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08)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08화(108/193)
| 108화. 업무 마무리 (3)
소리가 들린 곳은 여름이면 분수가 나오는 작은 광장이었다.
그곳에서 최제호는 자그마한 수로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잠깐.
수로?
“너 지금 어딜 들어가 있는 거야?”
“이게 물속에 있었는데 어떡하라고.”
최제호의 손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지퍼 백이 들려 있었다. 투명한 지퍼 백 너머로 곱게 접힌 쪽지가 보였다.
“그렇다고 거길 그냥 들어가?”
“애들 물놀이하는 데라 들어와도 된대. 그리고 신발이랑 양말은 벗고 들어왔어.”
출입 금지 구역이 아닌지 확인하는 건 중요하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발도 안 시렵나.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녀석에게 건넸다.
“이걸 어떻게 찾았어요, 제호 형? 대박이다.”
“그냥 보였어.”
최제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그냥이라기엔 상당히 열악한 환경이다. 일단 날이 어둡고, 분수가 꺼져 있어 수로엔 빛이 거의 들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이 녀석의 감이 동물 수준인 거라고 보는 편이 이해하기 쉽겠다.
우리는 조명 밑으로 가 최제호가 건져 온 쪽지를 펼쳤다.
그 안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다 같이 미소를 짓고 사진 찍었던 곳으로 와!
늦으면 안 돼!】
“썸네일용 사진 찍었던 곳 말하는 걸까요?”
“아까 단체로 셀카 찍었던 데 아니에요?”
정성빈과 강기연이 차례로 의견을 냈다.
하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그러니까, 이게 꼭 이상한 지점이라고 하기엔 모호한데.
‘보통 이런 건 구어체로 작성하지 않나?’
‘미소를 짓고 사진 찍었던 곳’이라.
속으로 몇 번씩 발음해 보았지만 좀처럼 입에 붙지 않았다. 웃으면서 사진 찍은 곳이라면 모를까.
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였다.
정말 별것도 아닌데 내가 헛다리를 짚고 있는 거거나, 의도했거나.
머릿속으로 몇 개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스스로 과신해서 좋을 게 없기에, 나는 스파크 공식 전자두뇌인 이청현을 호출했다.
“청현아, 우리 『With List』 뮤비 3절 후렴구 어떤 장면이었는지 기억나?”
“3절 후렴이요?”
내 기억이 맞는다면, 『꿈같은 바람이지』와 『그래도 한 번쯤은』, 『즐거운 얘기를 나누며』의 배경은 멤버의 개인 컷이 촬영된 스튜디오였고.
그 다음 가사에서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에 관람차 나왔어요!”
내 질문의 의도를 깨달은 이청현이 반색을 하며 말했다.
동시에, 나는 다른 멤버들을 돌아보고 외쳤다.
“들었지? 다들 뛰어!”
* * *
정원에서 관람차까지는 거리가 꽤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숨이 턱 끝까지 차도록 뛰어야 했다.
그렇게 밤하늘을 가르는 신호탄처럼 놀이공원을 내달린 결과.
“주우야!”
“형! 얘들아……!”
우리는 관람차 앞에서 2시간 동안 홀로 기다렸을 박주우와 눈물 없는 재회를 할 수 있었다.
“해 질 때까지 기다리느라 추웠겠다.”
“아니야, 괜찮아.”
“아니긴 뭐가 괜찮아요! 이리 오십쇼. 막내가 안아 드리겠습니다.”
박주우는 정성빈과 이청현의 극진한 보호를 받으며 대열의 가운데로 합류했다.
“그럼 저흰 미션 성공인가요?”
그리고 강기연은 야무지게 성공 여부를 확인했다. 정말, 나 빼곤 분업이 확실하다니까.
“그 전에! 여러분, 미션 성공 조건이 뭐였죠?”
“8시 전까지 박주우를 찾는 거 아니었나요?”
최제호가 박주우의 정수리에 손을 얹고 반문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렸다. 성당이나 교회 같은 곳에서 정시를 알리는 것처럼.
그와 동시에, 무언가가 하늘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형, 뒤에!”
돌아본 하늘에선, 관람차 너머로 장대한 불꽃들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놀이공원에 가면 뭘 하고 싶냐고요?’
‘응. 이번 뮤비 주인공은 주우 너니까 팍팍 의견 내 봐.’
‘놀이 기구 타는 건 이미 이야기 나왔던 거니까…… 우리 멤버들이랑 또 하고 싶은 걸 고른다면…….’
뮤비 속의 박주우가 친구들과 보고 싶어 했을…….
‘여섯 명 다 같이 모여서 불꽃놀이를 보고 싶어요.’
그리고 뮤비 바깥의 박주우가 멤버들과 함께 보고 싶어 한 불꽃놀이가, 마법처럼.
‘뮤비에 나오는 저도…… 그걸 원할 것 같아서요.’
형형색색의 별똥별이 밤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미션 성공과 활동 마무리를 축하한다는 제작진분들의 목소리가 아득히 멀리서 들리는 듯 착각할 정도로, 거대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두 번째 활동은 마무리되었다.
* * *
『With List』 활동이 끝나자 UA는 첫 휴가를 선사했다.
UA의 연습생으로 들어온 이래 1년 하고도 3개월간 연습을 쉰 날이 없었건만. 마음속에서 감사의 눈물이 줄줄 흘렀다.
한평산업에서도 연차를 다 쓴 적은 없다. 하지만 휴가가 아예 없는 건 다른 문제였다.
당장에라도 고용노동부에 K-Pop 산업 유지를 위한 아이돌 직무 코드 신설 및 의무 휴가 지급 제도 도입을 신청하고 싶었다. 그래도 일주일 연달아 쉬게 해 줬으니까 참는다.
“일주일이나 쉬는 건 너무 오랜만인데, 다들 뭐 할 거예요?”
연이어 쉰 게 언제인지 까마득할 정성빈이 들뜬 얼굴로 물었다. 그래, 너처럼 일한 사람은 떠날 때도 됐다.
“난 본가.”
“저도 아마 본가 갈 것 같아요.”
댄스 라인의 행선지는 명절 때와 같았다.
생각해 보면 이놈들, 별의별 이슈는 다 터졌으면서도 클럽이나 카지노 이슈는 없었다. 허튼 곳 돌아다닐 걱정은 안 해도 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 명절 때와 행선지가 달라진 녀석도 있었다.
“나도! 이번엔…… 집에 다녀오려고.”
박주우는 이번 휴가에 이모님 댁에 가기로 했다. 이모님께서 갈비찜 해 놓고 기다리시겠다는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까지 들리더라.
참고로 박주우는 나한테도 이모님 댁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거절했다.
‘이모가 형이랑 같이 오라고 했는데…….’
‘아냐, 난 여기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을게.’
정성빈네 부모님이 숙소에 오셨던 것만으로도 그렇게 당황했던 내가 아예 타인의 집에 간다?
분명 어메이징 뚝딱이가 될 거다. 그런 상황은 진작에 안 만드는 것이 백번 낫다.
“어? 그럼 숙소에 이월이 형 혼자 남아요?”
이청현의 말에 모두가 날 돌아보았다.
“그렇겠지?”
“그럼 이번엔 저도 남을게요.”
“성빈이 네가 왜 남아? 설마 나 혼자 숙소에 두기엔 못 미더운 타입이니?”
“아뇨!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정성빈이 손사래를 쳤다.
“나 스물한 살이야. 충분히 혼자 있을 수 있어.”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되물었지만 누구 하나 선뜻 말을 잇지 못했다.
녀석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건 아니다. 오갈 데 없는 멤버 하나만 덜렁 남겨 놓고 집에 가려니 마음이 불편하다, 이런 거겠지.
하지만 말했다시피 나는 어엿한 성인이다.
하물며 스물한 살도 아니고 스물아홉…… 아니다. 어려진 지 1년이 넘었으니 나이 먹은 걸로만 치면 서른은 됐겠네.
서른 먹은 남자 혼자 일주일도 못 있다는 게 말이 되겠나. 다년간 1인 가구를 책임져 온 가장의 자존심이 있지.
“마음 써 주는 건 고마운데, 갈 곳이 있었어도 이번엔 숙소에 남았을 거야. 연습하고 싶은 게 있어서.”
“연습이요?”
강기연이 물었다. 눈동자가 조금 반짝이는 걸 보아하니 본인도 흥미가 동한 듯했다.
“응. 넌 안 끼워 줄 거지만.”
“왜요?”
“네 이번 댄브를 생각해 봐. 여기서 안 쉬면 연골이 죽여 달라고 할 거다.”
발목 부상 예방하려고 작년부터 공을 들였는데 무릎을 망칠 수는 없지.
강기연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내 말에 수긍했다. 입씨름할 일을 덜어 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대충 분위기가 정리된 건가 싶던 찰나, 어쩐 일로 조용히 있던 이청현이 책상을 치며 시선을 끌었다.
“여러분, 왜 저한텐 어디 갈 건지 아무도 안 물어보시죠?”
“넌 본가 안 가?”
“고민 중이었는데 방금 결정했어. 이월이 형이랑 숙소에 남기로!”
“나랑?”
당황스러웠다. 나는 정말로 다리나 허우적거리며 지옥의 솔로 댄스 타임을 보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그러지 않아도 돼, 청현아.”
“아뇨, 이건 저와 형 모두를 위한 선택이에요.”
“왜?”
내 질문에 이청현이 초점 없는 눈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집에 가 봤자 형이랑 동생 중간고사 기간이라 숨도 제대로 못 쉴 거거든요…….”
“아하…….”
“그런고로! 형이랑 끝내주는 휴가를 보내겠습니다!”
“그래, 너 편한 대로 해.”
긴 대화 끝에 나와 이청현은 일주일간 함께하게 되었다.
하지만 설마…….
“형! 대박! 방금 갈매기가 멸치깡 봉지째로 들고 도망가는 거 봤어요?!”
……그 일주일 사이에 부산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지.
나는 갈매기에게 과자를 다 뺏기고 신나서 뛰어오는 녀석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어쩌다 얘랑 여기까지 왔을까.’
사건은 휴가가 시작되기 전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가가 가장 먼 최제호를 시작으로 멤버들은 하나둘 숙소를 떠났다.
그 와중에 마지막까지 우리를 걱정했던 정성빈은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하라며 신신당부하고 떠났다.
그렇게 숙소에는 나와 이청현, 둘만 남게 되었다.
‘형, 연습하러 갈 거예요?’
‘응. 넌 쉴 거면 쉬어.’
‘에이, 형님이 솔선수범하시는데 동생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요!’
여기까진 내 계획대로였다. 평소처럼 밤 연습까지 마친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형! 저희 자기 전에 영화 한 편 보는 거 어떻게 생각해요?’
‘너 안 피곤해?’
‘내일부터 휴가라고 생각하니까 도파민이 계속 나와요. 지금 완전 각성 상태입니다.’
바닥에 눌어붙을 정도로 기진맥진했던 녀석은 금세 신이 나서 리모컨을 집었다.
나는 이청현에게 보고 싶은 게 있으면 틀어 놓으라고 말한 뒤 방에서 노트북을 들고 나왔다. 영상물을 즐겨 보는 편이 아니라, 이청현이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 앞으로의 계획을 좀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가 방에서 나왔을 때, TV에서 흘러나오고 있던 건 영화의 구매 창이 아닌 한 편의 다큐멘터리였다.
화면 구석에는 작은 글씨로 ‘내셔널 인바이런먼트: 바다의 신비’가 적혀 있었다.
이청현은 미동도 없이 눈을 빛내며 화면 속의 바다를 응시했다.
‘얘가 바다를 좋아했던가.’
유년기에 「미끌미끌 바다 생물 도감」을 열심히 읽었단 말이 빈말은 아니었던 듯, 이청현의 두 눈은 TV에 나오고 있는 파도만큼 반짝였다.
그 순간 나는 귀찮은 선택을 하고 말았다.
어차피 이청현 작곡 경험 쌓게 해 주려고 그간 별짓을 해 왔으니, 쉬는 동안 영감이나 실컷 얻도록 현장 체험 한번 시켜 주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