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02)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02화(102/193)
| 102화. 50분 자기소개 (1)
짧게나마 확인해 본 실트 속 스파크는 이랬다.
≫ 역시
수상할 정도로 일머리가 좋은 아이돌 1위
└ 딴 건 몰라도 캐슬빈이랑 이달이는 카페 알바해 본 적 있다
≫ 2X05XX 도삶 스파크
이런 알바생들 있는 카페면 맨날 가지ㅠㅠ
└ 황제호께서 말아 주는 스무디? 냉동 창고에서도 먹을 수 있어
≫ 현직 카페 알바생으로서 이번 주 도삶 진짜 재밌게 봤다……!
카페 알바 편은 안 나오나 했는데 드디어 나와서 너무 좋구
스파크분들 일 너무 잘하셔서 놀람……
울 카페 신입보다 훨씬 잘하시는 것 같아…… 사장님 알바생 바꿔줘요
└ 저희 애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일도 잘하지만 본업도 잘하는 애들이에요! 괜찮으시면 무대도 봐 주세요ㅎㅎ
└ 걍 평범하던데;;; 놀라는 건 오버인 듯
└ 헛, 일 잘한 거 맞아요! 손님 그렇게 몰리는데 초보자가 음료 미스 안 내기 쉽지 않아요ㅎㅎ
└ 방송이니까 컴플레인 들어와도 다 자르고 내보냈겠죠ㅎ 보니까 아이돌 때문에 시청률 좀 올라서 일잘러 포지셔닝 하려고 편집 엄청 밀어준 것 같던데ㅎ 제작진 속셈이 뻔히 보여서 전 별로였네요
└ XX 벌써 울 애들한테 억까가 붙었냐……? 시청률 견인용으로 보일 만큼 울 액희들 성장한 고야……?
≫ 다른 애들은 그냥 와 손 야무지네~ 이런 느낌인데
이월이랑 청현이는ㅋㅋㅋㅋ 거의 전자두뇌인 줄
나간 음료 달달 외우는 거 보고 PD 표정=내 표정 됨
└ 애들 진짜 기억력 좋더라고여ㅋㅋ 이월이 특기가 괜히 지하철 노선도 외우기가 아니었던
└ 설거지 장인 기연이도 봐 주세요ㅠㅠㅠ 와기 고양이 믹서기 같은 무서운 거 만지는 거 아니야…… 하지만 물때에 집착하는 거 너무 귀여워……
모두가 언급되고, 누구 하나 부정적인 평가를 받지는 않는 상황.
그야말로 최고의 어필이었다.
여러 명이 함께 활동하는 아이돌 그룹에서 푸시는 민감한 문제였다.
특정 누군가가 주목받는다는 것은 곧 내가 좋아하는 멤버의 기회가 줄어든다는 걸 의미하니까.
과거 스파클러 사이에서는 이러한 견제가 꽤 심했다.
악재가 겹치면서 팀이 얼굴을 비추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다 보니, 팬들 사이에서 몇 없는 기회를 조금이라도 쟁취하려는 기 싸움이 있었던 것이다.
‘멤버들끼리 사이좋은 모습이라도 많이 보여 줬으면 덜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모두에게 역할을 주는 것에 충실했다.
최대한 동등한 분량, 평등한 발언권 등으로.
그리고 그것이 좋은 결과로 나오고 있다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월아, 멤버들 얘기도 좋지만 네 얘기를 좀 더 해 주면 안 될까?”
내가 팬 사인회에서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 * *
김이월을 최애로 잡은 분을 처음 보는 건 아니었다.
도대체 내 어디가 좋다고 이 여섯 명 사이에서 나를 잡으신 걸까 싶었지만, 그건 둘째 치고.
김이월이 최애인 분들에겐 나름 공통의 특징이 있었다.
≫ 이월이보다 스파크 더 사랑하는 법 가르쳐 주실 분
개인 라이브여도 멤버들 어딨는지 꼬박꼬박 알려 주고
멤버들 사진 찍어 주느라 자기 사진은 못 건질 때도 많고
멤버 피셜 제일 늦게까지 연습한다는데 멤버들한테 피해 안 끼치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월이
그런 따뜻한 네가 좋아ㅠ
그치만 갠방 때마다 where is Jeho? 이러는 새끼들은 다 죽었으면
어째서인지 나를 아주 가슴 따뜻한 맏형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다는 것.
이분들은 나의 모든 행동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라봐 주셨다. 내가 감히 저런 온정적인 평가를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스파크를 좋아하거나 다른 멤버들을 좋아하는 팬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명확했다.
그룹이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하거나, 그간 녀석들이 뿌리지 않았던 떡밥들을 열심히 뿌리면 되니까.
하지만…….
‘김이월을 좋아하는 분들껜 뭘 해 드려야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진? 솔직히 아이돌 셀카라고 올리기엔 양심이 없는 얼굴이다.
노래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내 커버곡 같은 게 듣기 좋을 리도 없고.
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그냥, 공식 카페에 매일 얼굴 비추고 최대한 자주 채팅을 보내는 걸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제 이야기요?”
“어!”
내 반문에 눈앞의 팬분이 격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솔직히 네가 무슨 얘기를 해도 다 좋거든? 그런데 이월이 네가 뭘 좋아하는지, 오늘 뭘 했는지도 듣고 싶어.”
대화 중에도 팬분의 시선은 올곧게 나를 향해 있었다.
“취미나 근황 같은 걸 말씀하시는 걸까요?”
“맞아! 아, 그렇다고 멤버들이랑 있었던 일화 같은 게 재미없다는 건 아니야. 알지?”
“그럼요. 제 일상을 궁금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웃으며 사인을 마쳤다.
그리고 포스트잇에 짧은 TMI를 적으며 생각했다.
과연 나는 무엇으로 자기 어필을 해야 하는가, 하고 말이다.
* * *
지금까지 내가 개인 라이브 방송에서조차 멤버들 언급을 한 이유는 단순했다.
주목받아야 할 놈들은 녀석들이고, 스파크의 팬들은 그 다섯 명을 위한 팬들일 테니까.
누가 내 얘기를 궁금해할 것 같지도 않았고.
하지만 팬 사인회의 일이 있고 나서부터는 전과 같은 방송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팬분이 그걸 원하신다는 데 안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문제는 직장인 아저씨의 노잼 일상 같은 게 재미있겠냐, 이거지.’
김이월을 응원해 주시는 분들께 허위 과장 광고 상품을 판 기분이다. 마음이 무거웠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남 부장의 따님이 최제호의 일거수일투족을 궁금해했던 것도 떠올려 보았지만, 적어도 그땐 대상이 최제호라는 차이가 있었다.
한 그룹의 센터이면서 팀 내에서 인지도 상위권이었던 녀석과 나를 비교하는 건 그놈한테도 실례였다.
나는 자동 재생으로 틀어 놓은 멤버들의 자컨을 하염없이 돌려보며 아이템을 고민했다.
그러다 이청현의 『With List』 피아노 커버 영상에 시선이 멈췄다.
‘베이스를 칠까?’
베이스는 그나마 취미다운 취미였다. 스파크 활동과 크게 동떨어지지도 않고, 무엇보다 꽤 좋아했다.
돌연 연습생이 된 뒤로 1년 넘게 만지지 않아 감을 잡으려면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그 전에 10년 가까이 연주해 왔던 세월이 있으니 많이 헤매진 않을 듯했다.
다만 악기가 없는 게 문제였다. 영상 한번 찍자고 사기엔 돈도 아깝고.
‘중고 거래를 알아봐야 하나.’
일이 점점 커지는 기분이라 머리가 아팠다. 역시 등록금을 못 내서 대학에 못 간 썰을 풀고 희대의 덜렁이 캐릭터로 거듭나는 편이 좋으려…….
“형, 뭐 봐요? 뭐야, 내 영상이네?”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들려는데 누군가가 내 머리채를 잡고 나를 현실로 끄집어냈다.
방으로 돌아온 이청현이었다.
“제 영상 모니터링하는 거예요? 어떡해, 너무 부끄럽다.”
“그런 거 아니야. 나 개인 영상 뭐 찍어야 하나 고민 중이었어서 참고용으로 좀 봤어.”
나는 말을 마치고 노트북을 껐다.
내 딴에는 이 행동이 나름 대화의 종료를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이청현은 맞은편에 있는 최제호의 침대에 걸터앉더니 물었다.
“그래서요? 소재는 정했어요?”
“어?”
“고민 중이었다면서요. 형처럼 평소에 고민하는 티도 안 내는 사람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완전 진도 안 나가는 거 아니에요?”
녀석의 말이 폐부를 찔렀다. 핵심을 찔려서 명치에 구멍이라도 난 것 같았다.
나는 좀처럼 자리를 뜰 기색을 보이지 않는 녀석을 보다가 말했다.
“그건 그래. 혼자 뭘 하면서 10분을 채워야 할지 모르겠네.”
“형이 저희 얘길 더 많이 하긴 하죠. 아, 일 얘기는요?”
“그것도 가급적 제외하고 싶어.”
“어……. 그럼 진짜 어렵다. 형 일밖에 안 하잖아요.”
“지금 불난 곳에 기름 붓니?”
내 말에 이청현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남은 심각한데 저놈은 이 상황이 즐거운가 보다.
“그러고 보니까 형은 취미 같은 거 없어요? 저 형이 쉴 때도 노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취미가 없긴 왜 없어. 회춘하면서 웹소설도 보기 시작했고만.
“어디다 보여 줄 만한 건 베이스밖에 없는데, 악기가 없어서 그것도 힘들 것 같아. 골치 아프네.”
“베이스요? 합주실에 연습용 몇 대 있을 텐데?”
“뭐?”
이청현이 회사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어 갔다.
“그 왜, 사옥 2층에 선배님들 연습실이랑 합주실 있잖아요. 거기 합주실에 밴드 세션 악기는 다 있어요! 소스 딸 때 쓰는 악기처럼 좋은 건 아니지만요.”
역시 음악 명가 UA, 일은 못 하지만 자원은 빵빵하구나. 감동해서 눈물이 났다.
* * *
이청현의 말대로 UA에는 꽤 많은 악기가 있었다.
나도 비품실에 예약 장부를 쓰고 나서 베이스 한 대를 빌릴 수 있었다. 골방 같은 연습실로 돌아와 악기를 잡으니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대학생 땐 진짜 많이 쳤는데.’
말이 어려진 후로 안 쳤다는 거지, 실제로는 한평산업에 입사한 후부터 베이스를 잡은 날이 손에 꼽았다.
운지법 다 까먹은 건 아니겠지. 현을 만지는 느낌조차 오랜만이라 실실 웃음이 나왔다.
이청현의 말대로 엄청나게 좋은 악기는 아니었지만, 내가 쓰던 것도 평범한 제품이었기에 불편하진 않았다.
악기를 구했으니 남은 건 선곡뿐이었다.
팬분이 원하는 게 인간 김이월의 TMI적인 요소라면 스파크의 노래를 커버하는 게 썩 좋은 선택은 아닐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전에 약속했던 대로 박주우의 최애 곡이나 쳐 줄까 하다가, 아차 싶었다.
무슨 생각을 하든 다 그룹과 관련된 쪽으로 가는구나.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스며들었다’인가 보다.
하지만…….
‘평생 자기주장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는 거면,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게 내 성향인 거 아닌가.’
정말이지, 머릿속이 복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