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29)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29화(129/193)
| 129화. 3차 경연 (2)
이청현의 랩 스타일은 딱 K-pop스러웠다.
비속어 없고, 거칠거나 튀는 음 없이 노래가 변주될 때 잠깐 치고 빠지는 느낌.
강하게 존재감을 뽐내기보다는 음악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을 추구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이청현은 그런 스타일 외의 랩을 한 적이 없다.
녀석은 다른 래퍼 아이돌들처럼 믹스 테이프를 내지도, 특별히 다른 스타일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그런 이청현이 올 블랙 슬림핏 점프슈트에 하네스를 차고 입마개까지 한 상태로 랩을 한다?
솔직히 상상이 안 갔다. 오히려 아이돌로서 하면 안 될 비호감 컨셉을 하는 건 아닐까 걱정만 됐다.
‘뭐든 잘하는 애라고 너무 신경을 안 썼나?’
이미 무대에 올라간 애를 끌고 내려올 수도 없고. 수심이 깊어졌다.
무대를 찢고 오겠다던 이청현의 말만 유언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조마조마한 나를 내버려 두고 야속하게도 무대는 시작됐다.
검은 전광판에서 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무대의 맨 앞에서, 바닥을 기어 나온 이청현이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고개를 쳐들었다.
『들려? 내가 짖는 소리
Bowwow, wow!』
한 소절을 듣는 순간 나는 이 무대의 컨셉을 깨달았다.
케르베로스.
하데스가 지배하는 지옥의 문을 지키는, 머리가 세 개 달린 감시견.
‘설마 지금 세 명이라 삼두견인 케르베로스를 고른 거야?’
이걸 단순하다고 해야 할지, 직관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보다 이건 무대를 찢는 게 아니라 무대에서 짖는 거잖아.
『난 한 놈만 노려
난 놈이라 그래
태생이 이런 걸 어째』
외적인 퍼포먼스가 주는 임팩트에 비해, 가사는 광기가 있긴 해도 흔히 나오는 랩 같았다.
『포기하고 맘 돌려
탈출? X까라 그래
이 판이 이런걸』
……아니네, 좀 세긴 하네.
미성년자인 이청현에게 이 파트를 줬다면 방송이고 뭐고 무대에 난입해서 드러누웠을 거다.
그리고 나를 밟고 무대 하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겠지.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빚지 않아도 되었다.
그보다 문제는 그 겹치는 컨셉이, 저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인 가사가…… 묘하게 한 지점을 가리킨다는 데 있었다.
다른 신화도 아니고 같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동물에 한 놈만 족치겠다는 가사라니.
누가 봐도 파르테네 팀만 물어뜯겠다는 소리 아닌가.
게다가 상대가 두 팀인데 한쪽 팀만 노린다?
다르게 말하면 남은 한 팀은 안중에도 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었다. 말로만 듣던 일타쌍피가 눈앞에서 펼쳐졌다.
이것이 랩의 세계인가? 이게 경쟁……이라는 건가?
처음 들어온 힙합의 세계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했다.
혼돈에 빠진 날 놔두고 이청현이 입마개를 벗어 던졌다.
『주둥이 말고 입으로 지껄여
짖을 수 있는 건 나뿐이야
개소리는 내 거니
넘보지 마 무대를
찢을 수 있는 건 나뿐이야
Wowed everyone!』
벽에 달린 스피커에서 빠르게, 그리고 분명하게 랩이 쏟아졌다.
이청현의 충격 변신에 얼어붙은 우리를 사이에 두고 양옆 대기실에서 환호하는 리액션이 들려왔다.
옆 대기실의 누군가가 ‘찢었다!’를 연발했다.
이청현이 찢긴 찢은 것 같다. 무대 말고 청양고추 자루를.
귀가 매웠다. 아이돌이 된 이래 처음으로 모니터링이 두려워졌다.
* * *
“나 어땠어?!”
“황천 토박이인 줄 알았어.”
“크!”
내 말에 이청현이 크게 감동했다.
“진짜 멋있더라, 청현아. 나 깜짝 놀랐어.”
정성빈도 웃으며 극찬했다.
칭찬은 저렇게 해야 하는데. 좀 보고 배워야겠다.
어지간히 후련했는지, 이청현은 멤버들과 돌아가며 포옹까지 했다.
몸이 아주 후끈후끈하더라. 엔도르핀이 쫙 돈 모양이다.
반면 슬슬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 최제호의 표정은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카메라 있을 때 안 웃으면 현관문에서 재운다고 협박을 해서 그런지 나름 생태 눈깔이었지만 수년간 놈을 지켜봐 온 나는 알 수 있다.
저 새X 지금 누구보다 숙소에 가고 싶어 하고 있다.
웬만하면 무대를 안 가리는 놈이 저러다니.
올오버가 얼마나 굉장한 쇼를 보여 줄지 역으로 기대되기 시작했다.
* * *
최제호네 유닛은 두 번째 차례였다.
스티키와 파르테가 진득한 페어 댄스 퍼포먼스를 보여 주며 좋은 반응을 얻은 후였다.
앞의 무대가 초반에는 적은 수의 오리지널 멤버로 시선을 주목시키고 후반에는 엄청난 수의 백댄서들과 멋진 군무를 보여 줬다면, 최제호네 팀은 철저히 멤버들로만 무대를 채우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이건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끝까지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밸런스가 엉망이었다.
스파크 안에 있어도 한 번 주목을 받으면 무대가 끝날 때까지 시선을 붙잡아 놓기로 유명했던 최제호다.
그런 녀석을 옆에 두고 1인분을 못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답은 하나다. 사람들 눈에 최제호밖에 안 보이게 된다.
춤에 관해선 일자무식인 나도 최제호가 강약 조절을 기가 막히게 한다는 댓글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놈이 사이드로 빠지면서 힘을 뺄 때조차 시선을 독식하면 무대가 온전히 눈에 들어오겠냔 말이다.
최제호가 자기 할 일만 잘하겠다고 했을 때 이렇게 될 건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그래도 심하네…….’
이청현이 한껏 끌어올렸던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가라앉았다.
스파크 놈들이야 최제호의 실력을 익히 알고 있을 테니 이런 상황이 더 안타깝겠지.
다행히 최제호는 균형이 하나도 안 맞은 무대를 마친 후 개운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함께하느라 X같았지? 다시 볼 일 없으니 안심해라.
* * *
“우와, 목 잠길 것 같아……!”
“물 좀 마셔, 청현아.”
녹화가 길어지자 하나둘씩 목이 잠기기 시작했다. 이청현 또한 정성빈이 내민 물병으로 갈증을 달랬다.
‘보컬 무대 하시는 분들 고생하시겠는데?’
안 그래도 막 김이월이 대기실을 나간 참이다. 이청현의 시선이 절로 문 쪽을 향했다.
“무슨 노래 부를지 궁금하네.”
“그러니까.”
강기연의 말에 맞장구치며, 이청현도 빈 의자를 하나 차지했다.
“이월이 형 무슨 노래 골랐는지 들은 사람?”
이청현이 질문했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렇게 대외비, 대외비 하더니. 하여간 참 입 무거운 형이다.
“그래도 기대된다. 형 연습 많이 하셨잖아.”
정성빈이 웃으며 말했다.
실제로 3차 경연에 출전한 세 멤버 중 김이월의 연습 시간이 가장 길었다.
동트기 직전에 들어와 놓고는, ‘그린라인은 연습실이 24시 개방이라 좋더라’며 잠깐 눈만 붙이고 UA로 출근해 개별 연습을 하는 것이 최근 김이월의 루틴이었다.
그 양반이 이렇게 독하다는 걸 사람들도 알아주면 좋을 텐데.
이런 것들이 이청현은 항상 아쉬웠다.
비록 수능 성적이라는 예상외의 수단으로 독기가 증명되긴 했지만.
김이월이 어떤 무대를 보여 줄지로 한참 떠들던 대화는 보컬 포지션 무대가 시작되면서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첫 번째 순서로 무대에 오른 김이월과 베리온이 화면에 잡혔다.
“모니터링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월이 형 진짜 꼿꼿하게 서 있지 않아?”
“맞아.”
이청현의 말에 최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이월은 늘 반듯한 자세를 고수했다.
1년이 넘도록 같이 생활했지만 멤버 중 누구도 김이월이 짝다리를 짚거나 다리를 꼬고 앉은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김이월은 여러 명이 서 있을 때 항상 돋보였다.
이래서 댄스 선생님들이 어깨 펴고 허리도 펴라고 하나 보다. 이청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화면 속 네 사람은 넉살 좋게 유르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무대를 준비했다.
네 명이 일렬로 서서 핸드 마이크를 쥐자, 전광판에 희게 빛이 들어왔다.
동시에, 대기실에 있는 모두가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반주가 흘러나왔다.
『불어오는 바람이
나에게 손짓해
모험을 떠날 시간이라고』
“‘뉴 월드’ 노래다.”
강기연이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애니메이션의 제목을 중얼거렸다.
듣고 보니 등장인물들의 의상이 저런 느낌이었다. 뒤늦게 깨달은 이청현이 ‘그러네!’라며 손뼉을 쳤다.
단순하고 경쾌한 드럼 박자와 리듬 기타의 반주가 원곡과 거의 동일했다.
‘일부러 편곡엔 손을 거의 안 댄 건가?’
2차 경연에서 과감하게 곡을 뜯어 고쳤던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이었다. 앉아 있던 이청현의 상체가 앞으로 기울었다.
김이월이 귀찮다고 일을 덜 할 위인은 아니다.
그러니 분명 이 선택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을 찾는 일은 이청현에겐 숙제이자 게임과 같았다.
‘이유가 뭘까. 화음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아니면…….’
이청현이 고민하는 사이에도 노래는 계속해서 흘러갔다.
파트가 계속해서 바뀌었지만 거슬리는 부분은 없었다. 원곡은 한 명의 가수가 불렀지만, 지금은 무려 네 명이 한 곡을 나눠 부르고 있는데도 기시감이 적었다.
여성찬이 밝게 도입부를 연 데 이어 김이월이 하이라이트까지의 고조되는 분위기를 끊기지 않게 가져갔다.
모두가 따라 부를 하이라이트는 차세한이 가져갔다.
1절까지는 문연규의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2절부터는 화음과 애드리브가 서서히 풍부해지며 문연규가 존재감을 보였다.
특히 3절 후렴구에서 문연규의 애드리브는 빛을 발했다.
그러나 역시 김이월이 가장 눈에 띄었다.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김이월이지만, 보컬의 수가 줄어들고 동료의 역량이 떨어지자 이 파트 저 파트를 떠맡은 게 눈에 보였다.
『내 마음속에는
지도가 있는 건가 봐
꿈으로 가는 지도가
마음이 나를 이끌어
멈출 새도 없이 달려가게 돼』
게다가 김이월의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는 그 시절 OST를 연상시키는 재주가 있었다.
김이월이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화음을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원곡의 느낌이 살아났다.
동시에 이청현은 김이월이 오리지널에 가깝게 무대를 꾸민 이유를, 그리고 김이월이 아무리 열악한 상황이라지만 기꺼이 제 파트를 받아들인 이유를 알아챘다.
추억이 변하지 않길 바라는 대중들을 위해서.
다시 말해, 원곡이 준 감성을 리스펙트한다는 의미였다.
의상도, 노래도 그 시절 우리가 봤을 만화의 이야기에 맞춘다.
새로운 걸 보여 주기보단 지나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에 집중한다.
창법이나 음색도 원곡에 가깝게. 그래서 듣기에 가장 이질적이지 않은 모양새를 만든다.
청자가 노래를 들으며 추억을 회상하는 동안 방해받지 않도록.
‘한창 내적 고음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노래가 변주되면 황당하지.’
이청현이 속으로 킥킥거리며 웃었다.
단순히 원곡을 그대로 카피했다면 코인 노래방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겠으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김이월의 팀은 원곡의 강점을 극대화했다.
화려한 애니메이션과 함께 나왔던 부분에선 네 명이 최대한으로 화음을 쌓아 음악을 풍부하게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가슴 뛰는 부분이라고 평가하는 일렉 기타의 솔로 파트에서는 기타 소리를 원곡보다 키워 더욱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뛰어들게 해 줘
가슴 뛰는
새로운 세계로』
그 안에서 멤버들은 원곡처럼, 혹은 원곡보다 더 담백하게 노래했다.
추억에 무언가를 덧씌우려 하지 않고, 그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진짜 자기 같은 무대 하네.”
이청현이 턱을 괴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