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39)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39화(139/193)
| 139화. 사내 보복 (5)
“유 PD님은 어떻게 됐어?”
“그런 인간한테 님 자 붙이지도 마. 인간 말종한테 존칭 붙여 주고 싶어?”
이청현이 쏘아붙였다.
나라고 붙여 주고 싶어서 붙여 주는 줄 아냐? 누가 들을지 모르니까 그렇지.
당장에라도 한마디 하려다가 녀석의 얼굴 꼬락서니를 보고 참았다. 스파크 최고의 비주얼을 언제까지고 식은 풀빵 상태로 둘 수는 없으니까.
“아까부터 경찰서라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 뒤로는 소식이 없네요. 조사에 비협조적이라는 얘기가 전부였어요.”
정성빈의 말에도 묘하게 유한수를 향한 존칭어가 빠져 있었다.
저 예의 바른 녀석이 저럴 정도라니. 이쯤 되면 유한수는 죽어도 천국엔 못 갈 거다.
“듣기로는, 형한테 원한이 많았다고…….”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때리는 게 말이 돼? 그거 정신 나간 새…….”
“쓰읍.”
다시 열 내는 최제호를 간신히 진정시켰다.
‘그 작가한테 내 얘기 한 거지?’
유한수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자신의 뒷얘기를 하고 다니느냐고도.
정작 난 기획 팀 팀장님과 민주경 님 외의 누구에게도 유한수의 갑질에 대해 말한 적이 없지만.
가뜩이나 나 때문에 UA에서 입지가 좁은 채로 시작했는데 내부 고발까지 당해서 소문 더러워지고, 자기는 완전히 좌천됐는데 나만 승승장구했다……고 생각했나 보지.
하지만 공개 처형을 당하지도 않았고, 회사에서 잘리지도 않았으면서 고작 이 정도로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역시 하잘것없는 찌질이가 맞았네.
아무래도 유한수의 방아쇠를 당긴 부분은 본인의 위업을 망치는 거였나 보다. 남들 성과 뺏어서 만든 그 커리어 말이다.
+
[SYSTEM] ‘책임자’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내가 유씨 그 양반 사고 칠 줄 알았어. 그 인간 눈빛이 이상했다니까? 딱 일을 낼 상이었다고. 그러게 하지 말란 짓을 왜 자꾸 해? 난 분명 말렸다?
+
시스템은 유한수가 이럴 줄 알고 있었고.
왜, 아예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지 그랬냐. 카운트다운까지 센 거 보면 아주 신났던 것 같은데.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지만 나름 진짜 큰 부상은 막아 줬고, 인센티브까지 줬으니 참는다.
그래도 유한수 자식이 이렇게까지 한 걸 보면 꼴에 이미지 말아먹을 게 진심으로 두려웠나 보다.
애초에 본인이 하고 다닌 짓은 생각 안 하나? 직업 행성만 봐도 사방이 적이던데. 나였으면 무서워서라도 회사 생활 그딴 식으로 못 했겠다.
그보다 조사라.
드디어 내가 수 개월간 쌓아 온 유한수의 어록들이 빛을 발할 때가 온 건가.
가슴이 떨렸다. 직장 생활 동안 이렇게 제대로 된 사이다 복수는 처음이어서 그런 걸까? 심장이 두근거리고 활력이 샘솟았다.
“우리 공유 폴더 안에 내 이름으로 된 폴더 있잖아. 그거 비밀번호 ‘zkfxhlrldnjs214dlfck’거든? 들어가면 세 번짼가 네 번째에 ‘[기타] 복수의 대상-유한수’라고 된 폴더 있을 거야.”
“형 우리 공유 폴더 안에 그런 거 넣어 놓고 있었어?”
이청현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 쓸 일이 있어서 모아 놓은 거야. 안에 있는 거 싹 USB에 옮겨서 매니저님께 전해 드려. 사무실에 빈 USB 많으니까 괜히 돈 주고 사지 말고.”
“그 폴더에 뭐 들어 있는데?”
“PD님이 나한테 보낸 문자 스샷 뜬 거랑 통화 음성 녹음한 거. 업무 스케줄 정리해 둔 거랑, PD님 때문에 괴로웠던 마음을 꾹꾹 눌러 쓴 일기도 있어. 원본 필요하다고 하면 그냥 내 폰 바로 제출해도 돼. 문자 지운 거 없으니까.”
“…….”
“기록은 많을수록 좋다더라고.”
살아생전 한 번은 남 부장을 고발하려고 찾아봤던 사내 괴롭힘 증거 수집 방법이 이렇게 빛을 발하는구나.
UA에서의 내부 조사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을 이 시점에 형사 조사라니.
잘됐다, XXX야. 회사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매장당하게 해 주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을 만끽하던 중, 묘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강기연과 눈이 마주쳤다.
“형은 화도 안 나요?”
“뭐가?”
“우리 놀란 거랑 유한수 고발할 거 외엔 아무 생각이 안 드냐고요.”
강기연의 표정에서 냉기가 느껴졌다.
“형.”
“왜.”
“아깐 제호 형이 너무 흥분한 것 같아서 제가 말리긴 했는데요. 형도…….”
그러더니 강기연이 입을 닫았다.
저놈이 저러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굳이 말할 필요성을 못 느끼거나, 자기가 생각해 봤을 때 말이 너무 심한 것 같아서.
안 그래도 평소에 격식 차리느라 심한 말은 안 하는 녀석들이다.
나한테 불만이 폭발한 틈을 타 본심을 들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비속어만 빼고.”
“…….”
“빨리. 너 판 안 깔아 주면 말 안 할 거잖아. 애들 앞에서 얘기하기 껄끄러운 거면 다 나가라고 할까?”
“하…….”
강기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형이 일관성 있는 사람이라는 건 알겠거든요? 그런데 가끔은 좀 적당히 했으면 좋겠어요.”
“…….”
“저희 진짜 형 걱정 많이 했어요. 유한수한테 화도 나고. 그런데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고 우리만 전전긍긍하니까 바보 된 기분이에요.”
그러곤 적막이 흘렀다.
강기연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돌렸다.
나라고 화가 아예 안 나겠냐. 머리에 구멍이 뚫릴 뻔했는데.
하지만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해야 하는 회사원이라는 게 다 그렇다.
한 달 벌어 한 달 생활비를 내야 하는데 아프다고 쉬면 무급 휴가라 돈을 못 벌고.
아픈 티를 내면 돌아오는 게 면박뿐이라 어떻게 해서든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한다.
장기간 빠질 수가 없어서 수술 한번 하려면 주말이나 공휴일을 어떻게든 끼우려는 직원들을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내 안위는 후순위가 된다.
기분은 또 어떻고. 모욕을 당해서 화를 내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기 십상인데, 그걸 곧이곧대로 표현해서 되겠나.
자꾸 생각이 자기 연민으로 빠지는군. 자중해야겠다.
강기연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3천만 직장인들은 나를 이해할 것이라든가, 나라고 안 쉬고 싶겠냐 등등.
그래도 이번에는 한 수 접어 주기로 했다. 눈물 젖은 입씨름을 하고 싶진 않으니까.
“그렇게까지 생각해 줘서 고마워. 안 그러도록 노력할게.”
다시 본 강기연의 얼굴은 ‘퍽이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래도 난리고 저래도 난리다. 슬슬 머리가 피곤했다.
마음 같아선 이제 심기일전하고 가서 연습이나 하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몇몇 녀석이 도끼눈을 뜨고 또 잔소리를 퍼붓겠지.
나는 한숨을 참으며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그래. 오늘은 다들 고생했으니까 이만 들어가서 쉬고, 내일 시간 될 때 성빈이가 대표로 연락 줘. 최종 경연 어떻게 할지 논의 좀 해 보자.”
“최종 경연이요?”
강기연이 되물었다.
“설마 내일 회의하려고요?”
“그럼 안 하게? 경연 안 나갈 거야?”
“형, 제 말 하나도 안 들었죠?”
“기연아, 너무 채근하지 마. 형, 최종 경연은 2주 연기됐어요.”
정성빈이 발끈하는 강기연을 말렸다.
최종 경연이 연기되었다는 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결승전이, 그것도 보통 생방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중요한데.
장소 대여며 방청객 모집, 집계 프로그램 증설까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그걸 2주나 미루게 되면 제작진 측에선 제반 작업을 거의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터였다.
“왜?”
“출연진이 사고 났는데 그걸 그냥 진행하겠냐? 다른 사고도 아니고 아왕실 준비하다가 분란 나서 터진 건데?”
최제호가 혀를 찼다.
정성빈이 물티슈를 꺼내 내 머리카락을 문질러 닦으며 말했다.
“기사도 많이 났고, 이슈가 되어서…… 상황이 조금 커졌어요.”
물티슈 끝에 검은 피가 찐득하게 묻어났다.
“그러니까 우선은,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푹 쉬세요.”
정성빈이 어설프게 웃었다. 불안함을 애써 감추듯이.
이러니까 꼭…….
‘내가 얘넬 더 걱정시키고 있는 것 같잖아.’
그러나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는 터라.
나는 알겠다며, 조금 자고 싶으니 너희도 어서 돌아가라고 녀석들의 등을 떠밀었다.
* * *
녀석들이 매니저님과 함께 병실을 나가는 모습까지 보고 나서야 긴장이 좀 풀렸다.
아무리 그래도 환자 두고 다섯 명이 갈구는 건 불법 아닌가? 억울해서 속으로 눈물이 났다.
하지만 울 시간이 없다. 최종 경연을 위해서는 대책이 필요했다.
원래대로라면 최종 경연까지 3주가량이 남아 있었다.
여기에 2주가 연장되었다는 거지.
멤버 하나가 부상을 입었다고 그룹 전체가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는 건 드물다. 보통은 부상을 입은 멤버만 제외하니까.
그러나 지금은 경우가 조금 달랐다. 하필이면 해당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던 데다, 소속사 내부 문제까지 엮였기 때문이다.
이러면 UA는 아티스트 보호와 사건 수습을 위해 스파크 전원을 프로그램에서 내릴 수도 있었다.
결승을 앞두고 하차하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겠으나 UA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적어도 UA는 가수들의 안전을 중요시하는 회사이므로.
결론은 하나였다.
무조건 내가 쾌차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저는 아주 멀쩡합니다! 이제 아왕실 마지막 무대를 향해 달려 보죠!’라고 외쳐야 한다는 것.
아까 스파크 놈들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완치가 아니면 날 무대에 끼워 주기는커녕, 회의 참여도 못 하게 할 게 뻔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건강한 육신 하나로 그 흔한 독감 한 번 안 걸리고 버텨 온 사람 아닌가.
게다가 내게는 든든한 근로 지원 서비스가 있었다.
이것만 있으면 나도 빠른 쾌유, 건강한 복귀가 가능…….
+
.
.
.
누적 피로도: 65% (근로 지원 서비스 적용 중)
+
……하지 않겠군.
왜 아직도 65%야?
지원 서비스 빼면 85%라는 거 아냐. 그럼 아직도 위기라는 거 아니야?
실감이 나질 않았다. 통증이 없어서 더 그런 것 같았다.
때마침 누군가가 병실에 들어왔다. 간호사님이셨다.
“환자분, 통증은 좀 어떠세요?”
“괜찮습니다. 저, 혹시 제 상처가 많이 심각한가요?”
“아뇨, 수술 잘됐어요!”
아니, 그럼 대체 왜 피로도가 65%나 나온 거야?
지금은 코피도 안 쏟고 있는데 말이다. 저거 시스템 오류 아닌가.
“그럼 퇴원은 언제쯤 가능할까요? 특별히 아프진 않아서, 상처만 아물면 퇴원을 하고 싶거든요.”
“퇴원이요? 아이고, 보호자분께 아직 설명 못 들으셨구나. 교수님께서 8주 정도는 입원하면서 추이 지켜봐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급한 일정이라도 있으세요?”
네?
전치…… 몇 주요?
저…… 무대 해야 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