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06)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06화(106/193)
| 106화. 업무 마무리 (1)
≫ 나 이렇게 마시는 사람 본 적 있어 노포에서
≫ XX 잘 마시네
≫ 저렇게 마시면서 얼굴은 뽀얀 거 봐
이걸 계속 봐야 할 이유가 있을까? 팬분들이 만들어 주신 것도 아닌데?
관심은 감사하지만 너무 부끄러웠다. 숙소 창밖으로 떨어지고 싶었다.
이제 그만 끄자고 하려던 찰나, 짧고 굵은 댓글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 15:38 술 먹는 하마
그걸 보는 순간 나는 결심했다.
아이돌 그만두면 인터넷 안 터지는 곳으로 귀농해야겠다고.
이후로도 술 마시는 사람들 출연은 긴 후유증을 남겼다.
커뮤니티에선 나를 김펩에 이어 말술이나 주당으로 부르고 있었고, 음방에 가면 팬분들이 술 적당히 마시라며 걱정을 해 주셨다.
창피해서 조금 죽고 싶었다. 그래서 저녁 7시에 건전하게 ‘알코올 근절’ 홍보 라이브 방송까지 했다.
‘여러분은…… 이런 거 하지 마요…….’라는 댓글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게 가슴이 쓰렸지만 어쨌든.
그렇게 첫 단독 예능은 자기 PR 점수와 망신살을 주고 홀연히 떠나갔다. 성장의 계절이었다.
* * *
“여러분, 여기가 어디죠?”
“인천랜드요!”
기획부터 진행까지 소란스러웠던 활동을 마무리하며, 스파크는 이번 활동기의 마지막 자컨 촬영을 위해 놀이공원에 방문했다.
얼굴부터 요란한 놈들이 단체로 교복을 입고 카메라까지 대동하자 시선이 안 모일 수가 없었다.
뮤비에서 입었던 교복을 또 입다 보니 심하게 부끄러웠다. 나이 먹고 이게 다 무슨 꼴인가 싶다.
그 와중에 박주우는 어깨를 한껏 움츠려 더욱 주목받고 있었다.
“주우, 어깨 펴. 등 굽는다.”
“그게…… 좀 창피해서요.”
“뭐가?”
의아한 마음에 쳐다보자 박주우가 셔츠의 가슴팍에 붙은 와펜을 손으로 가렸다.
“저만 중학교 교복이라…….”
“디자인은 똑같고 한자만 다르잖아…….”
그러고 다니는 게 더 눈에 띄겠다.
나는 어깨 기울어짐을 방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내가 메고 있던 백팩을 박주우에게 넘겼다. 그리고 박주우의 크로스백을 가져왔다.
가방끈으로 와펜을 가린 박주우는 그제야 함박웃음을 되찾았다.
그러나 박주우의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상하 운동을 하는 꽃봉오리 놀이 기구에 탄 박주우는 새하얗게 질려서 돌아왔다.
원래 목적은 미션에서 진 멤버가 어린이들 사이에서 한껏 어색해하는 광경을 찍는 것이었으나, 박주우의 표정이 너무도 불쌍해 보여서 그냥 멤버 하나 괴롭히기 특집이 되어 버렸다.
새 나라의 어린이들이 더 높이 올려 달라고 외치는 동안 박주우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박주우가 애처로웠는지 직원분은 박주우가 올라탄 꽃봉오리만 바닥에서 빙글빙글 돌게 내버려 두셨다.
“주우 형, 놀이 기구 못 타세요?”
강기연이 벤치에 쓰러지듯 앉은 박주우에게 물을 건네며 물었다.
좀처럼 연장자들의 약점을 지적하는 법이 없는 녀석인데, 박주우의 허연 얼굴에 꽤 놀란 듯했다.
“응…….”
“높은 게 싫은 거야?”
“그런가 봐요…….”
최제호의 말에 박주우가 한껏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박주우를 정성빈이 위로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주우야. 놀이 기구 좀 못 탈 수도 있지!”
“맞아요. 분명 타기 쉬운 것도 있을 거예요!”
이청현도 신나서 맞장구를 쳐 댔다. 어디서 사 왔는지 혼자서만 동물 귀 머리띠에 마스코트 인형까지 달고서.
“그래. 넌 보컬로 충분히 제 몫을 다하고 있으니까 놀이 기구는 못 타도 괜찮아.”
박주우가 계속 기죽은 채로 방송에 나오는 것도 보기 불편한지라, 나도 어깨를 토닥여 주며 위로했다.
그제야 박주우는 긴장이 좀 풀린 것 같다며 다시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에 맞춰 PD님이 개입했다.
“자, 스파크 여러분들! 이제 다음 장소로 이동해 볼까요?”
“네!”
“다음 놀이 기구는 바로…… 토네이도입니다!”
동시에 박주우의 얼굴은 내가 한때 지니고 다녔던 사직서 봉투만큼 새하얘졌다.
* * *
두 번째 라운드는 단체 미션으로 진행됐다.
다 같이 군중 속에서 2배속 댄스를 낙오자 없이 추면 놀이기구 탑승권을 얻는 것.
스파크는 당연히 성공했다. 연습량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거침없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호떡 뒤집개처럼 생긴 놀이 기구를 본 박주우의 손이 덜덜 떨리긴 했으나…….
‘주우 씨, 너무 힘들면 무리하지 않아도 돼요!’
‘네, 그래도…… 한번 도전해 볼게요. 멤버들이랑 같이 타는 거니까요!’
제작진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박주우는 용기를 내 입장했다. 내 자식도 아닌데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놀이 기구가 돌아가기 전까지는.
불상사가 벌어지게 된 이유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내겐 이번이 고작 두 번째 놀이공원 방문이었다.
첫 번째 방문이었던 뮤비 촬영 당시에는 프레임 아웃을 방지하기 위해 역동적이지 않은 놀이 기구만 탔었다.
다시 말해 동적인 놀이 기구를 타는 건 오늘이 처음이란 뜻이다.
둘째로, 나는 뚜벅이였기 때문에 속도를 즐길 일이 없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서울 출퇴근에서 속도가 웬 말이냐. 중간에 정차나 안 하면 다행이지.
마지막으로 나는 그 흔한 영화조차 즐겨 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뭐라더라…… 소위 말하는 ‘깜짝 놀라는’ 상황에 면역이 없었다.
그래서 미처 몰랐다.
내가…….
“형, 이월이 형! 괜찮아요?!”
……놀이 기구를 더럽게 못 탄다는 걸.
* * *
시작은 호기로웠다.
안전벨트를 채우기도 전부터 덜덜 떠는 박주우의 왼편에는 정성빈이 앉고, 오른쪽에는 내가 앉았다.
‘내가 주우 옆에 앉으라고?’
‘옆에 믿음직한 사람이 있으면 안심이 되잖아요!’
……그렇다나 뭐라나. 그래서 그냥 이청현이 시키는 대로 앉았다.
이청현, 강기연, 정성빈, 박주우, 나, 최제호 여섯 사람을 태운 토네이도는 신나는 음악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전에 가속도가 붙는 순간.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나는 X됐음을 직감했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원심분리기로 장기를 다 분리해 내는 기분이었다.
바이킹처럼 높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빠르기로 돌아가는 놀이 기구 정도야 충분히 탈 수 있겠거니 싶었는데.
심지어 앞 차례에 이거 탄 애들 다 교복 입은 학생들이었는데!
옆에서 박주우가 끙끙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오른쪽 자리를 맡은 입장에서 손이라도 잡아 주려던 찰나.
“지금부터 높이, 빠르게 올라갑니다! 돌려, 돌려!”
DJ분의 신명 나는 멘트와 함께 기구가 폭주 단계에 돌입했다.
원래 놀이 기구라는 게 이렇게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건가?
이렇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게 정상인가?
이게…… 맞나?
“야, 괜찮냐?”
옆에서 언뜻 최제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신 빙글빙글 돌아가는 비명만이 마이크에 남았다.
* * *
“형, 물 좀 드세요.”
“고맙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정성빈이 내민 물병을 받아 들었다.
거짓말 안 하고 천당 문 열었다가 그대로 닫고 나온 기분이다. 시스템이랑 허공에서 만날 뻔했다.
“괜찮아요, 형……?”
“안 괜찮아. 심장이 아파.”
벤치 옆자리에 앉은 박주우까지 나를 걱정했다.
아무래도 이 녀석, 옆에서 기절하기 직전이었던 날 보며 자신의 두려움은 조금 잊은 듯하다.
“이런 놀이 기구를 학생들이 타도 되는 거예요?”
“이월 씨, 이거 키 130cm 이상이면 다 탈 수 있어요.”
“네? 230cm는 넘어야 안전할 것 같은데.”
나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힘겹게 벤치에서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어휴, 이 정도로 힘들어하시면 곤란한데.”
“헉, 저희 설마 그거 타러 가나요?!”
PD님의 말에 이청현이 눈을 빛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옆에선 강기연도 더할 나위 없는 집중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래, 지들은 놀이공원 와서 신난다 이거지.
스릴 마니아인 두 사람은 여기 명물인 놀이 기구들이 얼마나 높으며 무서운지를 설명하느라 열을 올렸다.
오늘 하루만큼은 담대한 심장을 가진 막내들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 * *
우리는 그 후로도 몇 개의 놀이 기구를 더 탔다.
놀이공원 명물이라는 케이 익스프레스라는 걸 탈 땐 그나마 배려를 받아 나와 박주우는 밑에서 가방만 지키고 있었지만.
‘로데오 쇼 탑승자는 이월 씨로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저, 제가 형 대신 타면 안 될까요?!’
‘리더의 마음은 갸륵하지만 안 됩니다!’
나는 게임에 집중하지 못한 탓에 눈 돌아가게 회전하는 쇳덩어리에 혼자 타는 비극을 겪게 되었다.
‘이월이 형, 1분만 참으면 된대요! 형은 할 수 있어요!’
‘형, 조금만 힘내요! 옆에 있는 어린이 친구들이 보고 있어!’
‘형, 파이팅……!’
‘저걸 이렇게까지 응원해 줘야 할 일이냐?’
‘저 형 얼굴 보면 응원해 줘야 할 것 같잖아요…….’
어린이들 사이에 섞여 눈을 뜨지도 못하고 끙끙 앓는 나를 다섯 명이 응원해 주는 건 댄스 연습 시간 다음으로 치욕스러운 경험이었다. 다 닥치라고 하려다 고도의 인내력으로 참았다.
이젠 내가 화면에 얼마나 한심하게 나올지 궁금하지도 않다. 돌아가면 숙소 공유기 콘센트를 뽑아 버릴 거다.
“휴…….”
“고생 많으셨어요, 형.”
후들거리는 다리로 내려온 나를 정성빈이 부축했다. 덕분에 모든 걸 포기하고 네 발로 기어다니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어휴, 우리 방송 분량 충분하다. 그렇죠?”
맞은편의 PD님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작가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촬영한 지 20시간쯤 지난 것 같아 시계를 확인했더니 고작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 삼도천을 360번 정도 왕복하고 온 것 같은데?
두 시간 만에 방송 분량이 다 나온 거면 도대체 난 얼마나 추잡하게 나온 걸까. 마음이 너덜너덜했다.
내가 시련을 겪거나 말거나 PD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쯤 저런 프로가 될 수 있을까. 존경스럽다.
“이 형 눈에 초점이 없는데요?”
“누가 쟤 물 좀 줘라.”
강기연과 최제호가 뭐라고 한마디씩 하는 사이, PD님이 박수를 치며 시선을 끌었다.
“저희 이제 인트로랑 쿠키 영상에 들어갈 자연스러운 컷 몇 개 찍을 거거든요? 이제부터 1시간은 자유 시간으로 생각하고 즐기시면 됩니다!”
“정말요?”
녀석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촬영 때문에 몇몇 놀이 기구들을 지나친 게 내심 아쉬웠던 모양이다.
“아, 이월 씨는 힘들면 쉬어도 괜찮아요!”
“아닙니다. 열심히 해야죠!”
순간 본분을 잊고 좋아할 뻔했다. 나대지 마라, 심장아.
그렇게 스파크는 어트랙션을 즐기고 싶은 파와 푸드 코트를 즐기고 싶은 파로 나뉘었다.
최제호는 동생들 노는 걸 방해하지 않고 싶어 하는 듯했으나, 놀이 기구는 짝수여야 타기 좋다며 이청현이 끌고 갔다. 사회성이 결여된 연장자도 챙기는 모습이 대견해, 나는 게임에서 딴 용돈을 좀 더 쥐여 줬다.
나와 박주우는 꽤 여유로운 휴식 시간을 보냈다.
구슬 아이스크림도 나눠 먹고―박주우는 내가 놈의 베스트 샷을 건질 때까지 아이스크림을 한 입도 먹지 못했다―꽤 강력해 보이는 비눗방울 물총도 구경했다.
회전목마도 탔다. 광기의 스릴 중독자들에게선 건질 수 없을 컷이라 탔는데, 기구 밖에서 카메라 감독님들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우릴 보고 있던 게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휴식 시간이 끝나 갈 때쯤엔 벤치에 앉아 한숨 돌리며 어트랙션파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어트랙션파도 시간에 맞춰 약속했던 벤치로 돌아왔다.
박주우가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녀석들이 무슨 놀이 기구를 타느라 머리가 다 망가졌는지를 필사적으로 해명하고 있는데.
“자, 이제 다 모이셨죠?”
“아직 주우가…….”
나는 박주우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PD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뇨, 다 모인 것 맞습니다.”
“네?”
우리는 동시에 PD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여러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친구 주우 씨를 찾아 주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