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92)
#92화 배신자는 두 종류 (3)
20명이 넘어가는 시선이 목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지만, 최철규는 전혀 부담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은 채, 목표인 임시찬을 향해 다가갔다.
‘180센티에 하얀 피부, 스포츠머리랬지?’
워낙 특징이 잘 살아 있는 외모라서 그런지 최철규는 임시찬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사무실 문이 잠겨 있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근처에 있지 않으실까 해서 돌아다녔는데 겨우 찾았네요.”
임시찬 앞에서 약간 호들갑을 떠는 최철규의 모습에 임시찬이 피곤한 와중에도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저를…… 아십니까?”
“당연히 알죠. 모를 수가 있나요.”
임시찬은 최철규의 말만으로는 도무지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당장 지금 신경 써야 할 일이 태산이었으니까.
“아, 지금 굉장히 피곤하실 텐데, 다들 괜찮으신 겁니까?”
최철규의 말에 임시찬이 부하들을 둘러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
말 없는 한숨.
최철규는 피곤에 쩐 상처투성이 사내들을 보고는 혀를 찼다.
“쯧쯧쯧……, 고생들이 많으셨겠네요. 당장 쉬실 곳이 필요하시면 제가 저기 여인숙이라도 방을 잡아드리겠습니다. 어떠세요?”
여인숙이라는 말에 부하들의 얼굴에 간절함이 어렸고, 임시찬이 이걸 놓칠 리가 없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거절할 수가 없다…….’
결국, 임시찬은 평소라면 택하지 않을 선택지를 골랐다.
“부탁…… 드리겠습니다.”
“어유, 부탁이라뇨. 자자, 얼른 따라들 오세요.”
최철규가 빠르게 걷자, 부하들은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막의 조난자들처럼 맹렬히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방이 세 개밖에 없는데…….”
여인숙 주인의 말에 최철규는 군말 없이 방 세 개를 빌렸고, 부하들은 방이 좁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세 개의 방에 나뉘어 물밀 듯이 들어갔다.
“부장님도 빨리 들어오세요.”
핏발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부르는 김기덕의 말에 임시찬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따가 들어갈 테니까 얼른 들어가서 자.”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김기덕이 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들어간 사내들이 코를 고는 소리가 주변에 진동하기 시작했고, 방문이 닫혔음에도 코 고는 소리는 문을 뚫고 나와 카운터까지 들려왔다.
“커피 한 잔만…… 사 주실 수 있으십니까?”
힘없는 임시찬의 말에 최철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옆집이 다방이에요.”
주인의 말에 최철규가 씨익 웃으며 임시찬을 바라보았고, 임시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방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이 각각 최철규와 임시찬 옆에 앉았다.
“오빠들, 우리도 한 잔씩 마셔도 돼?”
그러자 최철규는 너스레를 떨었다.
“얘들아, 지금 우리 상황을 봐. 그럴 때가 아니야.”
5천 원짜리 두 장을 꺼내어 건네주자 여자들은 그럭저럭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조용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고, 덕분에 드디어 대화의 여건이 만들어졌다.
“맛있게 드세요.”
나이 먹은 여사장이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냉커피.
임시찬은 갑자기 밀려오는 갈증에 단숨에 냉커피를 들이켰다.
“후우…….”
“이것도 드시죠.”
최철규의 말에 임시찬은 고맙다는 말도 잊은 채 두 번째 냉커피도 한 번에 끝냈다.
“후우우……, 감사합니다. 갑자기 갈증이 너무 심하게 나서…….”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그건 그렇고……, 솔직히 저는 당신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임시찬의 말에 최철규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방의 가장 구석 자리.
여사장이 있는 카운터와는 끝과 끝에 있는 자리고, 주변에 다른 직원이나 손님들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철규는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당연하죠. 우리는 직접 만난 적이 없으니까요.”
목소리를 낮춘 최철규의 모습에 임시찬 역시 목소리를 최대한 낮췄다.
덕분의 둘의 대화는 아주 가까이에 오지 않고서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게 무슨 소리이신지…….”
“왜냐하면, 전 와이케이 소속이니까요.”
“예?”
순간 임시찬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가까스로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심신이 피곤했기 때문에 평소와 같이 심계 있는 대화는 힘든 상황.
더군다나 상대가 와이케이라는 충격이 임시찬의 마음을 더욱 헝클어 놓고 있었다.
“사실 제가 찾아온 것은 임 부장님이 현재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예측했기 때문입니다.”
“예측……했다고요……?”
“네. 사실, 저희는 당신들이 종북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세스에 직접적인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직접적인 사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세스의 임원이 와이케이 백화점에 찾아와서 사과를 하는 것이지요. 즉, 공식적인 협의를 하자는 것이 저희의 제안이었습니다. 내정 간섭을 한 것이 확실시된 이상, 실무적인 협의가 필요하니까요.”
현재 최철규의 말은 100퍼센트 거짓말.
하지만 이 거짓말은 합리성에 근거해 만들어진 데다가, 현재 임시찬은 이 말이 거짓인지 사실인지 구별할 능력도 방법도 없었다.
“그렇다면 세스는…….”
임시찬이 말을 흐리자 최철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각하시는 대로일 겁니다. 세스는 당신들과의 관계를 부정했고, 덕분에 우리는 당신들을 이용할 방법을 잃고 말았죠.”
“하하……, 하하하…….”
임시찬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리고 가린 손가락들 사이로 눈물이 흘러나와 비워진 커피잔의 얼음 위로 툭툭 떨어져 컵의 내벽을 적셨다.
‘17년을 넘게 충성한 대가가 겨우 이거야? 그저, 회사 차원에서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말 한번 해 주는 게 그렇게 어려웠나?’
임시찬은 천성이 악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세스를 위한다’라는 이유로 모든 악역을 자처한 것뿐이었다.
물론 그것이 지금까지 임시찬이 한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임시찬은 세스가 자신의 충성심을 알아줄 거라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과거가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그래서 저희는 그냥 당신들을 풀어 주라고 경찰 쪽에 부탁을 넣었습니다. 애초에 당신들이 종북으로 몰아진 이유가 좀 어이없는 이유거든요.”
“그건 혹시…….”
최철규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최종효 대리가 경찰에서 ‘공산주의 만세다. 개새끼들아!’라고 외친 게 발단이 된 겁니다. 경찰은 최종효 대리에게 뒷배를 추궁했고, 최종효 대리는 얼떨결에 당신들을 뒷배라고 말을 한 것이지요.”
“하…….”
지하실에서 그토록 고생한 이유가 홧김에 헛소리를 한 버러지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임시찬은 그야말로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겨우 이따위 일로 종북몰이를 당한 것도 웃기고, 이따위 일로 세스에게 버림받은 내 인생이 한심스럽고…….’
임시찬은 다시 눈을 가려 잔의 내벽을 적셨다.
그리고 잠시 뒤. 눈에서 손을 내린 임시찬의 표정은 조금 의아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왜 우리를 풀어 달라고 하신 겁니까? 아무 이익이 없을 텐데?”
말마따나 와이케이는 굳이 경찰에 부탁을 넣을 이유가 없었다.
부탁을 넣는 것만으로도 경찰에 빚을 지는 행위가 되니까.
악역을 자처했던 만큼, 임시찬은 돌아가는 상황을 쉽게 믿지 않는 버릇이 있었고, 그렇기에 최철규를 약간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이익이야 당연히 있죠.”
“저는 그 이익을 모르겠습니다만.”
최철규는 씨익 웃으며 임시찬에게 호감 가득한 표정을 보여 주었다.
“세스는 당신을 버렸습니다.”
“……그렇죠.”
“당신 부하들도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류 사장님은 당신들을 탐냈습니다.”
순간 임시찬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건 도대체…….”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선수끼리. 류 사장님은 당신의 능력을 굉장히 높게 치고 있습니다. 류 사장님의 리더십을 뚫고 비서실에 끄나풀을 만들었으니까요. 어떠십니까? 와이케이의 복지라면 당신도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 말이죠.”
원래 있던 조직에서는 버림받았고, 돈을 넣어 둔 금고가 있는 장소 역시 전부 봉쇄당했다.
더군다나 활동비가 들어 있는 계좌 역시 모조리 회수당했을 터.
임시찬은 자신에게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임시찬은 그래도 돌다리를 두드렸다.
“저는……, 다른 의미로 적국 표현입니다. 이런 제가 와이케이에 간다고 제대로 된 대우……, 아니 활동을 할 수 있을까요?”
최철규는 다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희 사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아군에 있을 때 아군을 배신한 놈은 짓밟아야 한다. 하지만 적군 소속이 본의 아니게 적군을 배신했을 때에는 보듬어야 한다. 그는 충신이 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사람이니까.]“배신자…….”
임시찬의 독백에 최철규가 빨리 말을 덧붙였다.
“당신이 우리한테 붙으면 세스는 자신들이 당신을 버린 것도 잊고 당신을 배신자라 매도하겠죠.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당신을 믿을 수 있는 겁니다.”
임시찬은 다시 눈을 손으로 가렸다.
하지만 이번엔 컵이 적셔지지 않았다.
대신 큭큭 하는 웃음으로 얇은 커피잔이 불규칙적으로 진동하는 게 보였다.
“이것 참……. 저한테는 선택권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당신의 대우를 낮게 측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듣고자 하는 것은 ‘예스 오어 노’ 중 하나의 대답. 어떤 걸 택하시겠습니까?”
임시찬은 자세를 가지런하게 한 뒤, 최철규를 향해 말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최철규는 일부러 소개를 안 하고 있었지만, 잊었던 것처럼 너스레를 떨고는 자신 역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최철규라고 합니다. 들어 보신 적 있죠?”
“아……, 와이케이 백화점의 2인자라고 하던…….”
“그렇습니다.”
임시찬은 2인자가 자신을 스카우트하러 왔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제 부하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팔다리 자르고 머리만 가져와서 무엇에 쓰겠습니까. ‘우리’는 ‘당신들’을 환영합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받던 대우보다 확실히 안정적인 대우를 보장하겠습니다.”
마침내 임시찬이 세웠던 의심의 벽이 무너졌다.
비록 진실을 통해 무너진 의심의 벽은 아니지만, 임시찬은 와이케이에 가는 것을 택했고, 평생 진실을 모르게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을 알게 되더라도 과거를 후회하지 않게 되겠지.’
최철규는 속내를 숨기며 임시찬에게 손을 내밀었고, 임시찬은 그 손을 꽉 붙잡으며 와이케이라는 이름의 배에 올라탔다.
* * *
“잘 들어. 남자는 근육이다! 근육이 있어야 집안이 화목해지는 거야! 거기, 너! 침대에서 팔 힘이 부족해서 주저앉는 경우가 많지? 너는 특별히 팔굽혀 펴기 열 번 더 한다!”
윤기의 경호원이자 근육남인 차필규의 말에 지목당한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이러한 모습은 임시찬을 비롯한 임시찬 일당 전부가 겪고 있는 일이었다.
누구의 명령이라고 거절할까.
3일 전부터 시작된 지옥의 체력 단련에 임시찬 일행은 그야말로 입에 단내를 풍기면서 훈련을 받고 있었다.
군대 특전사 훈련소가 이런 정도일까?
하지만 훈련을 받는 사람들의 표정은 힘들어 보이긴 해도 불만은 없었다.
괜찮은 집과 나쁘지 않은 생활비.
와이케이에 몸을 투신하자마자 이루어진 보상에 이들은 빠르게 세스를 버리고 임시찬의 말을 믿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해야 하는 일은 세스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돈만 받는 것과 인정을 받는 것은 완전히 다르기에 이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와이케이에 녹아들어 가기 시작했다.
“진짜, 회장님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방법은 대단하네요.”
윤기는 어깨를 으쓱할 뿐, 대답을 하진 않았지만 페르난데즈 역시 딱히 재차 묻지는 않았다.
대신 윤기에게 자신을 부른 용건을 물었다.
“여기에는 어떤 이유로 부르신 건가요?”
현재 페르난데즈가 있는 곳은 세입자가 전혀 없는 건물.
그나마 3층에 있던 태권도장을 임대해서 임시찬 일행을 훈련하고 있는 중이었다.
“슬슬 2호점을 지어야 하거든요.”
태권도장 안을 들여다보던 것을 관둔 윤기가 계단을 내려가 대기시켜 둔 차에 올라탔고, 페르난데즈 역시 윤기를 따라 차에 올랐다.
“2호점과 관련해서 무언가 특별히 지시할 게 있는 건가요?”
“네.”
윤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림 좀 가르쳐 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