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assin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24
바스락.
바슥.
그리 으슥하지는 않았지만, 사람 하나 지나다니지 않는 산길의 한 가운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송하연은 멍하니 생각했다.
‘왜 이런 곳으로 오라고 하신 거지?’
보통 만남의 장소라 한다면 평범하게 카페나 음식점 등이 아니던가?
허나 이곳은 아무리 보아도 그런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잠깐 고민하던 송하연은, 이윽고 그럴듯한 결론 하나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아, 별로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 않으신가?’
확실히 그런 이유라면 이상하지는 않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지옥군주12는 사람들 대부분이 알고 있을 만한 유명인사일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였다.
‘으, 너무 긴장돼.’
사실 긴장이라기보다는 호기심과 기대감의 비중이 컸지만, 어쨌거나 마음이 요동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송하연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킬 찰나, 숲길 저편에서 가느다란 인기척이 느껴졌다.
바스락.
“앗.”
그 기척에 서둘러 고개를 돌려봤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라?”
어느덧 B랭크로 평가받는 송하연의 기감은 이제 일반인과 크게 동떨어져 있는 상황, 따라서 단순 착각일 리는 없다.
그런 마음에 유심히 그 주변을 살펴보자, 무언가 위화감이 있는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라락.
산길 외곽에 있는 큼지막한 나무 뒤쪽에서, 은색 실 같은 것이 흩날리고 있다.
‘저건…….’
마력으로 시력을 강화하자, 조금 더 시야가 명확해졌다. 그것은 분명히 사람의 머리카락이었다.
“저, 거기 누구세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체 뭐지?’
이쯤 되니 송하연에게는 그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수상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은색 머리카락, 분명 현대인에게 있어 흔한 컬러는 아니다.
‘혹시…….’
몸을 숨긴 것이나 대화를 거부한 것도 그렇고, 설마 싶지만 미확인 던전 브레이크로 유출된 몬스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송하연은 긴장하며 마력을 끌어올린 채 빠르게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각도로 접근했다.
타다닥!
“대체 누구……앗?”
그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비주얼을 가진 순백의 소녀였다.
누런 기가 도는 은발에, 색채가 옅은 적안. 그리고 아담한 체구.
지난번 보았던 헬레나가 고귀한 공주의 이미지였다면, 소녀는 마치 동화 속 요정을 보는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빠른 속도로 다가온 송하연의 모습을 본 소녀는, 약간 겁을 먹은 듯 시선을 돌리며 몸을 움츠리고 있다.
“아, 그. 저기…….”
이윽고 소녀가 내뱉은 것은 익숙한 한국말이었다.
전혀 한국인처럼 보이지 않는 외견이었기에, 상당히 의외였다. 당황한 송하연은 빠르게 조금 전의 일을 사과했다.
“미안! 혹시 놀랐니? 혹시 수상한 사람인가 해서.”
“아니, 그…….”
“어디서 왔어? 미국? 프랑스?”
사실 겉모습만 본다면 그렇게까지 어린 나이는 아닌 것 같았지만, 그 특유의 분위기가 어쩐지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송하연의 질문 폭격에, 소녀는 어쩐지 불만스런 표정을 지으며 스스로의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곧 도착해요.] [저 왔어요! 어디세요?] [선생님?]그것은, 송하연이 바로 전에까지 지옥군주12에게 보냈던 메시지의 내용이었다.
그를 유심히 바라보던 송하연은 한순간 인지 부조화에 빠져들었다.
‘어…….’
제 스승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최소한 소녀가 그와 관계된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상황을 추측한 송하연이 손바닥을 마주쳤다.
짝!
“아! 혹시 심부름 오신 스승님의 자녀분?”
절레절레.
“그, 그럼 지인분?”
절레절레.
그 연속된 부정에 혼란스러워하던 송하연은, 문득 지난번 헬레나에게 들은 지식을 떠올리곤 이번에야말로 정답이라는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소환수분이시군요! 최상위 네크로맨서는 실제 인간과 별 차이 없는 언데드를 만들어낼 수 있다던데, 와……. 저도 처음 봤어요.”
그러나 그것마저도 정답이 아니었다.
소녀는 벙찐 송하연을 바라보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답했다.
“스, 스승도 못 알아보고…….”
“네?”
그것이 지옥군주12. 백은하와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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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
애초에 평범한 사람이라면, 오천 명이 넘는 시청자를 상대로 태연하게 방송 같은 것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뭔가 거북해.’
한마디로 송하연은, 그냥 인싸를 넘어선 씹인싸였다.
나는 멀리서 그녀를 바라본 것만으로도 그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좀처럼 가까이 가질 못했다.
‘이게 진짜배기 파티 피플…….’
가만히 서 있음에도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긍정 에너지. 그것은 지금의 내게 있어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본능적인 수준에서 몸이 접근을 거부한다.
마치 인싸와 아싸가 같은 공간에 있어선 안 된다는 자연의 법칙이 있는 것처럼, 저절로 발이 뒷걸음질 치려 하는 수준이었다.
“구, 구배지례라도 올릴까요?”
처음에는 내 말에 반신반의하던 송하연이었지만, 그녀에게 가르쳐준 사령술을 몇 번 선보여주자 그제야 사실을 받아들인 참이었다.
“…따라와.”
“앗, 넵.”
그래도 나름의 수확은 있었다.
그동안 꽤 오래 관계를 쌓아온 덕인지, 송하연에게는 가까스로 평소처럼 반말을 내뱉는 것이 가능했으니까.
어쩌면, 이 지긋지긋한 부작용이 점점 개선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 저흰 어디로 가나요?”
“…우리 집.”
“아하…….”
집으로 가는 도중, 나는 쓰린 속을 다스리며 송하연에게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대충 이제부터 우리는, 인터넷 게임으로 친해진 친구 사이라는 설정이었다.
“앗. 넵. 게임 친구인 거죠?”
그리하여 이제는 마지막 관문만이 남아있었다.
송하연을 집으로 데려가 서하에게 검증받는 것.
하기야, 게임으로 만난 B랭크 헌터와 던전을 돌겠다는데 쉽사리 신용할 수 있을 리가 없을 터였다.
띠리링.
달칵.
그렇게 집에 도착하고, 문을 열어 두 사람을 대면시키는 순간. 서로의 시선이 교차했다.
“어.”
“앗.”
동시에 두 사람 모두 작게 탄성을 내뱉으며 기묘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
왜들 이러지?
나는 그 예상치 못한 반응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 순간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나를 찔렀다.
“…읏. 왜?”
마치 왜 사전에 말하지 않았냐는 듯한 표정, 먼저 입을 연 것은 송하연 쪽이었다.
“배, 백서하 님이랑 가족이셨어요?”
“그, 말 안 했나……?”
“안 하셨어요! 으, 어쩜 좋아.”
송하연은 놀라움과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소리쳤다.
유심히 생각해보니, 이전의 대화에서 평소 서하의 팬이었다던가 하는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 원망스런 시선에 고개를 돌리다, 문득 억울함이 들어 또 다른 시선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 그럼 너는 왜?”
“…게임 친구라는 게 송하연씨였어? 왜 미리 말 안 해줬어?”
아무래도 서하 또한 송하연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 이유는 금방 이어진 말로 인해 깨달을 수 있었다.
“요즘 업계에서 제일 뜨거운 인재잖아. 우리 쪽에서도 영입하려고 난리였고. 분명 그저께 오, 아니. 언니한테도 말했는데…….”
서하는 조금 서운한 듯 말꼬리를 늘어트렸다.
그저께라면 아마, 게임으로 밤을 새운 탓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 가능성이 컸다.
“미, 미안.”
듣자하니 아무래도 송하연은 서하가 몸담은 청백 길드에서 눈여겨보는 인재인 모양이었다.
그런 사람 앞에서 이렇게 무방비한 모습을 보이게 됐으니, 꽤나 당황스러울 법도 했다.
“…….”
아무래도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나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두 사람으로부터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일단은 뜻하지 않은 삼자대면을 하게 된 채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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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게임을 같이 하면서 친해지셨다고요?”
“넵. 워낙 실력이 좋으셔서 질문도 하고, 가르침도 받다 보니……. 뭐, 그런 식이었죠?”
어느 정도 대화가 진행되자, 송하연은 슬쩍 고개를 돌리며 내게 이렇게 하는 게 맞냐는 신호를 보냈다.
그에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별일이 다 있군요.”
“그, 그러게요. 하하.”
어색함이 풀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둘 다 고랭크 헌터였고, 공통의 관심사는 차고 넘치도록 많았으니까.
그렇게,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혼자 어디까지 가능해요?”
“네?”
“일대일로 이길 수 있는 가장 강한 몬스터.”
그 분위기는 이미 흡사 거대 길드의 면접장을 보는 듯했다. 날카로운 서하의 질문에 송하연은 쩔쩔매며 답을 이어갔다.
“그, B4랭크 포이즌 혼 정도라면…….”
“조금 부족한데.”
“부, 분발하면 한 단계 위인 크리스털 울프까진 괜찮을 거예요.”
서하의 질문 공세는 다채롭고 집요했다. 전투뿐만이 아닌 이론적인 측면까지 검증하려 드는 것을 보니, 송하연이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내용이 조금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자. 그런 식으로 분쟁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요?”
“시선을 차단하고, 앞에 나서 주목을 끈다……. 그리고 뭐였죠?”
“뭐가 됐든 상황을 주도해서 대화에 참여시키는 일은 없어야 해요. 언니는 조금 쏘아붙이기만 하면 쪼그라들어서 아무 말도 못 할 테니까.”
“아하…….”
누가 봐도 나를 겨냥하는 듯한 대화에 나는 심기가 불편해졌다. 하지만 아쉬운 쪽이 참는 수밖에 없다.
“눈가를 꿈틀거리면서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 뭔가 불만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거든요. 그럴 땐 먼저 나서서 해결해주세요.”
“앗, 넵.”
“해결하기 힘든 일이 있다면 길드나 제 이름을 대도 좋아요.”
“정말요?”
그렇게 한참이 지나 대화는 마무리됐고, 결국 서하는 우리끼리 2인 파티를 짜는 것에 동의했다.
듣기만 했는데도 진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저, 그럼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화번호 좀…….”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띠리링.
달칵.
곧이어 현관문이 열렸고, 송하연은 행복에 가득 찬 미소를 지으며 돌아갔다.
‘내 부한데…….’
어쩐지 제자를 빼앗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상당히 미묘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