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99)
#99화 공수표 (1)
“결혼할 겁니다.”
윤기는 일고의 고민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동시에 거스터의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
“이유는?”
“제가 메릴을 사랑하기 때문이죠. 비록 제가 아직 나이가 어리지만, 성인이 되는 순간 메릴에게 청혼을 할 겁니다.”
“메릴이 그렇게 좋나?”
“제 첫 키스를 가져간 것이 메릴이잖아요?”
약간 장난스러운 윤기의 대답에 거스터가 키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열 살짜리 아이의 입술을 훔쳤지, 메릴이.”
“예전에는 조금이나마 메릴을 이용하려는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거스터 님이 있든 없든, 저는 메릴과 결혼할 겁니다. 물론 메릴이 제 청혼을 받아 준다면 말이죠.”
“메릴이 거절할 일은 전혀 없겠지.”
“사실 허락만 해 주신다면 지금 바로 결혼을 약속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좋아, 내가 허락하지. 메릴과 약혼을 해.”
“정말이십니까?”
기뻐하는 윤기의 표정에 거스터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물론. 나 역시 처음에는 너를 얼마나 신뢰해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그동안 너를 지켜보면서 쉽게 무너지지 않을 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 너라면 메릴을 믿고 맡길 수 있다.”
확신에 찬 거스터의 말에 윤기가 정말 드물게 고개와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메릴을 배신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곳으로 메릴을 부를 테니, 내 앞에서 둘이 약혼을 해. 그러면 너를 내 가족이라 생각하고 이번 일을 전폭적으로 도와주마.”
“도와주시지 않는다 해도 약혼을 할 생각입니다.”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 둘에게는 드디어 가족애가 생겼다.
처음에는 기브 앤드 테이크.
그다음에는 동료애.
그리고 지금은 가족애가 생긴 것이다.
가족애가 생긴 거스터가 윤기에게 줄 도움의 수준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높으리라는 것은 분명한 일.
“아!”
순간 윤기가 잊은 게 생각났다는 듯 아차 하는 소리를 내질렀다.
“뭐, 뭐야. 뭔가 문제라도 있나?”
“반지가 없습니다. 약혼을 하려면 반지가 필요한데 저는 메릴의 손가락 사이즈도 모르고, 무엇보다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연애 경험도 메릴을 제외하면 없어서…….”
당황하는 윤기의 모습에 거스터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뒷주머니에서 실을 하나 꺼냈다. 동그란 원이 하나 묶여 있는 실을 말이다.
“그건……?”
“이 동그라미가 메릴의 왼손 약지 굵기야.”
“어떻게 아시는 거죠?”
순수함이 가득한 윤기의 물음에 거스터의 멋쩍은 표정이 더욱 짙어졌다.
“메릴이 잘 때 몰래 들어가서 쟀지.”
“왜요? 아……!”
뒤늦게 깨달은 윤기가 탄성을 터뜨리자 거스터가 흠흠 거리며 화제를 돌렸다.
“얼른 가서 반지 사 와! 명령이다!”
“옛, 썰!”
어느새 서로 농까지 던지게 된 상황 속에서 윤기는 행복한 미소와 함께 근처 백화점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무슨 일이야? 급하게 나를 다 부르고? 할아버지까지?”
메릴은 객실에 도착하자마자 질문부터 해 왔지만, 윤기가 자신을 찾았다는 사실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수업은 어떻게 하고 이렇게 바로 온 거냐? 오늘 평일인데?”
“할아버지도 저를 불렀잖아요!”
눈을 흘기는 메릴을 바라보며 농담을 던졌던 거스터가 씨익 웃었다.
“그럼, 이 늙은이는 눈치 있게 잠시 비켜 주마.”
“아이참, 할아버지도…….”
메릴은 좋으면서도 쑥스러운 기분으로 할아버지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툭 치며, 객실을 나서는 거스터를 배웅했다.
그리고 잠시 뒤, 객실에 정말로 둘만 남게 되자 메릴은 바로 윤기에게 달려들어 윤기의 목에 양팔을 둘렀다.
“윤! 보고 싶었어!”
하루가 다르게 성숙미를 내뿜고 있는 메릴의 밀착에 윤기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조금 붉어졌고, 호흡도 조금은 거칠어졌다.
“메릴, 자, 잠깐만.”
“어……? 왜……?”
윤기가 자신을 다소 강하게 떼어 내자 메릴은 뭔가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저번에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윤기가 이런 모습을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게…….”
“내가 벌써 질린 거야……?”
“아, 아니야! 절대로 아니야!”
윤기의 강한 부정에 메릴의 표정은 더더욱 의아함이 가득해졌다.
“그럼, 왜? 윤은 내가 껴안는 게 싫어?”
“그게 아니라니까…….”
“그럼, 도대체, 왜…….”
다른 여자들을 상대로라면 윤기가 이렇게까지 당황할 이유가 없다.
그 누구를 데려와도 평온을 유지하며 리드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예전에는 리드할 수 있었던 메릴이 어느새 윤기에게 굉장히 소중한 존재가 되었고, 또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었기에 윤기는 평정심을 쉬이 잡지 못하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윤기는 메릴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는 주머니에서 반지 상자를 꺼냈다.
“메릴!”
반지 상자를 본 순간 메릴도 순간 사고가 정지한 듯 움직임을 멈추었다.
“메릴! 나랑!”
힘차게 반지 상자를 연 윤기.
그런데 상자에 들어 있었던 반지가 갑자기 툭 하고 떨어지며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으앗!”
당황한 윤기는 몸을 굴리다시피 하며 반지를 주우려 했지만, 반지가 어찌나 빠른지 바닥을 거의 기다시피하고 서야 겨우 반지를 주울 수 있었다.
“찾았다!”
호텔 바닥에 깔린 양탄자 때문에 먼지가 옷 여기저기에 묻어 버린 윤기의 모습.
그 모습에 일순 몸이 정지했던 메릴이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핫!”
배꼽을 잡고 웃는 메릴의 모습에 처음에는 머쓱한 표정을 짓던 윤기였지만, 이내 메릴이 기뻐하는 모습에 자신도 만족한 듯 부드럽게 웃으며 다시 메릴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메릴.”
이번에는 메릴도 움직임이 멈추지 않았다.
단지, 소리를 내며 웃던 것을 멈추고, 살짝 눈물을 글썽이며 윤기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성인이 되는 날, 나와 결혼해 줄래?”
다른 표현은 전혀 필요 없었다.
그저 진지한 눈빛과 함께 내밀어진 반지.
메릴은 글썽이는 눈으로 윤기의 반지를 향해 왼손을 내밀었다.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야.”
윤기는 메릴의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웠고, 자신의 반지 역시 메릴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잠시 뒤, 둘은 서로의 왼손 약지에 루비가 박힌 반지를 끼게 되었다.
“사실 다이아몬드 반지를 할까 하다가 루비의 의미를 알아보니까, 이쪽이 더 마음에 들더라고. 괜찮을까……?”
침대에 서로 걸터앉아 조심스럽게 묻는 윤기의 말에 메릴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상관없어. 우리는 다이아몬드를 사려면 주머니에 가득 살 수 있는 사람들이잖아? 사탕 반지를 줬어도 난 기뻤을 거야.”
메릴의 말은 상당 부분 사실이었다. 다이아몬드 자체는 메릴에게 있어서 꽤 익숙한 보석이었으니까.
“루비에 담긴 의미는 ‘인생의 힘든 시절을 밝혀 주는 한 줄기의 힘’이야. 불타는 사랑이나 지혜라는 다른 의미도 있지만, 내가 마음에 드는 의미는 전자야.”
“그 의미……, 나도 마음에 드네.”
만약 윤기를 만나지 못했다면 메릴은 모델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은 대인기피증을 극복하기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다.
에르메스에서의 일.
그때의 일을 계기로 메릴은 모델 일에 열성적으로 변했고, 그 결과 지금은 대인기피증이 상당수 극복된 상태였다.
더불어서 윤기 역시 메릴이 인생의 빛이라 할 수 있었다.
여자와 전혀 접점이 없던 이전 43년의 인생, 그리고 부잣집에 태어난 현재까지의 인생에서 자신을 맹목적으로 지원해 주는 여자는 오로지 단 하나. 메릴뿐이었으니까.
호감을 드러내는 여학생들은 많이 겪어 봤지만, 메릴만큼 진심으로 도와주는 이성은 없었던 것이다.
“평생 너를 빛으로 생각하고 살아갈게. 그리고 내가 너의 빛이 되어 힘이 되어 줄게.”
윤기는 메릴의 손을 붙잡았고, 메릴 역시 윤기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그리고 겹쳐지는 둘의 입술.
잠시 뒤, 윤기와 메릴은 서로 홍조가 활짝 핀 얼굴로 입술을 뗀 뒤, 조금 열기가 식자 서로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할아버지를 다시 데리러 갈까?”
“그럴까?”
자리에서 일어난 둘은 거스터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호텔 로비로 향했다.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고 있던 거스터는 신문 너머로 윤기와 메릴의 모습이 보이자 신문을 내려놓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벌써……?”
당황해하는 거스터의 모습에 윤기와 메릴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잘못되었나요?”
“할아버지, 왜요?”
전혀 모르겠다는 둘의 대답에 거스터가 입맛을 다셨다.
“아니, 나는 오늘 기정사실을 만들기를 바랐지.”
순간 ‘기정사실’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둘은 무슨 뜻인지 생각하다가 이내 무슨 뜻인지 깨닫고는 얼굴이 발갛게 변했다.
“할아버지!”
“아니, 뭐,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냐. 나도 이제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이 기회에 손주라도 생기면…….”
이번엔 윤기가 나섰다.
“저 아직 미성년자입니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제가 관계하는 것만으로도 메릴이 교도소에 갈 걸요?”
“아, 메릴이 살고 있는 주는 만 13세까지 합법이야.”
2010년대에 들어서면 미국의 결혼 가능 나이가 만 16세에서 만 18세로 조정되지만, 이 시기에는 만 13세에 결혼을 하는 것이 가능했기에 거스터의 이러한 행동은 시대에 비추어 봤을 때 ‘크게’ 이상할 것이 없기는 했다.
물론 받아들이는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긴 하지만.
그런데 갑자기 윤기의 행동이 조금 이상해졌다.
팔짱을 끼고 한쪽 손으로 턱을 괴더니 진지하게 생각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윤?”
메릴의 말에 윤기가 심각한 표정으로 답했다.
“생각해 보니까 되게 괜찮은 생각인 거 같은데, 어때? 우리 이참에…….”
“윤!”
메릴이 윤기의 등과 어깨를 마구 주먹으로 두드리자 윤기가 짐짓 비명을 질렀다.
“악! 아악!”
웃으며 비명을 질렀기에 메릴은 더욱 세게 때렸지만, 메릴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메릴이 진정되자 윤기가 거스터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오래 사셔야죠. 현역이던 시절에 받던 혜택 제가 누리게 해 드릴 테니까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걸? 그걸 우리 가족 전부가 누릴 수 있다면 더 좋겠고 말이야.”
“상상, 그 이상의 혜택을 누리게 될 거예요. 그나저나 다시 객실로 돌아갈까요?”
“그러지.”
늦은 시각이었기에 애초부터 한산했던 로비는 셋이 사라지자 다시 한산한 분위기를 뿜었다.
졸고 있는 데스크 직원 한 명을 제외하고는.
* * *
드디어 류근태가 움직일 시간이 되었다.
처음부터 일본에 따라갈 수도 있었지만, 워낙 일정이 빡빡한 류근태였기에 기다리는 시간 동안 와이케이 백화점과 관련된 업무를 최대한 진행해 놓았고, 덕분에 지금 일본에 갈 짬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목적은 바로 세스의 장남 박기수.
류근태는 출발 전에 세스 홀딩스로 전화해서 약속을 잡았고, 와이케이 백화점의 사장이란 지위 덕분인지 어쨌든 만남의 자리를 만들어 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상대 입장에서도 현재 한국에서 광풍을 몰아치고 있는 백화점의 주인이 찾아오겠다고 하고 있으니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어서 오십시오. 세스 홀딩스의 전무, 정동윤이라고 합니다.”
얼굴은 50대 초반으로 보이지만, 머릿결은 꽤 풍성한 남자.
갈색 느낌이 나는 피부였지만, 유창한 한국어로 봤을 때, 한국인이 분명했다.
“마중까지 나와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응당 해야 할 일인걸요.”
공항에 전무가 플래카드를 들고 마중을 나왔다.
이것만으로도 박기수가 얼마나 몸이 달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럼, 가실까요?”
공항에 마중 나온 리무진.
류근태는 자신이 한국에서부터 데려온 경호원 두 명과 함께 세스 홀딩스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애써 숨기려고 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급한 티를 보며 류근태는 자신이 가진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확실히 회장님의 말씀처럼 지금 박기수가 몸이 닳아 있긴 하구나.’
류근태가 머리를 정리하고 있을 때, 박기수가 먼저 날씨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고, 이것을 시작으로 둘은 가벼운 일상 이야기부터 최근 한국의 경제와 같은 이야기까지 나누기 시작했다.
왜 찾아왔는지는 결코 묻지 않고, 말하지 않는, 일종의 탐색전이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류근태가 먼저 칼을 빼 들었다.
“그나저나, 요새 한국에서 세스의 입지가 정말로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