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79)
#79화 정의로운 기자? (2)
‘으헉!’
그야말로 심장이 오그라들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김호제는 필사적으로 표정 관리를 하며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
“그나저나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찾아오실 정도로 저를 싫어하셨던 거라면 그래선 안 되었던 건데…….”
착잡한 표정을 짓는 류근태를 바라보던 김호제는 자신의 마음 한구석이 굉장히 쓰라려 오는 것을 느꼈다.
“아, 아닙니다.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지금까지 그런 인정을 받아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말을 할수록 침울해지는 김호제를 향해 류근태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주었다.
“아마 저 말고도 다른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저 도와줄 여건이 안 될 뿐이죠.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기자님은 혼자가 아니에요.”
만약 이 장소가 울어도 되는 장소였다면, 김호제의 눈에서 손톱만 한 눈물이 퉁 하고 떨어져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김호제는 그러한 눈물을 억지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당장 테이블 한 곳에 놓여 있는 신문으로 인해 어쩐지 화끈거리는 얼굴조차도 숨겨야 했으니까.
“아, 아무튼. 가……, 감사합니다.”
김호제는 자신이 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는 겁니까?”
“네, 가야지요. 초대를 받은 것도 아니고…….”
“초대와 상관없이 언제든지 오십시오. 저는 기자님의 기사를 다 읽어 보았습니다. P 시절 때 쓰신 기사들은 하나같이 생명과 죽음이 담겨 있는 기사들뿐이더군요.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혹시 활동비가 부족해지면 오십시오. 와이케이 백화점으로서가 아니라, 제 개인이 기자님한테만큼은 후원을 하겠습니다.”
김호제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한 번 숙인 후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건물을 나섰을 때, 김호제의 눈에서는 큼직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도대체 왜 기사가 나간 거야!’
김호제는 신문사를 향해 전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구, 국장님! 기, 기사가 왜, 왜 나간 겁니까?”
숨을 헐떡이는 김호제의 말에 편집국장이 정말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다, 호제야. 네가 당연히 기사를 낼 거라고 생각해서 가편집해서 기사를 넣어 놨는데, 연락 안 오면 뺀다는 것을 잊었어. 내가 급하게 다른 기사 손볼 게 있어서……. 그래도 어차피 기사 내려고 했던 거니까 상관없지 않……아?”
정말 미안해하는 편집국장의 모습을 보며 김호제는 그야말로 울고 싶었다.
정말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기사를 내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류근태를 만난 이후, 기사를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은 사라져 버렸다.
스스로도 확실한 하나의 이유를 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복합적인 이유가 맞물렸기에 김호제는 와이케이 백화점, 아니 류근태만큼은 건드리기가 싫어져 버렸다.
“호제야. 내가 혹시 큰 실수한 거냐……?”
자신의 눈치를 바라보는 편집국장을 보며 김호제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분명 기사를 올리겠다고 우긴 것이 자신이었으니까.
“아니……, 아닙니다…….”
“그나저나 한동안 몸 숨겨라, 나도 일주일짜리 휴가 냈어. 너도 그냥 일단은 몸 숨겨. 내가 장기 취재 나갔다고 위에 이빨 좀 까 볼 테니까.”
“아뇨, 이미 각오……했……으니까요. 괜찮습니다.”
원래 했던 각오는 이런 일을 상정한 각오가 아니었기에 김호제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
김호제도 편집국장도 아무런 일신상의 위해를 겪지 않았다.
* * *
[저기 혹시……, 힘을 써 주신 겁니까……?]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류근태가 답했다.
“그날 가시고 나서 신문을 보다가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역시……, 보셨군요…….]“기자님의 기사를 보는 것이야말로 제 즐거움이니까요. 그때 다 봤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으흐흑…….]수화기 너머에서 아주 낮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류근태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말을 이었다.
“그래도 솔직히 걱정은 되더군요. 그래서 윗분에게 연락을 해서 이번 일은 오히려 일종의 환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조금 어렵긴 했지만, 이해를 받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물론 그 기사를 필두로 비판 기사가 많아졌다면야 위험했겠지만, 다행히도 그런 기사가 추가로 나오지는 않더군요.”
[…….]수화기 너머에서 대답이 없었지만, 류근태의 말은 다시 이어졌다.
“좋은 소식이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와이케이 백화점에 대해서는 편히 비판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적당한 비판도 오히려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고 했더니 그것도 납득하는 눈치더군요. 물론 어디까지나 기자님에 한해서지만……. 기자님 말고 다른 기자분들까지 커버하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게 아닙니다…….]김호제는 한동안 아니라는 말을 반복하다가 이내 ‘죄송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휴우.”
류근태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 있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은 뒤, 자리에 앉았다.
“고생했어요.”
사장실에 소파에 앉아 있던 윤기의 말에 류근태는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정말 힘들었습니다. 저였으면 전혀 쓰지 않았을 방식을 연기해야 하다 보니 이게 인형 탈을 쓰고 움직이는 것처럼 쉽지 않더군요.”
“그런 사람을 공략하려면 그 방식을 써야만 했으니까요. 제가 성인이었다면 직접 나섰겠지만, 지금 제가 나서기는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회장님에게 죄송합니다. 사실 이 기자의 마음을 사는 것은 제가 아니라 회장님이어야 했는데…….”
“상관없어요. 어차피 10년쯤 지나면 대충 알게 될 일이니까요. 잠시 차나 한잔할까요?”
“좋지요.”
잠시 뒤, 직원이 차를 두고 내려가자, 윤기와 류근태는 따뜻한 차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회장님,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하세요.”
“이번 일이 대충 끝난 것 같아 드리는 질문입니다만……. 그렇게 공략을 하신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게다가 실제로 보도를 그냥 놔두신 이유도 회장님의 진짜 의도를 알고 싶습니다.”
“대답해 주기 어려울 것은 없죠.”
윤기는 설득이 아닌 질문에는 언제나 온화했다. 물론 자세한 질문에 대해서는 최측근에 한해서였지만.
“어디 보자……, 일단 기자 본인이 아닌 가족들을 케어한 이유가 제일 궁금하겠죠?”
“그렇습니다. 그게 듣고 나면 쉬운 일인데, 떠올리기는 어려운 일이니까요.”
류근태의 솔직한 말에 윤기가 미소를 지었다.
“정의감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가족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거든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독립운동가를 생각해 보세요. 그 사람들은 애국심과 정의감이 굉장히 뛰어났죠. 하지만,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서 가족들은 고통받아야 했어요. 재벌이 가산을 탕진해서 독립군을 지원했다는 이야기 들어 보신 적 있지요?”
“아,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지요. 하지만, 그 사람 가족에게는 그게 어떻게 보였을까요?”
“음…….”
“당시에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아무도 알 수 없죠. 하지만, 후대에 독립운동가라는 게 밝혀졌을 때, 가족들이 매스컴에서 ‘아버지를 원망한다.’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아…….”
류근태는 머릿속의 안개가 어렴풋이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를 원망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여론은 ‘아버지의 큰 뜻을 모르는 이기주의적인 자식’으로 호도할 가능성이 커요. 유공자가 되어 보지 못했으면서 말이죠.”
“확실히……, 어느 정도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역시 그런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역시 안 가지고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 정의감을 가진 사람이 가족들을 생각 안 할 리 없죠. 다만, 그 사람들은 가족들의 정말 큰 미래를 바라본 거예요. 단기적으로는 힘들지 몰라도, 먼 미래에 자식들이 떳떳하게 살 세상을 추구했기에 현재의 가산을 포기한 거죠.”
“아……, 저는 국가를 더 생각한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국가도 생각했죠. 단지, 가족들을 버린 게 아니라 가족들의 미래를 바라봤다는 거예요.”
“제가 아직은 생각이 짧은 것 같습니다.”
“아니에요. 제 생각도 어디까지나 추론이니까요. 아무튼, 이런 사람들은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것은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겠죠. 그런 상황에서 부모님에게 어마어마한 선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어떤 기분이 들까요?”
“기쁘……, 아니 당황할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정확해요!”
윤기는 손뼉을 한 번 짝 치며 씨익 웃고는 말을 이었다.
“만약 부모님에게 선물을 주면서 자식에게 전화를 하라고 했으면 기자는 환멸감을 가졌겠죠.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어요. 오히려 부모의 입을 적당히 막았죠. 그러니 기자는 더더욱 혼란스러웠을 거예요. ‘어? 이 녀석들 뭐지?’ 하면서 말이죠.”
말을 듣는 류근태는 그야말로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왜 윤기에게 충성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충성할 수밖에 없는지 깨달았다.
“심지어 직접 찾아왔는데 상대는 자신의 팬이라고 자처하고 있고, 걱정까지 해 주고 있어요. 누가 봐도 자신의 정의에 정신적 지지를 해 주는 사람. 기자가 그런 사람을 악인으로 볼 수 있을까요?”
“절대 없을 거라고 봅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촛불 같은 존재가 되었을 테니까요.”
“맞아요. 앞으로 저 사람은 절대로 와이케이 백화점에 대해서 나쁜 기사를 쓰지 못할 거예요. 그럴 때마다 순수한 자신의 동조자를 칼로 찌르는 기분을 받게 될 테니까 말이죠.”
류근태는 자신의 목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퍼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김 기자는 내가 자신의 팬이 아니라는 것을 꿈에도 모르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김 기자는 와이케이 백화점에 대해서 비판하지 못할 거야. 허…….’
류근태는 마지막 남은 궁금증을 위해 윤기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보도를 허용하신 이유도 방금 말씀하신 내용의 연장선일까요?”
편집국장의 실수는 실수가 아니라 윤기의 지시였다.
마석일을 통해 해당 기사를 실수를 가장하여 보도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니까.
편집국장이 밑의 기자들을 신경 써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기자로서의 접대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던 데다가 김호제의 안전을 보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 진짜요?]마석일이 표현한 편집국장의 반응을 떠올린 류근태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웃음을 지어 버렸다.
“연장선도 있기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미래를 위해서였죠.”
윤기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류근태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시간이 흘러서 신군부가 망하고 미국처럼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선다면, 이 기사 하나가 우리가 크게 유착하지 않았다는 근거가 되어 줄 거예요. 유착이 진실이든 아니든지 말이죠. 나중에 사람들끼리 싸울 때 꽤 볼 만할 거예요. ‘유착한 기업이 이런 기사를 놔뒀겠느냐?’라는 의견이 반드시 나올 테니까요.”
만약 최철규가 지금 류근태의 표정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상상을 초월하는 선구안에 류근태는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자신의 두 뺨을 쫙하고 쳤다. 윤기가 앞에 있었음에도 말이다.
“왜, 그러시죠?”
“정신…… 차리고 일하겠습니다. 전 아직도 정말로 부족한 것 같습니다.”
대답을 들은 윤기는 그런 류근태에게 대답 대신 뜻 모를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리고 보니 마이크로소프트의 올해 매출이 얼마 정도죠?”
“이 추세라면 어림잡아 3,500만 달러 정도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