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10)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10화(110/193)
| 110화. 화상 회의
정신적 지주 정성빈
[휴가 중일 텐데 다들 정말 죄송해요.] [스파크에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연 제안이 들어왔다는데, 매니저님께서 다들 의견이 어떤지 슬쩍 물어봐 달라고 해서요.]그러곤 귀여운 캐릭터가 바닥에 엎어져 통곡하는 이모티콘이 와 있었다.
어째 내가 다니는 회사들은 하나같이 쉬는 날에 연락을 할까.
사실 이게 업계 표준인가? 혹독하다, 우리 사회.
큐티 프리티 비주얼리 이청현
[어떤 프로그램인데요?]정신적 지주 정성빈
[이번에 새로 론칭되는 프로그램이래!]왕 귀여운 강기연
[데뷔한 그룹만 나오는 거예요?]정신적 지주 정성빈
[그런가 봐. 지금 전달받은 내용 정리해서 올려줄게, 잠시만!]그 와중에 먼저 확인한 놈들은 벌써 몇 마디씩 주고받는 중이었다. 일에 대한 네놈들의 열정만은 존경한다.
몇 분 뒤, 정성빈에게서 장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정신적 지주 정성빈
[★ 중요 ★대외비이므로 외부에 절대 공유하지 않기!
가제: 아이돌 왕조실록
기획 의도: 케이팝 시장의 명맥을 잇는 K-돌의 성역 없는 서바이벌 프로젝트
구성: 보이 그룹 6팀이 다섯 차례의 무대를 통해 경쟁, 결승전을 통해 승자를 결정
특이 사항: 촬영 일정 때문에 최대한 빨리 회신해야 한다고 함 (돌아오는 수요일 중으로 의견 취합 요망)]
정리 한번 깔끔하다. 남 부장에게 꼭 한번 읽히고 싶었던 ‘리더의 소통법’을 추천한 보람이 있다.
공지도 확인했겠다, 수건으로 머리에 남은 물기를 털고 있는데 이청현이 앓는 소리를 냈다.
“왜 그래?”
“빨리 결정해야 한다는데 저희가 금방 모일 수 있을까 싶어서요. 저랑 강견, 성빈이 형은 학교 때문에 내일 서울로 가지만 제호 형이랑 주우 형은 아니잖아요.”
“꼭 모여서 얘기해야 할 필요가 있어?”
“서바이벌 프로가 얼마나 말이 많은 건인데요. 장기 프로젝트에 경쟁 체제라 내부에서 의견 조율 안 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거든요.”
“그럼 다 같이 잘 얘기해 보면 되지.”
내 대답에도 이청현의 표정은 썩 개운해 보이지 않았다.
“왜? 넌 나가기 싫어?”
“아뇨, 그게 아니라.”
녀석이 뜸을 들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 다들 휴가인데 문자 연락으로 빠른 의사 결정이 가능할 것 같아요?”
“완전 불가능하지.”
“그걸 생각하니 벌써 속이 답답해서…….”
이청현이 가슴을 쳐 댔다.
나는 그런 녀석을 보다가, 덮은 지 고작 30분이나 되었을까 싶은 노트북을 다시 켜면서 말했다.
“청현아, 지금이 몇 세기야.”
“21세기죠.”
“그렇지. 그런데 우리가 고작 공간적 제약 때문에 텍스트로 소통해야 할까?”
나는 단체 메시지 방에 짧게 공지를 남겼다.
나
[다들 화상 미팅 해 본 적 있어?] [방법 알려 줄 테니까 다들 시간 되는 때 언제인지 투표 먼저 하고 가.21:00~22:00
22:00~23:00]
내가 또, 원격 회의 준비는 잘하지.
* * *
‘아이돌 왕조실록’이란 어떤 프로그램인가.
‘아이돌 왕조실록’, 줄여서 아왕실은 간단하게 말해 흔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론칭되는 시기에 나온 아왕실은 초반엔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프로그램명엔 컨셉이 가득했지만 속은 평범한 서바이벌 프로와 별반 다를 게 없었고, 다른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이미 성공한 전작에서 출연진의 성별만 바꾸거나 새 시즌을 달고 오며 초반 시청률부터 차이를 보였다.
이 흔한 경쟁 프로에 흥미를 갖는 사람은 소위 말하는 돌판 고인물 외엔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방영을 시작한 타 프로들이 죄다 망하기 전까진 말이다.
망한 이유도 가지가지였다.
경쟁 프로그램인데 방송사에서 순위를 조작하다 걸려서.
출연진이 방영 기간 중 물의를 일으키고 단체로 하차해서.
MC와 출연자 간에 열애설이 났는데 한쪽은 인정하고 한쪽은 부인해서…… 등등.
유망주들이 떨어져 나가고 남은 건 허허벌판에 홀로 남겨진 아왕실뿐이었다.
아왕실의 지지부진한 버즈량으로 고민하던 제작사는 그 호재를 놓치지 않았다.
≫ 아왕실 최종 우승 그룹 혜택 본 사람
우승 상금 1억
컴백 쇼케이스 지원<< 여기까지가 처음에 공지된 거였는데
우승 상금 3억으로 업
멤버 이름으로 만든 순금 옥새 제작
시즌 2 출연 확정 및 베네핏 지급
이게 추가됨
+ 3라운드부터는 순위별로 무대 제작비도 지급한대
└ 아왕실에 사활을 건 게 틀림없다
무려 프로그램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시즌 2까지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어느 댓글의 말마따나, 아왕실에 3분기 예산까지 투입되면서 온 우주가 아왕실의 성공을 기원(?)한 결과.
아왕실은 약 2년간 보이 그룹 대표 서바이벌 프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실제로 여기 나온 그룹들이 비슷한 해에 데뷔한 팀들 중 가장 얼굴을 많이 알리기도 했고.
스파크가 아왕실에 나가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아왕실에만 나가면 동세대 그룹과의 경쟁 구도에 본격적으로 낄 수가 있으니까.
‘이게 아니면 KPI를 언제 달성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해.’
스파크의 데뷔를 앞당긴 것도, 쉼 없이 자컨을 찍고 남들은 기피하는 예능에 나간 것도 모두 이 아왕실 출연 제안을 받기 위해서였다.
데뷔 일정을 당긴 대가로 아왕실을 비롯한 프로그램 일정도 달라질까 봐 경우의 수를 몇 개 세워 뒀는데, 다행히 상정한 범위 내에서의 오차였다. 미리 예상하지 않았다면 출연진 구성이 반년은 앞당겨진 것에 대해 발이나 동동 구르고 있었을 거다.
이렇게 아왕실에 진심인 날 두고 의견 조율?
어림도 없다. 단체로 대문짝만하게 출연시켜 주지.
* * *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지자 미리 만들어 놓은 줌인 화상 회의 방에 하나둘 접속하는 게 보였다.
기특하다. 고작 메시지로 설명 몇 줄 보냈을 뿐인데 이렇게 알아서들 접속도 하고.
이 정도면 재택 근무하는 회사 가도 첫날부터 얼 타진 않겠다.
“최제호 넌 배경이 왜 그래?”
전원이 모이길 기다리는 동안, 나는 혼자서 하와이에 가 있는 녀석에게 물었다.
『누나가 방 더럽다고 이거 켜래.』
“본가 간 김에 방 좀 치우지 그랬냐.”
『여기 누나 방인데?』
“방을 어떻게 할지는 방 주인의 마음이지, 암.”
멀리서 누군가가 최제호를 한껏 구박하는 소리가 들렸다. 최제호도 지지 않았지만, 누님 방에 신세 지고 있는 거면 알아서 사리라고 말해 두었다.
정시까지 잘 모인 녀석들의 동의를 얻어 회의 녹화까지 켜고 난 후, 본격적으로 아왕실 출연에 관련된 논의가 시작됐다.
출연 희망 여부는 4:2였다. 박주우는 불호를, 이청현은 잘 모르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오히려 강기연이 출연하고 싶다는 게 의외였다.
단발성 프로가 아니라 부담감을 느껴도 이상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제법 의연하게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라고 하더라.
18세 강기연이 일하기 싫다고 가슴속으로 눈물 흘리던 29세 김이월보다 백배는 성숙한 것 같다.
“있잖아, 나는 너희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고 싶어.”
내 말에 녀석들의 시선이 모두 카메라를 향했다.
“하지만 이번 기회는 그냥 넘기기엔 너무 아쉽다.”
그러면서 나는 회의 시간 전까지 급하게 만든 PPT를 켜고 카메라를 화면 공유 모드로 전환했다.
그렇게 약 40분 동안 우리가 아왕실에 나가야만 하는 5만 8천 가지의 이유를 댄 결과.
“이렇게 나오는데 반대를 어떻게 해요?! 어휴, 찬성하겠습니다.”
『……저도요.』
이청현과 박주우는 순순히 의견을 바꿔 주었다. 나는 녀석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그럼 저흰 이제 뭘 준비하면 될까요.』
훈훈한 와중에 강기연이 아주 좋은 질문을 했다.
“안 그래도 내가 이 기회를 빌려 하려던 말이 있었는데.”
『뭔데요?』
“너희 다, 말 좀 놓는 게 어때?”
스파크의 존댓말 해체 건은 작년부터 이어진 나의 숙원 사업이었다.
동생들에게 말을 놓았다는 설정이 있던 탓에 경우 없이 반말을 하게 된 후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뚝딱이인 나를 견인해 주는 스승들에게 숙이고 들어가진 못할지언정, 배우는 입장에서 ‘고맙다.’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건방진가.
서로 존댓말을 하는 게 제일 좋지만 그건 주로 회사에서나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연장자에게 깍듯한 놈들의 성향을 생각했을 때, 나나 최제호가 존댓말을 하면 저쪽이 더 불편해할 게 뻔했고.
그럴 바엔 차라리 모두가 평등하게 말을 놓는 게 낫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안 그래도 관련해서 최제호에게 넌지시 물어봤는데…….
‘애들이 말 놓으면 어떨 것 같냐고?’
‘응. 넌 애들이랑 몇 년 같이 있었잖아.’
‘딱히 상관없는데.’
……그렇다더라.
“프로그램 들어가면 단기간에 무대 기획부터 연습까지 다 진행해야 할 거야. 컴백 준비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시간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여유가 없을 텐데,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거나 연장자 눈치를 보느라 좋은 의견을 내기 어려운 분위기는 팀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
반말하라고 했다고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까지 까먹을 놈들은 아니니 이런 제안이 가능한 거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였는지 모니터 위에 뜬 녀석들의 얼굴이 다들 당혹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형, 그러다 동생들이 너무 깝죽거린다고 후회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 다른 동생들은 별로 걱정이 안 되는데 청현이 넌 좀 신경 쓰인다.”
내 말에 이청현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강요는 아니야. 놓는 게 편한 사람은 놓고,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사람은 평소처럼 해. 뭔가를 건의하거나 피드백을 줄 때 과할 정도로 조심할 필요는 없다는 것만 알아줘.”
“알겠어, 이월아!”
“청현이 말 놓는 거 보이지? 다들 얘 반만큼만 마음 편하게 먹어라.”
그렇게 반말의 자유화를 승인한 결과 박주우와 이청현은 말을 놓는 쪽으로, 정성빈과 강기연은 존댓말을 유지하는 쪽으로 갈렸다. 하여간, 강직함 브라더스 같으니.
나는 정성빈이나 강기연이 ‘형, 춤 똑바로 안 춰?’라고 말하는 모습을 잠시 상상했다.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생각해 보니 웃을 때가 아니긴 하네. 미리 마음 좀 단단히 먹어야겠다.
* * *
다음 날, 나와 이청현은 짧은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숙소에는 강기연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내일 학교 가야 해서?’
‘그것도 있고요.’
월요일 등교를 앞두고 미리 숙소로 온 건가 싶었는데.
‘저희, 아이돌 왕조실록 대비해서 커버 댄스 몇 개 연습해 두기로 했잖아요.’
‘그랬지.’
‘제호 형이랑 따로 얘기해 봤는데, 형은 커버 따는 것도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요. 제호 형 오기 전까진 제가 형 안무 보기로 했어요.’
‘그래, 팀에 따라가지 못하는 놈은 필요 없으니까.’
알고 보니 천방지축 김이월을 담당하려고 온 거였다. 나로 인해 하나 되는 댄스 라인, 보기 좋고 눈물이 난다.
나는 최제호가 광주에서 허겁지겁 올라오지 않아도 되도록 최선을 다해 강기연의 1:1 레슨에 임했다.
‘형, 따라가지 못하는 놈은 필요 없다면서요.’
‘날 두고 가라.’
그러나 내가 댄싱 머신이 되는 일은 없었다.
세상이란 정말 각박한 거구나. 이런 식으로 내가 스파크의 정식 일원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일깨워 주고 말이야.
그 후로도 댄스는 죽을 쒔지만 춤추느라 다른 것에 아예 손을 놓지는 않았다.
무릇 아이돌이라면 하나쯤은 가져야 한다는 개인기도 연마하고, 지방을 깎거나 태워 내며 아이돌력을 높이고 있을 무렵.
“준비 다 됐으면, 스파크 인터뷰 시작해도 될까요?”
초여름보다 성큼, 아왕실의 첫 미팅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