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28)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28화(128/193)
| 128화. 3차 경연 (1)
올오버와 씨름 중인 최제호에 비하면 그린라인에서의 연습 생활은 천국이었다.
타 소속사 가수라고 눈치 주는 사람도 없었다. 덕분에 나는 연습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염치없이 받기만 하는 건 적성에 안 맞는지라,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소한의 예의는 차렸다.
첫 번째, 회사에서 나까지 챙겨 주는 건 어디까지나 호의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므로 성심성의껏 감사함을 표시할 것.
두 번째, 베리온이 소수인 내 의견을 존중해 주는 만큼 나도 베리온을 동료로 대할 것.
그린라인에 신세를 지는 동안 이 두 가지는 잘 지키자. 그렇게 결심했었다.
게다가 저 두 가지 다짐을 지키는 건 별로 어렵지도 않았다.
사람이라면 응당 받은 것에 감사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니까.
‘이게 뭐야? 찜질팩?’
‘응. 숙소에서 쓰려고 샀었는데, 희랑 씨였나? 그분 무릎이 좀 안 좋아 보이길래. 이건 아직 안 뜯었으니까 필요하면 쓰시라고 가져왔어. 우리 막내가 그러는데 이 제품이 제일 괜찮대.’
그래서 여분이 있는 물건은 나눠 주고…….
‘선곡하면서 너희랑 잘 어울릴 것 같은 곡들 몇 개 뽑아 뒀는데 혹시 필요해?’
‘우리랑 어울릴 것 같은 노래?’
‘경연곡 고르면서 리스트업했던 건데, 최종적으로는 색깔이 안 맞아서 제외했거든. 대신 개인이 부르면 잘 어울릴 거야.’
선곡하다 탈락한 노래들은 모아서 넘겨줬다. 이거야 일하면서 얻어걸린 거니까 줬다고 표현하기도 애매하다만.
아, 숙소에 구급상자 없다길래 그건 하나 사 줬다.
어린애들만 모여 사는 곳에 상비약 하나 없는 꼴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서 말이다.
베리온엔 외국인 멤버도 있다길래 견출지에 영어로 두통, 복통, 기침, 오한을 대문짝만하게 써서 붙여 줬다.
어쨌든, 딱 그 정도만 했을 뿐인데.
“형, 숙소 가면 바로 잘 거야? 시간 있으면 희랑이 보고 가지. 걔가 형한테 꼭 인사하고 싶댔는데.”
“그냥 아침까지 먹고 가. 이 동네에 진짜 맛있는 국밥집 있거든. 문 사장, 콩나물국밥은 건강식이니까 괜찮지?”
“그래 형, 아침 먹고 가. 혹시 배달 오는 동안 형이 선곡하는 방법 좀 알려 줄 수 있어?”
3차 경연을 목전에 둔 지금, 이놈들은 지들만 나랑 친해지는 걸 넘어 나머지 멤버들까지 모조리 소개해 줄 기세였다.
밤새워 연습해 놓고 안 피곤한가. 대단한 체력이다.
게다가 뭐? 아침을 먹고 가?
국밥은 탐나지만 남의 소속사에서 아침까지 얻어먹을 만큼 양심 없는 인간 아니다, 나.
그리고 연습 끝나면 재깍재깍 숙소로 가야 한다. 스파크 놈들이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선곡 방법은 알려 줄 수 있는데 밥은 안 먹고 갈 거야. 회사에 외부인이 오래 있는 게 예의는 아니잖아. 희랑 씨랑은 또 인사할 기회가 있겠지.”
나는 좋게 거절하고 빠르게 가방을 쌌다. 세 놈이 동시에 시무룩해졌다.
이쯤 되면 그린라인은 베리온에 연장자를 한 명 넣어 줬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애들이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한숨을 쉬며 가방의 앞쪽 포켓에서 가루 스틱 세 봉지를 꺼냈다. 스파크 놈들에게 종종 타 주는, 무가당 배도라지 차 분말이었다.
나는 문연규에게 배도라지 차 스틱을 건네며 말했다.
“숙소 가면 이거 한 잔씩 타 마시고 바로 자. 경연 얼마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더 힘내.”
내 말에 문연규는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다.
감동받지 않으셔도 됩니다, 문연규 씨.
우리 팀 센터가 무대를 나쁜 의미로 박살 낼 거라고 예고해서 나라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뿐이니까…….
* * *
우여곡절 끝에 3차 경연의 날이 밝았다.
쉴 놈은 쉬고, 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놈은 지 하고 싶은 대로 한 덕에 스파크는 다들 때깔이 고왔다. 역시나 나만 빼고.
‘형, 혹시 베리온 선배님들이 형만 혹사시켜요?’
정성빈이 진지하게 물어볼 정도로 다크서클이 짙었다. 덕분에 숍 문지방을 밟자마자 왕창 혼났다.
오늘은 간만에 의상 컨셉 기획에서 절반쯤 자유로웠다.
최제호와 이청현은 각 유닛에서 맞춘 옷을 입을 거고, 나도 베리온과 맞춰 둔 의상을 입으니까.
일이 줄어든 대신 오늘은 정성빈과 박주우, 강기연의 옷에 심혈을 기울였다.
아왕실과 컨셉도 맞으면서 빛깔도 고운 선비님 한복으로다가.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박주우에게는 무심 댕댕이 키워드를 살리기 위해 백구를 연상케 하는 연한 하늘색 한복을 입혔다. 귀여우라고 강아지 발바닥 모양 도장도 사서 소매랑 두루마기 끝에 열심히 찍어 줬다.
정성빈은 우리 팀 대장이니까 곤룡포를 입혀 줄까 고민했지만, 그랬다간 특정 멤버 우대 논란이 나오고 또다시 해명 방송을 하게 될 게 뻔해서 연분홍빛 한복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이참에 핑크빛 볼 터치를 더해 스파크 기준 따스한 온미남 면모를 어필해 보려 했으나…….
‘쓰읍…….’
‘왜 이렇게 약관이 되어 처음으로 모주 마셔 보고 취한 도련님 같지?’
……이렇게 되어 다시 뽀송한 선비로 돌아갔다. 이놈들에게 다정한 면모를 강조하려던 내 잘못이다.
마지막으로 강기연에겐 연노란색 한복을 입혔다.
본인 이미지를 생각하면 보라색도 잘 어울릴 것 같았고, 실제로 지금까지 어두운 톤의 옷을 많이 입긴 했는데…….
강기연의 막내 모먼트를 좋아하는 수요를 고려해서 이번엔 특별히 ‘번외 에피소드: 병아리반 기연이’ 컨셉으로 갔다. 본인에겐 비밀이다.
‘형, 우리 갓은 안 써도 돼?’
‘갓을 왜 써! 얼굴에 그림자 지게!’
갓은 음영 보정되는 시즌 그리팅 때 씌울 거다. 실내 촬영인 아왕실에선 용납할 수 없어.
파스텔 톤으로 입혀서 소파에 나란히 앉혀 놨더니 무지개떡 같고 좋았다. 가슴에는 지난 경연에서 받은 어사화 배지도 잊지 않고 달아 줬다.
≫ 한복 없는 명절 자컨이라니
인생이 팍팍하다
└ 존버하다 보면 한 번은 입어 주겠지
한때 스파클러분들이 염원하셨던 옷이 얼마나 많았던가.
자진 탈퇴하기 전까진 최대한 꾸며 주지. 다 입을 때까지 힘내라, 스파크 놈들아.
이렇게 미참여자 3인방은 귀염뽀짝하게 입고 관람 준비를 끝낸 반면, 참가자 세 명은 그야말로 3인 3색이었다.
나는 주인공 일행이 모험을 떠나는 애니메이션의 주 내용에 맞게 탐험가 같은 의상을 입었다.
넥타이는 매 봤어도 스카프를 매 보는 건 처음이라 영 낯설었다. 지나치게 보이 스카우트 같지 않냐고 여쭤봤으나, 스타일리스트분은 언제나 그러셨듯 잘 어울린다며 칭찬만 하셨다.
하필 이번에는 도입부도 내가 맡는 바람에 소품까지 챙겨야 했다.
스파크에 있을 땐 이런 건 웬만하면 정성빈이 해 줬는데. 이래서 팬들이 도입부 요정에 열광하셨나 보다.
이청현은 시커먼 광견 그 자체였다.
로그와 대체 무슨 무대를 준비한 건지, 상하의 모두 시커먼 것도 모자라 검은색 하네스와 레그 홀스터까지 아주 가지가지 찼다.
심지어 오늘은 빨간색 컬러 렌즈도 꼈다. 이런 놈한테 렌즈 광고를 시켜야 하는데.
“너희 뭐, 암살자 컨셉이야?”
“이 정도로 놀라면 곤란한데.”
그러더니 이청현이 손에 들린 물건을 흔들었다.
“그거 설마 입마개니?”
대형견이 찰 것 같은, 가죽 재질의 끈으로 된 입마개가 이청현의 손안에서 덜렁거렸다.
“너 이 자식 내가 그렇게 얼굴 가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
“아, 알아! 1절 끝나면 벗을 거야!”
“벗을 거면 아래로 내리지 말고 위로 젖혀. 코 안 다치게.”
어쨌든 저놈도 청량은 다 말아먹게 됐다. 저 새X, 분명 사이버 전사 컨셉을 시켰어도 좋다고 했을 거다.
이청현이 큰 충격을 주긴 했지만 최제호는 더 대박이었다.
날티 나게 왁스로 세팅한 머리로도 충분히 위압감이 느껴지는 판국에, 녀석은 속에 시스루 상의만 받쳐 입은 채 엄청난 딥블루 크롭 재킷으로 탄탄한 근육을 과시했다. 사춘기 애들한테 이런 자극적인 꼴을 보여 줘도 되나 싶다.
“머리 색도 좀 달라진 것 같은데? 염색할 시간이 있었어?”
“스프레이.”
최제호의 머리가 형광등 조명 아래서 푸른색이 섞인 은은한 보랏빛으로 빛났다.
어두운 무대 위로 올라가면 딱 하이라이트 받았을 때만 색감이 나오겠군.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이 두 놈을 보고 나니 나만 평화로운 힐링 탐험 게임 주인공이 된 것 같다. 랩과 댄스란 정말 무서운 거구나.
혹시나 아왕실 리액션 분량이 부족할 수도 있으니, 우리는 단체로 어느 유닛이 기대되는지를 열심히 떠들었다.
그렇게 30분쯤 떠들었을 때. 3차 경연의 막이 올랐다.
* * *
첫 포지션 대결은 랩 포지션부터 진행됐다.
스티키와 베리온의 조합은 꽤 좋았다.
두 그룹 다 자신의 강점인 밝음+명랑함을 살리기로 한 건지, 사랑에 막 빠진 남자를 표현하는 싱잉 랩을 선곡했다.
느린 템포지만 티키타카가 좋고, 컨셉이 단순해서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현장 반응도 좋았다. 일반적인 힙합보다도 더 대중적인 곡을 고른 덕분에 랩 가사임에도 따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베리온이 모 아니면 도긴 해도 기획력은 좋단 말이지.’
스파크가 청춘 컨셉을 밀고 있는 만큼이나 뚝심 있게 러블리한 썸남 컨셉을 밀고 있는 스티키의 일관성도 돋보였다.
그다음으로 나온 파르테와 올오버는…… 강력했다.
고딕 풍 의상에 작정하고 진하게 한 화장으로 비주얼부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연습생 때부터 친분이 있었다는 멤버들 사이에서 나오는 케미가 무대에서도 보였다.
파르테의 신화적인 이미지와 올오버의 어둡고 과격한 느낌을 섞기 위해 이모 랩(Emo rap)을 고른 것도 괜찮았다.
앞 무대도 지금까지의 아왕실 무대 기준으론 준수했으나, 다음에 나온 무대가 시각적이나 청각적으로 훨씬 인상적이었다.
이건 뭐, 대진운을 탓해야지 어쩌겠어.
그런 무대를 차라리 2차 경연 때 했더라면 스티키나 베리온 둘 다 당시보다는 좋은 성적을 받았을 거다.
파르테라고 언제까지 죽 쑤고 있지도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저번 경연에 2위를 한 데 이어 이번에도 독기를 바짝 올린 게 눈에 보였다.
훌륭하다. 이래야 시청자분들도 보는 맛이 있지. 프로그램이 잘돼야 스파크도 더 유명해질 거고.
신나게 무대를 본 것까진 좋았는데, 퍼뜩 지금 백스테이지에 가 있을 이 팀 막내 생각이 났다.
‘이청현…… 잘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