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35)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35화(135/193)
| 135화. 사내 보복 (1)
결국 나는 숫자가 사라진 당일까지 카운트다운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별일이야 있겠어…….’
옥상에서 제작진분들이 앉을 방석을 털며 속으로만 생각할 따름이었다.
이제 막 데뷔한 아이돌에게 닥칠 위기라는 게 몇 가지나 있겠는가. 논란은 이미 터졌었고, 일은 데뷔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많은데.
잠깐. 그럼 난 그냥 매일이 위기인 거 아닌가? 갑자기 삶에 회의감이 든다.
혹시 촬영 중 코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불상사가 생길까 봐 아침부터 누적 피로도도 꼼꼼히 체크했다.
다른 놈들의 컨디션은 친히 어깨를 주물러 주면서 일일이 확인했다. 전원 지나치게 부담스러워하기만 할 뿐, 특별히 아파 보이진 않았다.
사무실에서 뭐가 터지는 건 아닐까 싶어 꼭두새벽에 출근해 얼쩡거렸는데 그럴 기미도 안 보였다. 말 그대로 평소 같았단 뜻이다.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했는데 걸리는 게 없다?
그럼 이젠 내 책임이 아니다. 뭐가 나와서 망하든 할 말은 있다, 이거야.
“형, 감독님들 10분 후면 도착하신대요!”
시스템을 팰 순 없으니 방석을 두드려 패던 내게 강기연이 속보를 전했다.
의뭉스러운 숫자에 대해서 더 고민할 새도 없이, 나는 방석을 한가득 들고 계단으로 향했다.
* * *
오늘의 회의 진행자는 나다.
방송엔 그만 나오고 싶었는데 포지션이 프로듀싱 멤버라 그렇게 됐다. 다음엔 P자도 안 들어가는 직무로 이직해야지.
그래도 오늘 회의는 나름 열심히 준비했다.
지금까지 스파크가 뿌린 떡밥을 회수해야 할 때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럼 최종 경연을 위한 회의에 앞서, 지난 컨셉들을 복기하겠습니다.”
지금껏 아이돌 왕조실록에서 스파크가 보여 준 모습은 역사와 그 흐름을 같이했다.
자기 PR 무대의 파릇파릇한 신인 아이돌은 조선의 개국을.
1차 경연의 스포츠 경기는 조선사에 유구하게 이어져 오던 진영 논쟁을, 2차 경연의 은하수 무대는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비롯한 과학 기술을 시사했다.
그럼 남은 건 무엇인가?
“여러분, 저희 프로그램 이름은 다들 기억하고 계시죠?”
“아왕실이요!”
“맞습니다. 지금까지 스파크가 역사적 흐름과 사건을 재현했다면, 이제는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야 할 때입니다.”
내가 말했지. 스파크는 아왕실의 정체성이 될 거라고.
PPT의 화면을 넘기자 옛 사관들의 그림과 조선왕조실록의 사진이 나타났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의 다양한 사실을 망라한 기록물로써 그 의의가 깊다는 걸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따라서 최종 경연에서는 사관으로서, 아왕실 무대에서 보고 배운 것을 가감 없이 대중분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의 있으신 분?”
“없습니다!”
“없어요.”
모두가 시원시원하게 동의했다. 그도 그럴 게, 촬영 때문에 이 회의를 하는 것일 뿐 처음부터 스파크는 이럴 생각으로 무대를 꾸며 왔으니 말이다.
아왕실 촬영 전부터 계획했던 아이디어니 녀석들 입장에선 새로울 것도 없었다.
대신 세부적인 디테일은 잡아야 했다. 여기서부턴 찐텐으로 회의가 이어졌다.
“최종 경연에선 한복 입는 거죠? 어떤 스타일로 가나요?”
“완전 선비님 같은 것보단 유생 같은 옷이 예쁠지도…….”
“다 좋은데 한복은 디자인에 따라 춤 선이 보이고 안 보이고가 천차만별이에요. 이 부분은 미리 검토해야 할 것 같아요.”
리더인 정성빈이 논의해야 할 포인트를 짚자 박주우와 강기연이 각각 의견을 내놓았다.
“안 그래도 저희가 최종 경연에는 힘을 좀 쏟아야 하잖아요?”
“……?”
“레퍼런스 조사로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제가 미리 큰 틀은 잡아 왔습니다. 의견 합치만 되면 오늘 바로 최종본 추려서 제작 팀에 넘깁시다.”
나는 미리 준비해 둔 공유 시트를 켰다.
평소에는 폴더로 공유하지만 오늘은 촬영인 점을 고려해 한 파일에 시트만 나눠서 의상, 소품, 조명, 미디어 아트 기타 등등을 정리했다. 그러자 카메라 한 대가 아예 빔프로젝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색조는 제일 마지막에 컬러 시트 보고 정할 겁니다. 빨리빨리 진행할 거니까 조속한 의사 결정 부탁드립니다.”
“2차 투표 이런 건 없어?”
“없어. 처음 봤을 때 마음에 드는 걸로 바로 골라. 그게 대충 봐도 눈에 띌 만큼 좋은 선택지란 뜻이니까.”
내 말에 이청현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2차 투표 운운한 것치고 투표는 일사천리로 끝났다. 전에는 중국집 가서 메뉴 다섯 개 시킬 것 같더니, 이제는 제법 여러 가지를 고려하며 가장 좋은 선택지를 추려 내는 눈이 트인 듯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잘 키운 후임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 * *
“다들 수고했어!”
“고생 많으셨습니다!”
작가님들의 인사와 함께 회의 촬영이 끝났다. 당이 쭉쭉 떨어졌다.
이게 진짜 아이돌의 일상이 맞나? 한평산업 때와 다를 게 없는데? 사실 고도로 발달한 아이돌은 직장인과 같은 게 아닐까?
“형 엄청 피곤해 보이는데?”
“그래? 촬영할 때 티 났어?”
“그건 아닌데, 카메라 꺼지니까 좀 티 난다.”
이청현이 눈 밑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래도 아왕실만 끝나면 지방 재배치 시술을 받아야겠다.
나는 눈 밑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회의가 연달아 있어서 그런가 봐. 당 떨어진다.”
“회의가 문제가 아니라 넌 잠을 안 자서 그래.”
최제호가 타박하며 의자를 제자리에 집어넣었다.
누군들 합숙하고 연습한 다음 자료 정리하고 싶었겠니? 나도 늘어지게 낮잠 자는 거 좋아해.
눈물 나게 억울했지만 티 낼 순 없었다. 아직 제작진분들이 철수를 안 했거든.
이동하시기 쉽도록 회의실 문을 잡고 있는데 작가님이 다가와 말했다.
“이월아, 너희 아이디어 누가 짜?”
“저희 멤버들 다 같이 짭니다!”
“아니, 메인 아이디어 말이야. 자기 PR 무대부터 흐름 정하고 이런 건 어느 부서에서 맡나 궁금해서.”
“정말 저희끼리 짠 거예요. 회사에서는 현실성을 주로 봐 주시고요.”
“너희가 짠다고? 회사에서 안 짜고?”
“네!”
내 말에 작가님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안 믿으……시나? 이번엔 나 말고 스파크가 단체로 컨셉충 논란에 휘말려서 악편을 받게 되나?
걱정이 휘몰아쳤다.
이렇게 된 이상 스파크의 주간 회의록을 넘겨서 결백을 증명하는 수밖에…….
“그렇구나. 우리가 아마 다음에 시즌 2도 할 것 같은데, 이번 포맷에서 좀 많이 바뀌어야 할 것 같거든.”
“그런가요?”
모르는 척 되묻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서바이벌 시류에 편승하려고 대충 만든 파일럿 프로그램과 시즌제로 변한 프로그램의 차이는 크니까. 뭐라도 달라진 점이 있어야겠지.
“그래서 UA에 별도로 소속된 예능 작가나 기획 팀이 있으면 인재나 소개받아 볼까 했더니…… 그런 건 아니었구나?”
“기획 팀은 보통 컴백할 때 많이 도와주세요. 경연만 저희끼리 해 보고 싶다고 한 거고요.”
회계 팀에서 도와주셨으면 좀 더 든든했을 텐데, 그게 못내 아쉽다.
한숨을 쉬던 작가님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본 다음 작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맞다. 여기 유한수 PD님 계시지?”
“네, 계시죠.”
“그분은 이제 아예 아이돌 쪽 업무 안 보신대? 지금 진행 중이신 프로젝트 없지? 워낙 들리는 얘기들이 많으니까…….”
방송가 소문이 그렇게 빠르다더니. 유한수 X 된 게 UA 바깥까지 다 소문났나 보다.
안 그래도 최근 회사에서도 유독 잘 안 보인다 싶었더니, 이런 식으로 일파만파 얘기가 퍼져서 사리고 있었던 거였나. 그러게 애초에 적당히 했어야지.
‘어조로 봐선 유한수에게 일을 맡기고 싶으신 것 같진 않고…… 그냥 궁금하신 건가.’
마음 같아선 그분 이제 업무가 문제가 아니라 회사한테 고소나 안 당하면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되겠지. 나는 아이돌이고, 어른이고, 사회인이니까. 그 양반이 업계에서 찍히게 만든 거면 충분했다.
“아하하……. 저는 잘 모르겠어요.”
“어휴, 아냐. 내가 별걸 다 물어봤다. 이런 건 대답하기도 난처하지? 미안해.”
다행히 작가님은 내 입장을 헤아려 주었다. 멋쩍게 웃는 날 보며 ‘하여튼 넌 애가 너무 착해.’라고 말씀하시기까지 했다.
아마도 유한수를 배려한 거라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그 유한수를 골로 보낸 게 나지만.
“그리고 너희 2차 경연 무대, 대박 났더라?”
“정말요?”
“바이럴 엄청 타던데. UA는 모니터링 따로 안 해?”
“보통은 제가 하는데, 이번엔 합숙 촬영이 겹쳐서 바로 못 했어요.”
“반응 장난 아니야. 영상미가 좋아서 썸네일이랑 직캠도 다 예쁘게 나왔고.”
극찬이 쏟아졌다. 어쩐지 민망해졌다.
“다행이네요. 다 같이 열심히 준비했거든요.”
“그래도 네가 프로듀싱 멤버라며? 요즘 애들 무섭다고 다들 한마디씩 하더라. 젊은 애들이라 센스도 좋다고 칭찬이 자자해.”
“과찬이세요. 아직 부족한 게 많은걸요.”
아무리 내가 날고 긴들 현직자만 하겠는가. 게다가 아이디어 지분을 혼자 날로 먹는 건 사양이다.
서둘러 작가님을 배웅하려는데 복도 끝에서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방금까지 대화의 주제였던 유한수였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동선을 봐선 이쪽으로 오려던 것 같은데, 아는 사람이 있거나 자기 얘기가 나와서 그대로 멈춘 모양이었다.
유한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가만히 나와 작가님을 지켜보았다.
“이월아, 어디 봐?”
“아, 누가 지나가시나 해서요. 아니었나 봐요!”
나는 어서 가 보시라며 작가님을 내보냈다. 다시 뒤를 돌아보았을 때, 유한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제작진분들을 배웅하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다. 인원이며 장비며 챙길 게 많다 보니, 아왕실 쪽 차가 드나드는 데만 한나절이었다.
그래도 무사히 촬영 팀을 보내고 나자 뒤늦게 긴장이 풀렸다.
스트레칭하며 연습실로 내려가려는데 멀리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월아!”
“네, 대리님.”
총무 팀의 대리님이었다.
일부러 나를 부르실 일이 없는 분인지라 웬일인가 싶었다.
“혹시 오늘 회의 때 소품 만들기 활동 같은 거 했니?”
“아뇨. 아왕실에서 촬영 나온 회의 말씀하시는 거죠?”
“응응, 그거.”
갑자기 웬 소품 만들기?
의아한 시선을 받은 대리님이 말을 덧붙이셨다.
“별건 아니고, 공구통 챙길 일이 있어서 창고에 가 봤는데 장비가 몇 개 비어 있길래.”
“저흰 안 썼지만 아왕실 촬영 팀에서 찾으셨다면 직원분이 빌려주셨을지도 모르겠네요. 한번 여쭤볼까요?”
“찾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일단은 찬영 씨 통해서라도 물어봐 줄래? 없어진 거면 새로 사야 해서.”
“네, 알겠습니다.”
대리님은 회의실도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아야겠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