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32)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32화(132/193)
| 132화. 전사 워크숍 (1)
새벽 3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스파크 숙소는 아비규환이었다. 모두가 캐리어를 펼쳐 놓고 짐 싸기 콘텐츠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영락없이 집단으로 가출이라도 하려는 줄 알았을 거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짐을 싸다간 촬영이고 뭐고 다 망한다는 내 말에, 스파크는 차례로 짐을 싸고 영상을 찍을 순서를 정했다.
“그룹당 할애될 시간을 생각하면 그렇게 많은 분량이 필요하진 않을 거야. 한 번에 세 명씩, 룸메이트 기준으로 찍자.”
“그럼 저희 방부터 찍을까요?”
“그래. 성빈이 네가 기연이랑 주우 가방 쓸 만한 거 있는지만 먼저 확인해 줘.”
잠시 뒤, 준비가 끝났다는 말에 나는 캠코더를 들고 정성빈네 방으로 향했다.
좁은 바닥에 캐리어 세 개가 빠듯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중 캐리어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귀여운 캐릭터들이 형광 연두색 캐리어를 잔뜩 뒤덮은 모양이었다.
“저 개성 넘치는 캐리어는 누구 거야?”
만화를 좋아하는 강기연 게 아닐까 싶어서 물어봤더니 웬걸, 정성빈 거란다. 이 역시 정성준 씨의 것을 가져온 거라더라. 이쯤 되면 정성준 씨 살림살이는 집에 남아 있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뭐 뭐 챙겼어?”
“여벌 옷이랑 세면도구요. 저희 잠옷 각자 알아서 챙겨요? 아니면 단체 연습복으로 챙겨요?”
“숙소 에어컨이 중앙 제어 방식이면 추울 수도 있어. 짧은 거랑 긴 거 하나씩 챙겨.”
내 말에 강기연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검은 체육복과 트레이닝복을 한 벌씩 캐리어에 넣었다.
“저희 비타민은 제가 한 번에 챙길게요!”
정성빈은 야무지게 멤버들 몫의 영양제를 챙겼다. 말하지 않아도 이렇게 꼼꼼할 수가. 너희는 정성빈 없었으면 어쩔 뻔했니.
“여러분, 짐 싸는 건 좋은데 고개 좀 들어 주세요. 얼굴이 너무 역광이에요.”
“응……!”
나는 놈들의 얼굴과 가방을 최대한 잘 찍으려 노력하며 방구석에 한껏 몸을 구겨 넣었다.
내가 이렇게 처절하게 촬영하고 있다는 걸 아왕실 제작진분들도 알아주시면 좋겠다. 카메라 감독님들, 파이팅입니다.
세 녀석의 짐은 최종적으로 내가 점검했다.
“기연이 너는 찜질팩 하나 따로 챙겨. 주우는 혹시 모르니까 꿀 스틱 하나 넣고. 성빈아, 우리 숙소에 폴라로이드 카메라 있던가?”
“있어요. 챙길까요?”
“응. 따로 사진 찍을 짬이 안 날 것 같긴 한데, 혹시 모르니까.”
준비가 부족해서 곤란한 거면 모를까 준비를 많이 해서 나쁠 건 없다. 보부상이 살아남는 이유가 있다, 이 말이야.
반대로 우리 방 촬영은 강기연이 맡아 줬다.
“이 방은 언제 와도 물건이 진짜 없다.”
강기연이 말했다. 그러자 이청현이 실실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형들 둘 다 미니멀리스트잖아. 나야 물건 놓을 곳 많으니까 좋지.”
이청현 말마따나 최제호의 캐리어엔 든 게 없었다. 여벌 옷을 넣긴 했는지 의문이었다.
“너 뭐…… 단벌 신사야?”
“앞쪽 포켓에 넣었어.”
“거기에 옷이 다 들어갔다고?”
저 정도면 속옷만 넣은 거 아닌가?
에이, 어련히 알아서 챙겼겠지. 쟤도 스물한 살인데.
아니,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재킷은 챙기라고 해야 하지 않나?
짧은 찰나에 나는 수십 번 번뇌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너 내가 보는 앞에서 옷 다시 싸.”
카메라 믿고 나대기로.
역시나 최제호는 반항하지 못했다. 카메라 앞에선 갓 태어난 새끼 양처럼 순하게 굴라고 세뇌한 보람이 있다.
최제호는 옷을 전부 싸기 무섭게 훌쩍 방을 나섰다.
돌아오는 녀석의 손엔 무드 등이 들려 있었다.
“그거 지금 챙기게?”
“어. 우리 1박 촬영이라며.”
“그럼 오늘 밤은 어쩌게? 지금 넣으면 이따 밤에 못 쓰잖아.”
“아.”
아? 아아?
남 부장의 따님께선 이런 놈의 어디가 그렇게 좋으셨을까.
이국적인 얼굴이랑 키보드보다 넓은 어깨, 역삼각형 상체, 허벅지에서 무릎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라인을 제외하고 말이다.
최제호와 함께 산 지 1년이 넘었지만 난 아직도 모르겠다.
“형은 뭐 챙겼어요?”
강기연이 내 캐리어로 다가오며 물었다.
시스템이 던져 준 나의 낡은 캐리어엔 옷가지 몇 벌과 다이어리, 그리고 갖은 스킨케어 용품이 들어 있었다.
“이건 공용으로 쓰는 스킨, 이건 주우가 쓸 스킨…….”
“스킨을 두 통이나 가져가요?”
“주우 피부는 민감성이라 아무거나 쓰면 안 돼.”
과거, 몇 안 되는 귀한 야외 촬영에서 박주우가 선크림 하나를 잘못 발랐다가 피부가 다 뒤집어지는 바람에 얼마나 많은 스파클러분들이 마음 아파하셨던가.
나도 그거 보정하느라 손가락 관절이 다 나갈 뻔했다. 이제는 누구도 그러한 고통을 겪게 하지 않으리라.
“형 가방 무겁겠다. 상비약도 챙길 거지? 자리 없으면 내 가방에 넣어도 돼!”
“만약 지금 당장 청현이 네 손에서 피가 철철 난다고 치자. 그럼 캐리어를 여는 게 빠를까, 보조 가방을 여는 게 빠를까?”
“……보조 가방 가져올게!”
“옳지.”
이렇게 철없는 이청현을 시켜 오만 약에 멀미약까지 따로 챙기고 나서야 짐 싸기 콘텐츠 촬영은 끝이 났다.
나는 부디 숙소가 가까운 곳에 있기를 바라며, 촬영분이 캠코더에 무사히 녹화된 걸 확인한 후 침대에 누웠다.
* * *
합숙의 날이 밝았다.
예감이 썩 좋진 않았다. 아침부터 눈앞에 헛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시야의 오른쪽 위엔 작게 숫자 ‘3’이 떠 있었다. 눈을 아무리 비벼도 숫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시스템의 영향인가 싶었지만 지금까지의 시스템과는 느낌이 달랐다.
‘업데이트인가?’
가끔 개발 팀에서 업데이트하다 홈페이지에 이상한 걸 띄우시던데. 컨펌도 남 부장처럼 시간 잡아먹는 놈이니 오류를 범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촬영을 앞두고 안과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우선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날씨도 무진장 더웠다. 숍에 가서 ‘얘네들 얼굴에 선크림 두 겹씩 발라 주세요!’ 했다가 스타일리스트님에게 ‘이월이 넌 가서 태닝 좀 하고 와!’ 소리만 들었다.
이렇게 아이돌에게 태닝을 권장하니까 이청현이 휴가 때마다 피부를 홀라당 다 태워 먹고 팬분들 속도 타고 내 멘탈이 불타고…….
장담컨대 전날 커뮤니티에 긍정적인 게시 글이 도배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놈들을 깨 털 듯 털었을 거다.
≫ 오늘 ㅅㅍㅋ 레전드 찍음
무대 ㄹㅇ 개ㅐㅐㅐㅐㅐ 예쁨……
└ 경연 무대인 거 실화냐고ㅠㅠㅠ 콘서트인 줄
≫ 오늘자 동화책 같았던 서바이벌 무대
는 스파크 『별빛』
헤메코+소품+무대 연출 완벽해서 그런지
무대인데 뮤비 보는 것 같았음!
└ 편곡 잘한 것 같음ㅇㅇ 무대도 이쁘고
└ 원곡이 너무 넘사라 걱정했는데 막판에 연출 보고 입 벌어짐
└ 주제를 연인을 향한 사랑에서 연구 대상에 대한 애정으로 바꾼 것도 좋았음ㅠ
≫ 기획 회의 때만 해도 도대체 무슨 무대를 하려나 했는데
이걸 이렇게ㅋㅋㅋㅋ
우래들 천재 만재 아닐 리 없을 무
반박 시 님 말이 다 틀림
덕분에 정말로 즐겁게 모니터링했다. 몇 개는 단체 메시지방에 공유도 해 줬다. 다들 짐 싸고 곯아떨어져서 아침에나 확인했지만.
“저희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나요?”
정성빈이 카메라 감독님에게 다시 한번 대기 장소를 확인받았다.
스튜디오 촬영이 아니다 보니, 방송사에서 관광버스가 출발해 가까운 팀부터 픽업하는 구조였는데.
스파크 숙소가 제일 서울 외곽에 있다 보니 꼴찌로 타게 됐지 뭔가.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아닌 아이돌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앞 팀에서 딜레이가 있었는지 버스는 사전에 안내받은 것보다 20분 늦게 도착했다. 마 안 뜨게 분량 채우느라 죽는 줄 알았다.
힘들게 영접한 버스에는 큰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떠나요 백중놀이~’……라고 적힌.
단합 대회라고 하기엔 이제라도 아이돌 왕조실록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무언가를 하고 싶었나 보다. 시기는 조금 이르지만 해당 회차가 방영될 즘엔 얼추 날짜도 맞을 거고.
버스에 올라타자 45인승인 내부가 거의 꽉 찬 게 보였다. 특이하게도 군데군데 빈자리가 있었다.
‘설마 좌석제인가?’
아니나 다를까 의자 위에 작은 종이들이 붙어 있었다.
내 귀는 두 개인데 다섯 명이 각자의 자리에서 쓸데없는 발언 안 하나 듣게 생겼다. 벌써 피곤했다.
하지만 기왕 좌석제라면 차라리 내가 파르테나 올오버와 앉는 게 낫겠지.
하필이면 송민일 씨 옆자리도 비어 있으니 말이다.
왜 하필이면 저놈이야. 한가운 씨면 노래 얘기라도 하겠다만.
속으로 욕을 왕창 퍼붓고 있는데 멀리서 누군가가 번쩍 손을 들었다.
“이월 씨! 이월 씨 자리 여기예요!”
진짜로 올오버 멤버였다. 그것도 최제호와 함께 유닛을 짠 멤버이자, 미래에 감옥에 갈 멤버.
순간, 나는 멀미가 심하다고 외치고 바닥에 쓰러지고 싶었다.
버스 안은 금세 화목해졌다.
짝지어 앉은 출연진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었다.
심지어 그 최제호도 누군가와 이야기 중이었다.
그리고…….
“이월 씨, 이거 마실래요?”
“아뇨, 괜찮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와 올오버의 서윤섭만 지옥의 눈치 싸움을 펼쳤다.
카메라 앞에서 입 다물고 있는 건 죄악이지.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새X 마약 하다가 걸린다니까?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동료들한테 권유하다가 유통책으로 끌려간다니까?
이런 애랑 말 섞다가 아왕실 마약 카르텔로 엮이느니 좀 두들겨 맞고 말겠다.
아직은 때가 아니겠지만 솔직히 지금 저 음료수에 뭐가 섞여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차라리 물 없이 건빵을 먹고 말지.
“이월 씨는 스트레스 쌓이면 뭘로 풀어요?”
“전 스트레스를 별로 안 받습니다.”
보통 이렇게 질문을 받으면 상대방에게도 물어보는 게 예의지만 안 물어볼 거다. 이 인간은 조만간 마약으로 스트레스를 풀 거니까.
어차피 선배 그룹한테 인사도 제대로 안 하는 싸가지 없는 새X로 찍힌 거, 관광버스 구석에서 멍때린다는 죄목 하나 추가 되어도 별반 차이 없을 것 같아 가만히 있었더니 서윤섭이 다시 말을 걸었다.
“스파크에서는 청현 씨가 작곡한다면서요?”
“네. 경연곡도 청현이가 편곡하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대단하다. 아직 나이도 어리지 않아요?”
대단하긴 하지.
아무리 이전에 음악을 해 왔다고는 하지만 이청현의 성장세는 놀라웠다. 이런 점을 남들도 알아줄 때마다 이청현의 천재성이 느껴졌다.
그런 성과에 비해 녀석은…….
“많이 어리죠.”
몇 칸 너머에서 동그랗게 솟은 이청현의 정수리가 보였다. 놈은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보이지 않는 옆자리 사람과 환하게 웃으며 떠드는 중이었다.
“나이도 어린데 작곡까지 하면 부담이 크겠다.”
“다행히 아직은 즐기면서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네.”
작곡하는 아이돌 중에 음악이 적성에 안 맞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굳이 성의를 갖추고 싶지 않아서 저렇게만 대답했다. 사회성을 잃지 않고 웃어 주는 것에 감사해라.
이런 불성실한 태도에도 서윤섭은 꽤 끈질기게 대화를 이어 갔다.
“그래도 창작이 막 쉽진 않을 텐데. 영감이라는 게 무한하진 않으니까요. 그렇죠?”
“하하, 그러게 말이에요.”
나는 창작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인류라 그딴 거 모른다.
그러니까 남의 그룹 멤버에겐 관심 그만 가져 줬으면 좋겠…….
‘잠깐.’
뒤통수가 쎄했다.
나는 옆자리의 서윤섭과, 앞에서 실실 웃고 있는 이청현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자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가듯 읽었던 지라시가 떠올랐다.
≫ ㅇㅊㅎ 약물 중독이라는 거 찐임?
형사 입건되었으나 결과가 음성으로 뜨면서 유야무야되었던.
하지만 한때 이청현을 광고에서 모두 하차시켰던 그 이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