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04)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04화(104/193)
| 104화. 50분 자기소개 (3)
“엥?”
MC분의 의아함이 짧은 한 마디에서도 전해졌다.
“이월 씨 감자칩 좋아해요?”
MC분이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뜯어진 감자칩 봉투를 보며 질문했다.
“네, 제가 자주 먹는 안주예요.”
사실은 김을 제일 많이 먹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굳이 안주를 따로 사거나 차리는 게 귀찮아서.
하지만 방송에 김 한 통만 덜렁 나오는 건 너무 성의가 없어 보일뿐더러, 이에 끼는 불상사라도 생길까 싶어 포기했다.
대신 그 다음으로 많이 먹었던 2+1 단골 고객인 감자칩을 데려왔다. 설마 감자칩으로도 당황하실 줄은 몰랐지만.
하긴, 얼마 전에 출연한 분은 트러플이 올라간 카나페를 먹었으니 갭이 크게 느껴지긴 하겠다.
“오, 이월 씨 술 자주 마셔요?”
“조금요. 숙소 생활 시작한 뒤로는 오늘이 첫 음주입니다!”
“진짜? 그럼 연습생 때부턴 술 한 모금도 안 마셨어요?”
“네, 멤버들이 대부분 미성년자라서요. 가급적 안 마시는 게 좋겠더라고요.”
“이월 씨 착하네. 오늘은 동생들 신경 쓰지 말고 회포 풀자고. 어때요?”
“좋습니다. 아, 그리고 저 안주 더 말씀드린 게 있었는데…….”
“그렇지? 역시 감자칩이 다가 아니었던 거지?”
내가 운을 띄우자 다음 안주가 나왔다. MC분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아무래도 촬영인데 덜렁 감자칩만 있으면 모양이 안 살지 않겠나. 그것도 술상을 찍는 프로그램인데.
덕분에 나는 팔자에도 없는 ‘좋아하는 음식 월드컵’을 해 가며 최대한 입에 맞는 안주를 찾아냈다.
바로, 편의점 어묵과 작은 사이즈의 컵라면 말이다.
“……이월 씨 입맛이 거의 우리 아저씨들이랑 비슷한데?”
“아하하, 그런가요? 전 이게 맛있더라고요!”
만취한 남 부장을 집까지 배달한 뒤 혼자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더 까며 먹었던 어묵.
그리고 남 부장에게 어마어마하게 깨졌던 날, 혼자 팩 소주 하나에 먹었던 컵라면.
먹을 때마다 남 부장이 생각나 자주 먹진 못했지만, 둘 다 그날의 설움을 다 잊을 만큼 맛있었더랬다.
괜히 추억에 젖어 미소 짓는 날 보던 MC분이 한 손으로 내 어깨를 짚더니 말했다.
“나도 어묵탕이랑 라면 맛있는 거 알지. 그런데 하……. 안 되겠다. 이월 씨, 내가 다음에 선배로서 진짜 맛있는 안주 한번 살게.”
“정말요?”
감사하긴 한데 갑자기 왜?
당혹스럽다. 아무리 조촐하다고 해도 이거 나름 비싼 건데. 어묵은 무려 PB상품이란 말이다.
가격대의 문제는 아닐 거다. 추억의 음식이라며 구운 은행이나 매운 고추를 가져온 출연진도 있었으니까.
방송이라 으레 하는 빈말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더니 이해가 갔다.
“정말이지! 일단 짠부터 하자! 짠!”
“네, 네!”
MC분의 리드에 우리는 사이좋게 잔을 채워 주고 소주를 들이부었다. 더할 나위 없이 훈훈한 분위기였다.
시스템이 나오기 전까지는.
* * *
오늘의 내 목표는 두 가지였다.
하나, 시청자들이 음주 토크에서 기대하는 것만큼 평소보다는 솔직해 보이는 태도로 임할 것.
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제력을 잃지 않을 것.
“아니, 이월 씨.”
“네, 선배님.”
“술 왜 이렇게 잘 마셔?”
그러나 다 망했다. 저 망할 놈의 시스템 때문이었다.
+
[SYSTEM] ‘책임자’ 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김 대리, 이리 와서 한잔해! 나 팔 아프게 하지 말고!
[SYSTEM] ‘단기 업무’가 할당되었습니다.▷ 소주 다섯 병 이상 해치우기
▷ 보상: 자기 PR 점수 1 지급
▷ 미달성 시: ‘태도 논란’ 이벤트 발생 확률 상승
+
태도 논란 이벤트라니.
그따위 이벤트는 술 안 마셔도 조만간 터질 거다. 내가 허공에 대고 주먹질해서 말이다.
그보다 아이돌의 덕목 중에 술 잘 마시는 것도 있나? 그동안 나 아이돌 열심히 하라고 도와주지 않았어?
만취할 때까지 먹고 못 볼 꼴 보이는 게 더 논란이 생길 일 아닌가.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망설일 시간 같은 건 없었다. 카메라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다섯 병을 마시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한평산업에서 죽도록 야근하고 뒤늦게 회식에 갔었어도 남 부장이 주는 술은 다 마셨던 나다. 하물며 20대인 지금은 더 멀쩡하겠지.
문제는 MC분과 둘이 마시다 보니, 나 혼자 마신 양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시스템이라면 다섯 병에서 한 방울만 모자라도 자격 미달이라고 실패를 때릴 테니 이 부분은 엄격하게 챙겨야 했다.
계산을 못 하겠다?
그럼 답은 하나 아닌가.
압도적으로 마셔야지. 판정승 나도록.
그 후로 나는 잔에 술 마를 새 없이 꿀떡꿀떡 마셨다.
추접스럽게 ‘선배님, 저 잔이 비었습니다!’라며 고성을 지르진 않았다.
대신 빈 잔이 카메라에 잡히도록 일부러 잔을 테이블 끝에 두거나, 받는 족족 원샷을 때렸다.
그럼 빈 잔을 보신 제작진분들이 내 잔이 비었다며 언급을 해 주시거나 MC분이 바로 잔을 채워 주셨다.
“괜찮아요? 술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니에요?”
“아직은 괜찮습니다!”
안 괜찮아도 괜찮다고 말해야 할 상황이지만 진짜로 괜찮다. 이 순간만큼은 내 주량에 감사한다.
슬쩍 제작진분들을 보자 다들 ‘이월 씨 얼굴색 하나도 안 변한 거 봐…….’라고 중얼거리셨다.
그렇게 짐승처럼 퍼마신 결과.
+
[SYSTEM] ‘단기 업무’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 자기 PR 점수 1 지급
+
나도 모르게 떠나보냈던 자기 PR 점수를 일부 되찾게 되었다.
고맙다, 내 간아.
* * *
단체 연습이 익숙해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아직도 적응 단계였지만.
그러니 사람 하나가 빠져서 인원이 줄었으면 그나마 마음이 편해야 할 텐데.
“제호 형, 정면 봐 주세요!”
최제호는 연습에 집중을 못 하고 있었다. 리더인 정성빈에게 피드백을 받을 정도로.
무엇이 그의 집중력을 흩트려 놓았는가.
최제호는 대형의 빈자리로 시선을 던졌다.
외부 스케줄로 자리를 비운 멤버, 김이월이 서 있어야 할 곳이었다.
잠깐의 휴식 시간에도 최제호는 평소 김이월이 서서 물을 마시던 곳을 힐끔거렸다.
그답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은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김이월을 부재하게 만든 ‘바로 그’ 스케줄 때문에.
‘술 마시는 사람들이란 미튜브 방송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왔는데, 둘 다 들어 봤어?’
얼마 전 매니저는 최제호와 김이월, 두 사람을 불러 단독 예능의 출연 계획을 설명했다.
들어 본 적은 없지만 솔직히 관심도 없었다. 술이라면 진절머리가 났다.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할 정도로 마시는 건 꼴불견이다. 그가 아버지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아버지만 떠올리면 감정이 주체가 되질 않는다. 최제호는 그런 자신이 꼴같잖았다. 동시에 그런 모습을 드러내기 싫었다.
그래서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것과는 엮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는 법.
최제호는 이미 한 번 기획을 엎은 전적이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남들이 수습하는 걸 보고 마음이 편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아버지를 싫어하는 여러 이유에는 ‘책임지고 싶지 않아 하는 게 눈에 보여서’도 있었다.
그렇게는 살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로 했으니까.
최제호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촬영에 지원하려던 찰나.
‘그건 제가 나가도 될까요? 최제호만 괜찮다고 하면요.’
옆자리에 앉아 있던 김이월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혹자는 그런 김이월의 행동을 두고 ‘누군들 개인 활동이 탐나지 않겠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그 사람이 김이월을 모를 때에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김이월은 나서는 걸 극도로 꺼렸다. 일을 시키면 빼지는 않았지만 좋은 기회가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타인에게 넘겼다.
옛날부터 ‘넌 왜 그렇게 주변에 관심이 없냐.’ 소리를 듣고 자란 최제호의 눈에도 보일 정도였다.
그런 김이월이 자원을 했다. 일부러.
‘최제호만 괜찮다면’이라며, 마치 자신의 행동을 양해해 달라는 듯이.
명백한 배려였다.
돌이켜 보면 김이월은 늘 그랬다.
문제가 생겼을 때 찾아와서, 이유도 묻지 않고 혼자 상황을 해결한 다음 태연히 제 할 일을 하러 갔다. 특유의 무표정으로.
며칠 후, 최제호는 숍에 가기 위해 신발을 신고 있던 김이월을 불러 세웠다.
‘야.’
‘왜?’
생기 없는 검은 눈동자가 최제호를 향했다.
저런 얼굴을 하는 녀석이 타인이나 카메라 앞에서는 다른 사람인 것처럼 군다.
그렇다면 김이월은 자신과 본질적으로 다른 인간인 걸까, 아니면 본질은 같지만 처신을 달리하는 인간인 걸까.
깊이 생각하고 싶진 않다. 자신에게 그런 감상이 어울리는 것도 아니고.
대신 최제호는 김이월에게 물었다.
‘필요한 거 없냐.’
내가 뭐 할 거 없냐고 했어야 하는데. 이놈의 말은 언제나 머리를 거치지 않고 나온다.
하지만 이 녀석이라면 대충 알아듣지 않았을까.
김이월은 고개를 돌리고, 신발 끈을 고쳐 묶으며 말했다.
‘애들 허튼짓 안 하는지만 봐 줘.’
다녀온다는 인사와 함께 김이월은 연습실을 나갔다.
동생들 말은 경청하는 녀석이지만 자신과 대화할 땐 대답조차 듣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포기인지, 신뢰인지는 몰라도.
최제호는 그게 싫지 않았다.
* * *
스파크의 멤버들은 대체로 얌전했다.
가끔 소란스러울 일이 있긴 했지만 다들 개념 있고, 제 앞가림도 잘했다.
그래서 최제호는 김이월의 사소한 부탁 정도는 충분히 들어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저, 형.”
보기 드물게 정성빈이 제 방까지 찾아와서…….
“죄송한데 이거 검색 한 번만 저 대신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성인 인증이 필요하다는 핸드폰 화면을 보여 주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