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05)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05화(105/193)
| 105화. 50분 자기소개 (4)
김이월이 가장 싫어하는 게 무엇인가?
이렇게 질문하면 스파크 멤버들 전원이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아이돌스럽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김이월은 세상만사를 ‘아이돌이 해도 되는 행위’와 ‘아이돌이 하면 안 되는 행위’로 구분하는 사람 같았다.
아니, 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너 이 XX 팬싸에서 무표정을 지어?’
‘그거 물 마시느…….’
‘네가 아이돌 아니었으면 세상천지에 너 만나겠다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새벽 버스 타고 와서 3시간 대기 후에 1시간 만난 다음 얼른 가서 쉬라고 해 줄 사람 볼 수 있을 것 같아?’
팬 사인회에서 최제호의 무표정한 사진 한 장만 올라와도 쥐 잡듯이 잡는 모습이 그랬으며.
‘이청현은 소품 뭐 들고 찍으라고 하지?’
‘걘 얼굴이 열심히 일하잖아.’
‘그게 걔 얼굴이 일하는 거지 이청현이 일하는 거야? 평생 얼굴에 얹혀 가게 둘 작정이야?’
‘아니, 왜 가만히 있는 나한테 그래요!’
멤버들이 행여나 기고만장해질까 봐 조금도 긴장을 놓치지 않는 모습이 그랬다.
그뿐인가.
팬 사랑은 또 얼마나 큰지…….
‘공카나 SNS에 글 쓸 때 다들 톤 신경 쓰자. 우리가 팬분들한테 명령형으로 요청할 수 있는 건 딱 두 개밖에 없어.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거랑 앞 사람을 밀지 말아 달라는 거.’
‘후자는 콘서트 같은 데서나 할 수 있는 말 아니야?’
‘그러니까 그때 말곤 알아서 잘하라고.’
……팬분들에게 보이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어마어마한 신경을 쏟았다.
김이월은 언제든 방심하지 않았다. 그런 김이월의 태도가 갑갑할 때도 있었으나, 김이월 본인은 타인에게 요구하는 것의 배로 엄격하게 살았기에 할 말이 없었다.
멤버들이 김이월에게 불만을 갖지 않는 이유 역시 같을 것이다.
그런 김이월이 자신에게 멤버들을 맡기고 갔다. 허튼짓하지 않게 보라면서.
그런데 아직 미성년자인, 심지어 리더라는 놈이 성인 인증 콘텐츠를 대신 확인해 달라고 찾아왔다?
최제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러나 좀처럼 그런 쪽으로는 기능하지 않았던 탓에, 두뇌 회전은 수 초 만에 멈추고 말았다.
대신 최제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지금 이 녀석을 족치지 않았다간 귀가한 김이월에게 불벼락을 맞을 것이라고.
그리고 생각했다. 김이월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를. 김이월은 대체로 모든 상황을 잘 해결했으니까.
‘일단은 대화를 하겠지.’
최제호는 건성으로 ‘이상한 데 나 끌어들이지 마라.’라며 거절하는 대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다음으로는 해야 할 말을 골랐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가 일이 잘된 적이 없다. 그러니 신중해야 했다.
마음 같아선 부탁할 게 따로 있지, 정신 나갔냐고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봐 온 김이월을 떠올리며 말을 다듬었다.
머릿속으로 정리를 끝낸 뒤 최제호는 질문했다.
“너 뭐 검색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
설령 정성빈이 이상한 걸 검색하려다 들켰다 하더라도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테니까.
최제호는 뿌듯함과 복잡함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이다음에 정성빈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심란해하면서.
그러나 정성빈의 반응은 지나치게 산뜻했다.
“숙취 해소제요!”
“뭐?”
“이월이 형 오늘 술 드시고 오는 거잖아요.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없을까 했는데, 숙취 해소제는 미성년자도 살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연관 검색어를 타고 들어가는 중이었는데…….”
검색어를 쭉 타고 들어가다가 대단히 유용해 보이는 제품을 찾았는데 그걸 눌렀더니 갑자기 성인 인증 페이지가 떴다는 얘기였다. 긴장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허무했다.
“뭐 이딴…… 아니, 그래. 그럴 수 있지.”
최제호는 도리질 치며 황급히 말을 주워 담았다. 그리고 정성빈에게 공기계를 넘겨받아 제 아이디로 로그인을 했다.
“대신 보고 요약만 해 주면 돼?”
“네……!”
그러더니 정성빈이 다이어리를 펼쳤다. 받아 적을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최제호는 아무것도 요약해 줄 수 없었다. 연관 검색어가 정성빈을 숙취 해소제와 무관한 길로 이끈 탓이었다.
이건 네가 찾는 정보와 관계가 없다는 설명을 해 주고 나서, 최제호는 이제 연장자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책임이란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최제호는 기어코 숙취 해소제를 사야겠다는 정성빈과 편의점까지 동행해야 했다.
안면을 튼 이래 처음으로 김이월이 보고 싶었다.
* * *
“형! 영상 떴어요!”
이청현의 외침에 모두가 이청현이 들고 있는 공기계 앞으로 모였다.
화면에는 ‘술 마시는 사람들’ 김이월 편의 썸네일이 올라와 있었다.
업로드 시간은 1시간 전이고, 영상 제목은…….
[소주 싹쓸이범을 찾습니다…… 스파크 이월 편]……이었다.
죄송한데 제목에 너무 내 인권이 없는 거 아닌가? 당황스럽다.
“형, 가서 얼마나 마신 거예요?”
“아, 조금밖에 안 마셨어.”
기껏 대답해 줬는데도 강기연의 눈초리엔 의심만이 가득했다.
“지금 핸드폰으로 보기엔 너무 작으니까, 숙소 가서 노트북으로 볼까요?”
“다 같이 보게?”
정성빈의 제안도 당황스러웠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술 처마시기 쇼 한 걸 다 같이 보겠다 이거 아냐.
내 속도 모르고 정성빈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 멤버 중에선 첫 단독 예능이잖아요! 같이 모니터링해야죠.”
녀석의 티 없는 미소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거 보면, 너희가 촬영 날 밤에 나한테 숙취 해소제 다섯 병을 사다 준 게 얼마나 불필요한 일인지 깨닫게 될 거라고.
영상은 썸네일부터 비범했다.
미소 짓고 있는 나와 경악을 금치 못하는 MC분의 얼굴 사진이 하나씩 들어가 있는 모습은 한 편의 콩트 같았다.
덕분에 나는 무슨 맑은 눈의 광인처럼 나왔다. 수치스럽다.
수상한 편집은 입장할 때부터 시작됐다.
『이월 씨 키가 엄청 크네요? 우리 포장마차 무너지는 거 아니야?』
『영상으로 봤을 땐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앗, 제호랑 있는 영상 보신 걸까요? 그 친구 키가 워낙 커서, 같이 서 있으면 저흰 다 작아 보이거든요.』
『일단 오늘 촬영은 절대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는 걸로 하고, 다음부터 180cm 넘는 사람은 섭외하지 않는 걸로. 오케이?』
가뜩이나 카메라의 왜곡 현상 때문인지 내 키가 문짝 만하게 나왔는데, 방송의 텐션을 위해 과장을 보태신 MC분과 당황한 제작진분들의 멘트로 인해 ‘포장마차를 찾은 거대 인류’처럼 편집이 되었다.
안주로 감자칩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여기저기서 ‘음?’ 하는 소리가 들렸다.
“형, 진짜 감자칩 좋아해요?”
“왜? 거짓말 같아?”
“형이 과자 먹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청현이 지적했다.
“관리하느라 그랬지. 숙소 들어오고 나선 술 마실 일도 없었고.”
“정작 방송에서도 별로 안 먹고 있는데요?”
“맞아, 사실 평소엔 김 놓고 먹었어.”
“와, 현실이 더 하네.”
MC분께 김만 먹일 순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내 설명까지 듣고 나서야 이청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연습생은 늦게 시작했다면서요? 원래는 뭐 하고 싶었어요?』
『구체적인 직업을 생각해 둔 건 아니었지만, 경영학에 관심이 있어서 경영학과에 갈까 생각했었어요.』
『잘 어울린다. 그럼 혹시 돈 계산 잘해요?』
『못하진 않지만, 저희 팀에 인간 전자계산기 같은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에게 일임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봐라. 내가 얼마나 너희들 얘기를 많이 했는지.
졸지에 인간 전자계산기가 된 이청현이 내 허벅지를 때렸다.
이 형 진짜 주책이라고 떠드는데, 내가 봤을 땐 이놈이 더 주책 같다.
여기까진 그래도 좀 사람 같았다.
술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소맥을 타는 모습이나 표정 변화 없이 소주를 원샷하는 모습이 대단한 소믈리에처럼 편집된 게 조금 골 때렸지만 노잼인 것보단 나았으니까.
문제는 시스템이 단기 업무를 뿌리고 간 뒤의 방송분부터였다.
화면이 암전되더니, 하얀 글씨로 짧은 문구가 나왔다.
[그런데,] [저희는 미처 몰랐습니다.] [이 남성의 주량을…….]뒤이어 술 마를 새 없이 채워지는 잔과 그걸 숨도 안 쉬고 연이어 들이켜는 내 모습이 2.5배속으로 송출됐다.
커지는 MC분의 동공, 수군거리는 제작진분들, 늘어 가는 빈병 그리고 무엇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드링킹 중인 나…….
누가 봐도 이상한 놈처럼 보일 거다. 내가 봐도 내 모습이 낯서니까.
예외도 있었다. 바닥에 앉아 있는 학생들의 표정은 ‘신기하다’ 정도가 다였다.
소파 끄트머리에 앉아 있는 최제호만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형, 술 잘 마시는 편이세요?”
정성빈이 물었다. 술을 마셔 본 적이 없어서 감이 잘 안 오는 모양이다.
“그냥 그런 수준이야.”
“뭐가 그냥 그런 수준이야, 말술이고만.”
그래서 좋게 포장하려고 했더니 최제호 이놈이 태클을 걸었다.
웃긴다. 지도 술 안 먹으면서 왜 시비야?
“방송이라 편집이 과하게 들어갔네.”
“그렇다기엔 프레임이 안 끊기는데요?”
“형, 저희 이모부보다 잘 먹는 것 같은데…….”
이청현은 또 지적을 하질 않나, 박주우는 웃어른을 걸고넘어지질 않나.
이게 모니터링이냐? 이렇게 단체로 물어뜯을 거면 모니터링을 왜 해. 청문회를 하지.
정점은 MC분이 빨대를 꺼내 오면서 다가왔다.
『이월 씨, 안 되겠다. 나 이월 씨 잔 채워 주기 너무 힘들어.』
『아, 제가 채워서 마시겠습니다!』
『아냐, 어떻게 손님한테 그래. 내가 대신 빨대 꽂아 줄게.』
그러더니 새 소주병에 빨대를 꽂아 건네주셨지. 아마 재밌는 그림이 될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냐면.
‘이거 내가 다 마시면 한 병 더 카운트다!’
정확히 한 병을 더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그냥 정신 나간 놈 같다.
그렇게 화면에는 소주병을 떨어트리지 않고자 두 손으로 병을 꼭 잡고 빨대로 소주를 빠는 내 모습이 잡혔다.
내 얼굴을 사이에 두고 ‘행복’ 글자와 방울방울 피어오르는 꽃 효과까지, 모든 게 기이했다.
이러니 제목이 소주 털이범으로 올라갔지. 눈물이 났다.
“술이 잘 받는 날이라는 게 있는데…… 저 날이 그랬어서 그래. 많이 먹는 게 좋은 건 아니니까 다른 방송에서 쓸데없는 얘긴 하지 마.”
변명처럼 말하자 녀석들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내 변명은 전부 부질없는 것이 되었다.
주량이 하나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한국 사회에서 병나발을 불어 젖히는 내 모습이 자극을 준 것이다.
“……술·사 이월 편 댓글 모음?”
남의 댓글 모음을 만든 적은 있지만 남이 만든 내 댓글 모음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영상이 올라온 채널은 심지어 스파크 팬 계정도 아니었다.
예능 클립에서 반응이 좋은 부분만 따 와 댓글 모음을 만드는 계정인가 본데, 이런 곳에 내 얼굴이 올라가니 심란했다. 이게 시스템이 자기 PR 점수를 올려 주는 방식인가.
‘이걸 봐, 말아…….’
한참 고민하다가 나는 보지 않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내 결심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날 밤, 이청현은 내 침대를 비집고 올라와 영상을 같이 보자고 들이밀었다.
“형, 이번에 댓글 모음 올라왔던데 봤어요?! 저 아까 쉬는 시간에 보려다가 형이랑 같이 보려고 기다렸잖아요. 감동이죠?”
감동해서 콧물이 다 난다, 이 자식아.
그렇게 본 댓글 모음은 그냥…… 김이월 망신살 대잔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