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17)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17화(117/193)
| 117화. 1차 경연: 경쟁 PT (2)
서서 연달아 몇 시간씩 무대를 봐야 하는 관객들의 입장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것도 좋아하는 그룹은 딱 한 무대만 하거나, 아직은 ‘관심이 있는’ 정도에서 그치는 그룹의 무대를 보기 위해서 말이다.
어느 방송이든 그렇겠지만 음악 방송 방청은 쉽지 않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 애들이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고, 익숙하지도 않은 노래를 모르는 사람들이 부르는 것만 하염없이 바라봐야 하는 상황.
이럴 때일수록 관객에게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우린 이런 색깔을 가진 그룹이고, 어떤 노래를 부를 것이라는 기본적인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미팅에서 명함을 주고받는 비즈니스맨처럼.
그런 의미에서 파르테의 무대는 불친절했다.
파르테가 신화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는 걸 파르테의 팬덤 외엔 누가 알까?
그 상태에서 이 정도로 컨셉추얼한 무대를 한다면?
낯설지만 새로운 흥미를 유발할 정도는 아닐 때.
사람들은 그걸 ‘이질적’이라고 부른다. 파르테의 이번 무대가 그랬다.
방송으로 보면 아마 좀 더 괜찮게 나올 것이다. 카메라가 좋은 각도에서 잡아 줄 테고, 무대 효과도 잘 부각될 테니까.
하지만 현장은 아니다. 뮤비 세트장처럼 모든 조건이 갖춰진 곳을 상정해 무대를 준비하니 삐걱거릴 수밖에. 방송 투표가 없는 지금 단계에선 뼈아픈 실수다.
‘노래도 조잡했어.’
놀이공원의 축제를 연상케 하는 음원이 매력인 만큼, 이 부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단 건 이해한다.
가사를 지나치게 많이 바꾼 것에 대한 비판이 나올 것도 의식했겠지.
하지만 편곡이라는 건 새롭게 변화를 주는 것 아닌가.
신전이라는 신비로운 공간에 그리움이라는 심상을 넣고 싶었다면 오르골 소리로 대체하는 정도로 충분히 좋은 효과를 냈을 것이다.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서 노래가 별로라는 건 치명적이다. 투표할 때 머릿속에 남는 게 없으니까. 다음 무대부터는 MYTH A&R 팀 내에서 깊은 고민이 필요하시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파르테보다 인지도가 적은 스파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답은 하나다.
컨셉의 진입 장벽을 최대한 낮춘다. 직관적인 아이템으로.
“스파크, 대기하러 갈게요!”
파르테의 인터뷰를 뒤로하고, 나는 다섯 명의 일일 배구 선수들과 대기실을 나섰다.
* * *
다리 아프다.
백해원이 조심스럽게 발목을 돌렸다.
스트레칭 한번 못하고 계속 서 있기만 한 게 몇 시간째인지 모른다.
시간을 확인하고 싶어도 핸드폰을 꺼내지조차 못하게 해 불가능했다.
방청에 당첨이 됐을 땐 시험이 끝난 자신에게 누군가가 선물을 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시험을 망친 못된 학생에게 주는 벌이 아니었나 싶다.
백해원의 자식들인 스파크는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초반에는 나름 호응을 하며 즐겨 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인간의 체력은 유한하지 않은가. 마땅히 환호하면서 볼 수 있는 스타일의 무대도 없었고.
이러다 정작 내 새끼들 나오면 응원도 못 하겠다.
백해원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좁고 어두운 객석에서 백해원은 선 채로 점점 지쳐 갔다.
그렇게 백해원이 ‘아, 안방에서 보는 사람들이 승자다…….’를 3천 번쯤 되뇌었을 때.
“드디어 이분들이 나오네요. 아이돌 왕조실록의 활력소 같은 막내들입니다!”
백해원이 덕질할 시기엔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아 레이더를 벗어났으나, 시기가 겹쳤더라면 반드시 한 번은 열렬히 팠을 아왕실의 MC 유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멘트를 쳐 주었다.
얼굴도 잘생겼는데 진행도 잘하는구나. 사랑한다, 당신.
“스파크를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백해원은 손바닥이 터지도록 박수를 치며 어둠 속에서 스파크가 걸어 나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멤버들이 한 명씩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옷깃을 움켜쥐었다.
‘XX 잘생겼다, XX……!’
방청은 하늘이 자신에게 내려 주신 선물이 맞았다. 백해원은 교양 없이 비명을 지르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선두로 나온 것은 흰색 배구 유니폼을 입은 정성빈이었다. 민트색 줄무늬와 같은 색상의 헤어밴드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헤어 라인부터 이마와 콧대까지 무엇 하나 청량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누가 금발하고 이마까지 까래. 이런 행위는 고소당해도 할 말이 없다.
다음으로는 강기연과 이청현이 차례로 나왔다. 강기연은 민트색, 이청현은 흰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강기연은 양쪽 무릎에 흰색 무릎 보호대를, 이청현은 양팔에 긴 슬리브를 찬 채였다.
그리고 이어서, 김이월과 손목 보호대를 찬 최제호가 등장했다.
두 사람을 본 백해원의 머릿속에 딱 한 마디가 떠올랐다.
‘와, 키 개 커.’
평균 신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스파크는 정말 컸다. 맏형즈의 평균 키가 185cm였으니까.
하지만 숫자를 보고 ‘뭐? 우리 애들 장신 그룹이라고? 개짱!’ 하는 것과 실제로 장신들을 보는 것엔 차이가 있었다.
하물며 최제호는 이 팀에서 키가 가장 컸다. 유니폼 차림의 전봇대 같은 남자 둘은 약간 위압적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XX 잘생겼어…….’
이쪽을 쳐다보며 살짝 웃는 김이월을 보고 백해원은 유언처럼 중얼거렸다.
또렷한 이목구비 때문에 희다 못해 푸른 빛이 도는 피부 위로 회색빛 그림자가 져 입체감이 한층 돋보이는 얼굴.
눈썹 라인과 콧대, 턱선까지 무엇 하나 날카롭지 않은 게 없었는데, 큰 눈으로 팬들을 볼 때만큼은 사근사근하게 웃는 모습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김이월의 긴 속눈썹 밑에 드리우는 그림자를 덮고 영원히 잠들고 싶다는 말을 몇 번이나 SNS에 썼는지 모른다.
저 사람이 정말 우리 엄마 아들과 동창이었단 말이지. 세상 참 살고 볼 일이다.
그러나 그는 숙련된 오타쿠였기에, ‘이월이가 날 보며 웃었어!’라는 착각은 피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민트색 유니폼에 무릎까지 오는 양말을 신은 박주우가 대열을 갖춰 섰다.
잘생김의 축복이 끝이 없다. 짧은 소매 밑으로 보이는 잘 가꿔진 팔근육마저 완벽했다. 스파크의 실물이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백해원은 자신의 노고가 모두 씻겨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어휘력이 퇴화한 것 같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행복감에 젖은 채 인터뷰하는 스파크를 지켜보던 것도 잠시, 의문점이 생겼다.
‘얘네 파르테 노래 커버하지 않나?’
방금 전 파르테는 굉장히 고져스한 무대를 선보였다. 저쪽 팬들은 좋아하는 것 같았다만, 파르테의 세계관까진 잘 모르는 백해원은 그저 ‘멋있네~’ 정도로 여기고 말았다. 자신이 이해하기엔 조금 난해하기도 했고.
자기 색깔로 물들이는 게 목적이라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파르테가 선보였던 화려한 음악과 잘 어울릴지는 미지수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백해원은 깊이 생각하진 않았다.
‘몰라, 여차하면 주우가 찢어 주겠지!’
두 번의 활동과 무수한 자컨으로 증명된 실력에서 오는 신뢰. 백해원에게는 그것이 있었다.
그냥 무대나 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인터뷰를 마친 멤버들이 무대 위에서 원진을 그리며 파이팅을 외친 뒤 자리를 찾아갔다.
* * *
어두운 무대 위로 핀 조명이 떨어졌다.
유니폼의 색에 맞춰 3:3으로 대치한 멤버들의 사이로, 휘슬 소리가 울려 퍼지며 노래가 시작되었다.
인트로는 나와 최제호의 주고받기로 시작한다.
『그대여
무엇을 원하는가?』
『묻는다면 단 하나,
하나뿐인 영광』
무대의 컨셉은 지극히 단순하다.
나와 박주우, 강기연의 민트 팀과 최제호, 정성빈, 이청현 화이트 팀의 대격돌!
옷 색깔과 첫 대형만 봐도 관객들은 이 무대의 설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것만 되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여기에 가볍지만 딱 떨어지는 안무, 현장에서 더 잘 들리는 발 박자, 하이터치에서 오는 마찰음으로 생기를 더한다.
『갈망하고 열망하라
손에 넣을 때까지!』
컨셉추얼한 가사는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되게 만든다. 동시에 목적성을 선명히 한다.
‘아, 이놈들 지금 우승하려고 이러고 있구나!’ 싶게.
이해가 수반되면 수용은 빨라진다.
강기연과 정성빈이 등을 맞부딪치는 동작은 팀 간의 기 싸움을, 이청현의 손 키스 제스쳐는 득점의 세리머니를 연상시킨다.
처음 보면 넘길 수 있는 안무도 배경을 알고 있는 사람의 눈엔 다르게 보인다.
한 곡이 하나의 시합처럼 보이도록.
그렇게 만들었다. 현장 투표에 다시 보기는 없으니까.
그리고 현장 반응을 잡기 위한 마지막 작전.
노래에 힘을 쏟는다.
3절로 접어들면서 음악은 고점을 향했다.
결승전에 걸맞은 박수 소리와 환호성을 뒤섞고, 베이스 소리를 키워 심장 박동이 울리는 느낌을 준다.
『들리는가
계시 그리고 염원이』
강기연이 음을 깔았다. 그 위로 내가 목소리를 얹었다.
『그대여
왕좌를 원하는가?』
올라가는 음과 함께 악기와 이펙트가 쌓여 축제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금속제 악기들이 주는 특유의 날 선 느낌과 열기를 연상케 하는 전자음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내 대답은 오직,
변함없이 그대로』
다음으로는 정성빈이 무대의 중앙으로 치고 나갔다.
아마도 지금 관객은 정성빈의 벅차오르는 표정을, 그리고 그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목소리를 정면에서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음악이 절정에 치달을 때.
공격성을 최상으로 높인 박주우가 전면에 나섰다.
『취하리라
명예를』
창과 같은 고음이 스피커들 사이로 메다 꽂혔다.
애초에 이걸 뭐, 작전이라고 할 것까지 있나.
무대로 점수 얻으려면 노래는 당연히 잘해야 하는걸.
무엇보다 스포츠가 재미있는 건…….
『꿈꾸던 미래를!』
……사람을 열광하게 만든다는 거다. 아주 순식간에.
신발 밑창이 체육관의 바닥에 끌리는 소리와 함께, 근검절약 스포츠 정신 무대가 끝이 났다.
고양감이 뒤섞인 땀이 무대에 뚝뚝 떨어졌다. 편곡 단계에서 집어넣지 않은, 진짜 박수 소리가 현장을 메웠다.
* * *
현장 투표 발표 현장은 고요했다. 아까 전 방청객이 있던 곳과 같은 곳이라곤 믿기 어려웠다.
유르 씨가 오기 전까지 우리는 무대 위에 옹기종기 서 있어야 했다.
다들 숨소리는 거칠었지만 얼굴만은 번쩍거렸다. 모두 수정 메이크업은 착실히 받고 온 듯했다. 우리도 땀난 걸 숨기느라 파우더를 얼마나 많이 뿌렸는지 모른다.
카메라가 돌아가기 전을 틈타 정성빈의 이마가 더 예쁘게 보이도록 앞머리를 매만져 주고 있는데, 누군가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저, 안녕하세요!”
베리온의 리더, 문연규였다. 활동명은 온하.
당연하게도 저쪽이 우리보다 선배였기 때문에, 우리는 어김없이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했다.
온하 씨는 몹시 당황하며 그렇게까지 하진 않아도 된다고 만류했다. 그러더니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스파크분들 무대 너무 잘하시더라고요. 무대 잘 봤다고 인사하고 싶어서…….”
“정말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정성빈이 온하 씨가 내민 오른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저희도 선배님들 무대 정말 잘 봤습니다. 멋있으셨어요!”
정성빈 옆에 있던 나도 한마디 얹었다. 온하 씨는 민망해하더니, 다음 방송 때 보자며 후다닥 베리온의 자리로 돌아갔다.
의외다. 스파크랑 친해지고 싶어 하는 그룹은 없을 줄 알았다.
아니면 스파크가 베리온에만 가점을 줘서 그런 건가?
고작 그런 걸로 선뜻 다가올 수가…… 있나. 생각해 보니 저 온하란 사람, 고작 스무 살이었던 것 같다.
단편적인 모습으로 타인을 판단했다간 크게 속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부디 베리온에게 세상 풍파가 너무 몰아치진 않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세상 풍파보다 모질 순위표를 들고 유르 씨가 입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