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31)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31화(131/193)
| 131화. 고객 평가
제일 먼저 걸어 나온 정성빈은 밝은 갈색 머리에 웨이브를 넣어 평소보다 부드러운 인상을 연출했다.
어디서 저런 깜찍한 스카프를 구해 왔는지, 짙은 버건디 빛깔의 짧은 스카프를 동여맨 모습이 꼭 옛날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소년을 연상케 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정성빈의 얼굴에 연분홍빛 글리터 파츠가 보석처럼 사뿐히 내려앉아 있다는 점이었다.
김이월은 스파클러가 공인한 스파크 최고의 미학자였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던 그 김이월이 단위 면적당 85만 원짜리 얼굴에 글리터를 얹는 파괴적인 시도를 했다. 바로 지금!
‘아직도 자기 전에 마스크 팩 안 하는 사람 있니? 내가 밤마다 찾아가서 붙여 줘야 해?’
‘지금 고작 사진 세 장 찍어 놓고 그 안에서 고르려는 거야? 기연아, 나 지금 너한테 실망하려고 해.’
‘주우는 폴라 티 말고 라운드 티 입자. 그래야 고음 파트에서 목에 핏대 서는 게 보이지.’
그간 김이월이 얼마나 빨빨거리며 멤버들의 얼굴을 케어했던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오늘 스파크의 면면은 그야말로 극락이었다.
박주우는 고딕한 단안경에 안경 줄까지 차고 나왔다. 고전미를 사랑하는 백해원은 잠시 기절할 뻔했다.
소매가 펑퍼짐한 셔츠에 반바지, 캐주얼한 패브릭 벨트가 흔치 않은 조합에서 오는 의외성을 자아냈다. 머리까지 차분하게 쫙쫙 편 덕에 순박한 시골 소년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피부 톤이 약간 어두운 최제호는 멤버들과 달리 검은 글리터를 얹었다.
그게 또 흑발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얼굴에 올린 게 플라스틱 쪼가리가 아니라 흑요석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청현과 강기연은 괘씸하게도 시밀러룩을 입었다. 이런 얄팍한 수단으로 덕후의 심장을 설레게 하는 건 기만이자 중죄였다.
감히 건방지게 세일러 셔츠를 배색만 바꿔서 입다니? 그 와중에 한 명은 긴 바지, 한 명은 반바지로 균형을 맞추다니? 건방지게 반바지에 니삭스를 신다니? 전부 사랑스러워서 용서하기로 했다.
그리고 오빠 놈의 동창이자, 스파크의 맏형이며, 이제 막 백해원의 최애가 된 김이월은.
“시X 김이월!”
아이돌이라면 한 번은 한다는 쉼표 머리로 훤한 이마를 살짝 드러낸 것도 모자라 소매에 프릴까지 달고 나온, 나른한 도련님 그 자체였다.
저런 셔츠에 하이 웨이스트 바지는 반칙 아닌가? 백해원은 벅찬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월아, 누가 이 험한 세상에서 함부로 가슴팍 까래. 자신보다 연상인 남자가 끈으로 조여야 하는 가슴팍을 5cm 정도 열어 둔 것을 보며 백해원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백해원의 손가락이 춤추듯 자판 위에서 널뛰었다.
≫ 성빈아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그런 귀여운 빵모자를 쓰고 나와 누가 잡아가면 어쩌려고 그래
└ 죄송한데 님이 잡아가실 것 같아요
≫ 박주우 양쪽 볼에 별 글리터 붙여 준 사람 누구냐 절받으세요
≫ 최제호한테 멜빵 반바지? 아왕실 놈들 맛잘알 인정합니다
≫ 이청현 얼굴 수준 실화냐? 안 미안하다 이거 보여 주려고 어그로 안 끌어도 인간이라면 알아서 이 얼굴을 봐야 한다 어떻게 손바닥만 한 얼굴 하나에 삼라만상이 다 담길 수 있는지??
≫ 여러분 우리 기연이 허벅지 좀 봐 주세요 우리 애가 얼굴은 앙칼진 소년이지만 근육만큼은 남.자입니다
└ 얼굴도 딱히 소년은 아니잖아요
└ 닥쳐 주민등록번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그게 거짓말을 하면 안 되지
≫ 아 김이월 *#@%^%*&^*@#@ 나 착하게 살기로 결심했는데 욕 나오게 하지 마!!!!!!
└ 경 김모 군 미헌 님 최애 당첨 축
└ 미헌 님의 입덕 부정기 종료를 축하드립니다~~
지금까지의 스파크는 잘난 본판과 끝내주는 피지컬로 승부를 봤다. 그 점이 청춘이라는 풋풋한 향수를 자극해 왔고.
하지만 지금의 스파크는 그보다 더 아득히 먼…….
그러니까, 근대 영국쯤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를 자극했다. 비록 백해원은 한 번도 그 시대를 살아 본 적이 없지만.
≫ 1등…… 1등이요.
백해원은 처음으로 자신과 같은 시청자에게 투표권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본인도 모르게 무대를 보기도 전부터 스파크에게 한 표를 행사할 뻔했으니까. 하지만 방청객들이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용서치 않으리라.
무대의 불이 꺼졌다. 음원 사이트 로고와 함께 곡명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왔다.
* * *
『바람 부는 들판
포근한 하늘』
부드러운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전해졌다.
평소 이청현이 들려주는 단단한 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보컬이었다.
‘이청현 이번에 노래 해? 미쳤나 봐.’
『나는 그곳에 서 있어
별이 뜨길 기다리며』
‘노래도 잘하네…… 대견하네…….’
백해원은 자식의 첫 유치원 발표회를 보러 온 학부모의 마음으로 열심히 쿠션을 두드려 팼다.
이청현과 등을 스치듯 맞대며 박주우가 중앙으로 나왔다. 자연스럽게 파트도 이청현에서 박주우에게로 넘어갔다.
『너는 모르지
시간이 얼마만큼
은하수를 타고 흘러가는지』
서리가 낀 듯 서늘했던 인상이 미소 한 번에 눈 녹듯 녹았다.
속세를 떠난 듯 초연한 박주우 특유의 분위기가 멜로디와 어우러져 한층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런 박주우의 등 뒤에서 김이월이 다가왔다.
김이월은 박주우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한 손으로는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찰하는 시늉을 했다.
『어째서일까 밤하늘이
눈이 부시게 밝은 건』
‘응, 네 얼굴에서 나는 빛이 반사돼서 그래.’
김이월은 비겁했다. 느와르 영화의 젊은 새 두목이나 오피스 드라마의 본부장이나 할 것 같은 얼굴로 판타지 정신 가득한 반짝이 별 글리터까지 소화하면 어쩌자는 거냐고. 다른 아이돌들 서러워서 살겠어?
백해원은 분개했다. 그러나 김이월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어둠은 이토록
아름답게 빛나』
김이월의 해사한 미소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여기서 웃는 건 반칙이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김이월은 비겁자가 맞았다. 생긴 건 누구보다 냉정하게 생겨 놓고 저렇게 시원하게 웃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백해원은 당장에라도 김이월을 고소하고 싶었다. 하지만 고소하면 무대를 더 못 보니 너른 아량으로 참아 주는 수밖에.
원곡이 평범한 사랑 노래였다면 스파크는 다른 것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누군가에게 다가가기는커녕, 자기들끼리 아낌없이 어깨동무며 손깍지를 하고 머리나 등을 맞대기 바빴으니까.
‘우리가 함께했던 아름다운 시간들? 이런 건가.’
계속해서 무대를 보고 있으니 뭐랄까, 한 폭의 그림 같다는 인상이 들었다.
비단 외모가 아름다워서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톤을 맞춰 누구 하나 크게 튀지 않는 질감과 색감의 의상에 은은한 배경, 유려하게 흘러가는 안무가 액자 너머를 들여다보는 기분을 들게 했다. 역동적이고 파이팅 넘치기보다는 우아하고 선이 아름다운 안무가 주를 이룬 것도 한몫했다.
그리고 이 모든 생각의 배경에는 잘 만들어진 음악이 깔려 있었다.
음악을 잘 모르는 백해원이지만, 거슬리는 부분이나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없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이지 리스닝도 아닌, 그저…….
‘노래 좋은데?’
……좋은 노래. 멋진 전시관에서 큐레이터가 고심 끝에 그림과 잘 어울리도록 선곡한 듯한 곡, 그리고 가사까지.
쉽게 말해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서 ‘음악 프로는 이래야지!’ 소리가 나올 노래였다는 뜻이다.
그 순간, 음악의 톤이 전통적인 아이돌 발라드에서 클래식으로 바뀌었다.
무대 중앙에 서 있는 이청현의 손엔 작은 전구가 들려 있었다.
이청현의 손끝이 스위치 소리에 맞춰 구체의 위를 가볍게 건드렸다.
천천히 구체가 열리며 잘게 오려진 금색의 종이 꽃가루가 이청현의 얼굴 위로 흩날렸다.
순수하게 기쁜 듯 웃는 이청현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이청현의 볼과 머리카락 위로 별 모양 종이 가루가 나부꼈다.
≫ 청현아
└ 님 내일 방에서 숨 쉰 채 발견되는 거 아니냐고요
동시에 온 무대에 밤하늘의 별자리 무늬가 쏟아졌다.
여섯 명이 보고 싶어 하던 존재가 밤하늘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우주와도 같은 무대에 오케스트라 연주가 흘렀다. 선율에 맞춰 지금까지 스파크가 보여줬던 것과는 결이 다른, 약간의 현대 무용 느낌이 나는 군무가 펼쳐졌다.
≫ (울고 있음)
└ 무대 사진이 꼭 그거 같네요 고흐 별이 빛나는 밤?
그제야 백해원의 눈에 바뀐 배경색과 연한 노란빛으로 빛나는 별들이 비쳤다.
여러 악기가 차곡차곡 쌓이는 가운데 정성빈과 박주우의 목소리가 포근하게 그 위를 덮었다.
『우리는 오래도록
이곳에서 빛나
그래, 마치 꿈처럼……』
자장가를 부르듯 소곤거리는 정성빈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음악이 잦아들었다.
서로 기대어 앉은 여섯 멤버의 머리 위를 조명하던 불빛이 꺼지자, 어두운 무대와 멤버들의 실루엣 위를 별빛이 뒤덮었다.
백해원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퍽퍽 두드렸다.
당장에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다세대 주택에서 교양 없이 그럴 순 없었다!
대신 백해원은 마음의 고향, SNS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백해원은 벅차오르는 마음을 잔뜩 쏟아 냈다.
≫ 청현이는 작곡 천재가 맞다
댄스 라인은 춤 천재가 맞고
보컬 라인은 노래 천재가 맞고
이월이는…… 너는 그냥 천재잖아 다시 대학 가 하지만 활동은 쉬지 마
백해원의 자랑스러운 자식들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1등을 따냈다.
아름다운 장면까지 모두 감상한 백해원은 조용히 TV를 껐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가 컴퓨터를 켠 다음, 스파크의 2차 경연 무대 Full.ver 영상을 검색해 연속 재생으로 틀었다.
어쩐지, 아주 긴 밤이 될 것 같았다.
* * *
은하수 하나하나를 돈으로 수놓은 무대는 예상대로 아름답게 끝이 났다. 역시 예쁜 게 최고라니까.
아왕실이 음향 장비에 돈을 빵빵하게 추가한 덕에 이청현이 영혼을 갈아 믹싱한 노래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나왔다.
뿌듯한 마음으로 연습실 바닥에 깔았던 방석을 정리하는데, 정성빈이 박주우와 함께 연습실을 나서는 게 보였다.
“둘이 어디 가?”
“매니저 형이 퇴근하기 전에 캠코더 받아 가라고 하셔서요. 미리 받아 오려고요!”
아, 그…….
아왕실 제작진이 비하인드 방송분 챙기고 싶긴 한데, 촬영 팀을 또 보내기엔 인력도 없고 시간도 빠듯해서 각 팀마다 알아서 촬영한 다음 보내 달라고 한 ‘합숙 가는 짐 싸기’ 영상 찍어야 해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