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27)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27화(127/193)
| 127화. 내 동료를 칭찬합니다
“다녀왔습니다.”
“어? 형 일찍 왔네……?”
거실에서 스트레칭 중이던 박주우가 귀가한 내게 다가왔다. 녀석은 내 백팩까지 받아다 친절하게 방에 옮겨 주었다.
“그린라인 에어컨 청소해야 해서 건물 비워야 한다더라. 그래서 일찍 마무리했어.”
다른 사유라면 어떻게든 뭉개며 버텼겠지만 에어컨 청소에는 차마 토를 달 수가 없었다.
관리가 안 된 에어컨은 쓰레기와 다를 바 없으니까.
냉매 떨어지면 바람 미지근해지지, 배수관 낡으면 물 새지, 리모컨마다 매번 건전지 갈아야 하지, 안에 곰팡이 생기면 냄새나지…….
안 그래도 천장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진 물을 맞고 걸레 빠는 개수대에서 머리를 감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땐 정말 사무실이 아니라 워터 파크에 온 줄 알았다.
그러고도 에어컨 수리를 안 해 줬던 한평산업 임원들이여, 올해는 다들 더위 먹길 바란다.
축축한 추억에 잠겨 있는데 강기연이 부엌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다녀오셨어요. 밥은 먹었어요?”
“아직. 너희는?”
“저흰 닭가슴살 먹었어요. 하나 데워 드려요?”
“아냐, 내가 할게.”
내 말에 강기연이 고개만 끄덕이곤 부엌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그러니까 방금, 강기연이 부엌에서 나왔는데…….
“기연아.”
“네?”
“너 키 컸어?”
시선이 평소보다 덜 내려갔단 말이지?
“저요?”
강기연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애가 좀 당황한 것 같지만 아무래도 좋다. 키가 컸을지도 모르는데 그딴 게 대수야?
“얘들아! 아무나 줄자 좀 가져와 봐!”
“형 그냥 잘못 본 거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스파크 단체 샷을 몇 장이나 보정했다고 생각하냐? 내 눈이 깔창 탐지기다, 이 자식아.
내 호통에 정성빈이 헐레벌떡 줄자를 들고 왔다.
“이걸 어떻게 재죠? 일단 기연이 키만큼 벽에다 표시를 해 놓을까요?”
“여기 전셋집이잖아. 펜으로 표시하지 말고 인덱스 붙여놔.”
그러자 이번에는 이청현이 숙소 거실 한쪽에 만들어 놓은 문구함에서 무지갯빛 인덱스를 가져왔다.
“한밤중에 왜……. 키야 내일 회사 가서 재도 되잖아요.”
“내가 네 키에 얼마나 사활을 걸었는지 몰라서 그래?”
나는 투덜거리는 강기연을 벽에 붙여 놓고 대꾸했다.
그 틈을 타 이청현이 강기연의 정수리가 닿는 곳에 심혈을 기울여 인덱스를 붙였다.
정성빈과 박주우가 힘을 합쳐 줄자를 당기는 동안 나는 온 우주를 향해 기도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 새X 키 크게 해 주세요.
저 진짜 열심히 했잖아요. 헬스 수업도 받게 하고 탄단지랑 칼슘 챙겨 먹이고 잠도 일찍 재웠잖아요. 제 돈으로 한 건 아니지만.
스파클러분들은 무슨 죄여서 쟤 때문에 SNS 헤더를 사선으로 잘라야 한답니까. 상반신만 잘려서 위로 옮겨져야 했던 강기연은 무슨 죄고요.
가뜩이나 이 팀에 신세 지고 있는 기간이 길어져서 마음이 초조한데 얘 키 하나 못 키우면 저는 면목이 없어서 못 살아요.
일단 175cm만 넘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 우유 하루에 다섯 번씩 먹일게요.
하느님, 부처님, 단군 할아버지 제발…….
“헐. 강견, 176 찍었는데?”
그렇게, 나의 간절한 기도는 이청현의 한 마디로 보답받았다.
* * *
다음 날, 강기연은 키 재는 기계로도 176cm임을 인정받으며 공식적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정작 강기연은 가만히 있는데도 나는 팬카페며 메신저에 강기연 키 컸다고 동네방네 자랑했다.
“강기연 키 큰 게 그렇게 좋냐?”
기쁨에 취한 날 한참 쳐다보던 최제호가 툭, 말을 던졌다.
“당연하지. 기연이가 싫다고 하지만 않았으면 다리 주물러 주고도 남았어.”
일은 웬만하면 뜻대로 할 수 있지만 키 같은 문제는 운에 달린 법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는 일인데 그 노력이 빛을 봤으니 뿌듯한 게 당연하지 않겠나.
아직 강기연의 성장판이 닫히기 전까진 시간이 남았다. 비록 춤으로는 보은하지 못 해도 키로나마 은혜를 갚을 생각이다.
‘딱 180cm까지만 컸으면 좋겠네.’
1~2년만 지나면 정성빈과 이청현은 알아서 180cm가 넘을 거다. 거기에 강기연까지 합류하면 스파크는 전원 180cm 이상이라는 타이틀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장신 그룹 좋지. 얼굴도 살얼음판이니 피지컬로 밀고 가면 괜찮지 않겠는가.
깊이 고민하며 생필품 목록에 저지방 우유 다섯 팩을 적으려는데 뭔가 찝찝했다.
최제호의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저놈 자식 기분은 좋을 때가 드물었지만, 그렇다고 티가 나게 나쁜 것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팀에서 제일 큰 놈이 고작 막내 키 좀 컸다고 견제하는 건 아닐 거고.
“경연 준비는 어때? 잘되어 가?”
제 침대에 누워 있던 최제호가 멈칫했다.
머뭇거리던 녀석이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침대 헤드에 기대앉았다.
“야.”
“왜?”
“우리 애들이 유난히 남한테 잘 맞추는 편이냐?”
얘 또 앞뒤 다 잘라먹고 얘기하네.
내가 무슨 초능력자니? 이것만 듣고도 전후 사정을 다 알게.
그래도 저의는 대충 알겠다. 올오버랑 어지간히 삐걱거리고 있나 보지.
하지만 언제까지고 통역사를 해 줄 순 없는 노릇이니, 녀석이 제대로 말하기 전까진 모른 척하기로 했다.
“딱 보면 알잖아. 애들 착한 거.”
“하…….”
“왜. 무슨 일 있어?”
최제호가 머리를 벅벅 헤집었다.
“아니 XX, 댄스 포지션이라고 나와 놓고 안무도 못 따라가는 건 무슨 경우야?”
“습득하는 데 오래 걸리는 편인 거 아니야? 한 번 배우고 나면 잘하실 수도 있지.”
“달라. 몸 쓰는 법을 아는 움직임이 아니었어, 그거.”
숙련자는 보기만 해도 그런 걸 알 수 있나 보다. 몸 쓰는 법이라곤 X도 모르는 나는 가만히 듣는 쪽을 택했다.
“아이디어도 안 내, 의견 내면 어렵다고 징징대. 그럴 거면 회의는 왜 하고 연습은 왜 해?”
“그렇지. 그 상태였으면 진도는 거의 못 나갔겠네?”
“그 인간들 안무 외우는 데만 백만 년 걸릴 것 같아서 댄브만 빼고 다 내가 짰어.”
“고생했네. 그럼 내일부턴 단체 연습?”
“3일간은 개인 연습 하자는데 뭔……. 댄브 짜기 전에 그림은 봐야 하지 않냐? 무대 따로 할 것도 아닌데 각자 외우기만 해서 뭐 하려고, XX. 그리고 무슨 안무 따는 데 3일이나 걸려?”
최제호가 답답한 듯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그대로 베개에 머리를 처박았다.
“왜 그래. 최제호 씨도 한때 단체 연습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았잖아.”
“그건 예전 얘기고.”
어찌나 숨을 크게 내쉬는지, 건너편 침대에 엎어져 있는 최제호의 어깨가 오르내리는 게 또렷이 보였다.
“스파크랑 연습할 때가 좋았지?”
내 질문에 최제호의 등이 움찔했다.
녀석이 몸을 일으키자 베개에 눌려 새빨개진 얼굴이 드러났다.
X발, 코 눌린 거 아니야? 넌 앞으로 엎드려 자기 금지다.
“야,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원래 구관이 명관이래.”
발끈하는 꼴이 조금 웃겼다.
하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는 의도한 경험이었어서 말이다.
최제호가 가히 ‘센터 황제’라고 불렸던 최고의 센터인 건 맞지만, 저 혼자 잘났다고 팀이 잘되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최제호가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 주변의 멤버들이 충분히 녀석을 받쳐 준 덕분이었다.
강기연이 스파크의 무대를 최제호 단독 쇼가 아닌 그룹의 무대로 만들어 주었고, 정성빈과 다른 멤버들이 그 옆에서 밸런스를 맞췄다.
과거에는 이게 매번 제대로 되진 않았는지 무대가 어수선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스파크는 모두가 잘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 안에서 최제호는 날아다녔다.
나는 그 사실을 본인도 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멤버 귀한 줄 알아야 어디 가서 탈퇴 후 자아를 찾아 솔로 데뷔…… 같은 헛바람이 안 들 테니까.
“안 되면 방법을 물어보는 게 기본 아니야? 왜 좀만 복잡하면 바로 안무부터 바꾸려고 하는지 모르겠네.”
“안무가 많이 어려웠나 보네.”
“그럼 뭐, 평생 기본기만 춰? 옛날에 정성빈은 울면서도 연습했었어.”
“그래, 너 라떼다.”
이제 최제호는 거의 폭주하고 있었다.
대진운이 구린 건 유감이지만, 내가 원한 경험은 톡톡히 하고 있는 듯하다.
한참을 씩씩거리던 최제호가 날 보고 물었다.
“저번에 네가 그랬지? 꼬우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내가 언제 그렇게 얘기했어? 할 건 다 하면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라고 했지.”
내 말에 최제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곤 가만히 뭔가를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무대, 성적 중요해?”
“성적은 안 중요하지만 잘하는 건 중요…….”
“알아, 팬분들이 보시기에 내가 잘하면 된다고 했잖아.”
아왕실이 시작하기 전에 했던 얘기인데 용케 잘 기억하고 있네.
“순위도 별로 안 중요하고 방송 이미지도 별로 안 중요한 거면 나 하고 싶은 대로 할래.”
“뭐?”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그쪽 하는 짓 띠꺼우니까 비속어 빼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X대로 진도 나갈 거야.”
나는 말없이 녀석을 쳐다보았다.
놈은 그런 나를 바라보다가, 짧게 덧붙였다.
“내 건 잘할게.”
그 이상의 대답은 필요치 않았다. 나는 그러라며, 피식 웃고는 방을 비워 주었다.
* * *
이어진 연습 기간 동안 나는 원 없이 노래만 불렀다.
우선 아침 담당을 박주우가 맡아 주면서 여유가 생겼다. 냉장고 체크는 정성빈이 도맡았다.
둘이서 어찌나 손발이 척척 맞던지, 나는 그냥 놈들이 주는 샐러드나 닭가슴살을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됐다.
그린라인에 출근해서는 경비원분과 인사하고―젊은 청년이 싹싹하기도 하다며 언제나 반갑게 맞아 주고 계신다―베리온의 멤버들과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데.
“형, 이거 먹을래? 이번에 매니저 형이 태국 가서 사 온 거야!”
“형 전화번호가 뭐야?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번호 교환을 안 했더라.”
“형, 스파크는 아이디어 회의 같은 거 어떻게 해?”
얘네…… 언제 이렇게 거리감이 줄어든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