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33)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33화(133/193)
| 133화. 전사 워크숍 (2)
서윤섭의 마약 혐의로 인한 입건은 아이돌 팬이 아닌 사람들도 알 정도로 유명했다.
서윤섭이 인지도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놈이 그 짓을 저 혼자가 아니라 남들과 같이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그룹인 제 동료들과.
아이돌 그룹에서 한 명도 아니고 무더기로 마약 투약범이 나왔다. 그중 한 명은 유통책까지 담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연히 돌판은 쑥대밭이 됐다. 서윤섭의 핸드폰은 그대로 증거물이 되었고, 연락처에 있던 모든 아이돌들이 수난을 겪었다.
그 명단에는 이청현도 있었다.
이청현과 서윤섭은 대외적으로 연결 고리가 드러난 적이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활동기가 겹쳐 같은 방송에 몇 번 나온 게 전부였다.
그래서 이청현도 단지 물망에 올랐을 뿐, 여타 아이돌들처럼 바로 혐의를 벗을 줄 알았으나…….
≫ L모 군 설마 이청현이냐?
└ 제발 아니라고 해 줘…… 이젠 진짜 지친다
≫ tlqkf 자고 일어났는데 실트 무슨 일이야
≫ 이청현 씨 약물 중독으로 고양이 대통령 됨
└ 글 지우세요…… 실트로 장난칠 게 따로 있지
이청현은 약물 중독이 맞았던 걸로 판명됐다. 그 약물이 마약만 아니었을 뿐.
불법 약물을 남용한 게 아니었기에 법적인 처벌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동료 가수들이 줄줄이 체포되는 가운데, 이쪽도 약을 퍼먹었다는 사실은 대중들에게 곱게 비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약이었지?’
생각해 보려 해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회귀라는 거 당하면서 대가리가 스펀지로 바뀌었나. 머릿속이 온통 구멍투성이다.
게다가 이청현이 왜 서윤섭과 연락을 주고받았는지도 의문이다.
친목을 다질 구석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접점이 별로 없었으니까.
이전에는 이런 거에 하나도 관심 없이 ‘타돌이 언급한 스파크 모아 보기’ 같은 영상이나 만들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만약, 서윤섭 이 새X가 꼭 마약이 아니더라도 이청현에게 뭔가를 종용했다면…….
‘조졌네.’
이청현의 천재성이 얼마나 서윤섭의 심장에 불을 당긴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이번 합숙에서는 이청현에게 24시간 시큐리티를 붙여야 할 것 같았다.
* * *
염탐과 견제, 철벽을 실은 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가평의 넓은 펜션 앞에 정차했다.
가평이라니. 이 동네 펜션 마당에서 보물찾기 쪽지 숨기다 벌레에 왕창 뜯긴 게 엊그제처럼 생생한데.
아찔한 추억이 후덥지근한 여름 공기와 뒤섞여 전신에 달라붙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한다.
한평산업 쪽지 하나 잘못 숨겼다고 기사가 나는 일은 없었지만, 이청현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면 스파크는 대문짝만하게 연예 뉴스 1면에 나오고 말 테니까.
나는 캐리어를 하나씩 끌고 펜션 쪽으로 걸어가던 이청현과 강기연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놈들의 어깨에 양팔을 걸치며 말했다.
“막내들.”
“네?”
“왜?”
“사람 많다고 딴 데 정신 팔지 말고 형들 잘 따라다녀. 알았지?”
등 뒤에서 최제호가 네 짐이나 잘 챙기라며 나를 타박했다. 돌아보니 정성빈이 내 캐리어까지 끌고 있었다.
합숙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첫 미션은 ‘저녁 만들어 먹기’래요!”
“헉. 저희가 다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누군가가 미션지를 받아 읽자 출연진이 술렁였다.
그럴 만도 하다. 당장 여기에 있는 입만 마흔 개가 넘는다. 라면만 끓이려고 해도 보통 일이 아닐 거란 뜻이다.
“와, 인원이 많으니까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네.”
올오버의 누군가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럼 장 볼 멤버랑 식사 준비할 멤버를 나눌까요?”
그나마 문연규가 의견을 냈다.
“스무 명이나 식사 준비에만 매달리는 건 좀 비효율적일 것 같아요. 몇 명만 있어도 충분할 것 같은데!”
여기에 송민일이 꼈다.
저 새X 저거, 말만 저렇지 하기 싫다는 뜻이 분명하다. 내가 너 펜션 들어오기 전에 족구공 차는 거 다 봤어.
나는 한숨을 참으며 대화에 참여했다.
“그럼 장 볼 조, 식사 준비 조, 설거지 조로 나누는 건 어떨까요? 뒷정리도 해야 하니까, 앞뒤로 역할을 나누면 좋을 것 같아요. 방송 분량도 채울 수 있고요!”
이래도 안 할 인간은 안 하겠지만. 놀 거면 분량이라도 채워라.
* * *
“다녀오겠습니다!”
활기찬 인사와 함께 장 보기 조가 출발했다. 운전은 로그의 멤버가 맡았다.
그리고 나는 아왕실 최고의 지성체라는 이유로 끌려가는 중이다.
‘작가님, 저희 얼마까지 결제해도 돼요?’
‘카드 한도 얼마나 돼요?!’
날뛰는 아이돌들을 보던 작가님들께서 제발 저 팀 좀 따라가 달라고 부탁을 하셔서 말이다.
날 데려간다고 딱히 뭐가 달라지지도 않을 거라고, 염세적인 생각을 하며 따라오긴 했는데…….
“쌈장이랑 고추장 얼마나 사야 하지? 두 통씩 사면 되나?”
“아까 보니까 찬장에 고추장 있더라고요. 쌈장만 사죠.”
“쌈 채소 이걸로 열 봉지 살까요?”
“대량으로 살 거니까 여러 채소가 들어 있는 팩보단 개별로 사는 게 쌀 거예요. 상추랑 깻잎만 각각 부탁드려요.”
쇼핑 카트 세 개에 물건이 마구잡이로 담기는 꼴을 보고 있으니 작가님들이 나를 왜 보냈는지를 자연스레 알게 됐다.
그런데 내가 방송사 법카 한도까지 챙겨야 해? 저게 UA 카드도 아닌데?
“헐, 여기 육회도 판다! 우리 차돌 된장찌개에 육회비빔밥 정식 갈까?”
“미쳤다. 당장 구매해.”
…….
“형, 맥주 콜?”
“아, 동생들만 아니면 바로 담는데 아쉽네.”
“성인 멤버들만 마시면 안 되나? 애기들은 음료수 마시고.”
…….
“우리 과자 너무 많이 사지 않았어요? 이거 무조건 남을 것 같은데.”
“에이, 남으면 누구든 먹겠지.”
아니, 이놈 새X들 도덕 시간에 타인을 배려하는 방법 안 배웠어?
날것 못 먹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려고 밥을 전부 다 육회랑 비비려고 해?
그리고 여기 미성년자가 태반인데 술을 사자고? 다 같이 미성년자 음주 논란으로 모가지 따이고 싶냐?
누구든 먹을 거라고 한 건 어떤 놈이야? 다른 사람들이 연예인이 남긴 간식 처리하는 사람이야? 말을 해도 X같이 하네, 이거.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스파크와 대화할 땐 이렇게까지 답답하진 않았는데, 지금은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세 개의 카트를 모두 쥐 잡듯 탈탈 털었다.
그리고 사장 아들이 장바구니에 몰래 끼워 넣은 청축 키보드를 빼내던 스킬을 발휘해 20만 원을 절약했다.
무대 제작비 보태 줬으니까 이번만 봐준다. 다음엔 나도 모른 척할 거야.
* * *
세상에 역할 분담만큼 무의미한 게 또 있을까?
한때는 나도 인사 담당자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일은 신규 입사자 등록, 임직원 연월차 관리, 채용 공고 업로드 및 면접 일정 잡기, 인력 서치, 비품 구매, 퇴사자 등록, 건물 청소 상태 관리, 경영진 비위 맞추기, 각종 서류 발급 등이 주였다.
그러나 한평산업 인사 담당자가 해야 할 일은 좀 더 많았다.
예를 들자면 아이돌 대리 덕질, 건물 간판 달기, 잠긴 문 따기, 퇴사자가 잠금 안 풀고 간 PC 비번 수동으로 풀기, 라면 심부름, 경영진 자서전 낭독…… 시X.
어쨌든, 요는 역할을 나눈다고 한들 실무에선 큰 의미가 없다는 거다.
지금도 봐라. 나 방금 장 보고 왔는데 또 목장갑 끼고 드럼통에 숯 깔고 있잖아.
사람이 많으니 한두 명 노는 건 티가 안 나서 그런가, ‘전 뭐 하면 될까요?’라고 말만 하고 정작 아무것도 안 하는 놈이 태반이었다.
지난 자컨에서 내게 숯에 불붙이는 걸 배운 최제호가 스스로 토치질을 하고 있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녀석은 능숙하게 신문지에 불을 붙여 숯으로 옮겼다. 이제야 그룹 이름값을 하는 놈이 한 명 나온 셈이다.
“형, 제가 할까요?”
“어린애가 불 만지는 거 아니야. 기연이 넌 가서 채소 씻어.”
스파크는 이 정신 없는 와중에도 싹싹하게 제 할 일을 찾았다. 단체 예능 같은 곳에 나와서 얼 타던 과거의 스파크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다.
장하긴 한데 스파크만 일 시키는 거 아니지? 그럼 XX 가만 안 둔다.
야차처럼 씩씩대고 있는데 여성찬이 문연규와 함께 나를 찾아왔다.
“형, 그만하고 들어가! 고기는 나랑 규가 구울게.”
“너희 둘만으론 안 될걸? 입이 몇 갠데.”
“다른 애들도 오라고 하지, 뭐. 아, 올오버 형들이 고기 구워 보고 싶다고 했는데.”
“아냐, 내가 구울게. 나 고기 진짜 잘 구워.”
올오버란 이름에 황급히 여성찬의 손에서 접시와 집게를 빼앗았다. 마약 삼겹살 같은 건 먹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가서 편하게 먹는 게 좋지 않아?”
“나 야외에서 고기 굽는 부심 있어서 그래. 제발 내가 굽게 해 줘.”
문연규에게 애걸복걸한 끝에 나는 드럼통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매캐한 연기를 마시며 한창 고기를 굽고 있는데 문연규가 말을 걸었다.
“형, 우리 무대하고 나서 주우 님한테 혼났다면서?”
“누가 그래?”
“성빈이가. 아까 우리 버스 같이 타고 왔거든. 그때 들었지.”
보아하니 이쪽은 리더끼리 앉았나 보다. 그렇게 좋은 자리가 만들어졌으면 건설적인 이야기나 할 것이지.
“말도 마. 달래기 힘들었다.”
“그래도 스파크는 진짜 사이좋은 것 같아. 잠깐만 얘기해 봐도 다들 착한 것 같던데?”
“멤버들은 다 착해.”
가끔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좀 쳐서 그렇지, 착하다는 건 인정한다.
“베리온도 사이좋지 않아?”
“우리야 다들 또래잖아.”
우린 뭐 나이 차 많이 나는 줄 아니?
……아닌가? 나랑은 많이 나는 건가?
고민하는 와중에 누군가가 옆에서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내밀었다. 정성빈이었다.
“형, 드시면서 구우세요.”
“너는? 좀 먹었어?”
“저쪽에 고기 많아요. 걱정 말고 드세요. 연규 형도요!”
정성빈이 사람 좋게 웃었다.
역시 정성빈이야. 숯불 통 앞에서 소외되는 멤버 하나도 놓치지 않는 이 시대의 참된 리더라니까.
흩날리는 재가 묻은 쌈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이번엔 전혀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로그의 멤버들이 목장갑을 끼고 온 것이다.
“자, 이월 씨랑 연규 씨도 이제 가서 고기 먹어요!”
로그는 나와 문연규를 테이블 쪽으로 밀어 냈다. 그러고는 집게를 하나씩 집고, 자기들이 챙겨 온 빈 접시에 우리가 구웠던 고기를 가득 담아 우리에게 들려 주었다.
“선배님, 제가 마저 구워도…….”
“에이, 아니야. 우린 먹을 만큼 먹었어요!”
“동생들이 이월이 형 밥도 못 먹는다고 걱정하더라. 얼른 가서 밥 먹어요. 우리 막내 보고 있냐?”
“아, 형은 형이 알아서 잘 먹잖아!”
로그까지 합류하고 나니 현장이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테이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정말로 박주우 외 3인―최제호는 지 밥만 열심히 먹고 있었다―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얼마만의 삼겹살인데, 지들이나 많이 좀 먹을 것이지.
나는 털레털레 걸어가, 목장갑을 벗고 방금까지 내가 구운 고기를 먹었다.
오랜만에 먹은 기름진 고기라 그런가, 맛있고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