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90)
#90화 배신자는 두 종류 (1)
순간 실내에는 그야말로 정적만이 감돌았다.
숟가락으로 이마를 맞은 최종효를 보며 웃고 있던 경찰도,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이마를 숟가락으로 때린 경찰도, 심지어 자신의 입으로 공산주의 만세라고 외친 최종효마저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아주 잠깐 동안.
“아, 아니 이건……, 그러니까…….”
최종효는 도대체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전혀 감도 잡지 못한 채, 최대한 빠르게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하지만, 최종효에게 상황을 수습할 시간 같은 건 없었다.
“이 새끼 진짜 빨갱이였어!”
우거짓국을 한술 뜨고 있던 경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탁자 위에 놓인 뚝배기가 바닥에 떨어져 깨졌지만, 경찰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성난 황소처럼 최종효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묵직한 귀싸대기 한 방.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위력에 최종효는 그야말로 눈에 불이 번쩍하는 기분이었다.
“야, 너는 과장님한테 보고해. 나는 제대로 조지고 있을 테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경찰 한 명이 복도로 나가 지하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견딜 만했지? 지금부터는 아주 차원이 다를 거야.”
경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지하실에 있는 많은 방 중 하나에서 최종효의 구슬픈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속이 다 시원하네. 저런 게 바로 배신자에게 어울리는 말로지.>
최덕배는 존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선풍기 강 코스를 당하고 있는 최종효를 바라보았다.
[그 녀석 아주 잠깐만 조종할게.]페르난데즈가 당했던 것처럼, 존슨은 자신이 지정한 대상에게 약간의 정신적인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최덕배는 존슨을 제어하는 것이 가능했기에 존슨을 이용해서 최종효가 ‘할 법한’ 말을 하게끔 유도한 것이다.
진짜로 공산주의를 찬양하게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홧김에 내뱉을 만한 말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아주 잠깐이라면 말이다.
물론, 대상은 그러한 말을 내뱉고 난 뒤, 상황을 수습하려 하겠지만 장소에 따라 상황을 절대 수습할 수 없는 경우도 있는 법.
최덕배는 그렇기에 최종효를 절대 풀려날 수 없는 덫에 걸리도록 만들었다.
‘배신자는 그냥 처벌이 아니라, 아주 확실한 처벌을 받게 해야 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이야.’
오래전, 아들이 천주교를 믿는다고 밀고한 녀석을 떠올린 최덕배는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윤기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 * *
“그 자식이 진짜 종북이었다고?”
와이케이 백화점의 사장실.
뜨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류근태의 말에 서 경정 역시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밑의 녀석들이 흥분을 한 줄 알았는데, ‘공산주의 만세’라고 했다더라고요. 그냥 덫을 놓은 거면 상관없는데 본인이 진짜 그 이야기를 한 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류근태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결정할 만한 사안이 아닌데…….’
애초에 최종효를 가짜 종북으로 만든 것은 윤기의 지시.
그런 만큼 가짜 종북이 진짜 종북이 되었을 때,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류근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서 경정, 그러면 지금 최종효는 어떻게 되고 있지?”
“어떻게 종북을 하게 되었는지 밑의 녀석들이 세밀하게 알아내는 중이죠. 반공은 대한민국의 기치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종북은 당연히 때려잡아야지.”
류근태는 적당히 서 경정에게 맞춰 주며, 윤기의 진의를 알아내려고 애썼다.
“서 경정, 혹시 내가 최종효를 잠시 만나 볼 수 있을까?”
“그 녀석을요?”
“그래. 이 기회를 잘 이용하면 서 경정한테도 엄청 큰 이익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내가 약속하지. ‘이것’도 좋지만, ‘이것’도 좋잖아?”
류근태는 왼손으로는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고, 오른손으로는 검지와 엄지를 말아 돈 모양을 만들어 냈다.
왼손은 승진, 오른손은 돈.
승진에 대한 건은 경찰청장과의 식사 때 긍정적인 답변을 끌어냈으니 이미 이루어 주었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돈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는 법.
이미 류근태가 어느 정도의 능력이 있는지 경찰청장의 호출로 겪어 본 서 경정의 목구멍에서 침이 꼴깍하고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소.
“언제쯤 만나 보시겠습니까?”
“오늘은 바쁘니까 좀 그렇고, 내일 점심 즈음에 어떤가?”
“그러면 그때 모시러 오겠습니다.”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말은 할 수 있는 정도로 주물러 줘. 기껏 찾아가서 대화를 하려고 하는데 상대가 인사불성이면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
“아……! 이따 돌아가서 바로 밑의 녀석들한테 지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내일 11시에 여기로 다시 찾아오라고.”
“알겠습니다.”
서인표가 사무실 밖으로 나가기가 무섭게 류근태 역시 윤기의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 *
“너희들은 나가 있어. 지하실로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고.”
서인표의 말에 부하 경찰들이 우렁차게 대답하고는 지하실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뒤, 철컹하는 문 잠그는 소리가 났고, 서인표는 지하실 전체를 둘러보며 혹시나 남아 있는 사람이 있는지 면밀하게 감시했다.
“류 사장님, 지하실에 아무도 없습니다.”
“혹시 누가 도청하고 있다거나 그런 건 없겠지?”
“예, 혹시나 해서 책상 밑 같은데 확인했는데 녹음기 같은 것 역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아침, 류근태에게서 이번 계획에 대해 들은 서인표는 동참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아주 적극적으로 돕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현재 지하실에 남은 것은 복도의 류근태와 서인표, 그리고 고문실 중 하나에 들어가 있는 최종효까지 총 세 명이 되었다.
“좋아, 들어가 보자고.”
고문실로 들어간 류근태는 최종효의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다소 놀랐다가 이내 무심한 반응으로 바뀌었다.
[배신자를 어중간하게 처벌하면 다른 녀석들도 배신의 싹을 틔우기 마련이에요. 왜? 배신해도 페널티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배신자에게 아량을 베풀 정도의 심성이라면 차라리 종교인이 되는 것은 어떨까요?]처음에는 단순히 정보 유출 정도로만 생각했던 류근태였지만, 윤기에게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배신이라는 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깨닫게 되면서 최종효에 대한 정이 말끔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실제로 최종효는 류근태의 호의를 이용해서 정보를 쪽쪽 빨아먹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니까.
“이봐, 최종효.”
류근태는 최종효를 더 이상 최 대리라고 부르지 않았다.
“으윽…….”
최종효는 온몸 여기저기에 피딱지가 앉은 모습으로 겨우 고개를 들어 류근태를 올려다보았다.
의자에 몸이 묶여 자유로운 것은 오로지 목 위뿐.
최종효는 자신의 구원자라도 발견한 듯, 반색하며 힘을 짜내 외쳤다.
“사, 사, 사, 사장님! 저, 저 좀 사, 살려 주십시오. 제발……. 저 종북 아닙니다. 진짜 종북 아니에요…….”
“내가 왜?”
류근태는 어이가 없다는 듯 바로 되물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배신자를 도와줄 만큼 아량 있는 사람이 아니거든.”
“사장님……. 제발……, 제가 잘못했습니다…….”
“잘못했다고 말하는 거로 죄가 사해지면 세상에 누가 법을 지키겠어. 안 그래? 거기다 다른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반공을 어긴 녀석이 잘못했다고 해 봐야 설득력이 없지.”
옆에서 말을 들으며 서인표는 류근태에 대한 의심을 말끔히 해소했다.
어제 류근태도 혹시 종북이 아니냐고 하는 부하들의 말을 듣고 아주 약간의 고민을 했었지만, 지금 류근태의 말, 그리고 류근태의 인맥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확신을 내린 것이다.
“사장님……, 제발……, 제가 죽으면 아내랑 어머니가…….”
“그래서 어쩌라고? 진작에 종북하지 않고, 내 밑에서 내 말만 잘 따랐으면 평생 잘 먹고 잘살았을 거 아냐. 본인 욕심으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가족 핑계를 대? 참 세상 살기 편하구먼.”
“으흐흐흐흑…….”
눈물을 흘리는 최종효를 바라보며 류근태가 무릎을 굽혀 일부러 시선을 비슷하게 맞추고는 은근하게 물었다.
“살고 싶어?”
눈물로 감정이 솟구칠 때 다가온 동아줄.
최종효는 냉큼 그 동아줄을 잡았다.
“예, 예……! 제, 제발 살려 주세요. 무슨 일이든지 하겠습니다!”
“정말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어?”
“예! 여기서 나갈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습니다.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발악하는 최종효를 바라보며 류근태가 음산한 미소와 함께 짤막하게 말했다.
“그럼, 진짜 종북이 돼.”
* * *
김기덕이 대기하고 있는 잠실의 대 와이케이 사무실.
그곳에 김기덕뿐만이 아니라 이십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4열 종대로 서서 앞에 선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조건 땅을 매입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실적이야. 알았어? 협박, 뇌물, 회유 그런 거 전부 신경 쓰지 말고 하라고. 우리가 세스 소속이기는 하지만, 세스처럼 일하라고 세스에 고용된 몸이 아니야. 알았어?”
[[[[[[예!!!!!!]]]]]]우렁찬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사람들은 각자의 사무실로 가기 위해 흩어졌고, 사무실에는 김기덕과 모두에게 강연하듯이 말을 한 사람만이 남았다.
“임 부장님, 이번 일이 잘 진행되면 우리한테는 얼마나 떨어지는 겁니까?”
임 부장이라 불린 사내의 이름은 임시찬.
세스에 경호 인력을 파견하는 경호 업체 소속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세스의 더러운 일을 도맡아서 해결해 주고 있는 세스 직속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180센티라는 이 시대 기준으로 큰 키, 최철호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건장한 몸, 건장한 몸에 어울리지 않는 하얀 피부에 스포츠머리.
40대의 나이임에도 임시찬은 김기덕 같은 인물을 제어하기에 적합한 외모와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이봐, 김 과장. 우리가 하루 이틀 같이 일했어? 그냥 위에서 시키면 ‘예’하고 일이나 해. 쓸데없이 생각하지 말고.”
김기덕은 혹시나 하고 물어봤다가 본전도 못 건지고는 쓴웃음만 지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부장님. 최종효 있잖습니까. 우리한테 정보 주는 놈.”
“걔가 왜?”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그 녀석이 잘렸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와이케이 쪽에 만든 채널 중에 나름 고위직은 그 녀석 하나였지 않습니까. 그래서 확신은 할 수 없는데, 물류 쪽의 녀석의 말로는 ‘잘린 것 같다’라는 말을 하던데요?”
“잘린 거야, 안 잘린 거야. 확실히 해. 어중간한 정보 가지고 움직이면 큰일 난다는 거 나한테 안 배웠어?”
“으음…….”
“확실히 알아보고 다시 보고해. 알았어? 그 자식이 있어야 이번 일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갑자기 걔들 윗선에서 말 바꿔서 잠실에서 다른 곳으로 지역 옮기면 우리는 빛 좋은 개살구 되는 거야.”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와이케이 임원들 사진은 아직도 못 구했어? 인상착의를 알아야 우리도 편한데 말이야.”
“그걸 최종효 녀석한테 부탁해 놨었는데 어제랑 오늘 연락이 안 되어서 말이죠.”
“집에는 찾아가 봤어?”
“녀석 와이프가 출장 갔다고 해서 일단은 기다려 보고 있습니다.”
대답을 들은 임시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답답한 마음을 가졌다.
‘하, 류근태 정도의 인물이라면 윗선에서 사진을 찍는 게 훨씬 쉬울 텐데 우리한테 시키는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야.’
하지만 이런 속내를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
임시찬이 심기가 불편한 상황에서 김기덕이 새로운 질문을 했다.
“혹시 최종효 녀석이 정말로 잘린 거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그 녀석 자기가 들켜서 잘리면 세스로 취직하는 거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가능한 겁니까?”
임시찬이 코웃음을 쳤다.
“진심으로 묻는 거야?”
김기덕 역시 비웃음을 흘렸다.
“그럴 리가요. 그냥 이후에 어떻게 하실지 여쭙는 겁니다.”
“그냥 버리는 거지. 우리가 공식 세스 소속도 아니고, 취직을 어떻게 시켜 줘? 믿은 놈이 등신이지.”
“하긴, 그렇죠. 혹시 우리 쪽에서 쓸 생각이시거나 한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배신자 새끼를 어디다 써먹어. 특별한 이유도 없이 자기 조직 배신하는 놈들은 절대 믿으면 안 돼.”
“역시 부장님이십니다. 맺고 끊음이 분명해서 밑에서 일하기 좋다니까요.”
“쓸데없이 아부하지 말고 나가서 땅이나 확보해.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실적에서 앞서야 내가 챙겨 주기 쉬워지지.”
“알겠습니다! 어디 보자, 그럼 일하러 가 볼까~.”
김기덕은 콧노래를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내 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열린 문을 통해 김기덕은 험상궂은 표정의 경찰들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