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25)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25화(125/193)
| 125화. 파견 근무 (1)
어제저녁, 나는 회사 회의실에서 라이브를 켜고 해명 방송을 했다.
일반적인 대응 방법이 아니라는 건 안다. 하지만 여러 상황을 종합한 결과 이 방법이 제일 낫겠다고 판단했다.
UA에 맡겼다간 과거 스파크의 무수한 논란들을 뭐 하나 제대로 해명도 못 하고 키우기만 했던 꼴을 그대로 답습할 것 같았을뿐더러.
하나를 해명하고 나면 꼬투리에 꼬투리를 잡는 연예계 여론 몰이 특성상, 해명 글 하나로 사태가 잠잠해질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미스러운 일을 오래 가져가는 건 당장 출연 중인 아왕실에도 예의가 아니었다.
그래서 만반의 준비 끝에 장장 한 시간 동안 나의 무고함을 입증했고…….
“너 대학 다시 도전하는 게 낫지 않냐?”
“나보고 지금 탈퇴하고 수능 치라는 거야?”
“그 말이 아니잖아. 안 아까워?”
……최제호를 비롯한 몇몇 놈들과 회사분들에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다시 대입에 도전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다들 이렇게 날 위하는 척 내쫓는다 이거지. 어째 팀에 오래 받아 준다 했다.
자극적인 키워드에 여론이 몰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설마 주위 사람들까지 함께 몰려올 줄은 몰랐다. 왜 남들 끌려고 터트린 어그로에 너희가 끌리냐고.
그리고 안 아깝겠냐? 내가 제일 아깝거든? 피눈물이 철철 나거든?
≫ 이월아 네가 똑똑한 건 알고 있었지만
S대를…… 정시로……
아니 근데 이걸 돈이 없어서…… 하
└ 이 얘기 나오자마자 채팅창 멈춘 게 ㄹㅈㄷ
≫ 우리 애가 특혜받은 게 없다는 사실에 기뻐하기엔 S대를 잃은 게 너무 컸다
≫ XX 내가 다 억울해 미치겠다
성적으로 얻은 자습실 이용권 갖다가 뒤지게 억까당한 거잖아
꼴랑 그게 뭐라고
≫ 근데 집 어려우면 국장 나오잖아
└ 신입생이면 국장이 등록금 낸 후에 나와. 그러니까 등록금을 일단 내야 하는 건데, 그걸 못 냈다는 거지.
└ 부모 둘 다 직장 다닌다면서 그걸 왜 못 냄?
└ 1. 모든 직장인들이 다 월 4~500씩 버는 거 아님 2. 집에서 지원 일절 없어서 스무 살 되자마자 독립했다고 함 끝
≫ 흔한_아이돌_수능 성적표.jpg
└ 반박의 여지가 없는 111111
└ 기운 받고 갑니다
└ 기운 받고 갑니다 22
……아니다. 내가 제일 아깝단 말은 취소.
나야 일찌감치 운명에 순응했지만 팬분들은 자신의 일처럼 내 상황에 괴로워해 주셨다.
입시로 하나 되는 대한민국, 감동이다.
“재도전해도 의미 없어. 그날은 내 찍기 운이 작두를 탄 날이라.”
“형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농담이 아닌 것 같은데요…….”
“농담이 아니니까.”
내 인생 모든 운은 수능 날 몰빵이 됐었다. 그런 기적을 또 바라는 건 염치없는 짓이다.
게다가 다시 대학 가 봤자 또 학점 2점대나 받을 텐데 뭘.
알바랑 학업을 병행하다 스펙과 성적 두 마리 토끼를 다 잃고, 문과 초봉 3,500만 원 준다는 한평산업에 지원했다가 인생을 개같이 말아먹을 텐데 말이다.
미련이 없는 건 아니다.
아니, 고작 미련이 없지 않다는 표현으론 부족하지.
대입은 내가 살면서 얻은 첫 성과였다. 나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최초의 경험이기도 했다.
그걸 잃었는데 어떻게 괜찮겠는가. 그냥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으니 현실을 인정하는 거지.
‘S대 나왔다면서? 그럼 이 정도는 김 대리 혼자 할 수 있을 거 아니야?’
‘김 대리 헛똑똑이네. 학교 다시 다녀야겠어.’
……같은 소리를 듣는 것도 지겹고. X발, 그 인간은 내가 대학 가는 데 보태 준 것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사사건건 시비였을까?
역시 빚을 지는 한이 있어도 투운사 자격증을 따서 증권사에 갈 걸 그랬다.
하지만 한평산업 직원들 대부분이 고학력자였던 걸 생각해 보면 다른 회사에 가도 사정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파르테 쪽과의 분위기까지 정리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지금 대놓고 스파크와 나를 욕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보다 지금은 더 중요한 게 있잖아.”
아왕실 측에 넘겨야 할 포지션 배틀 참여 명단 마감일이 오늘이었다.
아왕실의 3차 경연은 포지션 배틀로 진행된다.
각 그룹에서 보컬, 댄스, 랩 세 포지션을 기준으로 대표 멤버를 선출해 내보내면, 무작위로 두 개의 그룹 대표 멤버가 한 조로 편성되어 유닛을 결성하는 방식이다.
2:2:2 구도로 경합을 벌이고 방청객 득표수로 1, 2, 3위가 결정되며, 이때 얻은 순위에 따라 최종 4차 경연에서 가산점을 받는다.
지금까지의 경연에서 최선을 다한 건 3차 경연 제작비를 얻기 위해서였다.
2차 경연에서 1등을 해 제작비를 얻은 지금, 3차 경연에서 굳이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스파크는 우승하기 힘들뿐더러, 내 우선순위는 스파크 놈들의 안전하고 건강한 성장이니까.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엄청나게 많은 체력을 요한다. 단기간에 무대의 A to Z를 준비해야 하고, 준비 기간이 짧은 만큼 연습 시간도 최대한 끌어다 써야 한다.
기획이나 편곡, 안무 창작 등 여러 분야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품이 훨씬 덜 들었겠지만 UA엔 그럴 여력이 없었다.
덕분에 우리 여섯 명은 말 그대로 뼈를 갈아서 여기까지 와야 했다.
이쯤 되면 누구 하나가 퍼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 꼴이 나기 전에 스파크는 재정비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기연이 너, 지난달이랑 이번 달에 정형외과 한 번도 안 갔지? 댄스 포지션 쪽은 최제호한테 넘기고 이번 회차엔 도수 치료 받고 와.”
“전 괜찮은데요. 별로 아프지도 않고.”
“어차피 랜덤 플레이 댄스 나오면 너 떡상할 거야. 걱정 말고 다녀와라.”
“누가 그런 거 걱정한대요?”
기껏 분량 미리 챙겨 줬더니 말이 많다. 들을 생각은 요만큼도 없어서 그냥 한 귀로 흘렸다.
“그럼 보컬 포지션은……?”
박주우가 물었다.
안 그래도 그게 고민이다. 원래는 내가 나가려고 했거든.
메인 보컬들을 좀 쉬게 해 주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논란으로 시끄러워진 뒤라 상황이 애매해졌다.
“저번에 형이 나갈 생각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랬는데 지금은 상황이 좀……. 내가 나가는 게 좋은 건가, 싶네.”
내가 고민하자 정성빈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계획대로 형이 나가시는 건 어때요?”
“내가?”
“네. 형이 처음에 생각하셨던 그림이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대단한 그림은 없고, 그냥 너희 쉬게 하려던 건데.
“형은 잘하실 거예요. 전 형 믿어요!”
글쎄다.
아무리 봐도…….
≫ 저 새X 방송 욕심 있는 거 맞다니까
얼굴에 비브라늄 합판 깐 게 분명함
≫ ???: 아 화제성은 못 참지ㅋㅋㅋㅋ
……소리나 들을 것 같은데.
그래도 얹혀 가는 처지니 이 정도 희생 플레이는 해 주겠다. 그간 갈고 닦은 강철 성대를 뽐내 주지.
“그럼 남은 건 랩인데.”
정성빈이 말했다.
이 팀의 공식 래퍼는 이청현 하나다. 최제호와 강기연은 랩 트레이닝도 따로 받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적어도 공식 석상에서 보여 준 적은 없다.
하지만 2차 경연까지 하얗게 불태우며 분골쇄신한 이청현에게 이번엔 나가서 랩하고 오라고 하긴 좀…….
“랩이면 당연히 내가 나가야지!”
이청현이 눈을 빛내며 외쳤다. 주먹까지 단단히 쥐고 있었다.
“최종 경연 곡도 미리 생각해 두긴 해야 해. 곡 작업 할 거 고려하면 이번 경연은 쉬는 게 좋지 않겠어?”
최종 경연의 준비물은 신곡이었다. 준비 기간이 필요한 무대이다 보니 3차 경연 방식과 함께 안내되었었다.
나는 녀석이 혹시나 잊어버렸을 것을 대비하여 최종 경연의 존재를 다시 주지시켰다.
그러나 이청현의 태도는 굳건했다.
“형, 우리 2차 경연 때 랩 파트 다 뺀 거 기억하지?”
“응.”
“그래서 나 오랜만에 노래 부르느라 완전 고생했지? 주우 형한테 엄청 혼나고 눈물 펑펑 흘렸지?”
“내가……?”
옆에서 박주우가 한껏 억울해했으나 이청현은 개의치 않았다.
“나 랩 짱 잘하는데 완전 아쉬웠겠지? 막 한숨이 나왔겠지? 랩을 하고 싶은 마음이 한으로 남았겠지?”
“…….”
“심지어 랩 배틀인데 안 내보내 주면 나 속상하겠지? 울겠지? 눈 퉁퉁 부어서 최종 경연 리허설까지 얼음주머니 대고 있어야겠지?”
“그만해. 너 보내 줄 테니까.”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이청현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제 고작 참가자를 정한 것뿐인데 너무나도 피곤했다.
그리고 며칠 후, 어렵게 정한 참가 인원의 파트너가 전달되었다.
* * *
내 조원 운은 썩 좋지 않은 편이었다.
고등학생 땐 별 참여도 안 했던 녀석들이 생활기록부를 검토하는 시기만 되면 나도 기여도가 있지 않냐며 숟가락을 얹었고, 대학생 땐 인간의 양심이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시간이나 보냈다.
과도한 알바로 인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던 나는 나로 인해 피해 보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별 과제를 택했으나, 4년 동안 내 조원이 과제를 택하는 일은 없었다.
군대는 어떻고?
모두가 다 함께 뺑이 치는 그곳에서조차 눈에 띄지 않는 떠넘기기는 존재했다.
그렇게 기껏 단체 생활에서 벗어나나 싶었더니 도착한 곳이 한평산업이지 뭔가.
내 성과 빼앗아서 승진하는 팀장, 개판으로 돌아가는 조직, 난파선에서 바가지로 물 퍼내는 내게 요즘 선원들은 세상 참 편하게 산다며 종이컵을 쥐여 주는 남 부장…….
그런 내게 오늘, 새 조원이 생긴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안내받은 세 번째 방으로 향했다.
마음 굳게 먹자, 김이월. X같은 조별 과제는 익숙하잖아.
이제 와서 네가 인간적인 협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가슴속 깊은 곳에서 눈물이 흘렀다.
문을 연 곳엔…….
“어?”
“헉, 이월 님이시다!”
“안녕하세요!”
베리온이 있었다. 그것도 세 명이나.
* * *
살갑게 인사를 마치고 나자 베리온 멤버들은 어색하게 굳어 버렸다.
젠장, 이번에도 사회성 충만한 MC역 담당인가. 분량 욕심 지린다는 의혹에 박차를 가하겠군.
어쩔 수 없지. 저쪽이 나보다 한참 연하니까 참는다.
“선배님들, 혹시 희망하셨던 그룹이 따로 있는데 제가 온 거 아닌가요?”
“아니에요!”
“저 스파크분들이랑 꼭 한번 무대 하고 싶었어요!”
이 대답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역시 마가 뜨지 않는다는 거겠지.
“그리고 이월 님, 너무 깍듯하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심지어 베리온의 보컬 라인 중 한 명이자 센터까지 겸하고 있는 여성찬 씨는 말까지 편하게 하라고 권하는 중이었다.
어떻게 선배님께 그러냐고 하자 베리온은 대한민국은 장유유서 아니냐며 응수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쌍방으로 말을 놓기로 했다.
“나 형이랑 무대 꼭 한번 해 보고 싶었는데.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지?”
“나랑?”
내가 되묻자 여성찬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어! 보컬 포지션이라고 해서 성빈 님이나 주우 님 나오실 줄 알고 힘들겠다 생각은 했지만……”
“성찬아, 입!”
폭주하는 여성찬을 다른 베리온 멤버가 필사적으로 막았다. 베리온은 아직 주둥아리 간수 교육이 덜 됐나 보다.
나는 벌써부터 내 눈치를 살피고 있는 베리온을 보고 씩 웃었다.
“성빈이랑 주우는 비장의 무기라 숨겨 뒀어.”
“와…… 형은 다 계획이 있구나!”
계획이 있어도 엎어지는 게 X소의 숙명이긴 한데, 뭐.
그 후로 특별히 해야 할 일은 없었다. 오늘 촬영할 분량은 편성된 유닛끼리 안면 트고 담소 좀 나누는 게 전부니까.
‘최제호랑 이청현은 어느 그룹이랑 매칭됐으려나.’
나는 베리온의 ‘스파크 무대, 이 부분이 멋있었다!’ 칭찬을 들으며 두 멤버들의 조 모임 운을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