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26)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26화(126/193)
| 126화. 파견 근무 (2)
“누구랑 같은 유닛이 됐다고?”
돌아오는 밴 안에서, 나는 방금 들은 말을 의심하며 물었다.
최제호가 무심하게 답했다.
“올오버 선배님.”
“이런…….”
하필이면 걸려도 최악의 그룹이 걸렸다.
베리온은 나랑 파트너가 되었으니 후보에서 빠진다고 쳐.
그럼 남은 그룹이 네 개인데, 어떻게 그 중 콕 집어서 올오버랑 한 팀이 되느냔 말이다.
“올오버 선배님들이 왜? 파르테 선배님들이랑 친해서?”
앞자리에 앉은 이청현이 돌아보며 질문했다.
하지만 대답해 줄 순 없다. 이제 고등학생인 이청현에게 ‘응, 그분들 몇 년 후에 감옥 가실 분들이라 미리 쌩까려고 했거든.’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회인으로서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밝은 미래, 희망찬 세상만 보여 주고 싶은데 쉽지 않다.
‘자라나는 새싹이 올오버랑 한 조가 되는 것보단 낫나.’
이청현은 로그와 한 조가 됐다. 그쪽에선 두 명이 나왔는데, 셋 중에서도 이청현이 막내라 나름 예쁨을 많이 받고 온 듯했다.
‘어차피 사이가 좋아선 안 될 관계라면 사교성이 박살 난 애가 가는 게 나을 수도 있어.’
긍정적인 생각을 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최제호에게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가서 깽판 쳐도 좋으니까 꼬우면 꼽다고 말하고 직언하고 싶으면 직언해. 비속어만 안 쓰면 된다. 알았지?”
“언제는 머릿속에서 ‘싫어요.’를 지우라며?”
“누가 연습 째거나 비협조적으로 굴래? 할 거 다 하면서 주둥이도 열라고.”
그러고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아왕실에서 받은 무대 제작비를 반으로 쪼개 봉투 두 개에 나눠 담았다.
각각의 봉투에 최제호와 이청현의 이름을 적어서 건네주자, 녀석들이 이걸 왜 주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돈이 있어야 어딜 가든 무시를 안 당해. 각자 하나씩 들고 가.”
“형은?”
“보컬 무대에서 돈 쓸 일이 얼마나 있다고.”
“그래도 이건 아니지.”
최제호가 봉투를 열고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나는 지폐를 꺼내려는 최제호의 손을 붙들고 말했다.
“그냥 주는 거 아니야.”
“…….”
“쪽팔린 무대 안 되게 정신 바짝 차리고 해. 돈을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지?”
“받은 만큼 해야 한다고…….”
이청현이 버튼 눌린 자판기처럼 중얼거렸다.
하여튼 간에, 방송 분량 못 뽑으면 돈이고 뭐고 다 지하 연습실에서 못 나올 줄 알아.
* * *
단정한 세미 캐주얼 착용, 완료.
노트북과 다이어리를 넣어도 칼각을 유지하는 백팩 착용, 완료.
도합 3만 원을 넘지 않는 비타600 두 박스 구매까지.
베리온의 소속사에 방문할 준비는 완벽했다. 파견 근무는 처음이라 떨리는군.
‘이월아, 그 음료수는 뭐야?’
‘남의 집에 갈 때 빈손으로 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들어서요.’
‘응, 그렇지…….’
떨떠름해하면서도 매니저님은 나를 베리온의 소속사 앞까지 데려다주셨다.
지난 촬영 날, 약간의 논의 끝에 3차 경연 준비는 베리온의 소속사인 ‘그린라인’에서 진행하기로 합의를 봤다.
‘우리가 UA로 가도 되는데!’
‘고맙지만 마음만 받을게. UA엔 대형 연습실이 한 개밖에 없거든.’
‘아아…….’
그렇게 됐다. 최제호와 이청현도 지금쯤이면 남의 소속사에 의탁하고 있을 것이다.
음료 한 박스는 소속사 입구의 보안 담당 직원분께 드렸다. 당분간 드나들 예정이라며,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구관이 명관이라는데 어째 그린라인은 UA보다 좋아 보였다. UA는 보안은 무슨, 털리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던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직원분의 안내를 받아 연습실로 들어갔더니 베리온 멤버들이 우르르 일어섰다.
“형! 어서 와!”
“응, 이건 경연 준비 기간 동안 잘 부탁한다는 뇌물이야.”
“아니, 이런 거 안 챙겨도 되는데!”
베리온은 호들갑을 떨며 나를 반겼다. 음료 한 박스로 입 닦으려고 하는 건 너무 염치없지 않냐고 눈치 주지 않아서 다행이다.
“우리 각자 불러 보고 싶은 노래 생각해 보기로 했잖아. 다들 어떤 곡 가져왔어?”
내 말에 베리온의 멤버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의견을 냈다.
유감스럽게도 이거다 싶은 안은 없었다. 본인들도 같은 생각인지, 말을 꺼낸 후로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럼 내가 가져온 곡을 말하기 전에…… 미튜브에 올린 커버 음원, 한 번씩 듣고 왔거든?”
“헉. 그걸 다 들었어?”
여성찬이 크게 놀랐다.
애초에 몇 곡 없던데? 스파크 자컨 물량에 비하면 그거 듣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나는 틀린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 달라고 언질을 준 다음, 내가 파악한 베리온의 가창 특징과 취향을 간략하게 브리핑해 보았다.
먼저 베리온의 메인 보컬인 차세한.
트렌디한 요즘 그룹답게 베리온은 포지션을 명확하게 구분하진 않았지만, 그 안에서는 차세한이 제일 노래를 잘했다.
음역대는 넓은 편인데, 베리온이 그간 낸 노래들의 음 고저가 거기서 거기라 역량을 잘 보여 주지 못한 감이 있다. 그래서인지 전개가 드라마틱한 노래를 주로 커버하는 경향이 있었다.
다음으로는 유난히 사교성 좋은 누구를 떠올리게 하는 여성찬.
시원시원한 목청이 장점이다. 발성이 탄탄해 셋 중에서 안정감은 제일 뛰어났다. 보컬 스타일과 성격이 좀 다르다고 해야 하나.
이쪽은 감성적인 발라드엔 약했다. 대신 한때 인기를 끌었던 K-고음이 나오는 노래엔 꽤 강점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리더인 문연규는 기교파 보컬이었다. 베리온 무대의 애드리브 중 8할은 문연규가 맡았다. 성량이 크진 않지만 가성으로도 음정을 정확히 맞히는 능력이 눈에 띄었다.
이렇게 보면 조합은 나쁘지 않지만…… 베리온이 대단히 노래를 잘하는 그룹은 아니다.
비단 베리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아이돌 판에서 탈인간급 보컬의 수가 줄어드는 탓이었다.
급감한 대중성을 굳건한 팬덤 파워나 이지 리스닝만으로 커버해 보려는 시류 속에서 많은 소속사가 적당히 타협을 시도했다.
덕분에 정성빈과 박주우가 산삼보다 귀하다는 비주얼 메보 소리를 들으며 실력으론 못 깐다는 영광을 누렸지.
어쨌든, 요약하자면 기존의 스파크에서 보여 주었던 짜릿할 정도의 고음 연출은 기대하기 힘들단 뜻이다.
그래서 오늘 그린라인으로 출근하기 전까지 대가리를 빡세게 굴렸다. 얼마나 정성빈의 도움이 간절하던지.
그래도 결국엔 찾아냈다.
차세한이 모처럼 끝내주는 고음을 보여 주면서 여성찬이 성량 자랑도 할 수 있고, 문연규가 애드리브도 실컷 할 수 있는 비장의 곡을.
“있잖아, 혹시 이 곡은 어때?”
나는 노트북으로 오래된 애니메이션의 오프닝 영상을 틀었다.
* * *
“그럼 파트는 이렇게 나누자. 화음 부분도 어느 정도는 맞춰 보고 싶은데, 다들 이후에도 시간 괜찮아?”
김이월이 물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하는 권유에도 어쩐지 거절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연상이라서 그런가?’
대부분이 동갑내기인 베리온에선 연장자를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었다.
더군다나 리더인 문연규에게 누군가가 이끌어 주는 경험은 오랜만이었다.
문연규에겐 스파크의 무대를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이 생생했다.
아니, 문연규뿐만 아니라 베리온 모두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동년배들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실력.
뭐 하나 빠지지 않는 비주얼과 피지컬에, 퀄리티 좋은 무대까지.
이를 갈고 나왔구나.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드는 데뷔였다.
데뷔 무대를 흐린 눈으로 하는 아이돌은 없다. 하지만 모든 무대를 죽을 각오로 하는 아이돌은 흔치 않다.
신인이라면 누구나 매사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스파크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무대를 하는 그룹. 스파크에겐 그런 표현이 어울렸다.
아왕실 방영 초반에 약간의 잡음이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문연규는 스파크에게 인사 정도는 하고 싶었다.
타돌에게 예의가 없다는 논란이 무색할 정도로 스파크는 모두가 상냥했다.
이런 그룹이 잘못된 논란으로 저평가를 받는다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았다.
문연규의 걱정은 기우였다. 스파크는 모든 무대를 엄청나게 잘했고 방청객 투표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무대에서 눈을 뗄 수가 없게 만들고, 방송으로 무대가 나오는 날을 기다리게 하고, 방송이 끝나면 다시 한번 무대 영상을 찾아보게 만든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면 우연이겠지만, 스파크는 2차 경연에서 운이 아닌 실력임을 입증했다. 그 증거로 문연규 또한 스파크의 2차 경연이 방송되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고민도 되었다.
무엇이 스파크의 무대를 특별하게 만드는 걸까?
그룹을 이끌어 가는 입장에서 문연규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걸 알려 달라고 해 봤자 알려 주지도 않겠지만, 적어도 같은 프로그램을 하는 동안은 어깨너머로나마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다 운 좋게도 바로 옆에서 스파크의 프로듀싱 멤버라는 김이월의 무대 기획 작업에 함께하게 되었다.
그리고 첫 미팅 날, 문연규는 자신들이 얼마나 관성적으로 일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선곡을 할 때 자신이 어느 정도 활약할 수 있는 곡을 고른다.
무대를 만들 기회가 생기면 하고 싶었던 컨셉을 내놓고, 이를 조율해 가며 합의점을 찾았다.
반면 김이월은 달랐다.
김이월은 함께할 사람들의 역량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그 사람이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은지 최대한 헤아렸다.
말 붙이기 어려울 만큼 차가운 외모와는 달리 태도 또한 언제나 온건했다.
김이월에겐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설명하면서, 온화하게 사람을 설득하는 재주가 있었다.
모두가 멋진 무대를 만들자고 말할 때, 김이월은 이미 그 멋진 무대를 완벽히 머릿속에 그려 낸 사람 같았다. 김이월의 말만 들었을 뿐인데 어떤 무대가 나올지 상상이 간다는 점에서 그랬다.
‘굉장하다.’
문연규는 내심 감탄했다. 동시에 기뻤다.
어쩐지 이번 무대를 계기로 자신과 동료들이 한층 더 성장할 것 같다는 예감을 받았다.
그러나 즐거운 시간은 짧았다.
“그럼 일단 화음까진 끝내고 해산할까?”
김이월이 바라는 이상적인 무대를 위해, 아주 밀도 높은 연습이 산더미처럼 쌓인 채 문연규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