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21)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21화(121/193)
| 121화. 2차 경연: 협주곡
강기연의 활약으로 스파크는 여섯 번째 순서를 차지했다.
주문한 안경은 박주우에게 얹어 주니 찰떡 같았고, 정성준 씨의 옷도 때깔이 훌륭해서 스타일링하기에 딱 좋았다.
‘빵모자는 대체 어떻게 고정해야 하는 거야?’
‘실핀 스무 개는 써야 할걸요?’
정성빈이 억지로 빵모자를 쓰게 된 것도 모자라 내 손에 머리가 다 쥐어뜯길 뻔한 것만 빼면.
그런 TMI는 또 처음 들었다. 스파크가 무대에 모자를 쓰고 나왔어야 말이지.
유한수의 빗발치던 문자 세례도 잠잠해져 얼마나 마음 편히 준비했는지 모른다.
물론 모든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다.
스파크 최고의 보물인 이청현의 얼굴이 피곤함으로 생기를 잃었던 것이다.
‘청현아, 이번엔 너의 재능이 두 배쯤 더 필요하다.’
‘왜?’
‘샘플링이 필요하거든.’
이번 무대의 컨셉은 밤하늘에 푹 빠진 너드 사이언티스트였다.
스타일링 역시 은하와 별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집요하게 그를 파고드는 연구 마니아를 연상케 기획했다.
문제는 ‘조용히 연구에만 몰입하는 학자’가 주는 이미지의 특성에 있었다.
발랄한 신인 아이돌, 혈기 왕성한 스포츠 선수와 달리 이쪽은 정적인 느낌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가자니 기획 의도에서도 멀어질뿐더러 청춘의 느낌도 적었기에 음악의 완성도를 높이기로 했다.
‘샘플링? 어떤 노래로?’
‘그건 네가 정하면 돼.’
‘응?’
‘클래식은 네가 전문이잖아.’
바로 클래식 음악을 샘플링해서.
이번에 커버하기로 한 헬라스의 『별빛』은 발라드 수록곡으로, 밤하늘 아래에서 조용히 사랑을 속삭이는 듯한 내용의 노래였다.
화려하진 않지만 멜로디가 좋고 가사도 괜찮아서 수록곡치고 많이 알려진 노래이기도 했다.
여기에 고전적인 아름다움,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정교함, 몽환적인 분위기를 한층 살려 줄 음악성을 더하는 것이 내 목표였다. 샘플링이 잘만 된다면 세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었다.
비록 난 클래식에 대해 아는 게 없지만 이청현은 다르다. 한때 밥 먹고 피아노만 친 놈 아닌가.
심지어 이 녀석은 클래식이 싫어서 장르를 전환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더더욱 거리낄 게 없었다.
‘기획 의도랑 컨셉은 다 알잖아. 커버할 노래도 정해져 있고. 혹시 뭐가 더 필요해?’
‘아니, 난 형이 샘플링할 곡도 정해 놓은 줄 알았지. 형 변수 생기는 거 싫어하잖아.’
‘편곡자가 넌데 네가 제일 잘 알겠지. 네가 하는 선택이 최고의 선택일 거야.’
그 말에 이청현이 뭐라고 대답했더라? 기억이 안 난다.
하여튼 이청현은 준비 기간 초반부터 독하게 작업에 돌입했다.
덕분에 얼굴이 아주 죽상이었다. 그렇게 얼굴 간수 잘하라고 했건만.
아무리 미남이 생기 있으면 햇살 미남이고 초췌하면 처연남이라지만 저건 아니다. 곡과 안무만 아름답고 얼굴이 아름답지 않으면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이청현의 손에 포도당 캔디를 쥐여 주었다.
그리고 속으로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아름다워져라……라고.
* * *
“오, 스티키 선배님들도 동양풍 무대네요!”
녹화 중인 스티키의 무대를 보며 정성빈이 리액션했다. 화면 속에선 스티키가 부채를 펼치며 도입부를 열고 있었다.
이로써 오늘만 세 번째 동양풍 무대다. 컨셉으로는 왕위 쟁탈이나 무관들의 검무 등이 나왔다. 역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한복은 국룰인가 보다.
오늘은 파르테의 무대도 훌륭했다.
전원 금 자수가 박힌 한복을 입고 나와서 일사불란한 액션 연기와 군무를 선보였는데, 보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카리스마가 있었다.
파트를 꽤 받은 건지 한가운의 보컬도 적재적소에 들어가 있었다.
한강 다리 밑에서 송민일을 애써 말리던 모습은 생각도 안 날 정도였다.
게다가 칼이 정말 리얼했다. 무대 조명에 반사되는 모습이 서슬 퍼렇고 좋았다.
그래, 퍼포먼스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지.
나는 속으로는 감탄하되, 겉으로는 평온하게 말했다.
“우리도 까고 보면 동양 레트로잖아.”
“글쎄요. 이 정도면 스팀펑크 아닌가.”
강기연은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도 다들 잘 어울리니 됐다.
그리고 어쩔 수 없잖아. 우리는 무관이 아니라 문관이니까.
“스티키 선배님들 무대 시작했어?! 나도 볼래!”
대기실 끝에서 수정 화장을 받고 있던 이청현이 소리를 치며 뛰어왔다.
녀석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
그러니까, 물리적으로 빛이.
“너 얼굴 무슨 일이야?”
새하얀 얼굴에 반짝반짝 빛나는 글리터가 보석처럼 뿌려져 있었다.
특별한 인상을 주기 위해 컬러 렌즈까지 꼈더니 애가 아주 탈인간이 됐다. 힘냈구나, 마법의 포도당 캔디.
하여튼 이상한 일이다. 똑같이 반짝이는 컬러 렌즈를 꼈는데 왜 나는 뱀 눈깔 같고 쟤는 캘리포니아의 햇살 같은 건지.
갓 딴 오렌지처럼 상큼해진 이청현이 손으로 꽃받침을 만들어 보이며 말했다.
“글리터 대박이지? 오늘 청현이 얼굴 컨셉은 다이아몬드 광산입니다!”
“채굴권 내놔. 다 태워 버리게.”
“그러실 줄 알고 독점 분양권 따로 빼놨습니다, 형님.”
“굿.”
최제호가 멀리서 잘들 논다는 표정을 지었다. 멜빵 반바지 입은 놈이 그런 표정 지어 봤자 타격감도 없다.
모두가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가운데 강기연만 조용했다. 녀석은 살짝 굳은 얼굴로 스티키의 무대만 지켜보았다.
나는 스티키의 무대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손에 힘을 살짝 줘 어깨를 주무르자 강기연이 흠칫했다.
“걱정 마. 우린 할 수 있어.”
“…….”
“내가 무대 중간에 발을 헛디뎌서 앞으로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그건 대형 사고긴 하네요…….”
강기연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했다.
하지만 이건 진심인걸.
그 정도 대형 사고가 아니라면 스파크는 1등을 할 수 있을 거다. 정말로.
* * *
2차 경연을 준비하기까지 이청현은 각고의 노력을 했다.
컨셉이 확정된 직후 떨어진 김이월의 미션 때문이었다.
‘샘플링이 필요하거든.’
원곡은 발라드, 편곡 방향은 가벼운 댄스곡, 표현해야 하는 것은 순수한 학구열과 환희, 수단은 클래식.
모든 게 명확했지만 진도가 쉽게 나가지 않았다.
떠오르는 후보곡은 몇 가지 있었지만 와닿는 게 없었다. 모든 곡들이 조금씩 아쉬웠다.
이걸 어떻게 편곡해야 할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이청현이 알고 있는 ‘곡의 해석’이란 자유롭되 악보를 벗어나진 않아야 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곡 하나를 마디 단위로, 혹은 음표 단위로 끊어서 여기 붙이고 저기 붙이려 했다. 그러한 행위는 도전을 넘어 무언가를 파괴한다는 느낌까지 주었다.
이 형은 나를 너무 믿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조금도 믿지 못했던 가족들이 생각났다.
음악이 좋다면 차라리 클래식을 하라며, 거기까진 양보해 주겠다는 가족들이.
그래서 몇 년은 즐겁게 피아노를 쳤다.
몰입했고, 매 순간을 즐겼다. 행복했다.
머리가 크고 견문이 넓어질수록 이청현이 접할 수 있는 음악은 많아졌다.
클래식 말고도 노래는 있었고, 그것들은 이청현이 연주하는 피아노 연주곡만 못하거나 더 중독적이었다.
세계가 갈수록 넓어졌다.
이청현의 눈에 음악은 바다와 같아서, 끝없이 넓고 신비로웠다.
이청현은 말 그대로 음악을 좋아했다. 모든 음악을.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노래를 부르는 것도, 박자 위에 랩을 얹는 것도, 아니면 오롯이 듣기만 하는 것도 즐거웠다.
그러나 부모님에겐 이청현이 어떤 사람들 앞에서 어떤 음악을 연주하는지가 중요했다.
그 순간 이청현의 바다에는 항로가 정해졌다.
이청현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선상 파티가 펼쳐지는 고급 유람선을 몰고 홀로 같은 길을 돌았다. 조명이 비치는 바다가 어둠으로 검게 물들 때까지.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그 배에서 내리던 날, 이청현은 자신이 바다로 돌아오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룸메이트인 형이 자신을 작곡 머신으로 채용하겠다고 말하기 전까진.
그때의 김이월은, 이청현이 미련처럼 쥐고 있던 지도까지 빼앗으며 이렇게 말했더랬다.
‘어리고 똑똑한 인재한테 기대하는 게 나빠?’
참 이상한 말이었다. 가족들은 자신에게 언제까지 멍청한 선택만 할 거냐고 물었으니까.
김이월은 부모님처럼 친절하지 않았다. 이청현은 고급 유람선을 탈 수도, 잔잔한 바다만 골라 갈 수도 없었다.
이청현에게 주어진 것이라곤 10m만 가도 침몰할 듯한 뗏목과 김이월이 깎아 준 투박한 노뿐이었다.
이청현은 그 배를 보며 생각했다.
나는 어느 바다로 가야 할까?
나는 무엇을 위해 바다로 가는 걸까?
나는…….
그리고 참 우습게도.
자신이 이렇게 조금만 깊이 생각에 빠지려고 할 때마다.
‘네가 하는 선택이 최고의 선택일 거야.’
김이월이 얼른 출항이나 하라며, 자신이 바다로 향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기에.
이청현은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작은 배를 타고, 작은 노의 도움을 받으면서.
김이월은 새로운 배를 건네주는 것 외의 무엇도 하지 않았다. 김이월이 이청현에게 요구한 건 오직 이청현이 바다를 건너는 것뿐이었으므로.
그래서 이청현은 자신의 초라한 배에 깃발을 달기로 했다.
자신이 어떤 음악을 해야 할지.
무엇을 들려주기 위해 노래를 만드는 것인지.
어느 곳으로 여행을 떠나든, 그 모든 걸 아우르는 대답은 항상 간직하기로 말이다.
스피커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