국장이었기에 김호제는 재떨이에 담배를 끄고는 편집국장의 오른손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국장님!”
“됐어. 그리고 5일 동안 신변정리나 해 놔. 5일 뒤에 기사 내보냈는데 네가 갑자기 실종되거나 하면 네 부모님은 무슨 죄냐?”
김호제의 표정이 잠시 침울해지긴 했지만, 김호제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걱정 마세요. 사나이 김호제. 그런 거 무서워하는 놈 아니니까요.”
“됐다……. 아무튼, 이만 가 봐.”
“예!”
이미 밤이 11시가 넘었기에 김호제는 마음도 후련해졌겠다 퇴근도 할 겸 신문사 건물을 나섰다.
차가운 바람이 쌩쌩 부는 밤 날씨.
칼바람에 볼이 베이는 기분을 느낀 김호제는 문득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떠올렸다.
‘그래……, 이참에 부모님 얼굴이나 봐 둘까…….’
* * *
“아니, 이게 누구여?”
등이 살짝 굽은 60대 중반의 할머니가 고무신을 신고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어머니, 저 왔습니다.”
30대 중반의 나이인 김호제는 독신이었고, 덕분에 가족이라고는 형제자매를 빼면 부모님밖에 없었다.
“그동안 기자 일로 바쁘다더니 오늘은 어떻게 온 거여. 여보! 시방, 나와 봐요! 호제 왔당께!”
“으이? 호제가 왔다고라?”
슬레이트 지붕 집의 문이 활짝 열리며 60대 후반의 아버지가 마당에 뛰쳐나와 김호제를 안았다.
농사를 짓느라 피부가 새까맣고, 자외선에 피부가 자글자글해진 모습.
형제자매 중에 성공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아직도 이런 촌구석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김호제는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아니, 네가 기자가 되었다꼬? 동네 사람들 나와 보소!]아들이 기자 됐다고 동네방네 자랑하던 부모님이었지만, 정작 기자가 되고 나서 부모님에게 용돈 한번 제대로 드려본 적이 없었다.
첫 월급을 타서 사 드린 빨간 내복이 끝.
벌고 있는 돈의 대부분은 학생 운동 단체에 지원하거나 반정부 시위를 하다가 감옥에 간 사람들에게 사식을 넣어 주고 있기 때문에 김호제는 부모님을 챙겨드리기는커녕 자신조차도 빈곤하게 살고 있었다.
“잘 지내셨어요?”
“잘 지냈지. 잘 지냈고말고! 잘 못 지냈어도 네 얼굴 보니까 안 좋은 생각이 확 날아가 부렀다! 그런데 바쁠 텐데 으쩌케 왔냐?”
“휴가받았어요.”
김호제는 차마 ‘죽기 전에 보러 왔어요.’라는 말은 못 하고 적당한 변명과 함께 눈동자를 돌렸다.
하지만, 아들이 왔다는 것만으로도 한껏 기분이 좋아진 부모님은 그 사실을 몰랐다.
“일단 안으로 들어와라잉. 밥 안 묵었제?”
“예, 그러잖아도 어머니 밥이 먹고 싶네요.”
“조금만 기다려라잉. 내 싸게 밥 차려 내올 탱께.”
신나서 주방으로 들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김호제는 아버지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
순간 김호제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것들은 다 뭐지……?’
거실에 놓인 큼직한 컬러 TV, 방 한쪽에 놓여 있는 커다란 냉장고, 벽 한쪽에 설치된 에어컨까지.
혹시나 싶어 주방을 비롯한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세탁기에 비디오, 오디오까지.
그야말로 자신이 알고 있는 가전제품 종류는 전부 보이는 상황.
김호제는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미소가 나왔다.
“누나나 형이 사 준 거예요?”
하지만 아버지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한테 말하지 말랬는디 그래도 말해도 되겄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김호제는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이해가 가질 않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기……,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이 오더니 우리 집에 이런 걸 다 주고 가더라고.”
“누, 누가요?”
기자 생활을 하면서 밑바닥을 굴러볼 대로 굴러본 김호제는 누군가 호의로 이런 걸 준다는 것을 절대로 믿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 불순한 의도로 접근을 한 거라면 기자 생활을 걸고 절대 그냥 놔두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버지의 입이 열렸다.
“세상에 너 같은 참 기자가 없다면서 네 칭찬을 그렇게 하는데, 우리 기분이 다 좋더라고. 네가 기자 생활을 그렇게 잘한다면서? 우리는 너한테 들은 적이 읎으니까…….”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김호제는 그야말로 인지 부조화를 겪고 있었다.
자신의 기자 생활은 적을 만들면 만들었지, 아군을 만들기는 힘든 구조.
물론, 반정부 단체 쪽과 인맥이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그들이 자신의 집에 이런 지원을 해 줄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들도 생활이 전혀 여유롭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아, 아버지. 혹시 누구라고 밝히던가요?”
“어디 보자, 누구더라……?”
머릿속으로 기억을 떠올리려는 아버지의 입을 마치 뚫어 버릴 듯이 김호제의 시선이 향하자, 아버지는 조금 부담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답했다.
“그, 뭐시냐. 와이케이 백화점이라고 한 것 같던데…….”
* * *
4일 동안 본가에 있다가 서울로 돌아온 김호제는 신문사로 가는 것이 아니라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집으로 올라올 때, 부모님이 생활에 보태 쓰라며 준 20만 원.
그 돈이 어디에서 나왔을지 알았기에 김호제는 그 돈으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렇기에 안주라고는 쪽파와 간장 정도가 고명으로 들어간 국수뿐.
그나마도 국수는 안 먹고 국물만 몇 숟갈 떠먹으며 강소주를 마시고 있는 김호제의 표정은 그야말로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도대체 와이케이 백화점의 의도가 뭐지? 나한테 알리지 말라고 했다고? 나를 참 기자라고 칭찬했다고? 도대체 이유가 뭐야?’
지금까지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접근해 온 적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기사를 내지 말라고 협박하거나 심한 경우 폭행도 불사하던 부류가 대부분.
그런데 와이케이 백화점은 오히려 자신의 본가에 어마어마한 선물을 주고는 떠나갔다.
‘내가 안 좋은 기사를 쓰려고 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을 거야.’
김호제가 와이케이 백화점에 대해서 비판하는 기사를 쓰려고 한 이유.
그것은 와이케이 백화점이 기자들을 푸짐하게 접대하고 있는 사실을 들었고, 또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만큼 자신의 행동이 동료 기자들에 의해 와이케이 백화점에 보고되었을 것임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해가 안 가.’
답답한 마음에 소주를 석 잔이나 연거푸 들이마신 김호제는 결국, 큰 결심을 하나 했다.
‘찾아가 보자.’
* * *
아침 8시.
무작정 만나 달라고 했음에도 상대가 나와 주자 김호제는 솔직히 적잖이 놀랐다.
JD와 JSD를 비롯해서 신군부의 측근들과 교분을 나누고 있는 류근태 사장이 일개 기자인 자신을 직접 만나 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규모가 작다 이건가?’
규모는 작지만,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곳.
그것이 바로 와이케이 백화점이었지만, 어쨌든 규모가 작아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김호제는 생각했다.
“반갑습니다. 제가 와이케이 백화점의 사장 류근태입니다.”
사무실의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오는 류근태의 손을 자신도 모르게 맞잡은 김호제는 류근태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도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김호제의 말은 날카로웠고, 첫인사 같은 것 역시 없었다.
하지만 류근태는 그런 김호제에게 전혀 기분 나쁘다는 내색 없이 답했다.
“와이케이 백화점으로서는 모르겠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김 기자님 같은 분을 존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
언뜻 이해를 못 한 것 같았지만, 이 말은 김호제의 가슴에 파문을 만들었다.
“저는 김 기자님 같은 행동을 절대 할 수 없는 부류입니다. 비겁한 족속이지요. 그렇기에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을 해 드렸을 뿐입니다.”
“도, 도대체 그게 무슨…….”
“김 기자님에게 직접 돈을 전달해 드렸다면 반드시 거절하셨겠지요. 그렇기에 제가 할 수 있는 호의는 그것뿐이었습니다. 아마 알고 오셨겠지요? 정말…… 죄송합니다.”
허리를 90도로 숙이는 류근태의 행동에 김호제의 당황은 더욱 커졌다.
“전부…… 알고 있었던 겁니까……?”
김호제는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물어보았고, 류근태는 그 사실을 사살까지 해 주었다.
“예. 솔직히 걱정되더군요. 하지만 기사를 쓰지 말라고 해도 쓰실 분이었기에 제 개인적인 후원을 했을 뿐입니다.”
“허…….”
김호제는 짙은 당혹감에 낮은 한숨을 쉬며 류근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류근태를 바라보는 그 눈동자에는 처음에 가졌던 멸시 같은 것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은 그저 당황, 황망, 그리고 약간의 호의와 한 줌의 의심이 한데 어우러진, 그야말로 혼란.
그런 와중에 갑자기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직원이 들어와 류근태에게 조간신문을 건넸다.
“사장님, 아침 신문입니다.”
“아, 고마워. 저기 테이블 한쪽에 올려 두고 나가지.”
“알겠습니다.”
비록 반으로 접힌 신문이었지만, 김호제는 1면의 일부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와이케이 백화점의 어둠. 그곳은 군부인가 상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