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12)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12화(112/193)
| 112화. 킥오프 (2)
얼마 전 지상파에 생겨난 아왕실 채널.
그곳에 이제 막 새로 들어온, 아직은 새파란 신출내기 아이돌 스파크의 뚝딱거리는 하루가 공개된다!
“오…….”
이청현이 짧게 감탄했다. 저게 긍정적인 신호인지는 모르겠다.
“음……. 저것만으로는 너무 무난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준비했어.”
정성빈도 이청현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나는 연이어 다음 페이지를 띄웠다.
‘느슨한 컨셉에 긴장감을 선사하는 방법’이라는 제목 밑에 흰 티에 청바지를 입은 청순한 미남 배우의 사진과 공식 홈페이지에서 퍼 온 헬라스 폴로의 멋진 사진이 나란히 첨부되어 있었다.
“이 형 이러는 거 보면 가끔 미래 보는 것 같다니까. 형, 혹시 어디까지 예측할 수 있어?”
“조만간 내가 너랑 1:1 면담하는 것까진 보이네. 회의 끝나고 좀 남아라.”
이청현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래, 너도 면담은 싫지?
“우선 이쪽 이미지부터 설명할게.”
스파크의 근간은 청춘에 있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청춘, 청순, 순정 기타 등등이 유구하게 강자의 자리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란 말, 다들 한 번씩은 들어 봤을 거야. 그럼 가장 ‘청춘’다운 모습은 어떤 모습일 것 같아?”
자기 PR 무대의 컨셉을 고민하며 나는 청춘의 사전적 의미를 몇 번이고 곱씹었다.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가장 빛이 나는 시절.
청춘의 근원은 생명력, 역동성 그리고…….
“극도로 순수하게 아름다운 모습. 나는 그게 청춘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해.”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 들판에 던져 놓기만 해도 눈에 띄는 것.
누구에게든 호불호 없이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
“그리고 마침 너희에겐 청춘 서사에 딱 맞는 재료가 있지.”
“그게 뭔데요?”
“얼굴.”
누구도 밟지 않은 설원처럼 티 없는 피부.
숨만 쉬어도 겨울날 빙판 위에서 들이켜는 한 병의 탄산수 같은 미소.
북극의 추운 바다 위에 펼쳐진, 꿋꿋하고 단단한 빙하를 연상케 하는 피지컬까지.
파랗다 못해 시퍼렇게 보일 정도로 청춘스럽다. 여기에 흰 티 하나만 입혀 놓으면 이온 음료 광고가 따로 없을 거다.
‘예산 많이 달라고 하기 애매한 상황이라 이쪽 노선을 결정한 것도 있긴 하다만.’
유한수와 제작 팀의 횡령 시도 건으로 사내가 뒤숭숭한 터라 일회성 무대를 위해 돈 달라고 떼쓰기가 곤란해졌다.
하여튼 그 인간, 매사에 족족 걸림돌이다. 내가 어떻게든 치워 버리고 만다.
“고인물이 맵에서 민소매 티 한 장만 입고 돌아다니는 거랑 같은 거군요…….”
“무슨 비유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성빈이 네가 이해한 게 맞을 거야.”
나는 미남 배우의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인트로에서 한 번, 엔딩에서 한 번. 충격적일 정도로 얼굴을 자랑해 스파크가 어떤 팀인지를 각인시킨다……. 이게 내 계획이야.”
그러자 구석에 있던 강기연이 손을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참가자들 전부 아이돌인데 이 공격이 먹힐까요?”
“뭐?”
아주 건방진 발언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도 안 나왔다.
과거, 유한수가 프로듀싱했던 무맥락 무근본 뮤비에서조차……
≫ 뮤비 좀 X같으면 뭐 어때
얼굴에 서사가 있는데
……소리를 들었던 스파크다.
그런데 뭐? 네놈들 얼굴 공격이 먹힐지를 걱정해?
“나 같으면 기연아, 이 기회에 외모 지수를 좀 더 높여서 확실하게 네 얼굴이 얼마나 보물 같은지 알릴 방법을 생각하겠어.”
아무래도 강기연 저거, 이청현이랑 같이 다니다 보니 미적 감각이 이상해진 모양이다. 이해는 하지만 괘씸해서 저놈만 오늘 저녁에 비타민을 두 포 먹이기로 했다.
“아이돌 쪽은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대충 이해가 가지? 아이돌다운 의상 입고 평소처럼 무대 잘하면 돼. 대신 마지막엔 누구보다 풋풋하게 끝나야 한다는 거 잊지 마.”
“무슨 얘기인지는 알겠는데, 이거랑 신입 아이돌이 무슨 상관이야? 프로 아이돌의 온오프에 더 가깝지 않나?”
마침 최제호가 좋은 질문을 해 줬다.
“프로면 안 돼. 어떻게 얼렁뚱땅한 모습을 어필할지는 너랑 기연이에게 맡기겠지만, 절대적으로 신입 아이돌 컨셉을 우선시해 줘.”
“출연진 연차도 비슷할 거라며. 누가 봐도 잘한 무대를 만드는 게 더 좋지 않나.”
“무대 자체는 물론 평소처럼 잘해야지. 말했잖아. 얼렁뚱땅한 모습을 ‘어필’하는 거라고.”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진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지금은 몰라도 괜찮아.”
어떤 팀도 첫 방송부터 도박을 하진 않을 거다. 익숙한 노래로 그간 자기들이 해 왔던 컨셉을 하겠지.
그 사이에서 스파크가 눈에 띄는 방법은 두 가지.
첫째로, 남들이 안 하는 걸 해야 하며.
둘째로는…….
“마지막엔 우리가 아왕실의 정체성이 될 거니까.”
……서사를 잡아야 한다.
프로그램과 떼려야 뗄 수 없는.
* * *
시간은 급박하게 흘러, 아왕실의 첫 녹화일이 되었다.
UA의 지하 연습실에 갇혀 샐러드만 먹으며 연습하던 우리도 오랜만에 햇빛을 봤다.
그동안은 새벽에 연습실 가서 한밤중에 귀가하느라 별밖에 못 봤다. 그냥 어게인 한평산업 아닌가 싶다.
그래도 잘 재우고 운동도 열심히 시킨 덕분인지 놈들의 얼굴은 때깔이 남달랐다.
아무렴, 낯빛이 고와야지. 오늘 무대는 이 녀석들 얼굴이 없으면 전부 말짱 도루묵이니까.
나도 요 며칠간 모니터링 끊고 혈색 되찾기에 돌입했었다.
극적인 효과는 없었지만, 스탭분이 눈 밑을 두드리는 힘이 줄어든 걸로 봐선 헛수고는 아니었나 보다.
가뜩이나 시스템이 오랜만에 나타나서는……
+
[SYSTEM] ‘책임자’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김 대리,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 일 없어? 내가 업무 좀 더 줄까?
+
……라며 시비를 거는 통에 다 망칠 뻔했지만. 이 새X는 가만히 있다가 왜 백주 대낮에 튀어나와서 설치는지 모르겠다.
“형, 오늘 스튜디오 분위기 어떨 것 같아?”
옆자리에 앉은 이청현이 내 어깨에 팔을 올리며 물었다.
“적당히 가식적이고 좋겠어. 가면 꼽 좀 먹긴 하겠다. 그리고 화려한 의상들 사이에서 우리만 순수 여름 소년일 거야.”
“아, 괜히 물어봤어!”
그러게 누가 사람을 점쟁이 문어 취급하래?
그리고 이걸 예상해야 아나. 안 봐도 뻔하지.
아니나 다를까 입장하는 순간부터 우리를 향한 시선이 묘했다.
일종의 기선 제압이다. 하지만 반짝거리는 얼굴로 저러는 시점에서 별로 위협적이진 않았다. 오히려 우리만 너무 한량 같은 차림으로 와서 송구하다면 모를까.
그리고 스파크가 어디 가서 하극상을 하길 했어, 뒷말하기를 했어. 켕길 게 없으니 이쪽은 당당하다, 이 말이야.
우리는 먼저 와 있었던 선배님들께 기운차고 예의 바르게 대가리를 박은 다음 자리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파르테가 모든 주목을 다 받으며 등장하자, 여섯 자리가 가득 찼다.
이렇게 넓은 공간에 남자만 어림잡아도 쉰 명이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군대가 떠오른다.
머릿속으로 그 시절 내무반이나 회상하고 있는데 대형 전광판에 불이 들어왔다.
출연진들이 등장할 때마다 그룹명을 띄워 주던 전광판에는 ‘MC’라는 새 글자가 나타났다.
뒤이어 전광판의 가운데가 크게 갈라졌다.
“어?”
“우와!”
그리고, 전광판의 뒤에서 누군가가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반갑습니다, 아왕실 참가자 여러분. 아왕실의 MC를 맡게 된 헬라스 유르입니다!”
MYTH 소속 보이 그룹이자 몇 년 전까지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MYTH 최고의 아웃풋, 헬라스의 리더였다.
아이돌의 숙명이라는 자기 관리가 멀끔한 얼굴과 군살 하나 없는 옷매무새에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MYTH 입김…… 장난 아니네.’
멤버들과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하면서도 머릿속은 MYTH가 아왕실에 어디까지 개입했을지를 생각했다.
조작 논란으로 다른 프로그램들이 전부 머리채를 잡힐 때도 아왕실만은 멀쩡했으니 점수 조작은 아닐 테고.
그 전에 출연진을 정하는 선 정도까지만 개입한 게 아닐까, 싶다. 여기서 파르테와 팬덤으로 붙어서 이길 팀은 하나도 없으니까.
“여러분과 함께 새 역사를 써 내려갈 생각에 저도 설레네요. 여러분도 앞으로 어떤 무대가 펼쳐질지 기대하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진행은 그 후로도 물 흐르듯 흘러갔다.
출연진과 같은 소속사가 MC로 나오는 건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논하기도 멋쩍을 만큼 유르의 진행에는 내공이 있었다.
남 부장 때문에 열띤 대리 덕질을 하긴 했지만, 내 관찰 대상은 어디까지나 스파크였다. 그래서 스파크가 나오지도 않았던 아왕실 MC도 몰랐던 건데.
이렇게 특정 그룹과 자주 엮일 줄 알았으면 예전에 연예 기사 좀 열심히 볼 걸 그랬다.
다음에 또 폴로 씨네 라디오 나가면 아왕실 얘기만 잔뜩 하고 나오겠구나, 하고 속으로만 생각하던 찰나.
출연진들과 하나씩 눈 맞춤을 하며 멘트를 이어 가던 유르 씨와 눈이 마주쳤다.
남들하고 다 눈인사하고 있으니 시선이 마주친 건 그렇다 치는데.
‘방금 묘하게 웃지 않았나?’
표정 읽기 자격증이 있다면 1급은 따고도 남을 나다. 그런 내 눈이 저 정도의 표정 변화를 잘못 읽었을 리가 없다.
의아해할 새도 없이 유르 씨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넘어갔다.
어쩔 수 없지. 찍힌 거면 당분간 대기실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겠다.
* * *
프로그램과 관련된 설명은 유르 씨에 의해 간략하게 소개되었다.
특별할 건 없었다.
차고 넘치는 서바이벌 프로 사이에서 차별화를 두려고 조선왕조실록 컨셉을 가져온 것뿐, 이때의 아왕실엔 특별한 아이디어 같은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유의미한 걸 찾으라면 K-돌의 진검 승부를 내겠다며 해외 투표를 막겠다고 대대적으로 선포한 점 정도 아닐까.
본인들도 프로그램이 잘되고 나자 투표 수익이 아쉬웠는지 시즌 2에서는 사절단의 문화 교류라며 은근슬쩍 해외 투표의 길을 열었지만.
적어도 시즌 1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굳이 스파크를 끌고 아왕실에 나온 이유도 이것이었다. 웬만하면 데뷔 빠른 놈이 우세인 해외 시장의 개입을 제작진이 알아서 배제해 주니,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한 막내 스파크에겐 최적의 환경이 된 것이다.
그 외에도 매 무대에서 장원을 차지한 그룹엔 어사화 배지를 주겠다는 등의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그걸 가슴팍에 달면 조금 모양새가 달라지지 않나 싶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렇게 길고 긴 프로그램 설명이 끝나고 나서야 자기 PR 무대의 서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