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01)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01화(101/193)
| 101화. 탕비실 관리 (2)
‘일단 포지션부터 정하자.’
지난밤, 숙소에 도착한 내가 녀석들에게 가장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포지션이요?’
이청현이 반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아메리카노 만드는 법부터 스무디 만드는 법까지 다 함께 익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했다간 손님들이 40분씩 기다리게 될 거다. 현대 사회로 갈수록 분업이 발달한 덴 다 이유가 있다, 이거야.
나는 녀석들이 보여 줬던 퍼포먼스를 기준으로 역할을 나눴다.
먼저 정성빈은 사람들에게 웃으며 말 붙이는 것이 자연스럽고 꼼꼼하다는 점을 고려해 카운터의 주문 담당을 맡겼다.
다음으로 이청현에겐 본인의 비상한 기억력과 빠른 두뇌 회전 등을 십분 활용하도록 제조된 음료와 주문서 대조 및 손님 호출을 맡겼다.
강기연과 최제호는 세트로 묶어서 스무디나 티 종류의 음료 제조를 맡기로 했다. 저 둘은 상호 보완적인 존재라 각자 하나씩 일을 맡기기보단 원 팀으로 붙여 주는 편이 좋았다.
그리고 박주우는…….
‘주우 넌 하루 종일 샷만 내린다고 생각해.’
‘그랬다가 손님들이 커피 안 들어가는 음료만 많이 시키시면 어떡해요……?’
그럴 리가 없지. 백날 아메리카노만 만들어도 네 쪽 일손이 부족할 거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메리카노 외의 커피 베이스 음료 만들기, 쓰레기통 치우기, 최제호와 강기연이 설거지를 수습하지 못하고 있으면 설거지하기 등등을 맡기로 했다.
과연 녀석들은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제 위치에 자리를 잡고 재료들을 확인했다.
“자리는 이렇게 서기로 미리 정한 거예요?”
PD님이 포스기에 메모지를 붙이고 있는 정성빈에게 질문했다.
“네! 이월이 형이 어제 카페 내부 이미지를 찾아 주셔서 미리 논의하고 왔습니다!”
첫 공식 예능이라 그런지 군기가 아주 바짝 들어 있다. 속으로 기특함 점수라도 주려는데 카메라가 갑자기 날 향했다.
“이월 씨, 카페가 여긴 줄은 어떻게 알았어요? 어젠 대략적인 위치만 알려 줬는데?”
“알려 주신 곳 인근에서 오픈 주방이고 평소에도 아르바이트생을 3인 이상 쓰는 곳 위주로 좁혀 봤어요. 이벤트 형식으로 진행하실 거라길래 입구가 대로변에 있는 카페로 골랐고요.”
“고작 그걸로 여길 찾았다고요?”
바로 확신한 건 아니고, 한 열 곳 중에 최후의 Top3까지 걸러 낸 다음 그냥 셋 다 내부를 봐 둔 거긴 한데.
일일이 설명하자니 별것 아닌 걸로 지나치게 으스대는 것처럼 보일까 봐 관뒀다.
그때였다. 영업 준비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원칙적으로 제작진의 개입은 영업 준비 시간부터 중단된다. 알람이 울린 바로 지금부터 말이다.
나는 앞치마를 둘러메고 속으로 기도했다.
부디 오늘 강남에 출근하시는 모든 직장인분들의 기분이 좋게 해 달라는, 말도 안 되는 소원을 빌며.
* * *
“막내야.”
“네, PD님!”
“쟤네 알바해 본 적 별로 없다고 했지?”
메인 PD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막내 작가는 슬쩍 주방 쪽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저렇게 애들이 빠릿빠릿하지?”
스파크는 평균 나이가 스무 살이 채 안 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침착했다.
‘다 같이 검은 티 맞춰 입고 왔을 때부터 특이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개인 카페를 빌리다 보니 이곳에는 유니폼이 따로 없었다.
제작진은 멤버 어필이 중요한 아이돌 그룹이니만큼 알아서 적당히 개성 있고 깔끔하게 입고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파크는 예상을 깨고 전원 검은 반소매 티 차림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따로 사 오기라도 한 것인지 똑같은 여섯 개의 앞치마를 맸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모두가 이 카페의 직원처럼 보였다.
‘앞치마는 왜 사 왔어요?’
‘카페 비품을 함부로 쓰는 건 실례일 것 같아서요.’
……라나 뭐라나. 준비성도 대단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제작진은 조금 놀랐을 뿐, 크게 당황하진 않았다.
누구에게나 계획이 있을 순 있으니까. 상황에 부닥치기 전까진.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8시 출근을 앞둔 직장인들이 밀려들었다.
지금이 바로 초반에 허둥대며 정신없이 주문을 받는 출연자를 촬영해야 할 때였다.
분명, 그랬는데.
“주문 확인 도와드리겠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맞으실까요?”
“성빈이 형, 지금부턴 주문받을 때 대기 시간 10분 이상 걸린다고 미리 말씀드려 줘요!”
“아아 세 잔 지금 나가……!”
바 테이블 너머에서는 공장처럼 음료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최제호, 지금 손 비지? 우유 하나만 새 걸로 뜯어 줘.”
“저 지금 일 없는데 시키실 거 있는 분?”
“기연아, 여기 원두 가루 좀 닦아 줄 수 있어……?”
한쪽에 일이 몰리면 다른 멤버들이 몰려가 도왔다가 제자리로 찾아가는 속도가 수준급이었다.
‘멤버들끼리 소통이 되게 잘 되네.’
일련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음향 감독이 감탄했다.
손님이 바글바글해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지목하는 대상이 명확하면 꼭 이름을 불러 지목하고, 부탁할 일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말한다. 서로가 두 번 말할 일이 없게 하는 것이다.
본인은 잡일 포지션이라고 말했던 김이월의 개입 시점도 적절했다.
김이월은 주방을 빨빨대며 부스럭거리다가 30분 단위로 돌아와 박주우와 함께 아메리카노를 무한대로 생산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딱 시간에 맞춰 돌아온 김이월이 주방을 향해 외쳤다.
“종이컵 채워 놨고, 행주 빨아 놨으니까 필요한 사람 써. 캐리어 접어 둔 건 자리 없어서 탕비실에 뒀다!”
“넵!”
김이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금 한차례 손님들이 밀려들었다.
‘저 친구한테 손님 부르는 운이라도 있나?’
메인 PD는 김이월이 참 일복 많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이어 이게 우연이 아님을 깨달았다.
자율 출퇴근이 도입 중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대한민국은 출근 시간이 고정적인 편이었다.
9 to 6가 가장 기본이긴 해도, 7시나 8시부터 30분 단위로 출근 시간을 끊는 곳도 많았다.
김이월이 뻐꾸기시계처럼 나올 때마다 손님이 몰린 덴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저 사람들 고생하네.’ 하는 그림을 위해 이른 새벽부터 촬영을 시작한 제작진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지점이었다.
그렇게 전쟁 같은 시간이 지나고 10시가 되자 카페의 손님 러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바야흐로 숨을 돌릴 시간이자…….
“점심 일찍 먹기로 했던 애들 누구지? 도시락 미리 받아 가.”
“저랑 강견, 성빈이 형이요!”
……인력 절반이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 * *
동생들에게 도시락을 나눠 준 김이월은 정성빈을 대신해 포스기 앞에 섰다.
주방에 자리가 난 틈을 타 PD가 카메라를 대동해 주방으로 들어가 물었다.
“이월 씨가 주문받으려고요?”
“네. 성빈이 메모만 보고 하면 될 것 같아요.”
김이월이 가리킨 곳엔 정성빈이 오픈 전에 붙여 둔 메모지가 있었다.
메모지에는 주문받는 멘트와 원두 종류, 주문 최종 확인 멘트 등이 깔끔하게 적혀 있었다.
김이월은 간간이 들어오는 주문을 무리 없이 처리했다.
가끔 커피 심부름을 오느라 여러 잔을 주문하는 손님이 있긴 했지만, 아메리카노 담당자인 박주우와 기타 음료 담당자인 최제호가 하나씩 남아 있으니 밥 먹던 인원이 불려 오는 불상사도 없었다.
“밥 먹는 순서를 미리 정한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예요?”
“네. 저희 멤버들이 아직 성장기라 굶지 말고 먹어야 해서요.”
그러더니 김이월이 씩 웃었다. 거참 사회생활 잘할 인상이다, 싶은 미소였다.
오후는 오전보다 배로 난리였다.
우선, 점심을 먹고 난 직장인들이 돌아가는 길에 우르르 밀려들었다.
무료 이벤트가 소문이 난 여파도 컸다. 사무실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까지 찾아와 카페 앞이 문전성시였다.
이럴 때를 대비해 카페 직원을 대기시켜 놓은 건데, 스파크의 대응은 침착하기만 했다.
주문을 받는 정성빈이 대기 시간을 미리 알려 주고 있으니 시간적 여유가 없는 손님들은 알아서 발걸음을 돌렸던 것이다.
남은 손님들은 애초에 기다려야 한다는 점을 알고 주문을 한 덕에 컴플레인을 걸지도 않았다.
‘그래 봤자 음료가 10분 안에 나오기도 하고.’
각자 하나씩만 맡아서 하다 보니 그새 숙련도가 붙은 듯, 모두 일하는 속도가 올라갔다.
차이점이 있다면 김이월의 동선 정도였다.
오전에는 잡일과 박주우 곁을 오가던 김이월은 이젠 냉장고와 믹서기 사이를 분주히 돌아다녔다.
“주문하신 망고 요거트 스무디, 샤인머스캣 에이드 나왔습니다!”
이청현이 외치는 메뉴도 오전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메인 PD는 이청현의 앞에 즐비한 형형색색의 음료들을 한 번, 업소용 냉장고 앞에서 새 냉동 딸기 팩을 꺼내고 있는 김이월을 한 번씩 번갈아 보았다.
‘일…… 잘하네.’
아무래도, ‘도삶 정복한 출연진 모음.zip’ 영상에 조만간 새 출연진이 추가될 것 같았다.
* * *
도삶 촬영은 별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나와 최제호 둘이 마감 청소를 하고 있을 때, 먼저 퇴근했던 놈들이 사복 차림으로 찾아와 좀 놀란 것 빼곤.
‘너희가 여긴 왜 왔어?’
‘너희라뇨? 저흰 손님인데요?’
‘사장님, 저희 이 카페에서 제일 손 많이 가는 걸로 네 잔 주세요!’
이러더라고. 그래 놓고 막상 얼그레이 피치 쉐이크 만들어 준다니까 화들짝 놀라며 거절했다.
그러더니 이 카페엔 먼지가 왜 이렇게 많냐며, 본인들이 각자 청소 도구를 꺼내 들고 카페 정리를 전부 끝마쳤다.
‘아니, 세상에 어떤 카페가 손님한테 일을 시켜요?’
‘음료 안 시킨 사람은 손님 아니야.’
투덕거리면서 클로즈 멘트까지 치고 나니 밤 11시였다.
혹시나 회사에서 ‘얘들아, 너희 현장에서 사고 쳤니?’라는 연락이 올까 봐 뜬눈으로 밤을 새웠지만 그런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스파크의 첫 예능 나들이는 그냥저냥 중박만 친 줄 알았는데.
“얘들아.”
“왜요?”
“스파크 실트 갔다!”
“진짜요?!”
촬영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도삶 촬영분이 방영된 날.
갑자기 연습실에 찾아온 매니저님의 말에 녀석들은 춤추다 말고 매니저님에게 뛰어갔다.
핸드폰 화면 위로 스파크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보였다.
도삶 스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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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삶진동벨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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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우와!”
‘도삶 진동벨 걔’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이청현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빛내며 핸드폰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옆을 보니 최제호도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액정을 내려 보고 있었다. 안경이 없으면 이 정도 글씨는 잘 안 보이나 보다.
“믹서기 열심히 씻은 보람이 있네요.”
강기연까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묵묵히 핸드폰을 보고 있던 정성빈도 옅은 미소를 띠며 ‘그러게.’라고 중얼거렸다.
누구 하나 실수하지 않고 첫 단추를 잘 꿴 것에 만족해서일까.
이때까지의 나는, 나의 아주 작은 실수들이 쌓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