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14)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14화(114/193)
| 114화. 재정난
1차 경연 준비를 위해 회의할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몇 개월 일찍 데뷔한 선배님답게 파르테는 앨범을 꽤 많이 냈다. 미니도 있고 싱글도 있고.
가진 거라곤 미니 한 개와 싱글 한 개가 전부인 스파크와는 달랐다.
선택지도 저쪽보다 많겠다, 아왕실 출연을 대비해 미리 봐 둔 컨셉들도 있겠다.
고민할 거라곤 컨셉 왕, 특히나 화려한 자본으로 무장한 파르테의 곡 어디에 청춘을 욱여넣을지 정도였다.
매니저님이 예산안을 들고 오시기 전까진.
“가용 예산이 이 정도……라는 거죠?”
“응, 그렇게 됐대.”
“무대 하나가 아니고…… 프로그램 전체 합쳐서?”
“……응.”
나는 다시 한번 찬찬히 숫자를 읽었다.
콤마가 밀린 건 아닌지, 사실 숫자 하나가 빠진 거라 합계만 잘못 나온 건 아닐지도 면밀히 확인했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쓸 수 있는 돈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에, 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매니저님, 혹시 회사에서 다른 아이돌 그룹도 준비하신대요?”
“그런 거 아니야. 사실…… 지금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내부 감사 중이거든. 다른 부서도 다 결재받기 까다로워졌어.”
요약하자면, 유한수와 제작 팀 팀장 간의 횡령 시도 정황이 발각되면서 UA가 대대적인 지출 내역 검토에 들어갔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고려해도 이 예산은 말이 안 됐다. 당장 스파크가 아왕실과 지역 축제를 번갈아 가며 뛰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아무리 스파크가 아직 손익분기점을 못 넘었다지만, UA가 이 정도로 투자를 하지 않는 회사는 아니었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머리로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였다. 며칠 전 잠깐 튀어나와 거슬리기만 했던 시스템이 다시 나타났다.
+
[SYSTEM] ‘책임자’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김 대리, 회사에서 김 대리 쓸데없는 짓 하고 다니라고 교통비 주고 그러는 줄 알아? 자기 하고 싶은 일 할 거면 나가서 사업을 하지, 회사는 왜 다녀?
[SYSTEM] ‘을’에게 ‘내규 위반’이 고지됩니다.▷ ‘을’은 정보의 불균형에서 오는 이득을 공정하게 사용해야 하는 ‘공정함 의무’를 갖습니다.
▷ 기존의 역사와 과도하게 다른 행보가 발견될 경우, ‘을’이 공정함 의무를 어긴 것으로 간주합니다.
▷ ‘을’의 행위가 역사를 바꾼 정도에 따라 ‘을’이 처한 환경을 이용한 제재가 가능합니다.
[SYSTEM] ‘을’에게 ‘내규 위반’에 따른 제재가 고지됩니다.▷ 내용: UA에서 지급하는 가용 예산 축소
▷ 사유: ‘아이돌 왕조실록’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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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네가 1위 하라고 시켜서 이러고 있는 거잖아!
스파크가 아왕실 나간다고 누가 죽냐? 천기의 흐름이 바뀌어?
어차피 낼 앨범 뜯어고치는 건 되지만 안 하던 짓을 하면 천벌이라도 받는 거야?
머리로 피가 쏠리는 게 느껴졌다. 두 눈이 뜨거웠다.
기준도 불명확한 잣대를 들이밀면서 손발을 묶어 놓으면 대체 뭘 하라는 건가.
지금까지도 시스템을 이해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이 부분만큼은 시스템의 의도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월아, 갑자기 왜 그래?”
말없이 허공을 노려보던 내게 매니저님이 물었다.
나는 잠깐 생각 중이었다며 둘러대고는 다시 예산안을 살폈다.
내 환경을 고려해서 제재를 가하는 거라면, 내가 유한수를 찌른 걸 역이용해 이 상황이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시스템이 조작을 했단 거겠지.
내가 안일했다.
시스템이 나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관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나만 입 닥치고 행동하면 별문제는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손쉽게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그걸 현실화할 수 있다면, 누나가 죽게 내버려 두거나 내가 제 발로 한평산업에 가게 만드는 건 얼마나 쉬울까.
눈앞이 캄캄했다. 어려진 첫날 이후로 오랜만에 무력감이 나를 덮쳤다.
무력함을 느껴도 일개미는 일을 해야 하니까, 가만히 널브러져 있을 수는 없었지만.
대책이 필요했다. 대대적인 계획 변경도.
* * *
가끔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아니, 480시간 정도였으면 좋겠다.
1차 경연까지 주어진 시간은 2주.
원래는 하루 이틀 사이에 곡과 컨셉을 정하고, 사흘 차에 디벨롭을 한 다음 일주일 차에 중간 점검, 마지막에 여섯 명이 합심해서 무대를 열심히 찢을 계획이었지만…….
다 틀려먹었다.
나는 예산안을 본 순간부터 한숨도 못 자고 노트북과 하나가 되었다. 덕분에 어제와 오늘 식빵은 최제호가 구웠다.
“후…….”
“형, 괜찮아……?”
머리를 식히려 천장을 보고 있던 와중 박주우가 방으로 들어왔다.
“어, 괜찮아. 애들은 학교 갔어?”
“응.”
“그래. 우리도 연습 가자.”
연습할 게 정해지지 않았음에도 연습하러 가야 한다는 것부터 마음에 안 들었지만 불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UA에 발을 디딘 지 3분 만에 복도를 서성이고 있던 유한수와 마주쳤다.
본인 때문에 회사 분위기 개같아졌으면 알아서 눈에 좀 안 띄게 돌아다닐 것이지.
하여튼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 열받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대한민국이 유교 사회라는 것을 염불처럼 되뇌며 유한수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나자 체력의 절반이 깎였다. 다 때려치우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는지, 기획 팀의 자문도 받으며 어찌저찌 아이템까지 잡았다. ‘선의의 경쟁’으로.
우리가 고른 파르테의 세 번째 싱글 타이틀 『Desire』는 신의 성물을 탐내는 욕망을 주제로 한 곡이었다.
멤버 전원이 견장에 망토까지 달린 제복을 입고 나와서 거대한 조각상 앞에 기사의 맹세를 하고 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시각적으로 엄청난 인상을 주는 뮤비를 찍었으나…….
일단 우리는 견장에 수수깡도 못 달 형편이라 더 멋진 의상으로 압도하는 방식은 제외하고, 스파크가 탐낼 만한 대상이 무엇인지를 재해석하는 데 집중했다.
경쟁에서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
1위를 향해 날뛰는 즐겜러가 추구해야 할 가치라면 승리일 것이다. 이것을 메인 키워드로 삼았다.
다음으로는 수단을 고민했다.
무엇으로 승리를 보여 줄 것인가?
모두에게 친숙하면서 땀 흘리는 느낌도 보여 줄 수 있고, 경쟁은 하되 어둡지 않은 걸론 스포츠만 한 게 없다. 따라서 전체적인 컨셉은 스포츠로 잡았다.
그래서 이 무대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었다.
정정당당히 싸우고, 이겨서 명예를 얻는다.
이 메시지는 다섯 명 모두에게 합격점을 얻었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돈이 모자라.”
인원수에 맞춰 불꽃 고등학교 배구부를 창설하겠다는 원대한 목표까지 설정했으나, 문제는 돈이었다.
홍당무 어플에서 업자가 똑같은 의상을 여섯 벌 올리는 걸 사지 않는 한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은 요원했다.
무대에서 반드시 비싼 옷을 입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옷이 옷다울 때의 이야기다.
배구부라고 진짜로 형광 연두 티셔츠만 입혀서 내보냈다간 조기 배구 동호회도 너희보단 옷 잘 입겠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을 거다.
명색이 경쟁 프로인데 유니폼만 덜렁 입혀서 올려 보낼 수도 없고.
한숨이 나왔다.
타개책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사비를…… 쓰면 되니까.
쓰기가 XX게 싫어서 그렇지.
남 부장의 패키지여행 선결제 이후로 사비 처리는 두 번 다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심지어 이 돈은 정말로 받을 기약이 없는 돈이지만!
내가 엄한 프로그램에 끌어들인 데다가, 나 때문에 예산도 줄었는데 ‘있는 걸로 어떻게든 잘해 보자!’라고 할 자신은 없다.
나는 주식 장이 닫히기 전에 곧장 매니저님을 찾아가 핸드폰을 받았다. 그리고 잘 오르고 있던 주식 몇 주를 팔았다.
예수금 출금이 가능해지면 구매 목록에 있던 것 중 절반은 구할 수 있을 듯했다.
남 부장의 따님께서 이런 내 모습을 보셔야 할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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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책임자’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김 대리, 혹시 금수저야? 돈 많나 본데? 부모님 뭐 하신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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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가가 촉촉해질 새도 없이 시스템이 나를 조롱했다. 마음 같아선 저 창을 깨부수고 싶었지만, 그럴 기력도 없어 관뒀다.
* * *
동료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동료의 성장은 곧 우리 팀의 업무 부담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그러나 모든 성장이 꼭 득이 되지만은 않는 듯하다.
“제호 형이랑 계속 얘기를 해 봤는데요. 아무래도 이번엔 형이 가운데에 많이 와야 할 것 같아요.”
믿고 있었던 강기연 놈이 내게서 아늑한 변두리 자리를 빼앗아 가는, 오늘 같은 불상사도 일어나니 말이다.
“어떤 점 때문에?”
나는 당혹스러움과 불쾌함을 숨기고 물었다.
아무래도 이놈들, 나 때문에 예산이 줄어든 걸 알고 내게 복수하는 게 틀림없다.
파르테와의 전면전에 나를 방패로 내세우고, 잘 싸우지도 못한 싸움이라는 불명예를 안겨 줄 셈이지. 치밀한 계획에 오히려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내 속에서 소용돌이가 치는 것도 모르고 강기연은 덤덤했다.
“안무 중간에 배구 동작을 응용해서 넣은 부분 있잖아요. 계속 봤는데, 형 말고 다른 멤버들은 그 느낌이 안 살아요.”
“그래?”
내가 보기엔 다들 잘 춘다고 생각했는데, 강기연 눈엔 좀 더 실제적인 편이 나아 보였나 보다.
“형이 사이드로 빠지면 약간…… 어린이집 학예회 끄트머리에 선생님도 껴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차라리 욕을 해, 기연아.”
하지만 강기연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이해했다.
하필이면 스파크에 배구를 해 봤던 녀석이 거의 없었기에, 배구 경험자라곤 대학이나 군대에서 이리저리 불려 다녔던 나뿐이었다.
졸지에 댄스 라인 사이에서 허접한 모션을 보여 주며 설명하느라 아주 곤혹스러웠다. 그런데 더한 상황에 처할 줄이야.
무대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라니 거절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다섯 명이서 기획, 편곡, 개사, 안무 창작 다 해 먹으면 훨씬 더 나을지도 모르는데 그 사이에 꾸역꾸역 박혀 있는 것도 모자라 내 영역을 넓혀 가는 모양새가 된다는 게.
“멤버들 다 동선은 빨리 익히니까…… 우선은 조금만 더 같이 연습해 보자. 그래도 내가 센터로 가는 게 낫겠다 싶으면 그때 확실히 옮길게.”
나는 에둘러 대답하고 강기연을 다시 최제호에게 보내 버렸다. 그리고 신이 있다면, 특히 배구의 신이 요 며칠 사이에 멤버들 중 한 명의 몸에 깃들기를 간절히 바랐다.
내 흑심까지 간파당한 탓일까. 배구의 신은 강기연과 미리 정해 놓은 데드라인까지도 강림하지 않았다.
그렇게 세상에 버림받은 기분으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던 어느 날.
아왕실의 방송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