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16)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16화(116/193)
| 116화. 1차 경연: 경쟁 PT (1)
건강한 스포츠 정신, 마음까지 뜨거워지는 대결.
그 안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우정 서사가 이번 무대의 셀링 포인트였건만.
“이월이 형.”
“왜.”
“이런 표현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를 멈춰 세운 강기연이 어렵게 말을 골랐다.
“괜찮으니까 얘기해.”
“형 얼굴에 의욕이 하나도 없어요.”
괜찮다고 말은 했는데 안 괜찮아졌다. 심장이 아팠다.
“『With List』 때까지만 해도 형 웃는 표정은 되게 자연스러웠거든요? 그런데 왜 의욕적인 표정은 안 되지?”
한평산업에서 가식 웃음은 많이 지었는데 의욕은 한 번도 낸 적이 없어서 그래.
『Flowering』 땐 금요일 밤에 퇴근하는 직장인, 『With List』 땐 휴가 떠나는 직장인의 마음에 이입했는데 이번엔 마땅히 떠올릴 기억이 없었다.
하여튼 강기연 이 녀석, 사람을 꿰뚫어 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차이가 많이 나?”
“네. 저희는 다 리그전 뛰는데 형 혼자 친선 경기하는 것 같아요.”
“그럼 안 되지.”
비유가 너무 와닿아서 소름이 끼쳤다. 그 와중에 이청현이 옆에서 거들었다.
“이상하네, 일에는 적극적인 사람이.”
말해 두는데, 나는 아이돌을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의욕적이었던 적이 없다. 일에 쫓긴 거지.
“……승부욕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
박주우까지 조심스레 한마디를 보탰다.
“아니, 이게 뭐라고 다들 이래?”
“아주 중요한 문제죠. 형은 춤 선조차 없어서 표정으로라도 커버해야 된단 말이에요.”
“기연아, 나도 눈물이란 게 있어.”
내 항변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은 음악을 끄고 나를 연습실 바닥에 앉혔다.
“내 표정이 그렇게 심했어?”
“심하기도 했는데, 음.”
그 와중에 강기연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이 XX들, 그냥 연습하다 지쳐서 이러는 거면 가만 안 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요.”
“뭐가?”
“형, 운동도 하고 회사 일도 도와주고 그러잖아요. 사람을 싫어하는 것 같지도 않고 뭔갈 귀찮아하는 성격도 아닌데 의욕은 없다는 게 좀…… 앞뒤가 안 맞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하고 싶어서 일하는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답답해 죽겠다. 그렇다고 시스템이 나를 재촉해서 어쩔 수가 없다고 하면 또 천기누설했다고 페널티 줄 거 아냐. 가뜩이나 재정난이라 열받는데.
“맞아. 이 형 승부욕도 별로 없잖아. 편의점 내기하면 맨날 자기가 간다고 하고.”
“너희 평소에 나 관찰하고 살아?”
“그 말을 형한테 듣고 싶진 않은데.”
이청현이 낄낄거렸다.
“어떻게 사람이 매번 경쟁하고 살아, 피곤하게. 됐으니까 연습이나 마저 하자.”
“의욕적인 표정은 어떻게 하고?”
“최제호 너 보고 따라 할게.”
저놈이 표정 연기로는 스파크 중 발군 아닌가.
나는 최제호에게 밥값 좀 해 달라며 녀석에게 센터에 걸맞은 표정 연기를 배웠다. 표정을 따라 하는 게 안무를 따는 것보다 백만 배는 쉬워서 다행이었다.
* * *
예산 부족, 까글 등판, 미흡한 표정 연기 등 이슈가 많기도 했던 시간을 지나 1차 경연의 날이 밝았다.
+
[SYSTEM] ‘책임자’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김 대리 참 일 어렵게 한다. 왜 하지 말라는 짓을 자꾸 하지?
+
그리고 시스템은 아침부터 난리였다. 심지어 지난번에 보여 준 내규 위반 설명서를 또 보여 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직장인에게 전부인 돈을 가져가 놓고 뭘 더 인질로 삼으려고? 네가 이 팀 1등 시키라며?
사비까지 턴 이상 이젠 아낄 것도 없다. 싸우자.
나는 비장하게 차에서 내렸다. 동시에 이전보다 과열된 분위기가 피부로 와닿았다.
평소처럼 출근길까지 와 주신 팬분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고개를 드는데, 머리 위에서 보여 주기 식 연기가 오진다는 말이 들렸다.
팬분들에게 90도로 인사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다른 그룹의 팬분이 하신 말씀이겠지만 난감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내 새끼들 기죽지 마!”
찜찜한 기분은 다행히도 팬분들의 응원 덕분에 털어 버릴 수 있었다.
송민일은 자길 이렇게 아껴 줄 지 팬들에게 한을 퍼먹인다, 이 말이지.
이해도 안 갈뿐더러 이해할 의사도 없다. 남 마음에 상처 주는 사람은 언젠가 꼭 벌을 받는다는 걸 알길 바랄 따름이다.
그렇게 내 새끼들 스파크는 잔뜩 기가 산 채로 스튜디오에 발을 들였다.
1차 경연의 무대 순서는 공 뽑기로 정해졌다.
기왕 프로그램명도 왕조실록인 거, 좀 더 독특하게 할 순 없었나. 하다못해 투호 놀이라도 했으면 재밌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리고 명색이 곡 바꿔 부르기인데 랜덤 순서일 게 뭐야.
보통은 바꿔 부르는 그룹끼리 붙여 주지 않나? 하여튼 아쉬운 점이 많은 구성이다.
“혹시 나가서 공 뽑고 싶은 사람?”
“그런 건 집안의 어르신께서 하셔야 마땅하지요.”
그래서 나 혼자 프로그램에 잔뜩 과몰입했다. 존귀하신 리더님께 어르신이라는 존칭도 붙여드렸다.
얼떨결에 어르신이 된 정성빈만 쓸쓸히 나가서 공을 뽑고 왔다. 우리 차례는 5번이었다.
“그런데 다들 멋있으시다. 의상도 엄청 세련됐고.”
옆에서 이청현이 감탄했다.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맞장구를 쳤다.
“우리도 다음엔 화려한 컨셉 할까?”
“예를 들면 어떤 거?”
“마당놀이 알지? 내가 널 위해 사자탈 써 줄게.”
“아냐, 형. 난 지금이 좋아.”
그러더니 이청현이 시선을 돌렸다. 그러게 본전도 못 건질 말은 왜 하냐, 이 녀석아.
* * *
자기 PR 무대 때와 달리, 1차 경연부터는 모든 팀이 각자의 대기실에서 다른 그룹의 무대를 볼 수 있었다.
무대 보기에도 바쁜데 눈치까지 보는 일은 피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첫 번째 순서는 지난번 좋은 무대를 보여 주었던 베리온이 맡았다.
베리온은 사랑스럽고 다정하며 썸을 타는 듯 마는 듯한 남자 사람 친구 컨셉 그룹, 스티키의 타이틀을 커버했다.
다만 이번에는 썩 퀄리티가 좋지 않았다.
무엇이 원인인지는 알 수 없다. 지난 촬영과 오늘 촬영에서 달라진 점이 많으니까.
내부 평가였던 자기 PR 무대 때와 달리 이번에는 다수의 방청객이 있고, 자신들을 위해 준비된 게 아닌 곡에 제 색깔을 입히려니 이슈가 있었을 수도 있지.
‘내가 기대주를 잘못 본 건가?’
조금 아쉬웠다. 하여튼 한평산업 인사 팀 경력 같은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니까.
정작 세 번째 순서로 나온 스티키는 오히려 선방했다. 스티키는 상큼함이 주 무기였던 베리온의 노래에 맞춰 사랑 고백을 하는 로맨틱한 컨셉을 들고 왔다.
그렇게 무대를 연달아 보고 나자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선배님들 준비 엄청 많이 하셨는데?”
“형도 그렇게 느꼈어요?”
강기연이 되물었다. 스티키의 메인 보컬은 이제 노래를 하다 손에서 마술로 꽃다발까지 꺼내고 있었다.
베리온만 해도 그랬다. 전의 아이디어만 못하다 싶을 뿐, 자잘한 제스처나 페이스 스티커 등 사소한 곳에서 신경을 쓴 흔적이 보였다.
‘그래도 모니터링들은 하셨나 본데.’
하긴, 안 했을 리도 없다. 여기 나온 그룹들의 소속사 중 UA만큼 인력이 없는 곳은 없을 테니까.
팬덤 간의 기 싸움 외에도 아왕실을 향한 반응은 여럿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여섯 그룹을 포함해 프로그램 전체를 평가하는 것이었다.
≫ 아왕실 간잽 후기
뭐랄까…… 막 엄청 재밌지는 않음
일단 나온 애들부터가 다 눈치 엄청 보는 게 느껴짐
악편 당하기 싫은 건 알겠는데
그거 싫어서 너무 가식적이게 된 느낌?
그룹 관계성이랑 친목 기대하긴 틀린 것 같고
무대 봐야 알 듯
≫ 아왕실 라이브임?
음향이 라이브 같던데
└ 라이브 같음
└ 계급장 떼고 붙자고 홍보했으면서 립싱크면 웃길 듯
└ ㅋㅋㅋㅋ 레전드 노간지
모두가 ‘잘 지내 보아요!’, ‘좋은 경험을 만들고 싶어요!’라는 와중에 서열 꼴찌 스파크가 베리온을 제외한 나머지 그룹에 모두 감점 때린 것도 얼떨떨할 텐데.
후기까지 이런 양상을 띠었으니 다들 직감했을 것이다.
제대로 된 무대를 해야 살아남을 거라고.
그 결과가 전체적인 무대 퀄리티 상승이라면 이쪽으로선 환영이다. 눈에 좀 띄어 보겠다고 쇼하고 있긴 하지만, 기왕 눈에 띌 거 꽃밭에서 눈에 띄면 더 좋잖아.
“응. 아이디어가 정말 신선하다. 다른 선배님들 무대도 빨리 보고 싶어.”
나는 웃으며 강기연에게 대답했다.
그리고 화면 속의 스티키가 인터뷰를 마치며 퇴장하고 나자.
『즐거우신가요, 여러분? 아이돌 왕조실록의 1차 경연 무대도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후반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요. 다음 순서는…… 아이돌 왕조실록의 맏형이죠! 파르테, 나와 주세요!』
스파크의 노래를 커버하기로 한 파르테가, 검은 망토 같은 것을 두르고 각 맞추며 등장했다.
동시에 메이크업 수정을 받거나 옷매무새를 확인하던 놈들이 황급히 모니터 앞에 모였다.
『앞 조에서 라이벌들이 공개되면서 파르테의 라이벌 그룹도 자동적으로 밝혀졌는데요. 파르테는 오늘, 1차 경연을 위해 어떤 곡을 준비했나요?』
『저희는…….』
『With List』겠지. 그거 말곤 파르테가 소화할 수 있는 노래가 없다.
애초에 스파크가 가진 노래가 네 곡뿐인데 데뷔곡은 우리가 자기 PR 무대에서 했고.
두 곡은 수록곡인데, 이 곡들은 무대 활동을 할 수가 없는 곡이라 음원에 모든 힘을 다 쏟았다. 가창 난이도가 지옥이란 뜻이다.
정성빈의 음역이 태평양처럼 넓은 데다 박주우의 고음이 하늘을 찌르는 바람에 수록곡의 음역은 남 부장의 기분처럼 널을 뛰었다.
키를 낮추면 인트로에서 동굴에 들어가야 하고 그냥 불렀다간 폭포 수련을 해야 할 판이니, 퍼포먼스 특화 그룹인 파르테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스파크분들의 With List를 준비했습니다!』
거봐. 내 말이 딱 맞지.
나는 파르테가 곡을 발표한 순간 강기연에게 눈짓을 보냈다.
오늘 출근 전, 강기연에게 ‘이건 내 예감인데, 파르테 선배님들이 『With List』 선곡하시면 너 오늘 실수 한 번도 안 할 거야.’라고 선언했거든. 나를 돌아보는 녀석의 표정이 환했다.
파르테의 무대가 시작된다는 유르 씨의 멘트와 함께 화면은 어두워졌다.
곧이어, 공포 게임의 배경에 들어갈 것처럼 음산하게 편곡된 놀이공원의 배경 음악과 함께 조명이 들어왔다.
『눈을 뜨니 다가온
아침 해마저 완벽한……
그런 오늘』
도입부를 내레이션처럼 변형한 랩과 함께 속삭이는 듯한 멘트가 서막을 알렸다.
『그래, 우리가 기다린 그날』
“가사를 컨셉에 맞게 전부 바꾸신 것 같죠?”
“정말. 손이 엄청 많이 갔을 텐데…… 굉장하시다.”
강기연의 말에 정성빈이 반응했다. 자기 PR 무대 때 본인이 개사를 전부 다 했으니 얼마나 고생했을지가 눈에 보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성빈아, 이분들은 곡 소개가 나갈 때 개사에 MYTH 소속 작사가분 성함이 들어갈 거란다. 우리는 통으로 우리 본명이 들어갈 거고.
다시 말해 지금 정성빈의 발언은 고도의 돌려까기로 방송될 가능성이 높단 뜻이다. 이거 또 불판에 토치질 좀 하겠고만.
파르테의 서사 만들기는 본격적이었다.
원곡인 『With List』의 놀고 싶다는 열망은 세상을 악에서 구원할 간절한 기도로 변해 있었다.
다인원에 백댄서까지 붙으니 안무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많았다.
『바라옵건대, 신이시여
단 한 번의 기적을
이 땅에 내려 주소서……』
노래 뒤로 어마어마한 효과가 깔렸다.
이 정돈 되어야 이청현의 탑 라인을 지울 수 있었겠지. 하이라이트를 다 깎아 내서 심심한 건 여전하다만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언뜻 쳐다본 스파크 놈들은 한껏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스케일에 압도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는 오늘 여섯 명만으로 무대에 서야 하니까.
하지만 굳이 걱정할 게 있을까.
파르테의 무대를 보고 나서 나는 확신했다.
인터넷 투표로는 질지언정, 방청객 투표로는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