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80)
#80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서비스업 (1)
1982년 3월 2일 오전 10시.
와이케이 백화점은 드디어 그랜드 오픈을 시작했다.
“축하드립니다! 첫 고객이십니다!”
와이케이 백화점의 첫 번째 고객.
그것은 미군이 아니라 바로 비번이었던 한국군 소령이었다.
목에 꽃목걸이를 걸고, 왼손에 꽃다발을 들고, 오른손에 30만 원 상품권을 들고 찍힌 사진.
그 모습을 바라보며 최덕배가 중얼거렸다.
내가 장담하는데, 저 녀석 출세 끝났다.>
말을 들은 윤기는 속으로 큭큭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도 그래요. 첫 손님이 되는 것을 원한 사람들이 진짜 많았을 텐데, 입장 조건 중 최하위인 소령이라니. 아마, 상관들한테 무릎 꽤 꿇어야 할 거예요.’
첫 손님인 소령을 비롯해서 수십 명의 손님이 본점에 입장한 이후로 ‘군인’ 손님은 뚝 끊어졌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이 시간이면 미군이고 국군이고 모두 일과를 열심히 할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군인 손님들이 쏟아져 들어올 시간은 대략 오후 6시 이후.
물론, 현재도 본점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들여보내 달라고 떼를 쓰고 있었지만, 입구를 지키고 있는 군인의 모습에 차마 강제 진입은 하지 못하고 미니 백화점 쪽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미니 백화점 주인들이 되게 좋아하겠네. 그리고 보니 여기는 평일 주간에는 미니 백화점이 장사가 잘되고, 평일 야간이랑 주말에는 본 백화점이 장사가 잘될 거 같아.>
‘아무래도 그렇겠죠?’
저녁까지는 꽤 한산하겠어.>
‘그럴 리가 있나요. 사람들의 잔머리를 너무 무시하시네요.’
잔머리?>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10시 30분이 되자, 꽤 잘 차려입은 40대 여성 세 명이 한 명의 미군을 데리고 본점의 입구에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들어가도 되죠?”
미군 신분증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셋은 아무 무리 없이 백화점에 입장할 수 있었고, 그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부러움에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아, 왜 우리 집안에는 군인이 없는 거야.] [야, 미자한테 연락해 봐. 걔 미군이랑 사귄다고 우리한테 자랑했었잖아.] [저번에 헤어졌잖아.] [아, 그년은 왜 이럴 때 도움이 안 돼.] [경희 남편이 군인이라고 하지 않았어?] [중사밖에 안 돼서 못 들어간대.] [아, 진짜.] [어쩔 수 없잖아. 주변에 미니 백화점 있으니까 아쉬운 대로 거기라도 구경해 보자.]군인과의 연줄이 없는 사람들은 미니 백화점 쪽으로 빠지고, 군인과의 연줄이 있는 사람들은 보무당당하게 백화점으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소비력에 차이가 있을 것은 분명한 노릇.
다만 그랜드 오픈에 찾아온 손님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미니 백화점의 권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와이케이 백화점 상권’은 그야말로 밀물이 밀려들듯이 사람들이 몰리고 있었다.
이야, 가게 주인들 입 찢어지는 거 봐라.>
신문 기자들과 호의적인 관계를 쌓았기 때문에 신문 구석에 와이케이 백화점과 관련한 호의적인 기사는 심심하면 올라왔었고, 윤기도 학교를 통해 와이케이 백화점의 상품들을 홍보한 덕분에 물건들은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니 여기는 백화점인데도 밤 11시까지 영업한다며? 인건비 많이 들겠어.>
‘괜찮아요. 배당금 많이 받았으니까.’
81년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출은 3,500만 달러.
윤기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 중 80퍼센트가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약 170만 달러의 배당금을 받게 되었다.
2010년대 가치 기준으로 50억이 조금 안 되는 금액.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온 이 돈은 본 백화점의 추가 인력을 고용하는 데에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
‘어차피 주간에는 본 백화점에 인원이 그리 많을 필요가 없어요. 오후 3시부터 일을 하는 B팀이야말로 와이케이 백화점의 정예들이죠.’
영업이 11시까지니까 퇴근은 12시 이후에나 될 텐데, 돈은 참 무서운 거야. 통금시간도 늘려 버리다니 말이야.>
이 시대에 통금이 있다고는 하지만, 통금 규제가 공식적으로 느슨한 곳이 실제로 존재했다.
와이케이 백화점은 그러한 지역으로 지정된 덕분에 쇼핑을 하는 사람들도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마음 편히 늦게까지 쇼핑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야, 이 자식도 입 찢어지는 거 봐라.>
최덕배의 말이 있었지만, 윤기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실제로 현재 윤기의 표정은 그야말로 입이 찢어지기 직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자신의 계획이 실제로 성공하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슬슬 학교 안 가냐?>
‘가야죠.’
백화점의 표면적인 사장은 어쨌거나 류근태.
현재 류근태는 백화점의 그랜드 오픈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각계 인사들을 맞이하느라 그야말로 동분서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교 후가 기대되네요.’
윤기는 즐거운 마음으로 늦은 등교를 시작했다.
* * *
“아이고, 콜슨 준장님!”
백화점 입구에서 류근태가 콜슨 준장과 악수를 하며 콜슨 준장 뒤에 있는 학생들까지 프리패스로 통과시켰다.
“장사는 잘되고 있나?”
“본점은 저녁 6시부터가 진짜죠. 하지만, 미니 백화점 쪽으로 추가 물량 옮기느라고 엄청납니다. 근처에 대형 창고 구역 지어 놓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와이케이 백화점 상권 근처에는 상권의 물류를 총망라할 창고 구역이 지어져 있었다.
현재 상권에는 끊임없이 트럭이 오고 가고 있었고, 동시에 본점 금고에 쌓이는 매출액도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물류를 새로 갖다 준다는 것 자체가 현찰을 가지고 돌아온다는 얘기였으니까.
“장사가 잘되는 것 같아서 다행이군. 아무튼, 내 손주랑 손주 친구들인데 잘 부탁해.”
“에이, 당연히 잘 모셔야죠. 그냥 편히 쇼핑하다가 퇴점하시면 됩니다.”
“따로따로 나가도 상관없나?”
“물론이죠.”
류근태의 말에 콜슨 준장이 뒤로 돌아 윤기를 따라온 수십 명의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편히 쇼핑하고 가고 싶을 때 가거라. 허락받았으니까.”
[고맙습니다!]환호성을 치며 좋아하던 아이들은 다시 윤기의 근처로 몰려들었고, 윤기는 그런 아이들과 함께 와이케이 백화점의 실내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우와, 진짜 외국 온 기분이야.”
진수의 말에 같은 반 친구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야, 진수야. 너 외국 가 본 적 있어?”
“아니, 없는데.”
“뭐야, 갔다 와서 얘기한 줄 알았잖아.”
“야, 꼭 가 봐야 아는 거냐? 딱 봐도 외국 같아 보이잖아.”
“하긴, 그래.”
싸울 시간도 부족한지 친구들은 백화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서로 구경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구경할 것이 많은데 뭉쳐서 다니기에는 서로가 감질나는 상황이었으니까.
덕분에 윤기는 원희와 진수만 데리고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와……, 이게 윤기의 백화점이구나…….”
다른 친구들이 완전히 떨어져 나간 것을 확인한 원희의 첫말은 바로 감탄이었다.
“대단하지?”
“네가 왜 대답해!”
코를 으쓱하는 진수의 모습에 원희가 진수를 향해 으르렁거렸고, 진수는 진수대로 원희를 향해 씅을 냈다.
“이런 친구를 둬서 뿌듯해서 그런다. 왜?”
“하이고…….”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음에도 원희와 진수의 관계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다른 의미로 생각해 본다면 365일 이런 대화를 하면서도 둘이 관계가 틀어지지 않는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대단하지?”
이번에는 윤기의 말이었다.
[[응, 진짜 대단해.]]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둘의 어깨에 한 팔씩 걸으며 윤기가 말했다.
“그러니까 열심히 공부해. 둘이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 졸업하면, 내가 책임지고 좋은 직장 취직시켜 줄 테니까. 좋은 직장이 어디인지는 알지?”
“여기잖아.”
진수의 말에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보다 훨씬 좋은 곳을 만들어야지.”
말을 들은 진수는 ‘역시’ 하는 표정을 지었고, 원희 역시 주먹을 불끈 쥐며 공부를 향한 열의를 다졌다.
“그나저나 손님 진짜 많다. 나 외국인 이렇게 많이 본 거 처음이야.”
지금 시각은 저녁 6시 20분.
‘미군을 위한 백화점’이라는 와이케이 백화점 본점의 기조대로 현재 백화점에는 굉장히 많은 숫자의 미군이 들어차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혼자 온 것이 아니라 가족이나 혹은 현지 여자친구를 대동했기 때문에 그들이 쓰는 금액은 혼자 왔을 때의 몇 배에 달했다.
“캬, 청소기로 돈을 빨아들이면 이런 기분이겠네.”
아주 적절한 진수의 표현에 윤기도 원희도 함께 웃었고, 덕분에 셋은 즐거운 마음으로 백화점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셋은 세상의 3대 구경 중 하나를 보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구경은 홍수와 불, 그리고 싸움이라고 하지 않는가.
백화점에 홍수가 날 리도 없고,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화재가 나도 크게 날 리가 없으니, 당연히 남는 것은 싸움 구경뿐이다.
“도대체 왜 못 깎아 준다는 거야!”
뾰족하면서도 거대한 성량의 여자 목소리가 한 층 전체를 울릴 정도로 퍼졌다.
충분히 당황할 수도 있을 법한 수준의 성량.
하지만 매장 직원은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본 백화점은 정찰제입니다. 따라서 세일 같은 특판 행사가 있지 않은 경우에는 할인이 불가능합니다.”
“아니, 이렇게 비싼 걸 사는데 그까짓 걸 못 깎아 준다는 거야? 진짜 여기 장사할 생각 있는 거 맞아?”
여성의 옆에는 무궁화 하나를 달고 있는 군인 남편이 있었는데, 남편은 어떻게든 아내를 말리기 위해 비지땀을 쏟고 있었다.
“여보,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니까…….”
“안 되긴 뭐가 안 돼! 나 손님이라고!”
남편의 간곡한 요청에도 여전하던 여성의 목소리가 멎은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박 소령, 자네 아내가 너무 시끄러운 것 아닌가?”
박 소령 옆에 불쑥 나타난 별 하나짜리 장군이 굉장히 심기가 불편한 표정을 짓자, 박 소령은 그야말로 나라 잃은 표정을 지으며 눈에 눈물까지 핑 돌았다.
그러자 머리에 스팀이 돌았던 아내까지 사태를 파악했는지,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처에 가득한 무궁화.
그나마도 무궁화 하나짜리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두 개나 세 개인 데다가, 별들마저 은하수처럼 많은 상황에 박 소령의 아내는 그만 기절해 버렸다.
“여보!”
“쯧쯧, 자네 내일 출근하고 나한테 찾아오게. 내가 육본 어디에서 근무하는지 알지?”
박 소령의 고난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거기 들르고 나면 나한테도 오게.”
“그럼, 나한테는 거기가 끝나면 오고.”
“아, 그럼 나는 거기 끝나면.”
무궁화 세 개에서 별 두 개 사이의 상관들이 무수한 방문을 요청했고, 덕분에 박 소령은 울면서 아내를 업은 채 백화점을 나가야만 했다.
“이 백화점은 진상이 절대 있을 수가 없겠네…….”
진수의 말에 원희는 모처럼 진심으로 동의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거 같아. 여기가 유독 시끄러워서 다들 못 봤겠지만, 저쪽에서도 미군이 왜 이리 비싸냐고 난리 치니까, 윤기네 외할아버지가 뒷덜미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더라.”
“캬……, 진상 없는 서비스업이라니.”
“이야, 서당 개 누렁이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우리 진수도 많이 똑똑해졌네? 그런 단어도 쓸 줄 알고.”
“죽을래?”
또다시 옥신각신하는 진수와 원희도 저녁 9시에 집으로 보낸 윤기는 오늘의 마지막 목표를 위해 백화점 7층으로 향했다.
와이케이 백화점의 7층.
VIP들만이 입장 가능한 장소에 윤기가 조용히 입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