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84)
#84화 기업이 을일까, 은행이 을일까 (3)
“이건 선한은행, 아니 안 과장님과의 거래가 거의 막바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특별히 드리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최철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전혀 상상도 되지 않았기에 안대호의 목구멍에서는 침이 꼴깍하고 넘어갔다.
“만약, 선한은행에 1천억 대의 대출을 부탁한다면 이자율이 얼마나 나올까요?”
“예? 대출이요? 그것도 1천억을?”
이 타이밍에 저런 말이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안대호는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보여 버리고 말았다.
“그렇습니다. 이왕이면 이번 건과 같이 진행을 하고 싶어서 특별히 안 과장님을 모신 겁니다. 답변을 주실 수 있을까요?”
안대호의 머릿속에서 주판알이 무수히 많이 퉁겨지기 시작했다.
‘이자율을 도대체 얼마를 줘야 하지? 아니, 대출 이자만 중요한 게 아니야. 예금 이자도 결정해 줘야 하는데……, 이건 내 선에서 결정할 일이 아니야. 지점장님한테 보고해야 해.’
안대호의 얼굴이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하루 정도만 말미를 주실 수 있을까요? 좀 더 정확하고 좋은 조건을 만들어서 말씀드리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흐음, 그런가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 최철규의 모습에 안대호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최대한 빨리 알려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연락 기다리지요.”
“예, 그럼, 저는 바로 은행으로 가 보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야말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시피 한 안대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최철규는 웃었다.
왜냐하면, 안대호는 오늘 세 번째로 찾아온 인물이고, 최철규가 만날 사람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으니까.
* * *
“뭐? 대출을? 천억이나?”
담배를 피우고 있던 지점장이 안대호의 보고를 듣자마자 깜짝 놀라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덕분에 지점장실에 깔려 있던 양탄자에 불이 붙었고, 잠시 동안 지점장실에는 양탄자에 마구 발길질을 하는 소동이 일어나야 했지만, 소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예, 천억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천억이 확실했습니다.”
“미친……, 와이케이 백화점에서 천억이나 대출할 거리가 있나? 아니, 가만……, 설마……?”
“지점장님이 생각하고 계신 게 맞을 겁니다. 십중팔구 2호점을 생각하고 있는 거겠죠.”
대외비이긴 했지만, 자체적으로 조사한 와이케이 백화점의 건설 비용을 생각한다면 2호점을 위해 필요한 비용으로 천억을 요구한 것은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천억……, 천억이라…….”
지점장이 다시 담배에 불을 피웠지만, 그럼에도 몸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천억의 대출.
성사만 시킨다면, 이 시대의 1금융권 대출 이자 기준으로 매년 100억 이상의 이윤을 낼 수 있는 노다지가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천억은 쉽게 대출해 줄 수 있는 금액이 아니야. 본사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선한은행이 아무리 1금융권 중에서도 순위를 달리는 은행이라 하더라도 1천억은 절대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이 시대의 1천억은 화폐 가치로 따졌을 때 2010년대의 3천억 이상.
빌려줬다가 회수하지 못했을 때는 단순히 안대호의 모가지만 날아가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그래도 와이케이 백화점 정도라면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저희가 추정한 와이케이 백화점의 첫날 매출이 10억 이상이고, 현재는 조금 추이가 꺾였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충분히 5억은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문을 40퍼센트 남긴다고 가정할 때, 와이케이 백화점은 500일 정도면 충분히 원금을 갚을 수 있다는 이야기죠.”
현재 와이케이 백화점의 실질 매출은 본 백화점에서만 일 4억, 미니 백화점까지 합친다면 그것을 훌쩍 넘는 액수였지만, 선한은행은 나름대로 근접한 수치를 측정해내고는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 거지.”
지점장의 말에 안대호는 좀 더 강한 설득에 나섰다.
“더군다나 와이케이 백화점은 신군부와도 굉장한 끈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선한은행이 와이케이 백화점과 끈끈한 관계를 다져둔다면, 추후 여러 가지 면에서 이익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됩니다만…….”
“그래서 더 머리가 아프다는 거야.”
“네?”
지점장이 담배를 비벼 끄고는 다시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
크게 한 번 연기를 내뿜은 지점장은 안대호에게도 담배를 권했다.
“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서서 말을 했던 안대호였지만, 담배라는 윤활제 덕분에 응접용 소파에 앉을 수 있었다.
“잘 생각해 봐.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관계라면 우리가 갑이 되겠지. 안 그래?”
“그렇지요.”
만약 와이케이 백화점이 아니라, 평범한 기업에 대출을 해 주는 것이라면 은행이 갑이다.
우량기업이 아닌 애매한 기업이 큰돈을 빌린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따라서 이자율도 상대적으로 높고, 기업 자금부서장도 담당 은행원에게 절대 함부로 대할 수 없다.
하지만 와이케이 백화점과 같은 상태라면?
현재 매출로 보았을 때 상환 가능성이 매우 높을뿐더러, 건물이라는 담보도 튼실하고, 정권과의 연줄도 굉장히 긴밀하다.
따라서 대출 자체가 연줄을 만들기 위해 해 주는 것이다 보니 수익성 면에서 고민해야 할 게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택은 두 가지야, 첫 번째는 단순히 돈만 빌려주는 비즈니스로 취급하는 거지.”
“그럴 경우, 이자율에 있어서는 여유가 생기겠군요.”
“그래, 맞아. 그리고 두 번째는 연줄을 만들기 위한 장치로 판단하는 거야. 이 경우, 이자율은 절대 높게 받을 수 없어. 더군다나 와이케이 백화점의 예금 이자 역시 우대를 해 줘야 할 테고.”
“후자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긴밀한 심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바로 그게 문제야.”
“예?”
“시간이 없다고.”
“제가 하루 동안 말미를 달라고 했습니다만…….”
안대호의 멍청한 대답에 지점장이 미간을 찡그렸다.
“멍청하기는! 안 과장, 자네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 하루가 우리한테만 주는 하루라고 생각한 거야? 천억이라는 숫자에 지금 현실 감각을 잃었지?”
“헉!”
안대호는 그제야 자신이 어떠한 실책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이 사람아. 지금 와이케이 백화점의 담당자가 자네한테만 그 말을 했을 거 같아? 다른 은행 전부에 그런 말을 했을 거라고. 그리고 그중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쪽의 대출에 응할 거야. 애초에 대출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가 1차적으로 부여한 예금 이자가 정해진 이후에 말을 한 것만으로도 와이케이 백화점의 담당자는 절대 호구가 아니야. 닳고 닳은 놈이라고.”
“죄송합니다. 모처럼 정말 좋은 건이라 생각해서 제가 마음이 급했나 봅니다.”
허리를 숙이는 안대호의 모습에 지점장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적어도 바로 보고를 한 것만으로도 자네는 할 일을 다 한 거지. 그런데, 이건 내 선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일어나. 본사로 가야지. 본사 지침을 듣자고. 공을 독식하는 것도 좋지만, 이건 너무 커서 배가 터질 가능성이 너무 높아.”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이건 정말 큰 건인데…….”
“실패했을 때 감당할 자신 있어?”
차마 대답하지 못하는 안대호를 바라보던 지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뱉듯이 말했다.
“그럼, 닥치고 따라와.”
* * *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 있다면 바로 와이케이 백화점에 취직을 했다는 거지. 봐라, 민관아. 이렇게 많은 선물들을 말이야.”
책상 아래에 가득히 쌓여 있는 선물들을 보며 마석일이 굉장히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영업직이라는 게 정말 대단하긴 하네요…….”
“야, 네가 공사장에서 다른 사람들 말을 잘 들어줄 때를 생각해 봐. 그때 사람들이 너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잘해 주기는 했는데, 실속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애초에 돈이 여유로운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요.”
“그거야 그렇겠지만, 그 사람들 선에서는 너한테 잘해 준 게 맞잖아?”
“그건 그렇죠.”
고개를 끄덕이는 손민관을 향해 마석일이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영업직이라서 우리가 이렇게 호강하는 게 아니야. 어디까지나 교섭의 역할을 우리가 맡았기 때문에 이렇게 호강하는 거지. 막말로 은행 영업직들이 우리한테 이렇게 접대하고 있는 거잖아?”
“아, 그렇네요.”
“그리고, 너. 지금 속으로 ‘이렇게 받아도 괜찮을까?’ 하면서 고민하고 있지?”
말을 들은 손민관이 쓴웃음을 지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들켰나요?”
“얼굴에 다 쓰여 있으니까. 그런데 절대로 미안해할 거 없어. 원래 영업이라는 게 이런 거거든.”
“다 이렇다뇨?”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접대를 받는 것처럼, 우리한테 영업하러 오는 은행들도 자기들이 대접을 받아야 할 때가 오면 다 똑같이 받는다는 말이야.”
“아……, 무슨 뜻인지 알 거 같아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항상 불쌍하다고 생각하는데, 헛소리야. 을이 갑이 되는 때도 있거든. 그럴 때 을은 ‘아, 내가 을일 때 힘들었지.’ 하면서 병을 잘해 줄 거 같아? 천만에! 더 벗겨 먹는다. 왜냐하면, 자기가 을일 때 손해 본 것을 병한테서 우려내야 하거든.”
“설마…….”
“아닐 거라 생각해? 네가 공사장에서 들은 이야기들을 한번 잘 생각해 봐. 거기서도 분명히 회사를 운영했던 놈들이 있었을 테니까.”
손민관은 지금까지 들었던 이야기를 현실에 접목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과장님 말이 맞네요.”
“결국, 회사라는 게 그런 거야. 남의 회사를 잘해 주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남의 회사를 털어서 자기 회사를 크게 만드는 거지. 막말로, 회사 힘들다고 하는 중소기업 사장들 말을 믿어?”
손민관은 ‘내가 술집에 대기업 사원 1년 연봉을 하루에 써 본 사람이야.’라는 말과 ‘회사가 힘들어서 망했어.’라는 말을 한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좀 더 진한 쓴웃음을 지었다.
“애초에 갑 기업이 을 기업한테 대접을 잘해 줘봤자, 그 이득이 사원들한테 돌아가는 게 아니야. 고스란히 사장 주머니로 들어가는 거지.”
“뭐랄까, 예전에는 그냥 듣기만 했는데, 그걸 현실과 결부시켜서 이해하기 시작하니까 사회가 굉장히 더럽고, 쓰게 느껴지네요.”
“현실이 그런 거지. 그래서 우리 같은 사원들은 충성을 바칠 대상을 잘 정해야 해.”
“충성을 잘 바칠 대상이요?”
“그래. 일부 쓰레기 중소기업 사장들은 자기 옆에서 수십 년 일한 사람을 한 달에 10만 원만 주는데, 자기는 한 달에 600만 원이 넘게 가져가거든. 이런 사람한테 충성할 가치가 있겠냐?”
“없죠.”
드디어 단호하게 내뱉는 법을 배우게 된 손민관을 바라보며 마석일이 싱긋 웃었다.
“그런데 류 사장님을 봐봐. 우리에게 상당한 수준의 자율권을 보장해 주면서도 복지가 빵빵하잖아. 이런 회사야말로 충성을 바칠 가치가 있지. 명심해, 다른 회사 직원 걱정하지 말고, 나 잘해 주는 사람한테 충성하는 것. 이게 사회생활의 기본이야. 와이케이 백화점이 커지면 더욱 많은 직원을 고용할 테니, 우리 같은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겠어?”
약간의 궤변이 섞여 있기는 했지만, 손민관을 설득하기에는 굉장히 충분한 말이었기에 손민관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좋아, 그럼, 다음 사람을 만나 보자고.”
1금융권은 최철규의 담당.
2금융권은 마석일과 손민관의 담당.
천억 원대의 대출 성사를 위한 사실상의 비공개 경매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