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30)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30화(130/193)
| 130화. 3차 경연: 행사 마무리
포지션 무대는 성황리에 끝났다.
베리온 멤버들과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나누고 돌아온 것까지도 좋았다.
그런데 웬걸. 대기실에 돌아왔더니 박주우가 나랑 눈을 안 마주치지 뭔가.
“형.”
“응?”
“진짜 실망이야…….”
급기야 박주우는 엄청난 발언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역시 내 보컬이 세계 제일 명창 박주우 선생의 성에는 차지 않았던 걸까.
이따위 서브 보컬과 한 팀을 하느니 지금부터라도 5인 체제로 가고 싶은 건…….
“어떻게 뉴 월드 노래를 부르면서 날 안 끼워 줄 수 있어?”
“어?”
“같이 밴드 하자고 해 놓고……. 나도 저 노래 좋아하는데…….”
깜빡했다. 저놈 락친놈이었지.
하지만 억울하다. 이번 노래는 그냥 밴드 노래였지, 락 스타일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단 말이다.
그러나 나는 섣불리 변명하지 않았다.
박주우의 표정이 진심으로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제호 형만 설득하면 6인 밴드를 만들 수 있었는데…….”
“아니, 다른 애들은?”
“이미 다 얘기했어. 다들 해 준댔어…….”
팀의 메인 보컬이 물밑에서 이렇게 음습한 공작을 하고 있었다니. 충격이다.
그보다 최제호까지 설득할 생각이었구나. 너의 배짱에 박수를 보낸다.
박주우가 녹은 마시멜로 같은 표정을 짓는 바람에 나는 진땀을 빼며 놈을 달래야 했다.
이청현 같은 놈은 ‘청현아! 네 재능이 네 얼굴만큼 빛난다!’ 하면 바로 풀리던데, 얘는 좀처럼 꽁하질 않아서 그런가 쉽지 않았다. 아이고, 내 팔자야.
다행히 파르테의 한가운 씨가 엄청난 고음을 보여 주면서 박주우의 관심도 잠시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가운 선배님 노래 정말 잘하시네요.”
정성빈도 옆에서 감탄했다.
그동안은 파르테 놈들 사이에 묻혀 있느라 티가 잘 안 났지만 한가운 씨도 엄연한 메인 보컬이었다. 그것도 대형 소속사에서 엄선해서 뽑은.
그런 사람이 장기 자랑 무대를 만났으니 얼마나 신났겠는가.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지, 뭐.
방청객의 생각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는지, 한가운 씨네 팀이 보컬 포지션 경쟁에서 1등을 가져갔다. 나와 베리온은 2등을 했다.
최제호네 유닛은 댄스 유닛 중 3등을 했다. 정작 녀석은 그저 이 경연이 끝난 것에 기뻐하는 듯했다.
그리고 이청현은…….
“믿어 줘서 고마워, 마이 멤버들!”
……압도적인 표 차이로 1등을 했다.
못난 형들을 대신해 네가 고생이 많다. 앞으로도 고생해라.
* * *
3차 경연이 끝난 걸 기념하며, 이번 주 아왕실은 본방 사수를 하기로 했다.
그럴 시간에 연습이나 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무려 1등을 쟁취해 온 이청현의 말이라 넘길 수가 없었다.
마침 스파크의 2차 경연 무대가 나올 회차기도 했고.
그렇게 우리는 연습실 의자 위에 노트북을 켜고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이럴 거면 숙소 가서 TV로 보는 게 낫지 않냐?”
“어차피 다 보고 연습할 거잖아.”
“다시 오면 되지. 숙소 가깝잖아.”
“퇴근길 두 번 걷느니 차라리 야근을 하겠어.”
나는 퇴근했다 회사로 복귀하는 자의 비참함을 모르는 최제호를 한껏 구박했다.
“헉, 5분밖에 안 남았어!”
“걱정 마. 시작하고 나서도 한 7분 동안은 광고 나올 테니까.”
나는 침착하게 이청현을 달래고 공기계 속 실시간 채팅에 주목했다.
1화 모니터링 당시에 비하면 새 채팅이 올라오는 속도가 비교도 할 수 없이 빨랐다.
“형, 제로 콜라랑 이온 음료 있는데 뭐 마실 거예요?”
“나? 물.”
“미온수?”
“그럼 좋고.”
그러고 잠시 뒤, 강기연이 미지근한 물을 가져옴과 동시에 방송이 시작됐다.
우리 앞 순서였던 다른 그룹들의 회의 장면과 무대가 번갈아 나왔다.
그걸 지켜보던 스파크 놈들의 표정이 조금씩 미묘해졌다.
“……형.”
바로 옆자리에서 미지근한 우유를 홀짝거리던 박주우가 나를 불렀다.
“왜?”
“우리 팀 엄청 이상하게 나올 것 같지 않아……?”
“같지 않은 게 아니라, 엄청 이상하게 나올 거라는 데 우리 팀 공유 드라이브 비번 건다.”
“야,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그렇게 함부로 걸어?”
UA 법정의무교육 언제 이수하지? 사이버 보안 교육 강의 풀릴 때 최제호 저놈도 같이 듣게 해야 할 것 같은데.
“일단 공유 드라이브 비번이 있다는 점에서 저희 팀은 틀렸어요.”
강기연이 저 멀리서 중얼거렸다. X발, 너도 사이버 보안 교육 추가다.
매니저님에게 교육 이수 명단에 스파크도 올려 달라고 요청하려던 찰나, 다섯 번째 순서였던 로그의 무대가 끝이 났다.
≫ 로그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얘들아 넘 잘했다ㅠㅠㅠ
≫ 방송 시작한 지 얼마나 됐나요?
≫ 1차 경연보다 전반적으로 무대 퀄이 좋아진 듯
채팅창도 신나게 활성화 중이었다.
이 정도면 시청률도 꽤 나오겠는데. 제작진분들 뿌듯하시겠군.
“이제 우리만 남았지?”
“네. 그런데 시간이 애매해서, 아마 광고 다음에 나오지 않을까요?”
정성빈이 시간을 확인하더니 대답했다.
이럴 때 편집점도 좀 재밌는 곳에서 끊기면 좋을 텐데. 무대 시작 직전이라든가, 라이벌 팀을 향한 인터뷰가 나올 때라든가 말이다.
하필이면 재미도 없는 아이디어 회의 전에 광고가 나올 게 뭐람. 광고 끝나기 전에 다 채널 이탈하겠네.
나는 속으로 불만을 쏟아 내며 머그잔에 든 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나 세상사가 사람 뜻대로만 흘러가진 않는다고 했던가.
『오늘의 아젠다는 사전에 공유했던 것과 같이 ‘아왕실 2차 경연을 위한 아이템 기획’입니다. 다들 공지 확인하셨죠?』
단정하게 갖춰 입은 정성빈이 회의를 시작하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 뒤에 ‘수군대는 작가진’이라는 자막과 함께 웅성거리는 작가님들의 컷이 나왔다.
≫ ?
≫ 부장님?
≫ 아젠다가 뭐야?
채팅창도 물음표투성이였다. 옆을 보자 정성빈이 해탈한 표정으로 목에 이온 음료를 내리꽂고 있었다.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화면은 광고로 넘어갔다.
MC인 유르 씨가 회색빛의 고급 스튜디오에서 비싸 보이는 1인용 의자에 앉아, 멋스러운 헤드셋을 끼고 있는 광고였다.
『좋은 음악을 가장 좋은 방법으로 듣는 법, 할렌카』
MYTH 돈 많나 보다. 이 자리 비쌌을 텐데.
‘스파크가 3년차 때부터 광고를 찍었었나?’
최제호나 이청현이 단독 광고를 찍는 일은 드물게 있었지만 단체 광고는 그보다 훨씬 늦었다. 심지어 광고가 들어오기 전 3년 중 절반은 비활동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나름 쉬지 않고 일하는 중이니 언제 제안이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 광고 일까지 생각해야 하는 건가. 머리가 아팠다.
‘신인 아이돌이 광고라니, 들어오면 감사하게 해야지!’라는 반응이 대부분일 거란 정도는 안다.
그러나 그건 들어오는 광고들이 정상적일 때나 통하는 이야기다.
‘여성 팬분들이 포카도 안 주는 20만 원짜리 전동 면도기를 사겠냐고…….’
스파크랑 어울리는 건 둘째 치고, 소비자가 내 아이돌을 생각하면서 구매하고 싶은 물건을 홍보해야 할 것 아냐. 이놈의 회사는 팬을 생각하는 최소한의 배려가 없어.
유르 씨 봐라. 광고 비주얼 좋지, 가수의 팬이 쓰기 좋은 헤드셋 팔지, 음악 프로그램 중간에 음향 장비 광고 띄워 주지. 삼박자가 아주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만약 내가 스파크에 있는 동안 광고가 들어온다면 잣 같은 광고는 다 쳐 내고 말겠다. 오랜만에 사명감이 들끓었다.
스파크 광고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고민하는 사이 광고가 끝이 났다. 화면이 다시 UA의 회의실로 돌아왔다.
그 뒤로는 별의별 자막이 다 나왔다.
수상할 정도로 회의 문화에 빠삭한 아이돌, 고조되는 분위기, 치열한 공방, 이것은 아이디어 회의인가 오피스 드라마인가…….
멤버들이 말을 할 때마다 자막으로 보조 설명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그럼에도 채팅창은 혼돈의 도가니였다.
≫ 얘들아 우리 같은 한국 사람 맞지?
나 너희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겠어
≫ 스파크는 혼자 콩트 찍나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왜 퇴근했는데 퇴근 안 한 거 같지
≫ 나 박주우 씨랑 커플 다이어리였네
≫ 이건 좀;; 너무 갔다
≫ 팀장님 일정이 너무 빡셉니다
≫ 남들은 외국어를 배울 때 비즈니스 언어를 배우는 희대의 사회생활돌
≫ 난 너희가 오피스 드라마 찍는 걸 보고 싶었던 거지 너희랑 오피스에서 일하고 싶은 게 아니었어
하염없이 웃는 사람, 졸지에 퇴근 후에도 고통받게 된 사람, 짜고 친 게 너무 과하다는 사람이 2:6:2로 나뉘어 격렬하게 반응했다.
아, 중간중간 나를 언급하는 글도 있었다.
≫ S대 아무나 붙는 거 아니구나
≫ 팀 분위기 좋아 보이는데ㅎ 군기 있어 보이진 않음
≫ 이월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대학 가자 너는 엘리트가 될 수 있다
≫ 기업이 빼앗긴 인재
인간 김이월을 언급한다기보단, ‘S대 붙었다가 떨어지고 아이돌 하는 기묘한 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어차피 저것도 다 내 자기 PR 점수가 되겠지. 감사히 받겠다.
그런데 의아한 점이 있었다.
“회의를 저렇게 안 하면 어떻게 해?”
“파르테 선배님이랑 로그 선배님들 회의실 장면 나올 때 뭐 했어, 형?”
“채팅창 봤는데.”
내 대답에 이청현이 한숨을 쉬었다. 걔들 기획 못하는 거 무대만 봐도 아는데 뭐 하러 그걸 보고 있냐?
“알았어. 나중에 다시 보기로 볼게.”
“안 그러는 게 좋을걸요. 형 그거 봤다간 혈압만 오를 것 같아서.”
“강견 말이 맞아. 형은 그냥 이대로 살아.”
“너흰 나를 완전히 포기했구나?”
내 말에도 강기연과 이청현은 발언을 철회하지 않았다.
* * *
백해원의 SNS는 기묘한 아이돌 관람 후기로 뜨거웠다.
≫ 자막ㅋㅋㅋㅋㅋㅋㅋ
제작진은 스파크의 회의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습니닼ㅋㅋ
└ 우리 애들이 프로 직장인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요
└ 콩트여도 완성도 개쩐다고 할 판인데ㅋㅋㅋㅋ
└ 그들은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 이렇게 된 이상 오피스 자컨 가자
정 부장님 밑으로 다들 모여!!!
└ 대신 우리 팀 말고 옆 팀이어야 함
└ 제발…… 우리 부서로는 안 오게 해 주세요……
오피스 자컨이라니. 우리 애들이 수트라니!
상상만으로도 백해원의 심장에 불이 붙었다.
‘믿고 있는다, UA……!’
적어도 아직까진 컨셉으로 실망시킨 적이 없는 UA에 한 줄기 희망을 걸며, 백해원은 무대로 올라오는 스파크의 모습을 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