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8)
#8화 너는 내 사유 재산 (1)
소갈머리가 없이 양옆으로 주변머리가 남아 있는 머리칼에 도수가 너무 높아 눈이 거의 보이지 않게 만드는 뱅뱅이 안경.
특히 얼굴을 전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곡선이 마치 회오리처럼 안경알을 지배하는 것이 너무나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할아버지!”
구원군이 왔다고 생각한 것인지 할아버지를 연호하며 냉큼 달려간 이원희는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짐짓 울기 시작했다.
“으아앙! 할아버지, 할아버지!”
“그래, 그래, 내 귀여운 새끼. 할아버지 여기 있다.”
꽤 마른 타입이라서 팔에 주름이 보이고, 또 곡선이 아닌 직선과 같은 느낌이 나타난 몸으로 이원희를 번쩍 안은 제일 방직의 사장 이기철은 쯧쯧거리며 며느리를 탓했다.
“애를 얼마나 심하게 때렸으면 애가 이렇게 우는 거냐. 애미, 네 자식 교육이 너무 엄한 거 같아.”
시아버지의 말에 정옥주는 답답한 마음이었지만, 차마 큰 소리는 내지 못하고 정말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아버님, 말씀도 맞지만, 그래도 애가 잘못했을 때는 혼내야 하지 않을까요……?”
70년대의 가부장적인 분위기뿐만이 아니라, 집안 재산을 쥐락펴락하는 이기철의 심기를 건드릴 수는 없었기에 정옥주는 정말 할 수 있는 수준만큼만 의견을 전달했다.
“내가 애미, 네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건 아니잖냐. 기껏해야 연필깎이 하나 부순 게 뭐가 큰 잘못이라고.”
“…….”
정옥주가 그저 고개 숙인 채 경청하자, 이기철이 눈을 찡그렸다.
“애미야, 혹시 내 말에 불만이라도 있는 거냐?”
“아, 아뇨! 그럴 리가 있나요. 맞는 말씀이다 싶어서 가만히 있던 거예요.”
“그래, 애들은 말이야 너무 기죽이면서 키우면 안 돼. 그러니까 애미 너도 이쯤 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이기철은 볼 수 없었지만, 이원희는 이미 정옥주를 향해 고개를 살짝 놀리며 혀를 내밀었다 넣었다 하며 한껏 버릇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아.’
한숨을 내쉬던 정옥주는 커피를 한 잔 타드리겠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했다.
“그래, 어쩌다가 연필깎이가 고장이 난 거냐?”
자신의 무릎 위에 손자를 앉힌 이기철은 손자랑 대화라도 나눌 겸 서두를 떼었다.
“뭐냐,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던 거냐?”
손자의 표정이 와락 구겨지는 것을 보자, 이기철은 혹시나 손자가 불량배라도 만났나 싶어 미간을 찡그렸다.
“네!”
“무슨 일로 내 손주가 기분이 나빴을꼬?”
“할아버지! 우리 반에 재수 없는 애가 한 명 있어요!”
“재수 없는 애?”
“네!”
“어떻게 재수 없었는데?”
“애들이 제 가방 들어 준다고 하는 것도 방해하구요, 제 청소 대신해 준다는 것도 방해하구요, 아무튼, 계속 저를 방해해요!”
“우리 손주를?”
이기철이 검지와 엄지로 안경의 옆을 잡아 고쳐 쓰며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걔가 막 반에다가 빵을 뿌려서 애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걔를 좋아해요. 저는 걔가 정말 싫은데!”
“빵을 뿌려서 인기를 얻다니. 어린 녀석이 벌써 발랑 까졌구나.”
이원희는 속으로 조금 부끄러웠지만, 자신의 잘못은 일절 말하지 않은 채 한동안 계속해서 윤기의 뒷담화를 해댔다.
“그래, 알았다. 내가 한번 알아보마. 우리 손주가 기죽은 채 학교에 다닐 순 없지.”
“할아버지 최고!”
환히 웃는 이원희가 품에 뛰어들듯 안기자, 이기철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주의 재롱을 즐겼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웃는 사람, 아니 귀신이 있었으니.
최덕배는 이 순간이 참 재미있다는 듯 주변을 부유하며 웃음을 흘렸다.
* * *
하아, 이게 진짜 얼마 만에 받아 보는 제사상이야.>
최덕배는 환희에 가득 찬 표정으로 크림빵을 까서 입에 넣었다.
“7년 정도?”
절에서 받은 거 빼면 100년도 넘어. 솔직히 절에서 받은 제사상이 정성이 넘치긴 했는데, 고기가 하나도 없어서 별로였어. 난 채식주의자가 아니라고.>
“거참, 귀신이 가리는 것도 많네요.”
얀마, 인권……, 아니, 귀권이 없는 줄 아냐?>
“있어요?”
……아무튼, 난 이게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유튜브에서 먹방 볼 때마다 유튜버들 죽이고 싶었다니까. 나는 무슨 맛인지 모르겠는데, 맨날 맛있대.>
“진짜로 죽고 나서 제사상 한 번도 못 받아 본 거예요?”
그렇다니까. 내 아들놈이 천주교에 빠져서 전혀 못 받았어. 더 억울한 건 나~~~중에 천주교가 제사를 허용했다는 거야. 아니, 할 거면 처음부터 허용하라고!!>
윤기가 최덕배의 한탄을 들으며 킥킥거렸다.
진짜 자식놈들 챙겨 봤자 아무 쓸모 없어. 천주교 박해로 뒈질 뻔한 놈, 저승사자 눈치 보면서 간신히 뒤틀어놨더니…….>
순간 최덕배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저승사자도 있어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에이, 말해 주면 다른 제사상 차려 줄 수도 있는데요?”
됐어.>
크림빵을 마저 입에 털어 넣은 최덕배는 새로운 빵을 까며 더 타협할 여지가 없다는 분위기를 팍팍 풍겼다.
“어떻게든 고기를 준비해 줄 수도 있…….”
됐다고.>
“네.”
최덕배가 너무도 단칼에 자르는 통에 최윤기 역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아들이 천주교를 믿었다고 하시는데, 지금 우리 집은 그냥 무교인데요? 그렇다고 제사를 지내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내가 더 화가 나는 거야! 아들놈만 아니었어도 제삿밥 좀 챙겨 먹는 건데…….>
순식간에 빵 3개를 먹어 치우고 우유를 원샷한 최덕배가 배를 두드리며 꺼억 하고 트림을 크게 내뱉었다.
냄새 안 나, 이놈아.>
“생리적으로 어쩔 수 없어요.”
눈을 흘기던 최덕배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손바닥을 탁 하고 쳤다.
맞다. 아까, 이원희라는 놈 집에 놀러 갔다 왔는데, 그 녀석이 자기 할아버지한테 고자질하던데?>
“고자질이요?”
그래, 고자질. 너에 대해서 아주 왜곡된 고자질을 하던데, 그냥 있어도 괜찮겠냐?>
말을 들은 윤기가 접시와 컵을 자신의 책상 위로 옮기며 ‘현실의 껍질’을 뜯었다.
귀신이 빵을 먹는다고 해 봐야 현실의 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하라고 해요.”
여유로운 윤기의 모습에 최덕배가 의아해하자, 윤기가 미소를 지었다.
“하이에나가 귀찮게 한다고, 수사자가 호들갑 떠는 거 봤어요?”
* * *
70년대 학교에서 선생님들 사이에서 경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부자 학생’ 경쟁이다.
부자인 아이가 자기 반에 있는 것이 자신의 생존과 직결이 되니까.
이것저것 세금을 떼면 평범한 선생님의 한 달 월급은 34,000원 수준.
현대의 가치로 계산해도 35만 원 정도의 액수다.
그렇다 보니 촌지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굶어 죽겠다는 선언이었기에 이 시기 교무실에는 학부모들의 방문이 정말로 많았다.
촌지를 바치지 않으면 자식이 선생한테 맞으니까.
가난한 아이는 죽도록 맞으면서 선생이란 직군에 대한 원망을 키우는 게 이 시기고, 부잣집 아이는 돈에 의한 사랑을 받으면서 ‘내가 겪은 선생님들은 다 괜찮았는데?’라고 말하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다.
그런 의미에서 정원국민학교의 교무실 역시 학부모들의 방문이 꽤 잦은 편이었다.
물론 오늘과 같은 방문은 정말로 드문 일이었지만.
“엇흠! 원희 할아비 되는 사람이외다.”
이기철의 말에 박선자가 허리를 한껏 숙여 비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담임인 박선자라고 합니다. 이런 누추한 곳에 직접 찾아오실 줄은 정말 몰라서 제대로 된 걸 준비를 못 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평범한 커피 대접.
애초에 대접을 받으려고 온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기철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대접에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교무실에 대접을 받으려고 찾아온 것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나저나 요새 우리 원희가 학교생활이 조금 힘든 것 같다던데?”
존댓말과 반말을 교묘하게 섞어 쓰는 이기철이었지만 박선자는 전혀 불편한 기색을 쓰지 않았다.
나이로 보나 사회적 지위로 보나 이기철은 박선자보다 훨씬 윗줄에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비록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제일 방직은 적어도 정원국민학교가 있는 지역에서는 알아주는 기업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신경 쓰겠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박선자의 머릿속에서는 빠르게 판단이 돌아갔다.
독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
당연히 주판알을 튕기는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이 사장님은 여기에 삼우 물산 도련님이 다닌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가? 하긴, 그럴 수도 있겠어. 그 정도 되는 사람이 굳이 이 학교에 손자를 보내진 않을 테니까.’
이기철이 정황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지만, 박선자는 굳이 그 사실을 이기철에게 알려 주지는 않았다. 자신에게 전혀 실익이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래, 좀 더 신경을 써 주는 게 서로 좋은 거지.”
이기철은 박선자에게 두툼한 봉투를 꺼내 건넸다.
학기 초에 정옥주가 건넨 것보다 분명히, 그리고 확연히 두꺼운 봉투.
‘이만하면 만족하겠지?’
이기철의 속내처럼 박선자는 깜짝 놀라며 짐짓 거절하는 척을 했다.
“헉……, 제가 이런 걸 받아도 될지…….”
“받아요.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지. 선생도 돈이 있어야 애를 가르칠 수 있는 거잖아?”
“그,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안심하고 돌아가도 되겠지?”
“물론이죠. 걱정하지 마세요.”
눈웃음까지 사르르 친 박선자는 이기철을 교문 바깥까지 배웅하고는 주판알을 튕기기 시작했다.
튕기는 데에 걸린 시간은 불과 3초.
‘봉투 두 개를 합쳐도 삼우 사모님이 주신 봉투가 훨씬 무거워.’
박선자는 빠르게 행동에 나섰다.
* * *
“그래, 우리 윤기 담임이시라고?”
거실에서 상석에 앉은 최기현의 모습을 보며 박선자가 본능적으로 몸을 떨다가 겨우 진정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회장님.”
“회장은 무슨, 같은 회사 소속도 아닌데 편히 부르지.”
“하, 할아버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그거 괜찮군. 아무튼, 무슨 일인가?”
자연스러운 하대였지만, 박선자는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최기현과 박선자의 격차는 컸다.
‘역시 이 길이 맞아.’
박선자는 속으로 심호흡을 한 뒤, 의도한 바를 말하기 시작했다.
“윤기는 현재 제가 담당하는 반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입니다.”
“그래, 그렇겠지.”
너무나 당연하게 그럴 거라 대답하는 최기현의 모습에는 손자에 대한 믿음이 철철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윤기에게 도전하는 학생이 한 명 생긴 것을 혹시 아시나요?”
“도전을? 윤기한테? 누가?”
빠르게 되묻는 최기현의 물음에 박선자 역시 빠르게 답했다.
“제일 방직 사장님의 손자입니다.”
“제일 방직? 걔네 손자도 같은 나이였나?”
“그렇습니다. 오늘 자기 손자를 각별히 부탁한다면서 저한테 부탁을 해오셨는데, 솔직히 저한테는 윤기가 더 중요한 학생이다 보니…….”
박선자가 말을 흐리긴 했지만, 의도한 바는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최기현이었기에 곧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그래, 그놈은 얼마를 주던가?”
‘협상’을 할 만한 상대라면 말을 돌리면서 유리한 고지를 찾아가겠지만, 상대는 협상의 가치가 없는 존재였기에 돌직구를 날린 것이다.
“저……, 그게……. 이렇게 받긴 했습니다만…….”
박선자는 아까 이기철에게 받은 봉투를 꺼내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만 원짜리가 아닌 5천 원짜리가 가득 들어 있는 돈 봉투.
그걸 보기가 무섭게 최기현이 자택에 대기 중이던 비서를 불렀다.
“어이, 김 실장!”
“네, 회장님.”
김 실장에게 귀를 대라는 신호를 한 뒤, 귓속말로 뭐라 이야기를 하자, 김 실장이 얘기를 듣고는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받으시죠.”
김 실장의 말에 박선자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돈 봉투 세 개를 받았다.
만 원짜리만 들어 있는 데다가, 두께마저도 두 배나 되는 두툼한 봉투가 무려 세 개.
박선자는 어느 정도 예상을 했음에도 그걸 뛰어넘는 대우에 몸까지 덜덜 떨었다.
“이, 이건 너무 많은…….”
“부족한가?”
미간을 찡그리는 최기현의 모습에 박선자가 황급히 돈 봉투를 가슴 쪽으로 끌어안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그건 절대로 아니에요.”
말을 들은 최기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긴장된 분위기를 살짝 풀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선생이 올 거라는 건 내 손자가 말해서 알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