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87)
#87화 감히 나를 이용해? (2)
“사장님, 서 경정님이 왔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해.”
아침 8시.
서 경정은 경찰서에 출근 도장이나 찍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나타났다.
“류 사장님, 다 알아 왔습니다!”
“빨라서 좋군요. 확실한가요?”
“물론입니다. 만약 제가 알아 온 정보가 틀린다면 바로 경찰 옷을 벗겠습니다.”
“그 정도 자신감이라면 믿을 만하겠죠. 줘 보세요.”
“여기 있습니다.”
서 경정이 갈색 서류 봉투를 건네자, 류근태는 안에 있는 서류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역시……!’
류근태의 추측처럼, 김기덕과 또 다른 인물은 같은 소속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물론, 사무실도 다르고, 연락처가 다른 것도 맞다.
하지만, 두 개의 사무실을 빌릴 때 비용을 처리한 계좌가 똑같은 계좌라는 것.
그것은 둘이 소속된 단체가 똑같다는 것을 의미했다.
‘세스 자식들이었군.’
세스는 2010년대를 기준으로 치면 재계 서열 10위 안에 들어가는 대그룹이지만, 80년대를 기준으로 하면 30대 그룹 안에도 들지 못했다.
물론 82년을 기준으로 아직 재계 순위 90대에서 헉헉대고 있는 삼우와 비교하자면 어마어마한 격차를 벌리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세스의 주력은 식품, 그리고 백화점. 세스라면 우리를 방해할 이유가 충분하지.’
물론 세스가 운영하는 백화점은 서민 중시의 백화점이었기 때문에 지하에는 식당과 슈퍼가 있고, 지상층에도 서민형 옷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와이케이 백화점이 브랜드로 성공하는 것을 본 이상, 백화점의 선두 주자였던 세스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특히 세스는 자사가 운영하는 호텔에서 이미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와이케이 백화점의 성공이 더더욱 배 아팠을 것이 분명했다.
‘회장님의 현시점 목표 중 하나는 유통 장악. 그런 면에 있어서 세스의 눈에는 우리가 가시였을 것이 확실해.’
류근태는 세스가 잠실의 땅을 확보하려는 이유를 와이케이 백화점 2호점의 방해라고 판단을 내렸다.
‘2호점을 어디에 지을지 모르니 동시다발적으로 땅을 구매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겠지. 혹은 이런 방식으로 땅을 구매한 뒤, 괜찮은 토지에는 자신들이 백화점을 건설할 수도 있고 말이야.’
류근태는 속으로 비웃음을 지었다.
‘머저리 새끼들. 와이케이 백화점의 성공 요인의 절대적 지분이 회장님한테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거겠지. 회장님이 아니었으면 애초에 브랜드를 들여올 수조차 없었으니까.’
그 대단한 윤기조차도 거의 5년에 걸친 행동을 통해서야 겨우 완성한 계획을 이렇게 단기간에 빨아먹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우습게 느껴졌다.
‘가만…….’
순간 류근태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의심이 있었다.
‘세스는 어떻게 잠실 2호점에 대해서 알게 된 거지?’
윤기가 2호점에 대해 발언한 것은 약 3주 전.
그리고 세스의 사무실‘들’이 생긴 것은 그보다 약간 더 지난 후였다.
거의 직후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말이다.
‘이전에 생긴 사무실이 있다면 혹시 모를까, 전부 이후에 생겼어. 그렇다는 것은 이 정보가 회장님이 말씀하신 이후에 세스의 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돼.’
경우의 수를 생각하던 류근태는 속으로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와이케이 백화점의 규모는 커졌다.
그렇다는 것은 윤기의 비서역을 수행하기 위한 업무량도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연히 류근태 역시 윤기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부하들에게 업무를 분담시키는 경우가 있었기에 이번 일에 대해서도 소수 부하들에게 귀띔을 해 주었던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삼촌인 김정선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돌겠군, 내부에 스파이가 있어.’
물론 최철규 역시 저번에 윤기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으니 관련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류근태가 알고 있는 최철규는 절대적으로 윤기에게 충성하고 있는 인물.
적어도 자신처럼 정보를 외부에 발설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최 실장 쪽에서 정보가 나갔을 가능성은 적지. 이번 일은 전부……, 내 탓일 가능성이 커.’
가슴이 답답해진 류근태는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지금까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류근태를 바라보고 있던 서 경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떠십니까? 만족은 하셨는지…….”
류근태는 서 경정의 앞에서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아주 마음에 들어요. 서 경정님의 노고가 느껴지는군요.”
칭찬을 들은 서 경정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나타났다가, 이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류 사장님,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류 사장님은 저한테 말을 높이실 분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말을 높여 와서 그런지 쉽지가 않네요.”
“어유, 아닙니다. 사람이라는 게 언제까지나 똑같을 수가 있나요. 저는 오히려 류 사장님이 편하게 대해 주시는 게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류근태가 이어 말을 꺼냈다.
“서 경정, 혹시나 해서 말을 하는 거지만, 이 서류에 대한 얘기는 그 누구에게도 하면 안 돼.”
서 경정은 부동자세를 취했다.
“물론입니다. 이번 조사와 관련된 사람들에게도 절대 말하지 말라고 당부해 두겠습니다.”
“좋아.”
얼핏 들으면 단순한 입단속 같지만, 이 대화의 숨은 의미는 굉장히 컸다.
[세스에 줄 설래, 와이케이에 줄 설래?]이 물음에 대해 서 경정은 와이케이에 서겠다고 대답을 한 것이고, 충성을 약속받은 이상 류근태 역시 그에 대한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
“조만간 자네한테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환한 표정을 짓는 서 경정을 향해 류근태는 책상 서랍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건넸다.
다소 두툼한 갈색 우편 봉투.
그것을 보자마자 서 경정은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괘, 괜찮습니다! 이미 저한테 약속하신 게 있는데…….”
“받아. 자네한테 쓰라고 주는 게 아니니까. 판공비가 필요할 거 아냐?”
“죄송해서…….”
“죄송할 거 없어. 다음에도 부탁하려면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야.”
“절대 문제 생기지 않게 하겠습니다.”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봉투를 건네받은 서 경정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 바깥으로 나갔다.
그야말로 소리조차 나지 않고 조심스레 닫힌 문.
그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류근태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우, 내 차례로군.”
류근태는 윤기의 집으로 향했다.
* * *
“직원 중에 스파이가 있는 것 같다고요?”
서재에서 잘 익은 매실을 먹고 있던 윤기가 ‘흐음’ 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매실을 마저 씹었다.
그러자 ‘아작’ 하는 소리와 함께 매실의 향이 서재에 퍼졌고, 류근태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침이 고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은 최철규 역시 마찬가지.
둘은 하마터면 윤기의 옆에 놓인 매실 그릇에 자연스럽게 손을 뻗을 뻔했다.
“아, 제가 혼자 먹고 있었네요.”
윤기는 셋의 중앙으로 매실 그릇을 옮겼지만, 류근태도 최철규도 손을 뻗지는 못했다.
“안 먹어요?”
“그……, 지금 사안이 좀 심각한 것 아닐까?”
최철규의 대답에 윤기는 의외로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글쎄요. 흥분할 정도까진 아닌 것 같아서요.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당연히 내부 정보가 바깥으로 퍼지는 법 아니겠어요?”
류근태는 윤기가 화를 내지 않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어떤 소리에 다시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심드렁하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지만, 기분 나쁜 일인 것은 또 확실하죠.”
아그작 하는 강렬한 소리와 함께 윤기의 이 사이에서 폭사된 매실은 즙을 사방에 흩뿌렸고, 본의 아니게 류근태와 최철규의 옷에 방향제 효과를 만들어 냈다.
“아, 죄송해요.”
윤기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자 류근태와 최철규 모두 미소를 지으며 자신들의 손수건을 꺼내 옷에 묻은 즙을 닦았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아아, 류 비서한테 화가 난 건 아니에요. 제가 화가 난 것은 스파이 때문이죠.”
“그렇다고는 해도 스파이는 십중팔구 제 부하들 중에 있을 겁니다. 부하 관리를 제대로 못 한 제 탓이 분명하니 이번 일은 전적으로 제 잘못입니다.”
“그런 인식이 있다면 충분해요. 아무튼.”
다시 한번 아그작 소리가 났지만, 이번에는 깨물면서 입을 닫고 있었던 탓에 즙이 사방으로 터지는 일이 다행히도 없었다.
“저도 나중에 산업 스파이를 당연히 쓰겠지만, 제가 당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죠.”
윤기의 말에 옆에 있던 최덕배가 한마디 거들었다.
이런 이기적인 새끼.>
물론 이걸로 말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서 존나 멋진데?>
류근태와 최철규 역시 이런 윤기의 반응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유약한 주인보다는 자기중심적인 주인이 훨씬 더 모실 가치가 있다.
적어도 류근태와 최철규는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었으니까.
“류 비서.”
“네, 회장님.”
“말을 할 것은 스파이가 있다는 것뿐인가요?”
“아닙니다.”
류근태는 황급히 자신이 조사해 온 자료를 윤기의 앞에 공손히 올려놓았다.
그러자 윤기는 서 경정의 자료를 정독한 뒤, 다시 류근태를 바라보았다.
“세스라면 이럴 이유가 충분히 있죠.”
“세스? 세스 쪽이나 되는 거물들이 우리한테 신경을 쓰기 시작한 거야?”
최철규는 감탄사를 터뜨리며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재계 순위 30위 바깥이기는 하지만, 최철규가 ‘삼우에 몸담았던 시절’의 세스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높은 곳에 위치하던 그룹이었으니까.
“세스는 우리보다 몇 년 일찍 백화점 산업에 뛰어든 그룹이죠. 비록, 방향성은 조금 다르지만요. 그러나 방향성이 다르다 하더라도 와이케이 백화점은 그들에게 그야말로 눈엣가시일 거예요. 후발 주자에게 눈 뜨고 당하게 생겼잖아요?”
윤기의 말에 최철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의 연줄 때문에 직접 건드리기는 힘들었겠지.”
말을 끝낸 최철규는 윤기에게서 서류를 건네받아 읽더니 한쪽 눈을 찡그렸다.
“뭐야, 우리를 직접 건드리기는 힘드니까, 2호점을 방해하려고 하는 건가?”
류근태의 생각과 똑같은 결론을 내린 최철규는 아주 당연한 해결법을 일차적으로 제시했다.
“아무리 우리 와이케이 백화점이 성장세에 있다고 해도, 현시점에서 파워 게임으로 들어가기는 쉽지 않지. JSD를 통해서 중재를 요청하는 것이 일단 일차적인 방법이 되겠어.”
“제가 그런 굴욕적인 방식을 선택할 리가 없죠.”
중재를 요청한다는 것 자체가 세스를 이길 수 없다고 인정하는 꼴.
만약 정말로 이길 수 없다면야 모르겠지만, 윤기가 이렇게 말한다는 것 자체가 세스를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한다는 얘기였다.
‘상대는 재계 순위 50위 안에 드는 녀석들인데, 윤기가 방법이 있는 건가?’
최철규가 생각하는 두 번째 방법은 잠실이 아닌 다른 곳에 2호점을 세우는 것이었다.
자신이 아는 한 윤기는 서울 곳곳에 부지를 소유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윤기의 반응을 보았을 때, 윤기가 그런 방법 역시 선택할 것 같지는 않았다.
‘중재도 아니고 회피도 아니다. 그렇다면 정면 승부인가?’
어쩐지 그것도 아닐 것 같다는 최철규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윤기는 류근태를 향해 물었다.
“의심이 가는 인물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