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86)
#86화 감히 나를 이용해? (1)
‘뭔가 이상한데?’
와이케이 백화점의 사장 직함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류근태는 자신의 원래 직위가 무엇인지 항상 인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윤기의 비서.
그렇기에 류근태는 2호점 오픈과 관련해서도 대부분의 업무를 손수 실행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잠실 주변의 땅값이 뭔가 빠르게 오르고 있어.’
윤기가 2호점을 준비하겠다고 발언한 지 3주.
겨우 3주가 지난 시점인데, 기존에 자신이 알고 있던 잠실 토지의 매물 상당수가 사라지고, 거래가도 꽤 오른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물론 잠실이 부촌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땅값이라는 건 무언가 계기가 없으면 급격하게 오르는 일이 없다.
그렇다는 것은 누군가가 땅을 매입하고 있다는 것.
만약 류근태가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이런, 내 몫이 줄어들잖아?’ 하면서 빠르게 남은 땅이라도 매입했겠지만, 류근태는 윤기의 비서가 될 자격이 있는 자였다.
“사장님, 요새 땅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가 봐요?”
류근태의 물음에 부동산 업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마요. 요새 무슨 소문이라도 돈 건지, 땅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니까요? 나온 매물만 사는 게 아니라, 웃돈 주고 사겠다고, 토지 소유자들에게 말 좀 전해 달라고 할 정도였어요.”
“혹시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건, 왜요?”
부동산 업주가 게슴츠레한 표정과 함께 의심 어린 시선을 보내자, 류근태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아, 사실 저도 땅을 가지고 있거든요. 매물들 보면서 얼마에 내놔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요즘 비싸게 팔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지금이 팔아야 할 때인 것 같아서요.”
매물을 내놓겠다는 말에 부동산 업주의 표정에 화색이 돋았다.
“아이구, 진작 그렇게 말하지 그랬어요?”
류근태가 와이케이 백화점의 사장이라고 하지만, 이 시대는 인터넷 발달이 잘되지 않았기 때문에 류근태의 얼굴만으로 신분을 유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오늘 류근태가 방문한 이 부동산은 예전에 잠실 부지를 매입하면서 방문한 곳이 아니었기에 업주는 더더욱 류근태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류근태는 일단 자신의 신분을 숨긴 상태로 최근 잠실의 땅을 매입하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잡을 수가 있었다.
“어떻게, 지금 바로 만나게 해 드려요?”
“가능할까요?”
“당연하죠. 팔 사람이 생기면 바로 연락 달라고 했으니까요.”
오늘은 목요일 오전.
어지간한 사람들이라면 직장에 출근해 있을 상황이었지만, 만남이 가능하다는 말에 류근태는 오히려 더 긴장감을 가졌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잠깐만 기다려요. 그 사람들 아마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올 거니까요.”
부동산 업주의 말처럼, 땅을 사겠다는 사람들은 불과 20분 만에 부동산에 도착했다.
반팔 하와이안 셔츠와 하와이안 반바지를 입은 40대 중반의 사내와 양복을 입고 뒤에 경호원처럼 서 있는 30대 초반의 사내.
40대 중반의 사내는 검은 선글라스까지 낀 것이 딱 봐도 ‘나 졸부요’ 하고 바깥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아이구, 땅을 팔고 싶으시다면서요? 저는 김기덕이라고 합니다.”
까만 피부의 선글라스 사내가 류근태에게 악수를 청했고, 류근태 역시 웃으며 김기덕의 손을 잡았다.
“반갑습니다. 전경주라고 합니다.”
가명을 댄 류근태.
그리고, 둘 다 명함을 건네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낀 이유를 알 것 같네.’
류근태는 표정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며 김기덕의 안색을 살폈다.
하지만 까만 피부에 까만 선글라스는 본심을 숨기기에 정말 최적화된 물건이었기에 류근태는 김기덕의 표정을 통해서 별다른 정보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자, 자, 커피들 드시면서 하세요.”
부동산 업주는 눈웃음을 치며, 커피 두 잔을 타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50대 초반의 약간 통통한 여성.
류근태는 김기덕의 표정 대신, 업주의 표정을 보았지만, 업주 역시 이 사람의 ‘정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 사람은 왜 잠실의 땅을 갑자기 매입하려는 걸까?’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류근태는 김기덕을 조금 떠보기로 했다.
“가격을 잘 쳐주신다고 들었는데, 기대를 좀 해도 될까요? 사실, 저도 잘 팔아 주겠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했지만, 친척을 실망시킬까 봐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어유, 당연히 잘 쳐 드려야죠! 애초에 여기 사장님한테도 잘 쳐 드릴 테니, 걱정 말고 매물 나오면 저한테 연락하라고 한 걸요? 그나저나 말씀을 들어 보니 친척분의 땅을 매각하시려나 봅니다?”
류근태는 삼촌인 김정선의 땅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상대의 정보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없는 만큼, 류근태라는 이름을 여기서 쓸 순 없었기 때문이다.
“예. 저만 믿는다고 하셨는데, 실망시켜 드릴 순 없으니까요.”
일부러 어수룩한 태도를 유지하는 류근태의 모습이었지만, 김기덕은 그런 류근태에게 ‘잰다’라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그러면 실망시켜 드리지 않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나저나 파시려는 땅의 위치가 어디죠?”
말을 들은 부동산 업자가 지도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손가락으로 위치를 가리켰다.
“여기 땅을 파시겠데요. 기다리면서 떼 온 거니까 최신 거예요.”
“호오, 이 땅이라면 충분히 살 가치가 있죠.”
현재 김정선이 소유한 땅은 아무래도 윤기는 물론이고 류근태마저 매입을 한 뒤의 땅이었기 때문에 1급지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2급지는 충분히 되는 상황.
2급지로도 상대는 충분히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류근태의 배팅은 적중했는지, 김기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유자의 이름을 보니까 외가 쪽 분이신가 봅니다?”
“네, 맞습니다.”
굳이 삼촌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류근태였고, 김기덕 역시 그 점에 대해 문제를 삼진 않았다.
“어디 보자……, 여기 기존 시세의 20퍼센트를 드리겠습니다. 어떠십니까?”
“20퍼센트요?”
“싫으십니까? 20퍼센트면 정말 괜찮게 드리는 건데 말이죠.”
이번에도 업주가 끼어들었다.
“우리 김 사장님이 가격 진짜 잘 쳐 주시는 거예요. 20퍼센트면 진짜 완전 대박이에요. 대박!”
“음, 그러면 하루만 시간을 주실 수 있을까요? 20퍼센트 더 받을 수 있다고 설득해서 꼭 다시 오겠습니다.”
“흠……, 혹시 돈이 부족해서 그러신 거라면…….”
“아뇨, 아뇨! 제 땅이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조심스러워야 해서…….”
어수룩한 연기를 완벽하게 해낸 류근태의 행동에 김기덕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요. 내일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죠.”
“그러면, 명함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명함이요?”
“네.”
류근태는 업주가 모르도록 하며, 눈동자를 살짝 업주 쪽으로 보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렸다.
[부동산을 두지 말고 거래하면 안 될까요? 그럼, 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잖아요.]사실상 이러한 의미를 담은 눈짓에 김기덕은 다시 호탕하게 웃으며, 뒤에 있던 사내에게 명함을 받아 류근태에게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꼭 전화 부탁드립니다.”
먼저 김기덕이 나갔고, 류근태 역시 업주에게 환송을 받으며 부동산을 나섰다.
직후, 류근태는 택시를 타고는 일부러 서울을 조금 돌면서 뒤따라오는 차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택시에서 내려 자신의 삼촌인 김정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류근태가 김정선에게 부탁한 것은 바로 잠실 또 다른 부동산에 매물을 내놓아 보라고 한 것이었다.
김정선은 자신의 휘하에 있는 유진희 설계부장을 시켜서 아내 명의로 등록해 둔 땅을 매물로 내놓았고, 유진희 역시 류근태처럼 부동산에서 두 명의 사내를 만날 수 있었다.
[거기에서도 두 명은 나왔는데, 생김새도 다르고, 사무실 이름도 다르고, 이름도 달라.]어쨌거나 류근태가 만난 사람들하고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라는 이야기.
하지만 류근태는 김정선과 통화를 끊은 뒤, 무언가 냄새가 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두 개의 땅은 전혀 근거리에 있지 않아. 잠실이라는 것은 같지만, 거의 반대란 말이지. 그런데 그 땅들을 전부 시세보다 20퍼센트나 똑같은 우대율로 매입을 한다고? 그것도 서로 다른 사람이? 이건 무언가 단체가 뒤에 있다는 얘기밖에 안 돼.’
굳이 류근태가 ‘땅을 사서 무엇을 하실 건가요?’라고 물어보지 않은 이유.
이 질문은 사실상 추론이 가능한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2호점 이야기가 나오기 무섭게 잠실 땅을 매입하는 녀석들이 생겨나고 있었어. 그 녀석들이 누구인지 알아내야 해.’
윤기에게 미리 보고하는 수도 있었지만, 상대가 누구인지 미리 알아낸다면 보고할 때 더욱 자신을 가지고 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기에 류근태는 윤기의 번거로움을 사전에 해소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이럴 때는 역시 서 경정이 제격이지.’
종로경찰서의 형사반장인 서인표 경정.
까무잡잡한 표정과 이마에 기어 다니는 지렁이 세 마리가 인상적인 서 경정은 류근태의 호출이 내려지기가 무섭게 와이케이 백화점의 본사 사장실로 출두했다.
“류 사장님, 부르셨습니까!”
예전에 만났을 때보다 한껏, 훨씬, 엄청 더 깍듯해진 서 경정의 태도.
그도 그럴 것이 당시보다 지금의 류근태는 훨씬 더 위력이 있는 재계의 인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류근태가 JSD에게 말만 잘해 준다면 특별 승진을 능히 바라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아, 어서 와요.”
류근태 역시 예전에 비해 자신이 위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한 태도로 서 경정을 대했다.
상석에 앉은 류근태와 자연스럽게 오른쪽에 앉은 서 경정의 모습.
당연하다는 듯이 놓인 커피 두 잔을 각자 한 모금씩 마시기가 무섭게 류근태는 서 경정의 요즘 일상에 대해 물었다.
“요새는 좀 한가하신가요?”
“어유, 말도 하지 마십시오. 삼청 교육대에 그렇게 깡패 새끼들을 집어넣고 있는데도, 그 자리를 다른 놈들이 어찌나 메우고 있는지, 아직도 바쁩니다.”
“저런, 그렇게 바쁘다니……, 조금 아쉽군요.”
서 경정은 자신의 엄살이 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곧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바쁘다는 거야, 업무적으로 바쁘다는 얘기고. 혹시 류 사장님이 원하시는 일이 있다면 업무 외적인 시간에 얼마든지 도와드려야죠. 사안에 따라서는…….”
마지막에 입을 다물었지만, 시켜만 준다면 견마지로를 다하겠다는 서 경정의 말에 류근태는 일부러 고압적인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 위에 명함을 두 개 올려놓았다.
“이건, 어떤 명함입니까?”
자연스럽게 두 개의 명함을 집어 든 서 경정이 내용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단은 이름도, 사무실도, 전화번호도 다른 거 같기는 한데……, 이 두 녀석이 혹시 류 사장님의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한 겁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지금 하기에는 좀 이른 것 같아서 말씀을 드리기가 좀 힘드네요. 제가 알고 싶은 것은 이 두 녀석이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겁니다. 가능하면 이 두 녀석이 모르게 말이죠.”
마음만 먹으면 야당 국회의원 겨드랑이털 숫자까지 세어 볼 수 있던 80년대 경찰에게 있어서 이 정도 일쯤이야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
그렇기에 서 경정의 표정에는 웃음이 어렸다.
“며칠이나 주실 수 있습니까?”
“3일 뒤에 JSD 경호실장님과 함께 경찰청장님과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동문서답과도 같은 느낌이었지만, 서 경정은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명확히 깨달았기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류근태를 향해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내일까지 이 녀석들의 겨드랑이털 개수만 빼고 전부 다 알아 오겠습니다.”
“좋아요. 회사든 제 자택이든 어디든지, 언제라도 연락하세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곧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다시 허리를 숙인 서 경정은 빠르게 사무실을 나갔고, 류근태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류근태가 향한 곳은 사무실 구석에 있는 작은 양주 진열장.
그곳에서 위스키 하나를 꺼내더니 잔에 따르고는 향을 즐겼다.
“흐음~, 이제는 비서실장님이 전혀 부럽지 않아.”
만족이 가득한 류근태의 미소가 사무실에 은은하게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