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11)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11화(111/193)
| 111화. 킥오프 (1)
돌판에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존재감은 강력하다.
유망한 프로그램이 나오는 순간 모든 화제성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차지였다.
기성 아이돌은 팬들의 유출을 막으려 전전긍긍하고, 기존 팬들은 타임라인이 프로그램 이슈로 가득 차는 걸 지켜보며, 출연진은 어떻게 해서든 한 방을 터트리려는 치열한 눈치 싸움에 돌입한다.
방송사의 어마어마한 광고 수익을 위해 관계자들은 감정과 시간, 더 나아가서는 돈까지 써 가며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공격 또는 방어를 반복했다.
물론 초기의 아왕실은 그렇게까지 영향력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매일 괴로워했다.
≫ XX 내가 왜 이 진흙탕에 들어왔을까
뭐 좋은 꼴 보겠다고 발목 잡혀서 XX
응원하는 대상을 볼모로 잡힌 시청자들이 피눈물을 쏟는 건 서바이벌 프로를 본 적이 없는 나도 잘 알았다.
나는 휴가가 끝나는 날에 맞춰 UA의 회의실을 빌렸다.
그리고 스파크 놈들을 전부 회의실 안에 밀어 넣었다.
‘내가 나가자고 주장해 놓고 이렇게 말하는 거 염치없지만, 지원 동기는 나랑 말을 맞춰 줘야겠어.’
스파크라는 팀이 ‘아왕실에 임하는 자세’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팬은 내 아이돌이 뭘 하든 예쁘게 봐 주려 노력한다.
무대에서 음 이탈을 내도 컨디션이 나쁜 건 아닌지 걱정해 주고, 안무가 격하면 멋지다고 칭찬을 하면서도 아이돌의 관절을 염려한다.
하지만 내 아이돌이 경쟁 체제에 들어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 애가 연습을 성실히 하는 노력파인 걸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은 불안해진다. 어쩐지 얘가 중요한 국면에서 또 음 이탈을 낼 것만 같다.
칼군무가 필수인 시대에 안무가 제대로 맞지 않아도 조마조마해진다.
당장에라도 해당 구간이 ‘군무돌로 칭찬받던 ◯◯◯ 실제 수준’이라는 자막을 달고 0.5배속으로 돌아다닐 것만 같아진다.
초조해하고, 잘하길 바라며, ‘실수도 실력이지’라는 말만은 듣지 않게 되기를 기도하느라 계속되는 무대를 마음 편히 볼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스파클러에게 그런 경험을 겪게 할 생각이 없다.
날 스파크로 받아 주고 계신 것만도 감사한데 고행을 더 시킬 수는 없지.
‘지원 동기는 더 많이 무대에 서고 싶어서. 목표는 모든 무대를 재밌게 만드는 거야.’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이청현이 되물었다.
‘대답하기 전에 전원에게 물어보고 싶어. 재미있는 무대가 뭐라고 생각해?’
그러자 녀석들은 저마다의 대답을 내놓았다.
퍼포먼스가 화려한 것, 좋은 노래를 부르는 것, 반전이 있는 것, 완벽한 것.
마지막으로는 멤버들의 대답을 하나씩 듣던 정성빈이 말했다.
‘잘한 무대 아닐까요?’
‘역시 성빈이야. 팬덤에 대한 이해가 빠삭해.’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는 무대.
누가 보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무대.
그래서 어떠한 불안감도 없이, 편하게 믿고 보며 즐기기만 하면 되는 무대.
‘도삶 때 기억하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잘한다는 게 곧 즐거움으로 이어져.’
그리고 우리는 모든 무대를 재미있게 만들 예정이지.
이어질 말을 직감한 듯, 녀석들이 침을 삼켰다.
‘1등을 해도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고, 1등이 안 되면 남들이 의아하게 여길 무대를 만들자.’
‘…….’
‘누구랑 붙든 이길 각오로 하자고. 즐겁게.’
그렇게 스파크의 컨셉은, ‘남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걸 다 하지만 실력이 있어서 딱히 뭐라고는 안 하게 되는’ 즐겜러로 결정되었다. 아주 일방적으로.
* * *
아왕실 캐스팅의 막차에 올라타면서, 스파크는 아왕실의 막내가 됐다. 데뷔한 지 이제 고작 3개월 된 따끈따끈한 신인이니 말이다.
“스파크가 저희 프로그램에서 제일 막내인데, 기분이 어때요?”
그래서인지 사전 미팅에서 나온 인터뷰 질문도 연차와 관련된 게 많았다.
막내인데 부담스럽지 않겠느냐, 친한 선배 그룹은 있느냐 등등의 질문이 오갔다.
그래 봤자 위로 고작 1년 차이 나는 게 최대지만.
출연을 결정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얘기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정성빈과 이청현을 제외하면 사교성이 바닥을 치는 놈들이다. 어디 가서 욕먹을 짓은 안 하겠지만, 그렇다고 싹싹하게 굴 성격도 아니라서 말이지.
그래도 연습생 때부터 시켜 온 미소 교육 덕분에 녀석들의 뼈엔 아이돌의 바른 자세가 새겨져 있었다.
지금만 해도 놈들은 화기애애하게 제작진분들과 인터뷰를 이어 가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스스로 친구 삼고 싶은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면 모를까, 고작 같은 프로그램 나왔다고 일부러 사교성을 발휘하라고 할 생각은 없다.
관계성이라는 게 같은 그룹 내에서나 중요하지, 성적에 좋은 영향을 주진 않더라고.
“어떤 선배님들과 함께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즐겁게 임하려고 합니다!”
정성빈이 대답했다.
참고로 저 말은 거짓말이다.
나는 이미 기억나는 선에서 누가 나올 것 같은지를 멤버들에게 전부 공유했다. 덕분에 우리가 막내라는 소식을 듣고 놀라는 척하는 연습도 따로 해야 했다.
먼저, 총 여섯 그룹 중 명실상부 이번 시즌의 핵심 출연진이 될 파르테.
8인조 퍼포먼스 그룹으로, 작년에 데뷔했다.
‘파르테랑은 웬만하면 엮이지 말자.’
‘네?’
‘피하자고.’
내 통보에 멤버들은 당황스러워했다.
‘반응이 왜 그래?’
‘1등 노리자고 말한 거랑 너무 대비되는 거 아니야, 형?’
나는 어느새 한껏 호전적으로 변한 이청현에게 친절히 설명했다.
‘비교될 것 같아서 피하자고 한 거 아니야.’
‘그럼?’
‘엮여서 좋은 꼴 못 보니까 피하자고 한 거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주우가 시선을 피했다. 한강에서 달리다가 송민일의 욕 메들리를 들은 추억이 떠오른 모양이다.
꼭 송민일의 건이 아니더라도 파르테 역시 과거의 스파크만큼이나 말이 많았다. 스파크 말고는 아이돌 사정을 거의 모르는 나도 깊이 생각해 보면 큰 사건 몇 가지는 떠올릴 수 있었다.
사생과의 연애, 양다리, 탈세, 태도 논란…….
더 얘기할 것도 없다. 파르테에겐 누구보다 객관적인 평가 외엔 아무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끝.
파르테 다음가는 유망주로는 올오버가 있다.
파르테와 좋은 케미를 보이며 아왕실에서 파르테 다음으로 큰 수혜를 입은 그룹이다.
이 팀은 기억이 전혀 안 나서 서치를 다시 해 봤다. 그리고 이걸 어떻게 잊었나 싶은 얼굴을 발견했다.
감옥에 간 놈이 있더라고.
아왕실이 논란으로 핫해졌던 프로그램이었나 순간 헷갈릴 뻔했다. 그래서 이 팀에도 객관적인 평가 외엔 아무것도 허용치 않기로 했다.
반대로 특별히 떠오르는 게 없는 그룹도 있었다. 그런 팀은 그룹명만 공유하는 선에서 그쳤다.
‘그리고 로그 선배님, 스티키 선배님, 베리온 선배님들이 나오실 거야. 우리가 제일 막내일 거고.’
‘형은 이걸 어떻게 알았어……?’
‘치밀한 분석 덕분이지.’
다들 완전히 믿는 것 같진 않았지만, 뭐.
“스파크의 목표 등수는 몇 등이에요?”
“꿈은 크게 가지라고 했으니까, 1등으로 할까요?”
그러더니 이청현이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정성빈과 박주우도 활짝 웃었다. 두 놈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게 보였지만, 적어도 겉으로 티가 안 난다는 점에서 가산점을 주겠다. 이 자세로 막방까지 열심히 하길 바란다.
* * *
사전 미팅 후 우리는 다시 UA의 회의실로 모였다.
아왕실의 첫 녹화일에 진행될 자기 PR 무대의 준비를 위해서였다.
진행자이자 컨셉 제안자는 아왕실 출연을 적극적으로 희망했던 내가 맡기로 했다. 덕분에 첫 휴가 죄다 반납하고 PPT만 만들었다.
“청현아, 녹음 버튼 켰어?”
“어. 시작하면 돼!”
이청현이 내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저 녀석, 자기가 서기 맡을 차례가 되자 AI 자막 생성 기능을 써서 녹취록을 쓰겠다며 바로 애플리케이션 결제를 때렸더라.
부족한 부분이 생기면 자기가 직접 보완하겠다길래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청현의 디지털화가 아니니 넘어가고.
“그럼 5월 XX일, 아이돌 왕조실록 자기 PR 무대를 위한 컨셉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사전에 아젠다 공유한 건 다들 확인했지?”
“네, 멤버들이 올려 준 의견은 취합해서 단체방에 새로 올려놨어요.”
정성빈이 메시지 창의 의견들을 긁어 모니터에 띄웠다. 동시에 문 쪽에 앉아 있던 강기연이 회의실의 불을 껐다.
“스파크 고유의 컨셉인 청춘 소재를 쓰자는 의견이 반, 이미지 쇄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반이었잖아. 각자 올린 의견은 지금까지 유효해?”
“네.”
“어.”
놈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면에는 녀석들이 마감일까지 보낸 주장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나는 정성빈에게 고생했다고 말한 다음 다시 한번 모니터를 훑었다.
제호
요약: 새로운 컨셉 희망
사유: 같은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인상에 남지 않음
성빈
요약: 기존 컨셉 유지 희망
사유: 자기 PR 무대의 성격을 고려하면 팀의 색채를 보여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함
주우
요약: 기존 컨셉 유지 희망
사유: 지금 멤버들과 현재 컨셉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함
청현
요약: 새로운 컨셉 희망
사유: 서바이벌 프로그램 특성상 강한 첫인상을 남기는 게 필요함 / 지나치게 유사한 컨셉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음 /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팬을 위한 무대를 주제로 주는 경우가 많은 만큼 청춘 컨셉은 팬 헌정 무대에서 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함
기연
요약: 기존 컨셉 유지 희망
사유: 팬분들이 지금 컨셉을 좋아해 주시는 덴 이유가 있을 것 → 대중적으로도 큰 거부감이 없을 것으로 예상됨
근거까지 붙이고, 훌륭하다.
이청현은…… 내가 좀 호랑이 새끼를 키운 것 같긴 하다만.
“내가 보기엔 다들 일리가 있는 말을 한 것 같더라. 그래서 이 의견들을 최대한 취합한 안을 제시해 보려고 해.”
나는 곧바로 PPT의 화면을 넘겼다.
‘신입 아이돌의 얼렁뚱땅 서바이벌 입성기’라는, 이번 무대의 대주제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