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0)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0화(10/193)
| 10화. 월말 평가 (1)
연습만 하기에도 바쁜 나날이지만 챙겨야 할 게 가득했다.
제일 대표적인 건 월말 평가였다. 마침 평가와 관련된 새 업무도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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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새 업무’가 할당되었습니다.▷ 월말 평가 계획 수립하기
▷ 보상: 경험치(10)
[SYSTEM] ‘새 업무’가 할당되었습니다.▷ 월말 평가에서 합격점 획득하기
▷ 보상: 경험치(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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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점을 얻는 게 중요하긴 한가 보다. 경험치가 조정된 이후에도 무려 30의 경험치를 주는 걸 보니.
그보다 합격점 못 받으면 바로 KPI 달성 실패잖아. 계획 수립 똑바로 안 해?
UA의 평가 요소는 보컬과 댄스 두 가지였다. 그리고 최근의 나는 댄스 연습에 더 집중했다.
그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노래는 부르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는 반면 춤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춰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어 작문과 독일어 작문 두 가지 과제가 있다면 일단은 독일어 단어집부터 사야 하는 법이었다.
노래 가사를 외우는 건 적어도 안무를 외우는 것보단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주어진 연습 시간의 초반을 대부분 춤에 투자했다. 안무를 무사히 외웠으니 1차 관문은 지나간 셈이다.
둘째, 월말 평가 전까지 내가 받을 보컬 수업의 수가 댄스 수업보다 적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수업에서 듣고 반영해야 할 피드백의 수가 댄스 수업 대비 적을 거란 의미였다.
실제로도 똑같이 한 번 수업했을 때 보컬 수업에서의 피드백이 더 적기도 했고.
‘어중간하게 혼자 객기 부리는 것보단 배운 것부터 똑바로 익히는 게 나아.’
열 개를 가르쳐 줬는데 어디서 허튼 거 보고 와서는 열 개 다 망치는 신입보다 한 개를 가르쳐 줬더니 한 개를 완벽하게 해내는 신입이 낫다.
게다가 보컬 수업에서 나온 문제점은 아직까진 다행히도 스스로 소화할 수 있는 범위 내였다.
그래서 분산투자는 하되, 댄스 바구니에 계란을 조금 많이 담았다.
최종 목표는 못하는 부분을 멱살 잡고 끌어올려서 내가 0.5인분 정도는 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방향성을 잡고 나니 춤 연습에 집중할 수 있어 효용성은 좋았다.
이 모든 계획의 끝은 결국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포지션.
내가 노리는 것은 단 하나, 서브 보컬이었다.
스파크의 보컬은 상당히 탄탄했다. 보컬 명가인 UA에서 야심차게 기획했으니까.
그룹의 포지션 밸런스도 좋았다.
보컬 라인에선 박주우와 정성빈이, 댄스 라인에선 최제호와 강기연이 중심을 잡았다.
여기에 랩 담당인 이청현이 랩까지 완벽하게 해 멋진 모습만 선보였으면 모두가 평화로웠겠으나…….
현실에선 조금 우여곡절이 많았다. UA가 초창기 스파크에게 넘겨주었던 곡의 보컬 난이도는 정말로 극악이었기 때문이다.
스파크를 통해 작지만 강한 아이돌 명가로 거듭나고 싶었던 건지, UA는 ‘춤추면서 이걸 어떻게 부르나’ 싶은 노래들을 스파크에게 한가득 안겨 주었다.
≫ UA 개X끼들 애들 성대랑 원수졌나
└ 나였음 파트랍시고 4곡 연속 고음 3연발 받았을 때 이미 UA 고소했다
빛나는 재능을 가진 스파크는 매 차례 놀랍게도 돌고래 고음과 파워 댄스를 소화했다.
그 과정에서 이청현은 작사 작곡 랩 보컬까지 네 탕을 뛰어야 했다. 정성빈에겐 성대 결절이 왔고.
부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이상 내 안에서 포지션 문제는 잠재적으로 결론이 난 상태였다.
‘내가 노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 가면 멤버들이 1인 4역까진 하지 않아도 돼.’
그래서 나는 멤버들에게 숨 쉴 구간을 만들어 주는 서브 보컬 포지션을 준비하기로 했다.
애초에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그 정도밖에 없기도 하고.
‘눈에 최대한 띄지 않으면서 보컬만 채우는 멤버’로 목표를 설정하고 나니 과제가 명확해졌다.
보컬만 채우는 멤버까진 피와 땀 그리고 눈물만 좀 흘리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파크가 앞으로 부를 많은 노래 중 내 음역대로 소화할 수 있는 파트도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평가 항목이 딱 이 두 가지인 게 천만다행이다. 팬 서비스라도 있었다면 나는 혀를 깨물고 새로 태어나야 했을 거다.
아니, 그런데 진짜 팬 서비스는 왜 검사 안 해? 이거야말로 아이돌의 기본 소양 아닌가?
스파크의 팬 서비스에 무슨 효능이 있는진 모르지만 팬들이 간절히 스파크의 팬 서비스를 원했었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놈들이라고 얼굴에 철판 깐 목석은 아니었는지 나름 뭐라도 하려고 하는 것 같긴 했으나,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얼굴이 아까운 수준의 조악한 시도에 불과했다.
이러니까 스파크 팬 서비스가 망하고 팬덤 분위기가 가라앉고 어그로가 끌리고 기사가 매일 나고 애들이 해체를 하고…….
생각하니 다시 열이 뻗친다. 심호흡, 심호흡.
어쨌든. 이제 남은 과제는 팀에서 눈에 최대한 띄지 말아야 한다는 건데.
반짝반짝 아이돌 사이에서 굳은 동태 하나가 삐걱거리고 있으면 눈에 안 띌 수가 없으니, 댄스 연습 역시 죽어라 해야 했다.
잠재적 결론을 내리고 나자 평가 계획을 수립하라는 업무가 완료 처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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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업무’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 경험치(10) 지급
▷ 누적 경험치: 10
▷ 누적 포인트: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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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경험치를 90만 모으면 댄스 숙련도와 보컬 숙련도를 맞출 수 있었다.
1차 고지가 코앞이었다.
* * *
스무 살이 되면서 독립한 이후, 나는 군대에 있었던 시간을 제외한 7년 정도를 혼자서 살았다.
그러면서 잠시 잊고 있던 기본적인 매너가 하나 있었다.
룸메이트가 있을 땐 수면 패턴을 맞춰 줘야 한다는 점 말이다.
덕분에 나는 팔자에도 없는 자는 척을 하며 녀석들이 잠들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최제호와 이청현의 뒤척거림이 멎을 때쯤 조심스럽게 방 밖으로 나왔다.
새벽 1시가 넘은 거실은 컴컴하고 조용했다.
전등을 켜면 온 집안이 환해질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노트북만 켜기로 했다.
다행히 소속사에서 숙소에 영상 검색용으로 한 대 비치해 둔 게 있더라.
웹셀을 쓰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노트북엔 NS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라이선스 구매 결재를 올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쓸 일이 생기면 사비로라도 산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스프레드시트를 켜고 항목을 차례로 기입했다.
곡명, 가사 암기도, 기본기, 총합 순이었다.
다음으로는 곡명 밑에 내가 아는 노래들을 쭉 적고 가사를 70% 이상 외우지 못한 노래를 전부 쳐 냈다.
쓸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된 만큼 가사 암기보다는 숙련도 향상에 자원을 쏟을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보컬 수업에서 배운 기본기를 기준으로, 이를 보여 주기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정도를 항목별로 점수화해 매겼다.
‘단순 노동형 브레인스토밍 외의 방법도 생각은 해 봐야겠어.’
뻑뻑한 눈으로 익숙한 안정감을 느끼며 타이핑을 하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손이 나타나 노트북 옆을 두들겼다.
고개를 들어 보니 눈을 반만 뜬 정성빈이 식탁 맞은편에 서 있었다.
깜짝이야. 너 제법 인기척이 없구나?
“왜?”
작은 목소리로 묻자 정성빈이 눈을 껌뻑거리며 말했다.
“방해해서 죄송해요. 그런데 형이야말로 뭐 하세요……?”
“평가 때 부를 노래 선곡하려고. 거실 쓰게?”
“그게 아니라…… 시간이 늦었는데 거실에 누가 있길래.”
정성빈의 목소리와 얼굴엔 졸음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3시였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지났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하여튼 이 거지 같은 세상, 물가도 시간도 다들 나 빼고 앞서나간다.
“금방 마무리하고 들어갈 거야. 자다 깬 거면 얼른 다시 들어가. 오늘의 숙면이 내일의 180을 만든다.”
한밤중에 잔소리나 들은 정성빈은 재깍 돌아가지 않고 나와 시계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더니 맞은편의 의자를 빼고 식탁 앞에 앉았다.
“생각해 둔 후보는 있어요?”
“어?”
“선곡 후보요.”
정성빈이 눈을 비비며 물었다.
놀랍게도 정성빈은 무려 나를 위해 자다 말고 거실에 남아 주려는 것 같았다.
혼자 있어야 그나마 마음이 좀 편한데.
하지만 아무리 스파크에 맺힌 게 많다고 해도 사람을 코앞에서 무시하는 건 경우 없는 짓이었다.
나는 정성빈에게 치열한 서바이벌에서 살아남은 일흔 개 남짓의 곡 목록을 보여 주었다.
“점수는……. 아,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들 기준으로 매긴 거군요.”
“응. 그리고 수업 때 불렀던 노래랑 음역대가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것들 위주로.”
정성빈은 목록을 읽으며 내 설명에 간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잠이 덜 깬 게 분명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떤 곡을 고르고 싶으신지 어느 정도 알 것 같아요. 보컬 수업 때 들었던 음역대를 생각하면 이 노래……도 부르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들어 본 적 있으세요?”
“너 지금 나 도와주려는 거야?”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요. 가사를 틀릴까 봐 이미 알고 있는 노래 중에 고르고 싶으셨다면…… 이 노래는 어떨까요.”
“…….”
“이 곡 1절이랑 2절 가사가 거의 똑같거든요. 가사도 짧고요.”
정이 많은 성격이라는 건 자컨에 꼬박꼬박 등장하던 ‘다정성빈’이란 표현을 봐서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멤버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그런 건 줄 알았다.
졸고 있는 정성빈을 보니 얘를 그냥 방에 옮겨 놓는 것이 맞지 않을까 잠시 고민은 되었다.
그래도 주술 같은 피드백은 꼼꼼히 받아 적었다.
그 뒤로도 K-Pop 일타 강사 정성빈은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내 후보군에 ○△ 표시를 하거나 노래를 빼고 더하길 반복해 총 서른 곡을 추려 냈다. 내 타율은 0.41 정도인 듯했다.
아무리 가이드라인이 있다지만, 갑자기 조건이 설정된 상황에서 정성빈이 적절한 값을 출력해 내는 속도는 보통이 아니었다.
‘성빈이 형이 진짜 케이팝 괴물이잖아요! 거의 뭐 노래방 고인물이죠.’
‘본인이 태어나기 전에 나온 노래도 알던데.’
‘형 밥 먹고 노래만 들어요? 아…… 노래만 듣지.’
‘그럼 성빈 씨의 별명은 노래방 고인물인 걸로!’
눈앞에서 직접 보고 나니 고인물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알 것 같았다.
험난한 아이돌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지식인이 되어야 했나 보다.
“이 중에서 골라 보는 건 어떨까 싶은데 형 생각은 어떠세요? 아무래도 최근에 나온 곡이 좀 더 나을까요……?”
정성빈이 나를 도와주는 것은 호의에 기반했다고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도와준 대가로 내게서 뭘 털어 봤자 정성빈이 가져갈 수 있는 건 장기밖에 없으니까.
정성빈의 인성은 4~5시간 자고 종일 저열량 식단만 먹으면서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이 보이긴 힘든 인성이었다.
적어도 나는 불가능했다. 지금의 정성빈 나이인 열여덟일 때였다면 더더욱.
이 정도는 되어야 리더를 하는구나. 내심 감탄하고 있는데 정성빈과 눈이 마주쳤다.
그새 잠이 깬 것인지 정성빈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나는 이 눈에 수많은 응원봉이 비치는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강남역 4번 출구에 걸릴 생일 광고를 만들었을 때 말이다.
“형?”
“어, 어. 자세한 건 네가 추천해 준 것까지 들어 보고 정할게. 고마워.”
“아니에요. 힘내세요.”
비록 지금은 새카만 부엌과 흐린 노트북 불빛밖에 비치지 않지만.
나는 정성빈에게 ‘너는 왜 지나가는 뚝딱이에게도 이렇게 친절하게 구는 거야?’라고 묻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정성빈을 재우지 않았다가 장래 녀석의 키가 덜 크기라도 할까 싶어 참았다.
아이돌의 성장기는 소중하니까. 지켜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