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95)
#95화 흔들어라 (1)
“세스를 흔들라는 지시 아닐까?”
최철규는 정답에 가까운 대답을 내어놓았다.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흔들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 이 정보들이 세스의 뒷역사를 알게 해 주는 것은 확실하지만, 이것을 활용할 방도가 아직까지는 마땅히 떠오르지가 않거든.”
임시찬 일행은 세스의 밑에서 일하면서 기업의 이름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도맡아 해 왔다.
‘이것도?’라고 표현하는 일들이 일부 섞여 있었고,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내뱉게 하는 것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그뿐.
증거가 없는 이상 이걸 증명할 방법이 없었고, 증명할 방법이 없는 이상 사용할 방법 역시 마땅치 않았다.
애초에 세스에게 이 자료에 대한 이야기를 해 봤자, 100퍼센트 부정을 할 테고, 경찰에 신고를 한다고 해도 처벌을 받는 것은 임시찬 일행이지 세스가 아니다.
왜냐하면, 세스가 시켰다는 증거가 없으니까.
더불어서 세스가 시켰다는 증거가 있다고 해도, 세스 역시 권력층과 연줄이 있기 때문에 처벌이 쉽지 않을 것이다.
100퍼센트 윗선에서 강제로 중재를 할 것이고, 괜히 귀찮게 한 와이케이만 권력층에게 점수를 깎일 가능성이 크다.
‘삼우와 와이케이의 힘을 합친다면 세스와 비벼볼 만하겠지만, 그랬다가는 다른 호랑이들에게 둘 다 잡혀먹힐 가능성이 크지.’
최철규는 윤기가 절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윤기가 어떤 지시를 내릴지 사뭇 궁금해졌다.
“현재 세스는 차남인 박기호가 경영권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커요.”
“그렇지. 임 과장이 가져온 자료들을 토대로 보면, 박기수보다는 박기호의 이름이 더 많이 언급되니까.”
임시찬이 자기보다 윗선을 한 사람만 만나 보았다고는 하지만, 그 외의 사람은 만난 경험이 꽤 있었다.
왜냐하면, 구체적인 임무 하달이나 정보 전달에 있어서 윗선이 수행하기에는 하는 일이 많았으니까.
당연히 동급, 혹은 하위급 인물은 만나 본 경험이 많았고, 이들은 임시찬의 부하들과도 많은 만남을 가졌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데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이들은 서로 간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임시찬 일행은 이러한 대화들까지 빼놓지 않고 모든 것을 보고했다.
“거기에다가 현재 박기수가 일본에서 빌빌대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확실해지죠. 일본에서 빌빌대고 있는 장남, 한국에서 착실히 성과를 올리는 차남. 누구라도 박기호를 후계자로 생각할 거예요.”
윤기가 류근태를 통해 미리 받아둔 주식 시장의 자료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자, 최철규는 해당 자료를 보고는 윤기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박기수와 박기호를 이간질하려는 거야?”
“바로 그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도와준다고 해도 박기호 체제가 너무 공고한데? 박기수가 이길 수는 없을 거야.”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누구 하나를 이기게 하려는 싸움이 아니에요.”
최철규는 윤기의 의중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세스의 약화. 그게 목적이구나.”
“드디어 정확한 답변을 내놓으셨네요. 맞아요. 우리가 박기수를 밀어주면 한동안 세스는 또다시 잡음으로 시끄러워지겠죠. 우리는 그동안 세스의 약화를 도모하면 되는 거예요.”
“박기수가 세지게 된다면……, 이 자료들도 의미가 있어지겠네.”
윤기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확해요. 임시찬 일행에게 지시를 내린 것은 기본적으로 박기호나 박기호의 측근들이죠. 이걸 흑색선전으로 사용하면 박기호 쪽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거예요. 같은 세스 소속인 박기수가 정보의 신뢰성을 보증할 테니까요.”
“증거는 없더라도 친족끼리 서로 그 내용으로 싸우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가지겠지. 거기다가 전부 사실이기도 하니, 상대도 ‘아니다’라는 반박 외에는 하기 힘들 테고.”
“그렇게 세스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기는 동안 우리는 차근차근 업종을 늘려 나가는 거죠. 세스의 주력 업종들을 대상으로 말이에요.”
“결국은 세스와의 기업 전쟁이구나.”
“그런 셈이죠. 사실 저한테는 이득이에요. 와이케이의 규모가 커질수록 어차피 저는 드러나게 되어 있으니까요.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통해서 어느 정도 숨길 수는 있겠지만, 결국에는 눈치채는 사람이 생길 거예요. 그럴 거라면 몸집이 큰 골리앗 하나쯤은 보상으로 얻어 내야죠.”
“세스라는 골리앗인가…….”
최철규는 입술이 말랐는지 혀를 한번 핥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중공업이나 화학이 아닌 게 조금 아쉽네. 와이케이 백화점도 매출이 대단하긴 하지만, 회사의 규모를 생각하면 그쪽이 정말 대단하니까.”
“지금은 세스에 집중해요. 그쪽과 관련한 일은 제가 지시를 내릴 때가 있을 거예요.”
“그쪽도 생각이 있구나?”
최철규가 눈을 반짝였지만, 윤기는 미소를 지을 뿐 대답해 주지는 않았다.
‘아직은 먼 미래라 김칫국을 드시게 할 순 없거든요.’
대답을 기다리던 최철규는 결국에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아쉽다는 표정과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우리가 박기수한테 어떠한 지원을 해 줄 수 있을까? 세스 홀딩스에 와이케이의 이름으로 투자라도 해 주려고?”
“아뇨, 시작부터 와이케이가 드러나면 안 될 일이죠. 그리고 서종훈 사장의 말로는 일본에선 정통성이 없으면 큰 사업을 하기 힘들다는 자문을 이미 받았어요. 그렇다는 건 와이케이의 이름으로 자금 투자를 하더라도 박기수가 도약하기는 힘들다는 얘기죠.”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야? 와이케이의 힘도 빌리지 않은 상태로 박기수에게 정통성을 부여할 방법이 있어?”
윤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본에 꼬붕이 한 마리 있거든요.”
* * *
윤기도 최근에 안 거지만, 최덕배에게는 아주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한 번이라도 접촉한 인물이 존재한다면, 그 인물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
물론, 도와주느냐, 도와주지 않느냐는 최덕배의 마음에 달린 것이지만, 최근에 윤기가 최덕배를 섭섭하게 대한 적이 없었기에 최덕배는 와타나베가 어디에 있는지 윤기에게 흔쾌히 알려 주었다.
그 뻐드렁니? 도쿄에 있어. 일본에 가게 되면 안내해 줄게.>
윤기는 곧바로 최철규와 조청우를 데리고 일본으로 향했다.
가기 전 집합을 걸었을 때, 조청우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책상 위에 책 탑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안색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 이번에는 갔다 와서 보실 게 많아요.”
결국, 하얘진 얼굴은 똑같지만, 최철규가 적절히 멘탈을 케어해 주었기에 도쿄에 도착하고 나서 조청우의 표정은 나름대로 많이 풀려 있었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도쿄의 한 호텔.
그곳에서 서종훈을 만난 윤기는 일단 모두와 함께 객실로 들어갔다.
“잘 지내셨어요?”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여행만 다니면서 월급을 받는 것 같아서 죄송했는데, 이 기회에 확실히 수행하겠습니다.”
말을 끝낸 서종훈은 차필규와 잠시 대화를 나눴고, 직후 다시 윤기에게 집중했다.
“그건 그렇고 일본에서 사업을 하실 생각이라고 저번에 말씀하셨는데, 그것과 관련된 일인가요?”
“사업이라기보다는 적당히 밀어줘야 할 사람이 있거든요.”
“적당히 밀어줘야 할 사람……? 그게 누구죠?”
“혹시 세스 홀딩스라고 들어 보셨나요?”
서종훈은 고개를 저었다.
“전혀 들어 본 바가 없습니다만……. 혹시, 세스하고 관련이 있나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군요. 네, 맞아요. 세스의 장남이 실권을 잡고 있는 일본의 기업이죠.”
“흐음, 한국 기업의 일본 진출이라…….”
미래에도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기업이 80년대의 일본이라면 더더욱 유명할 수가 없다.
버블로 인해 있는 대로 팽창한 기업 사이에서 이름을 날리기란 쉽지 않은 법이니까.
“그런데 제가 따로 자문을 드렸던 거로 기억합니다만, 그것은 감안하신 건가요? 일본에서는 연줄을 넘어서 정통성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듭니다. 최소한 정통성이 있는 연줄이라도 있어야 하거든요.”
“당연히 있죠.”
“일본에 그런 연줄이 있으셨나요?”
서종훈은 윤기가 그런 연줄이 있었다면 자신을 고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있잖아요. 그 뻐드렁니.”
“예? 그 녀석이요?”
기겁한 표정을 짓는 서종훈을 향해 윤기가 말을 이었다.
“너무 그럴 필요 없어요. 그때 그 녀석 표정 못 봤어요? 더 이상 우리한테 귀찮은 일을 할 순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게 우리를 도와준다는 전제가 되지는 못할 겁니다. 일본인들의 뒤끝은 정말이지……, 대단하거든요.”
“그 뒤끝도 동등한 사람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죠. 걱정 마세요. 그 녀석을 요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그 녀석이 어디 있는지는 아시는 겁니까?”
“당연하죠. 제가 누구인지 잊으신 건 아니죠?”
조상 잘 둔 후손?>
코를 세우는 최덕배에게 ‘크흠’ 하는 소리로 약간의 심기를 드러내기는 했지만, 윤기는 최덕배의 심기를 건드리는 수준까지는 가지 않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최덕배의 조력이었으니까.
“그럼, 가 볼까요?”
“지금 어디 있는지 아시는 건가요?”
“물론이죠.”
윤기의 이러한 행동에 서종훈과 최철규는 굉장히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떻게 와타나베의 현재 동선을 알고 있는 거지? 일본에 정보원이 있나?] [세상에, 혹시 JSD 쪽에서 정보원을 받은 건가? 나하고 류 비서한테 말하지 않은 사실이 도대체 얼마나 더 있을까?] [선물로 뭐 사 가지?]어찌 보면 가장 편하게 윤기를 따라다니고 있는 조청우를 가장 마지막으로 윤기는 도쿄에 있는 에르메스 플래그십 스토어로 향했다.
에르메스의 브랜드를 극대화한 판매점으로 80년대 한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종류의 판매점이었다.
하지만 버블이 한창 복작이던 일본에서는 이미 플래그십 스토어가 꽤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것만으로도 일본의 자본 팽창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아, 혹시 이곳이라면 와타나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가?’
서종훈은 윤기가 어쩌면 찍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놀랍게도 와타나베가 정말로 스토어 안에 있자, 자신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뜨아!”
소리를 낸 것은 서종훈이 아닌 다름 아닌 와타나베.
와타나베는 서종훈이 벌린 것보다 더 크게 입을 벌리며 마치 경직된 것처럼 움직임을 멈추었다.
“와타나베 님?”
스토어 직원이 멈춘 와타나베를 보고는 당황해서 옆에서 말을 걸었지만, 와타나베는 직원에게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반면 윤기는 그런 와타나베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발걸음 소리 이외에 스토어에 들리는 소리는 그야말로 전무.
여덟 걸음이 남았을 때, 와타나베는 정신을 퍼뜩 차리고는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으으……, 아아아…….”
헤어지기 전의 와타나베는 윤기에게 지독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윤기는 그 사이에 있을 만한 상황을 추론했다.
와타나베의 배경은 와타나베의 힘이 아닌 누군가의 힘.
그런데 그 힘이 까딱하면 절멸당할 뻔했다?
그 상황에서 와타나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윤기는 당연히 이길 도박판에 판돈을 올렸고, 그 판돈은 고스란히 두 배로 돌아왔다.
“와타나베.”
나지막한 윤기의 목소리.
콰당하는 소리와 함께 와타나베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으으……, 으으으……!”
윤기는 서서히 와타나베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그 주먹이 거의 눈앞까지 왔을 때, 와타나베는 눈을 질끈 감았지만, 와타나베에게 일어난 현실은 얼굴을 향한 주먹질이 아니라 친근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뭐 해, 안 일어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