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96)
#96화 흔들어라 (2)
어느새 펼쳐진 주먹.
마치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듯 내밀어진 손을 바라본 와타나베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붙잡으며 일어섰다.
“다시 에르메스의 모델 일을 시작한 거야?”
윤기는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짐짓 모른 척, 근황을 물었다.
“어? 아, 아니……. 그게, 그냥…….”
와타나베는 우물쭈물하며 얼굴을 붉혔다.
동시에 와타나베는 윤기가 왜 여기에 있는지, 윤기가 왜 자신에게 적대적이지 않고 친절하게 구는지에 대한 의문을 떠올리지 못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윤기가 그 생각을 못 하게끔 대화의 완급을 조절하고 있었으니까.
“아직 에르메스 모델 일을 못 하고 있는 거야?”
모델 일을 못 하게 만든 건 윤기였지만, 천연덕스러운 윤기의 말에 와타나베는 자신의 근황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 채 말하기 시작했다.
“으응……, 지금은 다른 브랜드의 모델을 하고 있어…….”
“다른 브랜드? 어떤?”
“그게……, 좀…….”
에르메스보다 급이 두 단계는 떨어지는 브랜드였기에 와타나베는 쉽게 말을 하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 윤기가 일본에서 에르메스 재팬 모델을 하면서 재벌들 사이에 얼마나 큰 인기를 끌었는지 알았기에 더더욱.
한국에는 생각만큼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윤기의 모델 활동은 에르메스 재팬에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었기에 어느새 플래그십 스토어 직원도 윤기를 알아보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윤기의 말에 직원이 얼굴을 살짝 붉히며 물었다.
“저……, 호, 혹시……, 저번 에르메스 재팬 모델……, 아니신가요?”
“맞아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윤기의 모습에 직원의 얼굴에 홍조가 어렸다.
비록 한국에서 학생 생활을 하는 중이라 머리가 짧은 편이기는 했지만, 단발의 원빈이 잘생긴 것처럼, 윤기 역시 단발로도 상당한 수준의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타나베, 왜 그래. 나한테 그렇게 말을 하기가 힘들어? 내가 그렇게 불편한가?”
“그게…….”
직원과의 대화를 통해 마음을 준비할 시간을 주었는데도 와타나베는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거 조금 실망인데? 일본인은 뒤끝이 없다고 들었는데, 와타나베가 아직도 나를 이렇게 어려워할 줄은 몰랐어. 우리의 안 좋은 일은 저번에 그 일로 다 끝난 것 아니었어?”
실망 어린 윤기의 목소리.
이것은 와타나베에게 약간의 공포심을 가져다주었기에 와타나베는 자신도 모르게 브랜드 이름을 말하고는 넋두리를 흘렸다.
“너한테 말하기에는 아무래도 부끄러운 브랜드라서…….”
“그 브랜드가 어때서 그래? 에르메스가 소수의 부자들을 위한 브랜드라면, 그 브랜드는 일반인들에게 경외심을 가져다주는 친근감 넘치는 브랜드잖아? 와타나베의 이름을 알리기에는 꽤 좋을 것 같은데?”
“그, 그렇긴 한데…….”
와타나베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에르메스 재팬의 모델이 된다면 부유층들 사이에서 눈도장을 찍고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와타나베는 서민에게 선망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을지는 몰라도, 이것은 와타나베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윤기의 말에 흔쾌히 ‘맞다’라고 대답하지 못한 것이다.
“그나저나 우리 이제 뒤끝 없는 거 맞지?”
공포와 경외의 대상인 윤기가 자신을 향해 스스럼없이 다가오자 와타나베는 황급히, 그리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뒤끝이 없는 민족? 내가 말해 놓고도 우습네. 뒤끝이 없는 민족이 아니라 강자에 대해서 무한한 관용을 보이는 민족이지.’
하지만 이러한 윤기의 생각을 알 리가 없는 와타나베는 어느새 본능적으로 굽실거리는 태도를 윤기에게 보여 주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일본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배가 고픈데, 밥 먹었어?”
“어? 아, 아니. 아직.”
“그러면 어디 괜찮은 식당 없어? 내가 살게.”
“진짜?”
강자가 자신에게 호의를 보인다는 사실에 와타나베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고, 윤기는 와타나베의 어깨에 팔을 올리는 것으로 결정타를 날렸다.
아직 중학생이지만 이미 170 후반을 바라보고 있는 윤기의 키는 170의 와타나베보다 컸기에 어깨를 걸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당연하지. 뒤끝이 없어진 기념으로 쏠 테니 비싸고 맛있는 집으로 안내해 봐.”
“알았어!”
신이 나서 앞장선 와타나베의 뒤를 따르며 윤기는 잠시 비릿한 미소를 지었고, 이것은 오로지 최철규만이 볼 수 있었다.
* * *
와타나베가 자신 있게 안내한 식당을 보고 윤기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어. 여기 정말 괜찮은 곳이야.”
인당 1만 엔 정도의 식당.
단순하게 비교한다면 2010년대를 기준으로 인당 3~4만 엔 정도 하는 곳으로 절대 싼 곳은 아니었지만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별론데.”
“왜……? 너무 비싸……?”
와타나베의 목이 조금이지만 몸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건가 싶어서.”
“그, 그게 무슨…….”
살짝 겁을 집어먹은 와타나베를 보며 윤기가 일부러 미소를 조금 지어 주었다.
“고작해야 이런 곳에서 너와 나의 첫 번째 식사를 할 순 없지. 서 비서.”
“예.”
서종훈은 윤기의 의중을 깨닫고는 곧바로 말을 맞추어 주었다.
“이 주변에서 아주 괜찮은 식당을 좀 알아봐요.”
“그렇지 않아도 원하실 만한 식당을 한 곳 알고 있습니다.”
서종훈의 안내에 일행은 다시 차를 타고 서종훈이 말한 식당으로 이동했다.
“헉, 여, 여긴……!”
와타나베가 입을 떡 벌리며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짐짓 의아해하는 윤기의 모습에 와타나베는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윤, 여기가 얼마짜리 식당인지 알고 있는 거야?”
서종훈이 안내한 곳은 부유층을 겨냥한 고급 프랑스 요리점.
‘파리 병’이라는 게 존재할 정도로 프랑스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을 겨냥한, 무지막지하게 비싼 식당이었다.
“얼마죠?”
“1인당 최소 5만 엔은 그냥 넘어갈 겁니다.”
“별거 아니네요.”
현대를 기준으로 1인당 10~15만 엔을 호가하는 식당.
아무리 와타나베라고 해도 술값으로 그 정도 금액을 쓰는 것은 쉬웠지만, 순수 밥값으로 지출하기엔 상당히 큰돈이었기에 올 엄두를 내지 못한 식당이 바로 이곳이었다.
“서 비서, 그러면 두 시간 후에 다른 사람들이랑 다시 찾아와요.”
윤기의 말에 차필규를 제외한 모두가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멈추었다.
언제나 본인과 똑같은 대접을 해 줄 수는 없는 법.
윤기는 할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적당한 선에서 선을 긋는 법을 적용하고 있었다.
[네가 류 비서랑 철규 녀석을 얼마나 총애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와의 대우 차이는 반드시 존재해야 해. 그 둘이 불만을 가질 일은 없겠지만, 그 둘의 대우를 바라보는 또 다른 부하가 왜 자기는 똑같은 대우를 해 주지 않는지 불만을 가질 수 있으니까.] [요약하자면, ‘왜, 나는 류 비서나 최 실장 같은 대우를 안 해 줘?’라는 생각을 가지는 녀석들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죠?] [그렇지. ‘류 비서나 최 실장도 그런 대접을 받지 못하는데’로 인식을 시켜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정말 힘들어진단다.]그야말로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
그렇지 않아도 조금씩 늘어나는 부하 직원들을 효율적으로 다스리는 법이 좀 더 필요했던 윤기에게 마치 매실 같은 조언이었다.
당연하지만 류근태나 최철규가 곧바로 수긍했기에 방금과 같은 지시도 전혀 잡음 없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제가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저희와 밥을 같이 안 먹는다는 게 불신하신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확실히. 밥 한 끼 같이 먹는 대신에 내가 먹을 파이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보다 따로 밥을 먹는 게 더 이득 아니겠어?]‘정말 시의적절한 때에 할아버지가 조언을 주셨단 말이지. 만약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나중에 100명을 데리고 다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었을 거야.’
속으로 픽 하고 웃은 윤기는 차필규만을 대동한 채 식당 정문으로 향했고, 와타나베는 쭈뼛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어서 오십시오.”
이 식당은 출입하는 것 자체에 난이도가 있는 곳이었지만, 윤기와 와타나베 모두 출입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바로 차필규의 존재가 있었으니까.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는 모습에 정문 직원은 둘을 식당 내부로 들여보냈고, 둘은 내부 직원의 안내에 따라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뒤, 와타나베는 당황한 모습으로 윤기와 차필규를 바라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까 윤기가 다른 사람에게 무어라 이야기를 하니, 다들 자리를 떠난 것이 떠올랐던 탓이다.
한국어를 모르는 와타나베의 눈에는 차필규를 제외한 윤기의 부하들이 전부 자리를 비운 것으로 보였으니 이렇게 당황할 수밖에.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대화를 하지……?’
지금까지의 모든 대화는 서종훈을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그 서종훈이 어디에도 안 보이는 것이다.
“왜?”
“아니, 통역해 주는 사람이 안 보여서……, 응?”
순간 와타나베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왜, 그래?”
“뭐, 뭐, 뭐, 뭐, 뭐, 뭐야. 우리나라 말할 줄 알았어?”
“응. 석 달 전부터 공부 시작했거든.”
“뭐? 석 달?”
“응, 석 달. 그래서 아직까지 겸양어 같은 건 거의 못 써.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용어만 쓸 수 있으니까 그건 이해해 주면 좋겠네.”
“아니, 그러니까 단 석 달 만에 우리나라 말을 일반적으로 쓸 수 있을 단계까지 배웠다고?”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와타나베의 모습에 윤기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이상해?”
“아니, 당연히 이상한 거 아니야? 내가 석 달 만에 조선……, 아니 한국말을 그렇게 구사할 수 있다고 하면, 넌 그 말을 믿을 거야?”
순간 평상시에 쓰던 습관대로 말을 하려던 와타나베는 자신의 앞에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다시금 상기하며 황급히 단어를 바꿨다.
어디까지나 윤기가 무서운 거지, 대한민국에 대한 경멸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아?”
“어?”
“석 달 정도 공부하면 그 정도는 가능한 거 아닌가?”
“아니야! 절대 불가능하다고!”
와타나베의 반응을 본 윤기는 그제야 장난기 섞인 표정을 지었다.
“농담이야. 근데 석 달 전부터 공부한 것은 맞아. 할아버지 덕분에 우수한 두뇌를 물려받았거든. 뭐, 진짜 천재는 독일에서 강연할 일 생기니까 독일어 일주일 공부해서 독일어로 강연했다고 하지만 말이야.”
그 할아버지라는 게 나를 말하는 거 맞지?>
최덕배의 말에 윤기는 최덕배가 보라는 듯 픽 하고 웃으며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메스 재팬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일본에 대해 관심이 생겨서 공부를 시작했어. 그래도 이러니까 편하지 않아? 그리고 보니 내가 일본어를 할 줄 안다는 걸 아는 일본인은 네가 처음이네.”
잘은 모르겠지만, 자신이 처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와타나베는 무언가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
“어쩐지 영광이네.”
“그나저나 식사를 시킬까?”
윤기는 메뉴판의 가격을 보지 않고 주문했고, 소믈리에를 호출해 와타나베에게 상당히 고가의 와인까지 곁들여 주었다.
“세상에……, 괜찮겠어?”
와타나베는 속으로 ‘설마 이거 먹고 튀려는 거 아냐?’라는 생각에 전전긍긍하면서도 겉으로는 일단 윤기와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왜 계속 그런 모습을 보이는지 모르겠네. 차 경호원?”
윤기의 말에 차필규는 양복 상의 안쪽을 살짝 열어 안쪽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다발을 보여 주었다.
“천박하게 이런 말을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았지만, 우리 집은 꽤 능력 있는 집안이야. 그것은 부모님한테서도 들었을 것 같은데?”
순간 와타나베는 집안을 멸족시킬 뻔했다고 아버지한테 목검으로 두들겨 맞은 것이 떠올라 몸서리를 쳤다.
“으으…….”
상황상 와타나베의 머릿속에 부모님이 들어 있을 것이 확실했기에 윤기는 대화의 화제를 진짜 목적으로 바꾸었다.
“그나저나 아까 에르메스 플래그십 스토어에 있던데 아직 에르메스에 아쉬움이 남아 있는 거야?”
에르메스라는 말에 와타나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렇지, 뭐…….”
부모님의 빽으로 능력 이상의 브랜드 모델을 했던 와타나베.
에르메스가 부유층에게 가져다주는 위상을 생각해 보면, 와타나베가 아쉬워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흐음, 너희 부모님과 내가 이야기를 해 보면 한 번 정도는 다시 기회를 잡게 해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