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93)
#93화 몽타주 (1)
“그림이요? 갑자기?”
“여러 상황에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예를 들면요?”
“제 머릿속에서 생각난 것을 시각화한다는 의미에서?”
페르난데즈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을 그릴 줄 알면 확실히 그게 좋은 점이죠. 혹시 2호점 관련해서 주문하고 싶은 사항이 있으신 건가요?”
윤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 2호점은 1호점과 달리 한국에 좀 더 어울리는 인테리어를 쓸 생각이거든요. 더불어서 기둥 공법을 쓸 생각이고요.”
“건물을 오래 유지하실 생각이시군요? 그리고 한국식 인테리어라면 확실히 회장님이 그림을 배워 두는 것이 좋긴 하겠네요.”
“솔직히 페르난데즈 입장에서도 편하지 않아요? 클라이언트가 ‘화사하게 해 주세요.’라는 표현 대신 ‘이렇게 해 주세요.’라는 표현을 하게 되는 셈이니까요.”
디자이너 유머에 페르난데즈가 킥킥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클라이언트들의 용어는 진짜 대단하다니까요? ‘샤하게’라든가, ‘쨍하게’라든가, ‘심플하게’, ‘모던하게’, ‘빈티지하게’ 등 듣는 입장에서는 솔직히 감도 안 잡혀요.”
“그것만이면 다행이죠. ‘좀 더 뭔가’, ‘아니, 약간 더 화하게’ 같은 말은 더 무섭지 않나요?”
“제가 그 말들 이해하는 데 거의 5년이 걸렸죠. 지금은 클라이언트랑 대화를 하다 보면 뭘 원하는지 바로 느낌이 오긴 하지만요.”
“천재가 5년이 걸릴 정도면 일반인은 장난 아니겠네요.”
천재라는 칭찬에도 페르난데즈는 부끄러워하는 티를 내지 않았다. 자신이 정말 천재라고 생각했으니까.
“사람 속을 읽는 게 천재는 아니었으니까, 그거랑은 조금 다를걸요?”
“그래도 평균적으로 5년 이상은 걸린다는 말이네요.”
“그렇죠.”
디자이너와 관련하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윤기와 페르난데즈는 이윽고 윤기의 집에 도착했다.
“들어오세요.”
윤기가 들어오라고 한 곳.
그곳은 바로 서재였다.
‘여기는 설마…….’
페르난데즈는 서재의 문을 연 윤기를 보며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윤기의 미소.
‘나도……!’
페르난데즈는 자신 역시 서재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준비는 해 뒀어요.”
미술을 배울 때 필요한 도구들을 미리 서재에 준비해 둔 덕분에 페르난데즈는 바로 윤기에게 미술 과외를 들어갈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수준으로 가르치면 될까요?”
“초보요. 다만, 속도 같은 것은 자유롭게 하세요. 저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천재가 천재에게 배우는 과외.
윤기는 빠르게 ‘적절한 수준의 미술 능력’을 쌓아 나가기 시작했다.
* * *
기본적으로 윤기가 재능을 통한 학습 능력이 빠르다고는 하지만, 배우지 않은 것을 해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윤기의 미술 실력은 표현력이 좋기 때문에 못 봐줄 정돈 아니었지만, 엄밀히 놓고 말해서 학교 대표로 대회로 나간다거나 할 수준은 전혀 되지 못했다.
애초에 큰 관심이 없었고, 그래도 실습 점수는 충분히 만점을 받을 정도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윤기는 두 가지 이유로 미술을 배울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기에 지난 몇 주 동안 페르난데즈에게 열심히 미술을 배웠다.
“확실히 실용적인 의미에서로만 본다면, 회장님은 정말 ‘훌륭한 클라이언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정도면 저에게 있어서 최고의 칭찬이에요.”
페르난데즈는 윤기가 어떤 걸 원하는지 명확히 캐치하고 있었고, 덕분에 윤기는 자신이 배우고자 하는 부분만 배울 수 있었다.
아무리 천재라도 단시간에 페르난데즈 같은 실력을 쌓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
하지만 페르난데즈에게 좀 더 명확한 지시를 내리는 능력만큼은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그러죠.”
페르난데즈가 일어나려고 할 때, 윤기가 페르난데즈를 불렀다.
“아, 오늘은 잠깐만 기다리세요. 회의가 있거든요.”
“회의요?”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곧 시간이니까요.”
윤기는 가정부에게 말해서 페르난데즈에게 여름 제철 과일인 복숭아를 대접했다.
햇빛을 충분히 받아 당도가 대단한 복숭아의 맛은 페르난데즈의 기분을 업시키기에 충분했고, 회의 시간까지의 기다림은 결코 지루하지 않게 되었다.
“아, 어서들 오세요.”
거의 비슷하게 도착한 류근태와 최철규, 그리고 조청우.
항상 세 명만 자리하던 자리에 다섯 명이 앉게 되었지만, 모두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상석인 윤기의 바로 양옆에 류근태와 최철규.
그리고 그 옆에 페르난데즈와 조청우.
페르난데즈는 셋이 도착하기가 무섭게 자연스럽게 한 자리 옆으로 자리를 이동한 것이다.
‘현시점에서 내 서열은 4위 혹은 5위라는 거겠지? 윤기가 핏줄을 중요시하는 타입이면 5위, 그게 아니라면 4위겠군.’
이런 페르난데즈의 말을 확인해 주듯, 류근태가 너스레를 떨었다.
“다섯 명이서 회의를 하는 것은 처음이네요.”
어찌 보면 서열 다툼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놀랍게도 그런 팽팽한 분위기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 자신의 분수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류근태는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하고, 최철규는 실속만 챙길 수 있으면 상관없다.
그리고 페르난데즈는 자신이 류근태와 최철규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조청우는 그냥 별생각이 없다.
“윤기야, 이 복숭아 어디서 샀어? 와이프가 요새 임신해서 단 거 좋아하거든.”
“이따가 집에 가실 때 싸 드릴게요.”
“오, 진짜? 그럼, 나야 좋지.”
그야말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페르난데즈는 자신도 모르게 픽 하고 웃어 버렸고, 류근태와 최철규는 그 미소의 의미를 알았기에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러면 2호점 관련한 회의를 시작해 볼까요?”
윤기의 말에 따라 회의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애초에 정해진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빠르게 끝난 회의.
토지 문제가 끝이 났으니 공사를 시작한다는 말과 이번 공법은 기둥 공법에 추후 전선 교체를 편하게 하기 위해 설계 부분에서부터 심혈을 기울이라는 것이 회의의 골자였다.
더불어서 해당 내용과 관련해서 법적인 문제를 조청우가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으로 회의는 끝이 났다.
“그럼,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류근태의 말에 따라 조청우를 제외한 셋은 먼저 저택을 떠났고, 조청우는 봉투에 담긴 다섯 개의 복숭아를 보고는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조금만 더 주면 안 될까?”
“자주 오시라는 의미에서 그것만 드린 거예요.”
류근태나 최철규라면 속으로 굉장히 좋아할 말이었지만, 조청우는 혹시 윤기가 또 서적의 탑을 줄까 봐 두려운 마음에 약간 쓴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에 또 올게.”
“예, 조심히 들어가세요.”
돌아가는 조청우를 바라보며 윤기는 슬슬 법무팀을 꾸려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와이케이 백화점의 매출이 호조를 이루는 이상, 더는 윤기의 개인 자산을 와이케이 백화점에 넣을 필요성이 사라졌다.
그렇기에 윤기는 자신의 개인 자산을 새로운 곳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청우를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최소한 페르난데즈가 서열 4위에 도달한다는 여지는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 사실을 페르난데즈가 알 리는 없지만 말이다.
‘좋아, 그러면 미술을 배운 두 번째 이유를 시작해 볼까?’
차필규의 밑에서 열심히 구르고 있을 인원들을 떠올리며, 윤기는 최덕배를 불렀다.
* * *
호오, 이 기업은 미래가 밝구먼. 하긴, 실제로도 밝았지?>
최덕배는 눈앞에 있는 박기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밤 10시.
지금쯤 유흥업소에서 여자들을 끼고 놀 법도 하건만, 세스의 장남인 박기수는 보고서를 읽는 데에 한창이었다.
“하아, 젠장.”
박기수는 마음에 안 드는 것이라도 있는 듯, 읽고 있던 보고서를 구긴 뒤,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러고는 잠시 뒤, 스스로 버린 서류를 다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읽기 시작했다.
그가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숫자.
세스 홀딩스의 영업 이익을 다 합쳐도 동생이 운영하는 세스 화학에 미치지 못하니 나온 화풀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내가 한국 쪽을 맡겠다고 하는 거였는데.’
약 15년 전, 박기수는 아버지인 박도철에게 일본이 기회의 땅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박도철은 이러한 박기수의 말을 긍정적으로 판단하여 일본 진출의 전권을 박기수에게 몰아주었고, 대신 차남인 박기호에게는 한국에서의 운영 보조를 맡겼다.
박기수 입장에서는 자신의 판단하에 훗날 세스를 독점할, 일종의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박기수의 판단은 그야말로 오판이었다.
‘일본이 이 정도로 정통성을 따질 줄이야…….’
세스 홀딩스의 초반만 해도, 그야말로 승승장구였다.
나름대로 괜찮은 세스의 자금력을 투자하여 공격적인 확장을 실시했으니까.
하지만 세스 홀딩스가 중소기업의 규모를 넘어 중견 기업으로 넘어가려고 할 때 문제가 발생했다.
그것은 바로 연고의 문제.
일본에서 권력을 잡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정통성인데, 세스 홀딩스에는 이러한 면모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한국 전쟁을 통해 사실상 신분제가 리셋 된 한국에서의 기억밖에 없던 박기수에게 있어서 이러한 정통성 문제는 그야말로 난관이었다.
조금 큰 사업을 하려고 하면 최소 야쿠자나 정치가와의 연줄이 필요했는데, 박기수에게는 바로 그러한 연줄이 없었으니까.
물론 박기수가 아무런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만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역 토호.
그의 딸과 결혼을 하여 세스 홀딩스를 중견 기업으로 약진시키는 것은 간신히 성공했다.
하지만, 그뿐.
이대로 수십 년이 지난다면야 자신의 아들이 가진 정통성이 강화되어 세스 홀딩스가 좀 더 커질 수 있겠지만, 그것으로는 박기수의 바람에 미치지 못했다.
박기수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세스의 독점적 상속이었으니까.
만약 이대로 몇십 년이 지난다면, 세스의 상속은 분명 동생의 몫이 될 터.
‘도전 정신도 없는 쓰레기 자식.’
박기수는 자신의 동생인 박기호를 욕했다.
자신이 일본에서 미지의 땅을 개척하는 동안, 동생이 한 것이라고는 아버지 옆에 붙어서 공을 나눠 받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아버지는 동생인 박기호를 총애하고 있었다.
‘아버지 얼굴을 본 적이 언제인지도 모르겠군.’
개인적인 호출이 이루어진 것이 벌써 반년 전.
여러 불안으로 인해 박기수는 다리를 떠는 것도 모자라 손톱을 물어뜯을 정도였다.
뭐, 이 정도로 보면 됐나?>
최덕배는 더 이상 박기수에게 관심이 없는 듯, 그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며칠이나 계속되었다.
* * *
아니, 아니야. 볼이 좀 더 갸름하다니까? 그래, 맞아. 그렇게.>
최덕배는 제사상에 올려진 홍시를 먹으며 인물화를 그리는 윤기에게 이런저런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윤기가 짜증을 냈겠지만, 지금 최덕배의 훈수는 이유가 있는 훈수였기에 윤기는 잠자코 최덕배의 훈수를 경청했다.
“이러면 됐나요?”
그래, 맞아. 그 녀석이 바로 박기수야. 똑같이 생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