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24)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24화(124/193)
| 124화. 뒷소문 (3)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PD님.”
나는 진심으로 감동한 것처럼 유한수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 에이, 어떻게 그래. 내가 널 봐 온 세월이 있는데.
얼씨구.
좋냐? 좋아?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 회사에서 내부 고발 글은 IP 추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거든요. 통신망 깔 때 적어 둔 기록이 있다나 봐요.”
이래도 좋냐? 어? XX.
아니나 다를까 핸드폰 너머에선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이 새X, 혹시나 했는데 진짜로 회사에서 나 욕하는 글 올렸나 보다.
전화는 그대로 끊겼다. 이제 유한수는 내 말이 사실인지를 파악하느라 사무실에 부리나케 달려올 것이다.
‘조만간 또 허위 사실 유포는 중죄라는 거 아냐고 전화하겠군.’
조금 통쾌한 것과 별개로 한숨이 나왔다.
통화만으로도 기운이 다 빨린 것 같아서, 나는 잠시 층계참에 쪼그려 앉아 심호흡을 했다.
일단 회사 이슈는 어느 정도 해명이 가능하고, 가족은…….
아마 누군가가 그쪽의 신상을 털었다면 그쪽에서 알아서 나와의 관계를 부정해 줄 것이다. 그 사람들이라면 나랑 엮이기보단 우린 걔랑 연 끊은 지 오래됐다며 바로 선을 그어 줄 테니까.
남은 건 학교 문제인데.
솔직히 이 부분은 자신이 없다. 내가 결백하다고 한들 그걸 증명해 줄 사람이 없었다.
교우 관계 좀 원만히 할걸. 인생 혼자 살지 말걸.
하지만 이 또한 사람을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안일한 생각이 아닌가?
역시 나 같은 새X는 혼자 사는 게 맞다. 그래도 교우 관계 좀 원만히 할걸…….
“인생 잘못 살았네.”
전에도 썩 잘 살았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오늘로써 확고해졌다.
내 인생은 쓰레기다. 그것도 노답 쓰레기.
“그래도 재활용되려면 열심히 해야지…….”
나는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분리수거되는 인생을 위해 힘낼 시간이었다.
* * *
연습실에 돌아온 후로도 연습을 길게 하진 못했다.
갖은 논란이 한 번에 터지다 보니 정리해야 할 자료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덕분에 코피 사태 이후 두 번째로 조퇴를 하고 말았다.
숙소로 돌아오자 캐리어 안에는 시스템이 새로 발급해 준 성적표들이 있었다. 나는 애꿎은 수능 성적표의 끄트머리만 몇 번 만지작거렸다.
대학 합격이 취소되었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떠 놓은 스크린샷도 노트북에 옮겨 놓았다.
한평산업 시말서 양식이 어땠더라.
시말서를 받아 본 적만 있지, 써 본 적은 없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일단 팬분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단 말을 제일 먼저 쓰고, 내용 정리에 시간이 걸려 입장 발표가 늦어진 점도 죄송하다고 하고…….
나는 서둘러 초안을 쓰고 같은 글을 몇 번씩 다시 읽었다.
스파크 대리 덕질 몇 번이면 해명문에 써야 할 말과 쓰면 안 될 말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덕분에 교정은 쉬웠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자료는 대체로 깔끔했다. 증인을 대라고 해도 충분히 댈 수 있었다.
학교 생활 관련 부분만 빼면.
이 부분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특혜를 안 받은 건 맞지만 돈 때문에 단체 생활을 빠진 걸 증명하긴 어려웠고, 특별히 누군가를 무시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교우 관계가 좋은 것도 아니었기에.
‘이래서 하나만 아는 사람이 끼면 무섭다니까.’
나는 이 험난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면 좋을지 한참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 아무 방법도 찾지 못한 채 식탁에 대가리를 박았다.
이런 국면을 전환시킨 건 한 통의 전화였다.
“매니저님?”
발신자는 매니저님이었다.
그새 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터지기라도 한 건가 싶어, 나는 어깨와 귀 사이에 핸드폰을 끼워 놓고 절전 모드에 들어간 노트북을 다시 켰다.
다행히 아직 게시판은 ‘동창이 폭로한 김이월 개 터진 인성’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 형, 저 성빈이에요.
“성빈이? 무슨 일이야?”
시계를 보니 아직 연습이 한창일 시간이었다.
정성빈이 연습을 하다 말고 전화를 했다? 이건 대사건이란 뜻인데.
나는 내 바가지가 어디서 또 샜을지 치열하게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자포자기했다.
어디서 무슨 논란이 터졌을지 알 게 뭐야. 적어도 내가 떳떳하게 살았으니 반박하면 그만이다.
나는 침착하게 정성빈의 말을 기다렸다.
─ 혹시 인터넷에 올라온 글 보셨어요?
“인터넷? ‘평소 행실 알 만한 김이월 어록 모음’ 이거?”
─ 아뇨, 그런 거 말고요!
이게 지금 제일 핫한데. 댓글도 엄청 많아.
뻐근한 눈을 비비며 새로고침을 하는 내게 정성빈이 말했다.
─ 형 동창이라는 분이 글 올렸어요!
정말이었다.
내 눈앞에도, ‘이월이 동창입니다. 이월이를 향한 오해를……’이라는 게시글이 보였다.
* * *
게시글의 제목은 길기도 했다. 날 향한 오해를 풀고자 글을 적는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글부터 읽고 다시 통화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스크롤이 손톱만 한 장문의 글을 읽어 내려갔다.
≫ 이월이 동창입니다. 이월이를 향한 오해를 풀고자 글을 씁니다. (인증 있음)
안녕하세요. 저는 이월이와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반장이었던 학생입니다.
주위에서 이월이가 여러 오해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본 이월이에 대해 솔직하게 말씀드리고자 글을 적어 봅니다.
.
.
.
‘반장?’
기억난다. 사교적이고 활발한 녀석이라 인사 정도는 하며 다녔다.
어찌나 축구를 좋아하는지, 점심시간마다 축구를 하는 것도 모자라 사람이 모자라면 매번 나를 불러 댔던 놈이었다.
≫ 같은 반에서 지켜본 이월이는 절대 친구들을 함부로 무시하는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운동을 잘해서 저희 사이에서 인기도 많았고, 점심시간마다 함께 축구를 즐기는 평범한 친구였습니다.
제가 발목을 다쳐 깁스를 했을 때, 하교 시간마다 정류장까지 가방을 들어줬던 것도 이월이었습니다.
그래, 이놈이 축구 하다 넘어져서 발목 인대가 왕창 늘어났었지.
발목이 아픈데도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뻐기던 강기연을 설득할 때까지만 해도 녀석의 얼굴이 흐릿했는데, 이제는 조금씩 얼굴이 선명해졌다.
≫ 특별 대우를 받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제가 아는 이월이는 언제나 좋은 성적을 받았었습니다. 이월이의 성적이 전교권이었다는 것은 다른 친구들도 알고 있습니다. 재학 당시에도 이월이가 특혜를 받는다고 불만을 가졌던 학생은 없었습니다.
글은 참 길었다. 아마도 댓글에는 세 줄 요약을 해 달라느니, 너무 길어서 읽지 않았다는 내용이 적혔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냥 읽고 넘길 수가 없었다. 한 자 한 자가 눈에 담겼다.
≫ 이월이는 언제나 성실한 친구였고, 지금도 그럴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는 친구인 만큼, 많이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래에는 졸업 앨범과 단체 사진, 나와 녀석이 주고받은 문자 몇 통, 단체 메시지 방에서 ‘너희 김한 기억해?’라며 동창 여럿이 떠든 캡쳐본 등이 가득했다.
다시 한번 핸드폰이 진동했다. 정성빈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글을 다 보면 꼭 전화하라는 이야기였다.
전화, 해야지.
해야 하는데…….
커뮤니티 창을 닫자 이전에 켜 두었던 SNS 창이 나타났다.
팬분들이 가장 염려하실 부분을 알아 두기 위해 내 이름을 검색했던 것이 리젠되어 있었다.
≫ 김이월 기죽지 마
누가 뭐래도 너 XX 잘하고 있어
≫ 아 XX 우리 애 허세가오충 아니었다잖아
이월이 좀 냅둬 제발
≫ 이월이가 열심히 하는 건 스파클러가 제일 잘 알아
절대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게 또, 사람 기분을 굉장히 묘하게 만들어서. 잠시 머리가 멍했다.
이 감사함을 어떻게 다 갚는담. 갚을 빚만 트럭으로 3만 대 분량은 쌓인 듯했다.
나는 곧바로 매니저님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정성빈이 바로 받았다.
“뭐 이렇게 빨리 받아. 너희 연습은?”
─ 지금 연습이 중요해요?!
“중요하지. 나 하나 빠진 것도 아까워 죽겠는데 단체로 하지 말라는 모니터링이나 하고 있어?”
─ 아, 몰라. 이거 다 수습할 수 있지?!
뒤에서 이청현이 큰 소리로 묻는 게 들렸다.
“그래. 오늘 안에 깔끔하게 정리하고 끝내자.”
* * *
“야, 나 인터넷에서 관심 이렇게 많이 받은 거 처음이야.”
“좋냐? 좋아?”
백해원이 핸드폰을 붙들고 놓질 않는 제 오빠, 백해인을 흘겨보았다.
그래도 저 양반 덕분에 김이월을 향한 부정적인 여론이 한층 잦아든 건 인정해야 했다.
‘아니, 이렇게 친한 사이였으면 동창이라고만 하지 말고 진작 얘기를 했어야 할 거 아니야……!’
같은 반에 같이 축구도 했다길래 오버 좀 작작 치라고 했는데, 설마하니 김이월과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의 사이인 줄은 몰랐다.
‘어쩐지 엄마가 저 XX 다리 부러졌을 때 웬 훤칠한 친구가 있다고 하루 종일 얘기하더라.’
그 친구가 미래에 아이돌이 될 줄은 엄마도 몰랐을 거다. 백해원은 당시 엄마 차를 따라 타고 호연고등학교에 가지 않은 자신을 원망했다.
“그래서? 반응은 어때?”
백해인이 물었다. 말은 밉살스럽게 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하긴, 백해인은 처음 백해원에게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크게 놀랐다.
‘김한이 싸가지가 없다고? 야, 연예인들 헛소문 많이 난다던데 진짠가 보네.’
‘하, 우리 애 마음도 여린데…… 이 개잡놈들…….’
‘그렇다고 걔가 마음이 여리진 않지.’
‘닥쳐.’
툴툴대면서도 백해인은 열심히 해명 글을 썼다. 그 옆에서 백해원은 중간중간 해명문에 들어가면 안 되는 문장들을 걸러 냈다.
‘네가 써야 되는 건 이월이가 특혜를 안 받았다는 부분이야. 이건 너 아니면 증명해 줄 사람이 없잖아.’
‘근데 우리 동창이면 걔 공부 잘하는 거 다 알 텐데. 처음 글 쓴 애가 우리 학년 아니거나 자작글 쓴 거일 듯.’
‘XXX 아니야?’
하여튼 어그로꾼들은 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아 버려야 한다. 백해원은 분노로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 이번에 단체방에서 얘기하면서 그 말은 나왔어.”
“뭐?”
“그 왜, 걔 공부 잘했댔잖아.”
“그랬지.”
“저번에도 얘기했던 건데, 걔가 왜 갑자기 아이돌로 진로를 바꿨나 하는…… 그런?”
그러고 보니 전교권이었다고 했지. 처음 그 얘길 들었을 땐 ‘우리 이월이 특별 대우 받은 거 아니다!’에만 초점을 맞췄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한 일이긴 했다.
“공부를 그렇게 잘했어?”
“잘했다니까! 내신은 그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모의고사는 맨날 1등이었어. 그러니까 자습실을 받았지.”
백해인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충격 발언을 뱉었다. 그러고는 ‘야, 누가 내 글에 무지성으로 편들지 말라는데? 얘 신고 못 하냐?!’며 광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