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9)
#9화 너는 내 사유 재산 (2)
“유, 윤기가요?”
박선자는 깜짝 놀랐다.
오늘 집에 방문할 거라고 이야기를 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 윤기가 어떻게 그걸 알았는지 나도 몰랐는데, 아마 교무실에 제일 방직 사장 놈이 온 것을 본 모양이야. 선생이 상황 판단이랑 결정이 빠른 분이라고 하던데 내 손자가 확실히 사람 보는 눈이 좋은 것 같아.”
박선자는 평상시 윤기가 학교에서 보여 주는 모습을 떠올리며 역시 있는 집 자식은 달라도 뭔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원희를 생각하면 별개인 것 같기도 하고…….’
고민이 이어지고 있을 때, 최기현이 윤기를 불렀다.
“윤기야, 나와 보거라.”
윤기가 방에서 거실로 나오자 거실의 분위기가 다시 고조되기 시작했다.
‘완전 리틀 회장님이야.’
침을 꼴딱 삼키던 박선자는 최기현 쪽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내 손자가 자네한테 과외를 좀 받고 싶다고 하던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네? 과외요?”
이 시기 선생님들이 부잣집 학생들을 과외 하는 것이야 정말로 흔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정말 잡기 어려운 기회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박선자는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에 거의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 되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학교 수업이 너무 쉬워서 재미가 없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수업을 윤기 수준에 맞춰서 진행할 수는 없으니 과외를 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 거야. 만약 싫다고 한다면 내가 과외 선생을 따로 찾아볼 테고. 어떤가?”
박선자는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 하겠습니다!”
“윤기 말대로 판단이 빨라서 대답도 참 시원시원하구먼. 금액이나 시간은 어떻게 하면 되겠나?”
잠시 최기현과 최윤기를 번갈아 보던 박선자는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깨달을 수 있었다.
“시간은 윤기가 원하는 대로 하고, 액수는 회장님……, 아니 할아버님이 주시는 대로 받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 오늘은 시간도 조금 늦은 듯하니, 내일부터 시작하라고. 장소는 윤기랑 알아서 정하면 되겠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윤기야 내일 학교에서 보자.”
환한 미소를 짓고 사라진 박선자를 보며, 최기현이 곧바로 윤기를 소파에 앉혔다.
“이만하면 되겠느냐?”
최기현의 어투는 평상시 자상한 할아버지라기보다는 어쩐지 엄격한 할아버지의 느낌을 띠고 있었다.
“네, 할아버지.”
“그런데 굳이 저 선생한테 배우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뛰어난 과외 선생이라면 내가 얼마든지 구해 줄 수가 있다만.”
“그게 많은 이득을 가져다 줄 테니까요.”
최기현은 혹시나 손자가 ‘선생님이 좋아서요.’ 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의외의 말이 나오자 흥미를 느꼈다.
“이득?”
“네.”
“어떠한 이득이 있을꼬?”
“저 선생님은 자신이 쓸모 있는 과외 선생님인 것을 증명하려고 애쓸 거예요. 그러면 저를 가르칠 때 당연히 시험에 나올 만한 것들 위주로 가르칠 거예요.”
굉장히 현실적인 이해타산에 최기현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작 8살인 자신의 손자가 이 정도까지 염두에 두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의외로 먹힐 거라고 했지? 네 엄마나 아빠한테는 좀 힘들겠지만, 최기현 정도라면 ‘천재’라는 단어가 좀 더 현실감이 있는 시대거든.>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슬슬 피곤해졌기에 최덕배에게 상담한 결과 최덕배는 최기현에 한해서 진짜 모습을 어느 정도 오픈하는 것을 추천했다.
도박수라고 생각되긴 했지만, 최윤기가 보기에는 그 도박수가 생각보다 잘 먹혔다는 게 느껴졌다.
“그러면, 그 선생이 판단이 빠르다는 것은 어떻게 알게 된 거냐?”
“뭐라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최기현이 조금 실망하려고 할 때, 최윤기가 빠르게 설명을 덧붙였다.
“할아버지가 서재에서 직원들을 다루시는 것을 보면서 느꼈어요.”
“엥? 그걸 봤느냐?”
“네. 서재 문이 열려 있거나 제가 서재 책상 아래에서 책을 읽을 때 할아버지랑 직원들이 들어온 때가 있었거든요. 그때 할아버지가 직원들을 어떻게 다루시는지 보다 보니까 사람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게 된 거 같아요.”
손자의 말에 최기현은 너무나 기쁘다는 듯, 손자를 번쩍 들어 안아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크핫핫핫! 네가 진짜 내 손자가 맞기는 맞구나. 정말로 내 손자야!”
기업을 일궈내는 능력.
이것은 천부적인 용병술이 있지 않고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짧은 기간이라면 모를까, 젊을 때부터 지금까지, 기업을 창업하고 확장한 것은 오롯이 최기현의 재능이 있던 덕분이었다.
‘철호 녀석이 그런 능력이 없어서 걱정했었는데 윤기가 이렇게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다니, 다행이다. 다행이야.’
하지만 최기현의 머릿속에서는 고민도 조금 들긴 했다.
‘아무리 어릴 때 뛰어나다고 해도, 나이 먹고 범인이 되는 것 역시 흔한 일이니…….’
아무리 장남 철호가 삼우 그룹의 형성에 큰 공을 세웠고, 어린 윤기가 지금 뛰어나다고 해도 최기현은 지금부터 후계자를 정할 생각이 없었다.
삼우 그룹은 절대 무너져서는 안 되는, 자신이 살아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역사였으니까.
‘그래도 기분이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네.’
속으로는 이리 생각하면서도 최기현은 윤기를 향해 약간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윤기야, 너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
“저는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니, 할아버지보다 더 큰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 더 큰 사람이 되어야지. 이 할아비도 나이가 좀만 더 젊었다면 좀 더 크게 놀았을 텐데 말이다.”
최기현이 아쉬워하는 것이 있다면 자신이 죽을 때까지 삼우 그룹이 대한민국 1위 기업이 되는 것을 못 볼 것 같다는 것이었다.
기업의 성장력을 아무리 따져 봐도 그것은 무리였으니까.
그런데 손자의 배포가 큰 것을 확인하자 어쩐지 자신의 꿈이 이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말이다. 쉽진 않을 거다.”
“알고 있어요.”
“각오가 되어 있느냐?”
“과정과 결과로 보여 드릴게요.”
8살 아이의 포부.
하지만 최기현은 이런 당당한 손자를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집안에 경사가 났다는 걸로 판단하기로 마음먹었다.
“좋다. 그러면 계속 열심히 해 보거라. 네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말이야.”
“네. 그리고, 할아버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무엇이냐?”
최윤기는 새로운 승부수를 던졌다.
* * *
“제일 방직을 사라고?”
“네. 할아버지는 돈이 많으니까 제일 방직 정도는 살 수 있지 않아요?”
“뭐……, 살 수는 있지.”
엄밀히 말하면 사는 게 아니라, 제일 방직을 강제적으로 흡수한다든가 여러 가지 방법이야 있겠지만, 최기현은 굳이 그런 어른들의 사정을 손자한테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면 사 주세요.”
“아무리 너의 부탁이라고 해도 그런 말은 들어줄 수가 없다. 지금 네가 부탁하는 게 이원희란 아이를 네 꼬붕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런 것이냐,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냐?”
철저한 경영인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최기현이었기에, 만약 손자가 전자의 의도로 말한 것이라면 피식 웃고 넘어갈 생각이었고, 후자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똑똑해 보여도 손자는 8살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경제 발전을 더 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스스로 봉급을 줄이고 애국을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나라가 잘되면 나중에 다 돌려받는다고요.”
“그렇지.”
1975년은 한참 군부가 독재를 하던 시대.
비록 1970년에 전태일 열사가 사망하면서 노동권에 대해 경종을 울리긴 했지만, 아직도 노동자의 대우에 대해서는 한숨이 나오는 시대였다.
“그런데 방직은 사람이 일하는 경공업이잖아요.”
“그걸 다 어디서 알았을꼬?”
“학교 도서실이랑 근처 서점 같은 데에서 책을 보고, 선생님한테서도 들었어요.”
“그렇구나. 그럼, 그것뿐이냐?”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나라가 나서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정해 놨다면 값싸게 돈을 많이 벌 수 있지 않을까요? 임금은 계속 오르지 않을 거잖아요.”
최윤기는 이쯤에서 설명을 멈췄다. 이 정도가 ‘똑똑한 8살 아이’가 할 수 있는 설명의 마지노선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업에 천부적인 감각이 있는 최기현은 이 정도 설명만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확실히 방직이 아직까지 놓기 아까운 사업이기는 하지. 군부가 노동자들 임금을 동결시킨다면 그만큼 이익을 뽑아낼 수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고.’
삼우 물산이 삼우 그룹으로 확장을 하면서 삼우 그룹은 전자와 화학 쪽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였다.
그 결과가 현재까지는 성공적이기는 하지만, 방직 쪽에 사업을 걸쳐 놓는다고 나쁠 건 없을 것 같았다.
‘이참에 손자에게 꼬붕 하나 만들어 줘도 나쁠 건 없겠지.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건 전적으로 이 녀석의 몫이겠지만 말이야.’
최기현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곧바로 확답을 주지는 않았다.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해 보마.”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나는 아직 허락한 게 아니다만?”
당돌한 손자의 감사 인사의 말에 최기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할아버지는 안 되는 일이라면 안 된다고 바로 말씀하시니까요.”
최기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손자를 번쩍 들어 안았다.
“그래, 제일 방직을 사마. 대신 제일 방직이 잘못되면 너에 대한 평가도 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게야. 지금까지 다른 녀석들이 나에게 사업 전략을 이야기했다가 실패했을 때 어떻게 되었는지는 너도 서재를 보면서 보았겠지?”
“물론이죠.”
평범한 할아버지와 손자가 나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대화, 하지만 둘은 그 이상으로 행복한 감정을 서로 느끼고 있었다.
* * *
“사인해.”
최기현의 말에 이기철이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
합병 계약서.
제일 방직이 삼우 그룹으로 흡수되는 것을 필두로 한 계약서인 데다가, 제일 방직에게 상당히 불합리하게 책정되어 있는 내용이었다.
“회, 회장님. 아무리 그래도…….”
“하기 싫으면 하지 마.”
최기현은 사무실 의자를 반대로 돌리며 이기철에게 의자의 등이 보이도록 했다.
꿀꺽.
이기철은 침을 삼키고는 떨리는 눈으로 계약서를 바라보았다.
말이 흡수 합병이지 사실상 회사를 들어다 바치는 것과 같다.
물론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의 직위를 유지해 준다고는 하지만, ‘내 회사’인 것과 ‘남의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법.
‘만약 이걸 거절하면?’
너무나 뻔하다. 지금까지 제일 방직이 큰 방법으로 제일 방직이 당하겠지.
삼우 방직이 생겨서 제일 방직과 무한 경쟁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제일 방직이 이길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생각할 시간을 조금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따 저녁때 다시 와. 그 이후엔 나를 만날 수 없을 거야.”
그야말로 한없이 짧은 시간.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기철은 감지덕지하며 나갈 수밖에 없었다.
“참.”
최기현의 말에 이기철이 나가던 것을 멈추고 다시 몸을 돌렸다.
“자네 손자가 내 손자랑 같은 반인 것은 알고 있지?”
말을 듣는 순간 이기철은 이 모든 상황이 어떤 것을 이유로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무릎이라도 꿇을까?’
하지만 이기철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손자 때문에 이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
그저 손자는 레이더에 걸린 이유가 되었을 뿐, 이미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서명……하겠습니다.”
“빨라서 좋군. 저녁때 와서 이야기를 했으면 숫자를 반으로 줄이려고 했거든.”
무덤덤한 최기현의 말에 이기철은 그야말로 심장이 멎는 듯했다.
‘나의 제일 방직이 이렇게 가는구나…….’
격동의 70년대.
100개의 기업이 생기면, 30년 뒤에는 10개도 안 되는 기업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 * *
“우와! 우리 또 같은 반이야!”
3학년 교실 배정의 발표를 들은 진수가 뛸 듯이 기뻐하자 옆에 있던 원희가 혀를 찼다.
“야, 당연한 걸 몰라? 윤기가 우리 같은 반 되게 한 거잖아.”
“어? 그런 거야?”
“그래.”
진수가 윤기를 바라보았다.
“윤기야, 진짜야?”
하지만 윤기는 어깨를 으쓱할 뿐 답을 해 주지 않았다.
“윤기가 아니라잖아!”
“말 안 하는 거거든?”
진수랑 원희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윤기의 가방을 비롯한 짐들을 들고 배정된 교실로 향했다.
오른팔인 진수.
그리고 왼팔인 원희.
살이 많이 빠진 원희는 제일 방직이 삼우 그룹에 흡수 합병된 이후, 그야말로 철저한 윤기의 꼬붕이 되었다.
뒤늦게 발동되기는 했지만, 탁월한 생존 본능은 원희를 윤기의 왼팔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싸, 점심시간이다!”
3학년이 되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점심시간이 생긴 것이었고, 모두가 도시락을 싸 오게 되었다.
진수의 환호성을 시작으로 모두가 책상 위에 각자가 싸 온 도시락을 꺼내기 시작했고, 빈부격차가 확 드러났다.
조용히 수돗가로 향하는 아이들, 김치에 된장을 싸 온 아이들, 어육 소시지를 싸 온 아이들, 계란말이를 싸 온 아이들.
그중에서 가장 화려한 것은 단연코 윤기가 앉아 있는 책상이었다.
“빨리, 빨리!”
진수의 채근에 원희가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볼을 부풀렸다.
“내 도시락이야.”
“아, 치사하게!”
진수는 원희의 도시락을 열려고 했고, 원희는 자신의 도시락을 지키려고 했다.
하지만 밥을 먹으려면 결국 도시락을 열 수밖에 없었고, 내용물을 확인한 진수는 환호성을 질렀다.
“아싸, 장조림이다!”
진수가 포크를 내리찍으려는 순간.
콱
진수의 것도 원희의 것도, 심지어 윤기의 것도 아닌 포크가 도시락 한가운데에 내리 찍혔다.
그것도 김칫국물이 묻은 포크가.
“뭐야!”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원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고, 윤기 역시 포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