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assin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14
콰가가각!
쿠당탕!
신성력이 섞인 막대한 충격파에, 나는 공격을 전부 방어해내지 못하고 거의 땅을 구르듯 뒤쪽으로 휩쓸려 나갔다.
“…에이 씨 진짜.”
정체불명의 석상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의문의 노인.
마치 시체라도 된다는 듯 창백하게 질린 피부를 가진 그는 그야말로 막대한 힘을 뽐내며 나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런 망할 놈이.’
본래라면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허접이었겠지만, 지금 나는 거듭된 전투와 희생 주문의 해주로 힘을 크게 소모한 상태다.
게다가 솔직히 말하면 그게 아니었더라도 강령술을 쓰지 않은 채로는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S4랭크 수준이 아닌데?’
아직 많은 합을 겨뤄본 것도 아니었지만, 확실히 말해 S4랭크 대형 던전의 보스였던 바실리스크보다도 이쪽이 더욱 강하다.
물론 그 이유는 대충 짐작하는 것이 가능했다.
‘아까 바친 제물을 자신의 힘으로 치환했겠지. 석상들의 수준을 생각해 보면 애초에 보스가 강한 타입의 던전이었을 거고.’
생긴 것도 인간형인데다가, 분명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한 상대다.
아니나 다를까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는 나를 향해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대단하군요. 셋 중에서는 가장 나약해 보였습니다만. 벌레도 벌레 나름의 재주가 있다는 뜻일까요?”
“뭐가 어째?”
말하는 투를 보니 이미 자비에와 예시엘에 대한 것도 알고 있는 눈치다.
어쩌면 그 둘 역시 지금쯤 보스룸 안쪽에서 함정에 빠져있을지도 모른다.
“지원을 기대한다면 무리입니다. 그 둘은 힘을 모두 빨려 빈 껍데기가 될 때까지 그 안에서 나오지 못할 테니까.”
“…글쎄. 생각만큼 그리 만만하진 않을 텐데.”
나 역시 진짜 전력을 보지는 못했지만, 자비에는 확실히 강하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쉽게 당해주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건 그렇고, 이놈…….’
무언가 조금 이상하다.
아까 전부터 공격을 막아내며 유심히 상대를 살피고 있었는데, 가진 신성력의 성질이 상당히 특이한 구조를 띠고 있다.
“너, 정통파 사제 맞아?”
“실례군요. 저야말로 신께 인정받은 진정한 사제나 다름없는 것을.”
“그런 것 치곤 느낌이 묘한데.”
내 의심스런 눈초리를 받은 노인은 곧 무엇이 그리 웃긴 지 숨죽여 광소하며 입을 열었다.
“저의 이름은 켈쉬피드. 약소하게나마 한 교단을 이끌고 있던 자였지요. 그리고…….”
말을 끊어낸 켈쉬피드는, 한층 더 소름 끼치는 느낌으로 변화한 신성력을 한껏 끌어올리며 사방으로 퍼트렸다.
그러자 마치 지면이 물웅덩이처럼 변해 출렁였고, 동시에 그곳으로부터 무척이나 불쾌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낸 켈쉬피드가 마침내 진정한 정체를 드러냈다.
“침묵의 신의 첫째가는 사제이기도 합니다.”
출렁.
촤악!
촤아악!
썩은 내가 진동하는 물웅덩이 속해서 튀어나오기 시작한 기사 모습의 석상들.
그러나 이번에는 아까 전과 달리 그 몸 전체에 이끼 등이 가득 껴 있는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성질이 완전히 변화한 것이었다.
‘악신을 섬기는 사제였나.’
어쩐지 아까 전부터 이상한 감각이 느껴지던 이유가 있었다.
완전히 어둡게 물든 신성력을 보니, 켈쉬피드가 모시던 신의 본질을 곧바로 눈치채는 것이 가능했다.
‘침묵의 신이라.’
딱히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어느새 상대의 육체에는 미미한 신성이 깃들어있다.
사제로서는 거의 최상위의 경지를 넘보고 있다는 뜻과도 마찬가지였다.
“언데드 콜(Undead call).”
후우웅.
푸화악!
나 역시 재빨리 소환 가능한 언데드를 꺼내 대응해봤지만, 급의 차이가 있어 확연히 밀리는 추세다.
‘…지금은 힘이 제대로 안 나오는데.’
단기간에 너무 소모가 컸다. 설상가상으로 켈쉬피드는 더욱 신성력을 끌어올리며 다시금 강렬한 빛의 폭풍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끌끌. 제법 잘 버티긴 했지만, 이제는 힘이 다한 것으로 보이는군요. 이만 끝내도록 하죠.”
후우웅.
콰가가가각─!
덮쳐오는 신성력의 파도를 보며 나는 남은 사기를 끌어 올려 연달아 몇 가지 주문을 외워냈다.
허나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출력이 올라가는 탓에 도무지 전부 막아낼 수가 없었다.
쩌어엉!
쿠당탕탕!
삽시간에 튕겨 나가 형편없이 바닥을 구른 나는, 입속에 남겨진 비릿한 피의 맛을 느끼며 바닥에 뻗은 채로 생각했다.
‘열 받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렇게 수모를 보인 것은 지구로 넘어온 뒤 처음이다.
헬레나에게 듣기론 곧 하데스가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설 것이라 했지만, 그것을 이유로 계속 얻어맞기엔 내 참을성이 그렇게 길지 않았다.
“고든. 나와.”
– 예?
“가서 시간 좀 끌어봐.”
스르륵.
푸화악!
멋대로 목걸이에 있던 고든을 실체화시킨 나는, 고든을 켈쉬피드의 표적으로 던져주며 곧바로 소환 의식을 시작했다.
“죽음의 서.”
푸화악!
촤라락!
모든 과정을 거치고, 지면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토템이 반으로 갈라지며 그 안에서 주술사 칸의 모습이 드러났다.
나는 망설임 없이 지시를 내렸다.
“강령술을 써.”
“괜찮으시겠습니까? 힘이 돌아오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다 들었습니다만.”
“상관없으니까 얼른 해.”
내가 골병이 나도 저 건방진 놈은 일단 두들겨 패고 볼 것이다.
나는 얄밉기 짝이 없는 켈쉬피드의 얼굴을 노려보며 칸의 도움을 받아 힘의 봉인을 일부분 풀어냈다.
그러자 언제 소모되었냐는 듯 순식간에 몸을 타고 오르는 막대한 사기(死氣).
그것을 본 켈쉬피드가 다소 멈칫하며 말을 걸어왔다.
“호오, 아직 남겨진 수가 있었단 말입니까?”
“…이게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네.”
마치 무슨 수를 쓰든 어차피 나는 자신의 아래라는 태도.
그것이 심히 같잖았던 나는 피식 웃음을 던지며 말을 이었다.
“야.”
“…….”
“딱 내가 맞은 거 열 배만 맞고 죽자.”
내가 펼쳐낸 손바닥에는, 어느새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눈동자 하나가 솟아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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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쉬피드는 행성 뒤안느에서 침묵의 신 할리파를 모시던 최고위 사제였다.
스스로가 왜 이런 곳에 와서 던전의 수호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일이 존재했다는 것과 이것이 신의 계시라는 것만은 뇌리에 새겨져 있었다.
그렇기에 켈쉬피드는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철저히 침입자들을 죽음의 늪으로 이끌어갔다.
‘…분명 모든 게 계획대로였을 터인데.’
흘러들어온 인간 중 눈에 띄게 강한 셋을 찢어놓았고, 그중 둘은 완전히 함정 속으로 몰아넣었다.
함정에 빠지지 않고 홀로 남은 소녀가 있었지만, 소녀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켈쉬피드에 비해 그렇게까지 대단치 않았다.
제물의 관과 함정으로부터 얻은 힘을 쓴다면 충분히 찍어누를 수 있겠다 생각될 정도였다.
허나 지금 켈쉬피드는, 침묵의 신의 진정한 종복이 되어 불로의 몸을 얻은 이후 처음으로 죽음을 떠올려내고 있었다.
콰아아앙!
“…마, 말도 안 된다. 대체 인간이 어찌 이런 힘을.”
“고작 이 정도로 그리 놀랄 것도 없는데.”
켈쉬피드가 계속해서 가디언을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이미 그것들은 눈앞에 있는 소녀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오염되었다 할지라도 신성력은 신성력일진대, 소녀는 어찌 된 노릇인지 그 상성 관계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중이었다.
켈쉬피드의 상식선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너무 압도적인 사기(死氣)를 지니고 있어 신성력이 파고들지 못한다니.’
그런 괴물은 자신이 본래 있던 행성 뒤안느에서도 만나본 적이 없다.
그야말로 오래된 전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대영웅의 수준이다.
켈쉬피드는 아까 전까지 가지고 있던 여유를 모두 버린 채 다급히 힘을 있는 대로 끌어올렸다.
‘…겉모습에 속아선 안 된다. 저건 진정한 괴물이다.’
사안(死眼)이며 초고위 사령술, 그리고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주술까지.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초인이라 불릴 만한 능력을 벌써 수차례나 보여주었다.
눈앞의 소녀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켈쉬피드 역시 스스로가 가진 모든 수를 꺼내야만 했다.
“오오. 위대하신 할리파의 신주여, 여기 당신의 사제가 축가를 올리나이다!”
침묵의 신 할리파의 종복을 소환해내기 위한 주문.
그것을 모두 읊어낸 켈쉬피드가 마침내 지면을 거대한 웅덩이로 바꿔내며 그 속에서부터 기괴한 형태의 마수를 소환해내기 시작했다.
‘…제대로 성공했다.’
이 주문을 써본 일은 손에 꼽지만, 이번에는 평소보다도 느낌이 훨씬 좋았다.
분명 종복 중에서도 상위 클래스의 힘을 가진 개체가 부름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윽고, 켈쉬피드는 진정한 절망을 목도할 수밖에 없었다.
“…신이시여.”
소녀가 다시금 꺼낸 불길한 책 속에서부터, 자신이 불러낸 종복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패도의 기세를 뽐내며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