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00)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00화(100/193)
| 100화. 탕비실 관리 (1)
안내받은 회의실의 문을 열자 여러 대의 카메라와 열 명 남짓한 제작진분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스파크 여러분,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스파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우, 역시 신인은 패기가 달라.”
PD님이 환하게 웃으며 회의실 테이블의 빈자리를 가리켰다.
우리는 카메라가 향한 쪽으로 나란히 앉았다.
‘도전! 삶의 체험’의 촬영 내용은 간단하다.
촬영 전날 출연진은 제작진과의 미팅을 통해 익일에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전달받는다.
그리고 다음 날 바로 현장 투입. 이게 콘텐츠의 전부였다.
특정 기술이 필요할 땐 전날 미리 제작진 측에서 준비해 둔 수업을 듣는 경우도 있었다.
≫ 스킨 스쿠버 강습 들어야 한다는 말 들었을 때 연지 표정
화들짝 햄쥐ㅠㅠㅠㅠ
└ 스킨 스쿠버라길래 아쿠아리움 알바인가 했는데 물질……;;
└ 도삶 진짜 독하다……
아니면 순전히 체력과 악과 깡으로 부딪치거나.
사실 택배 상하차만 아니면 상관없다. 나만 하는 거면 상관없는데, 저놈들이 다치는 건 좀 곤란해서 말이다.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PD님과의 형식적인 인사도 잘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본론이 시작되었다.
“먼저 저희가 어떤 프로그램인지…… 알고 계시죠?”
“네!”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요.”
시작부터요? 그것참 곤란한데요.
당황한 멤버들을 보며 PD님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미성년자 법정 근로시간이 7시간이라, 동생들은 먼저 퇴근하고 우리 맏형들끼리 마감을 해야 될 것 같아요.”
진짜 큰 문제였네.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다닐 생각에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와 최제호만 어둠의 수렁에 빠트려 놓고 PD님이 질문했다.
“혹시 다들 알바는 해 본 적 있어요?”
“저는 쇼핑몰 의류 모델만 몇 번요.”
최제호가 말했다. 녀석, 제법 본새 나는 알바를 했군.
나머지 놈들은 나이가 나이인지라 다들 고개만 저었다.
나야 알바 경험이 있긴 한데……. 나중에 증명해야 할 일이 생기면 곤란해질 듯해 조용히 있기로 했다.
그런 우리를 본 PD님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외쳤다.
“내일 스파크분들이 일할 곳은 알바의 성지, 카페입니다!”
“카페요?”
지금까지의 촬영지치고는 상당히 대중적인 알바였다.
카페 알바 힘들지. 메뉴도 많고 진상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유명 배우에게 벌집 제거까지 시켰던 프로그램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여섯 명이나 되는 다인원 그룹을 곱게 카페 한곳에 넣어 줄 것 같진 않았다.
‘웨이팅이 긴 카페인가? 아니면 역세권 카페나 대형 카페? 혹시 지금 별다방 시즌 음료 나오는 때인가?’
나는 머릿속으로 대충 후보군을 추렸다.
그런 나와 달리, 옆에 앉은 녀석들은 카페 유니폼을 입어 보고 싶었다느니, 드라마에서 나오는 바리스타 역을 좋아했다는 등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알바하면 카페를 빼놓을 수 없죠. 알바 노동자의 비율이 높은 업무 공간인 만큼, 우리 일상하고 가까운 근로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그러면서 PD님이 스케치북을 펼쳤다.
“여러분은 오늘 오후, 전문 바리스타님께 교육을 받은 뒤 내일 강남에서 일일 음료 증정 이벤트를 진행해 주시면 됩니다!”
“강남이요?!”
“왜 그러시죠, 이월 씨?”
지도 위에 빨갛게 표시된 지점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강남이라니.
강남 카페에서 오픈부터 마감까지 버텨야 하다니!
현기증이 났다.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
“왜 그래요, 이월이 형……?”
“손님 많으실까 봐 그래요? 그래도 나름 역하고 떨어져 있는 것 같은데.”
박주우의 질문에 강기연이 지도를 보고 대신 대답했다.
“강남인데 역부터 여기까지 오는 길에 카페 하나가 없겠어? 어련히 분산이 되겠지.”
최제호도 말을 얹었다.
녀석들의 말을 귀담아듣는 대신 앞을 보자 PD님과 제작진분들이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 역하고 아주 가깝진 않지.
하지만…….
“PD님, 혹시 지도 한 번만 다시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PD님에게 지도를 받아 들었다.
내 불안한 직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지점을 기준으로 두 블록 이내가 전부 고층 빌딩이었다.
“얘들아, 우리 큰일 났다…….”
나는 유언처럼 중얼거렸다. 눈앞이 캄캄했다.
* * *
점심시간의 직장인은 매우 분주하다.
어느 회사들은 복지가 좋아서 점심시간이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이나 된다고 하기도, 혹은 알아서 밥을 먹고 와도 된다지만.
구내식당이 없는 대부분의 회사는 12시부터 1시를 점심시간으로 하고 있었다.
그 한 시간을 알차게 쓰기 위해서는 걸음걸음에 낭비가 없어야 했다.
점심 메뉴 선정은 11시부터 미리. 대기 줄이 긴 식당에 갈 땐 12시가 되기 무섭게 달려가기.
음료는 테이크아웃으로. 예약이 되는 식당은 전 주부터 예약하고, 어플이 있는 카페엔 미리 주문 넣기.
매뉴얼이라도 있는 듯 직장인들은 칼같이 움직였다. 그렇게 많은 회사원들이 밥을 먹고 향하는 곳은 대부분 세 갈래로 나뉘었다.
담배를 피우거나, 산책을 가거나…….
‘……카페에 가거나.’
지도에 표시된 곳은 정확히 회사들이 밀집된 구역이었다.
아무리 커피를 안 마시는 나라도 알았다. 아침과 점심의 회사 근처 카페는 어디든 미어터진다는 걸.
게다가 촬영을 이유로 연 무료 음료 증정 이벤트까지.
망했다. 우리는 아마 온몸에서 원두 가루가 나올 때까지 탈탈 털릴 것이다.
‘극한의 환경이라고 보긴 어려울 수 있으니 무료 증정으로 균형을 맞추려고 한 것 같긴 한데…….’
다 비겁한 변명이다. 당장 나만 해도 공짜라면 양잿물 빼곤 다 마실 텐데, 하물며 직장인 필수 포션은 어떻겠는가.
“형, 아까부터 왜 이렇게 허공을 보세요?”
정성빈이 물었다. 녀석의 손엔 오늘 반나절 내내 만들었던 스무디 한 잔이 들려 있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오늘 하루 멤버들이 보여 주었던 퍼포먼스를 되새겼다.
그러고는 정성빈을 보며 대답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내일 장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까, 생각하느라.”
* * *
‘도전! 삶의 체험’은 최근 약간의 정체기를 겪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프로그램이 고되다는 소문이 나면서 출연진 섭외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메인 콘텐츠는 고되고 힘든,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의 재조명이었다.
당연히 제작진이 준비하는 직무는 상당히 강도가 높았다.
여러 예능 프로그램 작가들이 그렇겠지만, 도삶 작가들 역시 많은 시간을 섭외에 할애해야 했다.
직무 강도가 높은 일 → 하지만 연예인도 할 수 있을 정도로는 쉬운 일 → 그래도 시청자가 보기에 ‘저 사람 고생하네.’ 싶을 만큼은 빡센 일 → …….
이런 딜레마가 반복되다 보니 소재는 소재대로 바닥을 보이고 게스트는 게스트대로 부족한 상황.
그런 시기에, 메인 PD는 그동안 여러 이유로 인해 탈락한 소재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기로 했다.
카페 아르바이트 역시 옛날 옛적 탈락한 아이템 중 하나였다.
탈락 사유도 다양했다.
너무 흔해서, 다른 아이템들만큼 힘들단 인식이 없어서…….
그래서 제작진은 옵션을 붙여 난이도를 올렸다. 별다방의 시즌 음료 판매 시기를 노릴까도 생각할 만큼 그들은 진심이었다. 전국적인 이벤트는 건드리지 말자는 내부 의견이 나와서 결국 관뒀지만.
아이템을 정하고 나니 다시 출연진이 문제였다.
난이도를 올려놓은 건 좋았지만, 사전에 조사했던 내용을 보니 인력 한두 명으로는 커버가 어려울 게 눈에 선했다.
이럴 때 만만한 게 아이돌이긴 했다. 다인원이고, 신인일수록 쉬운 일 어려운 일 가리지 않으니까.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는 법.
출연진을 갈구하던 도삶이 웬만해선 신인 아이돌을 부르지 않는 덴 다 이유가 있었다.
≫ ㅊㅇㅅ 진짜 개답답하다
하루 종일 테이블 번호 못 외우는 건 너무 심하지 않나?
편집된 화면으로 보는 나도 다 외우겠던데
보다가 채널 돌릴 뻔
한국인은 답답한 걸 못 참으니까.
시청자들은 낯선 일을 하며 허둥대는 출연진을 보며 즐거워하면서도, 출연자가 전문가와 같은 수준으로 일을 처리해 내길 원했다.
각종 영상 플랫폼에서 ‘도삶 정복한 출연진 모음.zip’이라는 영상이 높은 조회 수를 차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요즘 데뷔하는 대부분의 아이돌은 나이부터가 너무 어릴뿐더러.
아주 어렸을 때부터 데뷔를 목표로 연습생 생활을 해 오기에, 소위 말하는 일머리가 없었다.
일 잘하는 사람은 어디서든 사랑받는다. 도삶에는 그런 연예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제작진은 1차로 대형 소속사에서 얼마 전 데뷔시킨 신인 보이 그룹, 파르테에 섭외 연락을 넣었다. 아직까지 방송사에는 ‘대형은 그래도 교육을 똑바로 시키니까!’라는 신뢰가 있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제안은 거절당했다.
도삶 제작진은 잠시 잊고 있었다. 대형이 좋은 이유는 자사 연예인이 이런 가성비 나쁜 프로그램에 나가는 걸 막아 줘서라는 것을.
그렇게 작가진이 머리를 부여잡고 있을 때.
‘저, 신인 그룹도 괜찮으면 혹시 이 그룹은 어떠실까요?’
누군가가 회의에서 처음으로 스파크를 언급했다.
‘파르테랑 연차는 비슷하고, SNS나 커뮤니티에서 똑 부러졌다는 평도 많아요.’
동시에 회의실의 빔 프로젝터에 짧은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영상의 제목은 ‘수상할 정도로 일머리가 비상한 아이돌’이었다.
영상이 재생되자 썸네일에 있던 흰 피부의 미청년이 화면에 크게 잡혔다.
‘주우야, 청소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가이드 공유 폴더에 올려놓았으니까 각자 확인해 줘. 접근 권한 없다고 나오면 얘기하고.’
짧지만 명료한 몇몇 장면 위로 상황을 설명하는 자막들이 지나갔다.
보도 자료 직접 쓰기, 웹셀에 함수 넣는 법 보여 주기, 기름기 있는 설거지 깔끔하게 하기…… 등등.
어차피 파르테에게도 까인 거, 질러나 보자!
그런 심정으로 도삶 제작진은 UA에 섭외 문의를 넣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언제든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았다.
‘기존 카페 직원 한 분 서포터로 두고 하면 일손이 많으니 펑크까지 나는 일은 없겠지.’
만약의 만약까지 생각하며 메인 PD는 촬영을 준비했다.
촬영 전날 잠깐 진행한 미팅 때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다들 훤칠하니 잘생겼으면서도 대부분 얼굴에 앳된 티가 남아 있었다. 영상에서 봤던 청년만이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기운을 풍기는 게, 믿을 건 저 친구뿐이구나 싶었다.
이 긴 우여곡절 끝에, 5월의 어느 따뜻한 날 ‘도전! 일일 카페’의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