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4)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4화(14/193)
| 14화. 퇴사 면담 (2)
스파크에서 정성빈이란 어떤 존재냐.
그 질문에 과거 스파크 네 명은 한 단어로 대답했었다.
‘리더요.’
이 말주변 없는 놈들 때문에 속 터졌던 건 둘째 치고, 정성빈은 삭막한 그룹에서 나름대로 인정받고 있었다.
다른 녀석들에겐 온갖 정신없는 별명을 지어 준 팬들도 정성빈은 ‘정신적 지주 정성빈’이라고 불러 줄 정도였다.
그런 사람이 도망을 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떻게 되긴. 데뷔고 뭐고 다 끝이지.
화가 잔뜩 난 승객만 탄 버스에 몰래 타려다 기사님이 창문으로 뛰쳐나가시는 걸 두 눈 뜨고 봐야 하는 상황과 다를 바가 없어진단 말이다.
‘어떻게 하지? 별다방으로 데려가서 6,800원짜리 음료부터 먹여야 되나?’
나는 근처에 별다방이 있었는지를 떠올리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뒤늦게 사방이 캄캄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맞다. 우리 밤 12시에 나온 거지.’
X발.
나는 먼지 쌓인 머릿속을 열심히 뒤졌다.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보아도 정성빈이 ‘연습생 때 이 길이 맞는지 방황한 적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 장면은 찾을 수 없었다.
정작 정성빈은 곧바로 평소와 같이 돌아왔다. 아직 본인도 내면의 깊고 진실한 어둠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 같았다.
방심하면 안 된다. 이런 사람이 더 위험하다.
어제까지 야근해 놓고, 맑고 화창한 다음날 아침에 웃는 얼굴로 ‘휴, 더는 못 해 먹겠어요!’라고 말하며 사직 의사를 표명하는 유형이기 때문이다.
무슨 커피 한 잔 하자는 듯한 말투로.
지금으로 봐선 정성빈은 못 해도 한 달 안에 인생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며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을 시작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두 달 후엔 우리 곁을 떠나겠지.
그 시점에선 ‘갑자기 무슨 소리야! 우리 좋았잖아……!’라고 해 봤자 소용없다.
이미 당사자의 머릿속에선 퇴사 시뮬레이션이 300번쯤 돌아간 뒤일 테니까.
이 사달을 막지 못했다간 UA는 돌연 아이돌의 길을 그만두겠다는 유일무이한 리더의 재목 앞에서 솜사탕 씻은 너구리 표정이나 짓게 될 터였다.
‘고민의 ㄱ도 못 하도록 미리 족쳐야 해.’
문제아 넷을 두고 혼자만 도망가게 놔둘까 보냐. 절대 그렇겐 못 한다.
“성빈아, 잠깐 얘기 좀 하고 들어갈래?”
나는 편의점 앞에서 정성빈을 붙잡았다. 여기서 그만뒀다간 죽을 때까지 후회하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구질구질하게 굴어 줄 작정이었다.
* * *
몇 분 뒤.
우리는 따뜻한 홍삼꿀차를 하나씩 들고 놀이터의 그네에 나란히 앉았다. 참고로 음료는 정성빈이 골랐다.
칼바람이 겉옷 안을 파고들었다.
“추운데 미안하다.”
“아니에요.”
내 막무가내식 면담 요청에도 정성빈은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하…… 리더 절대 지켜.
“걱정되는 게 있는 거지? 요즘.”
내가 조심스럽게 운을 떼자 정성빈이 내 쪽을 쳐다보았다.
정성빈의 얼굴엔 어떻게 알았냐는 기색이 역력했다. 유감이지만 티가 너무 많이 났단다.
정성빈은 그네를 타는 둥 마는 둥, 다리를 몇 번 꼼지락거리더니 말했다.
“그냥…… 곧 평가 결과가 나올 걸 생각하니까 조금 착잡해서요.”
그러더니 정성빈이 씁쓸하게 웃었다.
UA의 평가 방식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가혹하진 않았다.
대신 피드백과 더불어 연습생의 순위가 매 차례 매겨진다는 걸 고려했을 때, 정성빈이 고민하는 지점 역시 등수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이어진 정성빈의 말은 내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회사에 연습생이 많은 것도 아닌데, 언제부턴가 등수가 거의 바뀌지 않았거든요.”
이번 평가는 박주우, 최제호, 이청현, 정성빈, 강기연 순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순서는 지난 평가의 등수 순서였다.
강기연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매번 나쁜 성적을 받았던 걸 감안하면, 순수하게 실력만 봤을 땐 정성빈의 등수가 가장 낮다는 의미였다.
연습생 경력이 정성빈에 비해 훨씬 짧은 이청현보다도.
‘그럼 불안하지.’
주위에 너무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충분히 생길 법한 일이었다.
필연적으로 매일 비슷한 수업을 들으며 비슷한 시간을 투자하는 데다, 본인부터 매사에 부족함 없이 성실한 성격이었으니 타격이 더 크게 온 모양이었다.
나야 천재들 옆에서도 절치부심하는 근성이야말로 재능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이걸 입 밖으로 꺼내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섣불리 입을 여는 대신 정성빈에게 약간의 시간을 주기로 했다.
면담 신청자를 앞에 두고 사측에서 먼저 쏘아붙여서 면담이 잘 끝나는 꼴을 본 적이 없어요, 내가.
“차는 마셔. 식겠다.”
“……네.”
정성빈은 아주 조금 울적한 표정으로 병뚜껑을 덮고 있는 비닐 포장을 뜯었다.
나는 홍삼꿀차 병을 만지작거리며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쓸 만한 방법은 대충 세 가지였다.
1. 칭찬 지옥에 가둔다.
커피차 배달 현수막에 썼던 주접 멘트를 적절히 섞어서 정성빈을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방법이다.
하지만 UA가 배출한 최고의 뚝딱이인 내가 시전해 봤자 효과가 좋을 것 같진 않다.
과거의 내가 남 부장에게 탕비실 정리를 아주 잘했다고 칭찬받았을 때 하나도 기쁘지 않았던 것처럼.
2. 명확한 근거를 들어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한다.
떡밥 정리를 하면서 모인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스킬이 좋아지고 있는지, 이를 토대로 전망한 향후의 성장성은 어떠한지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설명한다.
다만 정성빈이 ‘제가 그 노래 부른 걸 형이 어떻게 알고 계세요?’라고 대답하면 바로 배드 엔딩이다.
대충 뭐…… 음침한 인간을 경멸하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공산이 크지 않겠는가. 나 같아도 꺼림칙하겠다.
3. 냅다 아가리를 턴다.
내게는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는데 너는 반드시 잘될 것이며 성공해 부와 명예를 얻고 적어도 스물여덟 살 때까진 여기저기서 노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 말 한번 잘못 꺼냈다가 조심스럽게 병원 치료를 권유받을지도 모른다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었다.
‘어떻게 쓸 만한 말이 하나도 없냐.’
인생을 다시 쓰게 되면서 한평산업 경력이 물경력 됐다 싶었는데 지금 보니 딱히 잘못된 처사도 아닌 것 같았다. 회사 밖에서의 나는 이렇게나 무능력하다는 게 다시금 실감 난다.
세 경우 모두 밝은 미래는 보이지 않았으나,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했다.
이 녀석에게는 인생이, 내게는 누나의 목숨과 내 미래가 걸린 문제이니 말이다.
“성빈아. 지금 많이 안 추우면 내가 한…… 다섯 마디 정도만 해도 될까?”
“네, 형.”
나는 과장되게 격려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덤덤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다른 애들하고 격차가 줄어들지 않는다고 너무 상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꿀차를 마시려던 정성빈이 미세하게 반응을 보였다. 먹을 때 건드려서 미안하다.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만 하면 인정받는 날이 와. 정말이야.”
“엄청 확신하고 계시네요, 형.”
“당연하지.”
당당한 나의 태도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옅게 웃던 정성빈이 당황하는 게 보였다.
김이월 넌 할 수 있다.
네 이미지 따위 돌판의 갓성, 스파크의 불씨, 드라마 OST 킬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어린 친구의 성장통 극복을 위해, 아니. 한평산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나의 미래를 위해 눈 딱 감고 저지르자.
나는 어렵사리 홍삼꿀차로도 적시지 못한 입을 열었다.
“나, 는…… 미래를, 알고 있거든.”
『김이월, 스물아홉 살 먹고 ‘나는 미래를 알고 있어’ 발언…… 파문』이라고 해도 손색없는 충격 실화였다.
찬바람이 나와 정성빈의 사이를 가르고 지나갔다.
“……네?”
망할.
태어난 이래 제일 쪽팔렸다. 이게 그 공감성 수치라는 걸까? 그런데 난 공감하는 입장이 아니라 당사자인데.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참으며 힘겹게 말을 이어 나갔다.
“잠깐 봤, 아니, 보였는데.”
봤다는 말엔 내 의지가 들어 있다는 뜻이 내포되므로 급하게 표현을 바꿨다.
“비록 지금이 너에겐 너무 길고 힘들겠지만…… 멀지 않은 미래엔 이 시간 덕분에 네가 행복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내 말을 들은 정성빈은 말없이 한참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아마도 내가 정신이 나간 놈인지 아니면 나사가 풀린 놈인지를 재고 있는 것 같았다.
이 틈을 타 나는 태연한 척 대화를 수습했다.
“못 믿겠으면 말고.”
“아니에요. 든든해지는데요.”
“우리 입꼬리는 내리고 거짓말하자.”
다행히 정성빈의 얼굴은 전보다 한결 풀어져 있었다. 위로를 받았다기보단 웃겨서 기분 전환이 된 것에 가까워 보였지만.
그래도 생각을 환기한 게 어디야. 나는 천만번 정도 안도의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세상에 이렇게 뜨거운 겨울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몸에서 김이 펄펄 났다.
놀이터를 떠나 숙소로 돌아가는 길의 분위기는 몇십 분 전처럼 무겁지 않았다.
“형이 본 미래의 저는 뭐 하고 있었어요?”
정성빈이 아주 신나서 이것저것 물었기 때문이다.
좀 전까진 억지로 괜찮은 척을 하느라 거짓말에 성의가 없더니, 지금은 말의 곳곳에 장난기가 숨어 있었다.
여기서 내가…….
‘응. 너는 실력파 보이 그룹의 리더가 되어서 거친 연예계에서도 묵묵히 팀을 이끌어 나간 결과 결국 빛을 보게 된단다. 비록 해체는 하지만.’
……이라고 했다가 정성빈이 민간 신앙을 과신해 풀어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어렵사리 머리를 굴렸다.
정보는 최소화하고 유의어를 활용하되, 충분히 책임감은 느껴질 만한 단어를…….
“우…… 우두머리?”
……나는 대체 머리를 왜 달고 다니는 걸까?
이 정도로 대가리가 안 돌아가면 진지하게 자아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큽…… 우두머리를 했다가 집단이 금방 무너지는 건 아닐까요?”
“응, 아니야. 너 없으면 망해.”
어디서 터진 건진 모르겠지만 끝내 정성빈은 웃음소리를 입으로 막아 가면서까지 즐겁게 웃었다.
누나, 보고 있어?
누나 동생이 이렇게 처절하게 살아.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정성빈의 질문은 끊이질 않았다.
근면함을 형상화한 듯한 정성빈에게 이런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는 제법 신선했던 모양이었다.
덕분에 오는 내내 우리의 대화는 이러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미래는 아무 때나 볼 순 없는 거죠?”
“그렇지. 나도 현생은 살아야 하니까.”
“보고 싶은 게 있다고 생각하면 그게 눈앞에 나타나요?”
“신내림 같은 건가 봐. 자주는 아니고 가끔 보여.”
졸지에 나는 전국에 계신 무당 선생님께 가슴속 깊이 사죄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리고 이 선량하고 착한 친구 데뷔하는 것만 보고 나면 지리산에라도 들어가 속죄하겠다고 다짐했다.
웃음 치료가 된 건지 방으로 돌아갈 때쯤의 정성빈은 꽤나 홀가분해진 모습이었다.
아니면 저런 잡생각 한번 할 수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거나.
그래도 정성빈의 얼굴이 ‘오늘도 존버한다……!’는 얼굴로 바뀐 건 괄목할 성과였다.
어떻게든 되었으니 다행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누우려는데 눈앞이 흐릿하게 빛났다.
시스템이었다.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유형의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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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을’에게 ‘인사상 불이익 조항’이 고지됩니다.▷ 내규 위반
▷ 비밀 유지 사항 위반
▷ [잠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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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봐도 불길해 보이는 단어들이 보였던 것이다.
나는 찝찝한 마음으로 유난히 깜빡거리는 ‘비밀 유지 사항 위반’ 항목을 선택했다. 그러자 장문의 글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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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을’에게 ‘비밀 유지 사항 위반’이 고지됩니다.▷ 스파크의 성공적인 활동 외의 영역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항 및 미래 시점과 관련된 직접적인 정보는 모두 보안이 필요한 기밀로 간주합니다.
▷ ‘을’은 상기한 사항에 대해 비밀을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 처분의 강도는 누설된 기밀의 중요도, 화제성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하여 결정되며, 최대 ‘사망’까지 처벌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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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정성빈이 우두머리가 된다!’는 주초위왕식 응원 한 번 했다고 나한테 경고하는 건 아니겠지. 심지어 최대 벌칙이 사망인데 말이다.
목숨이 걸린 줄 알았으면 나도 망신살 뻗친 천기누설 같은 거 안 했지.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던 나는 새벽 3시에도 사람을 열받게 하는 재주가 있는 메모를 다시금 또박또박 읽었다.
그러나 메모를 다시 읽은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는 것만 뺀 나머지가 전부 언급 금지 상태라니.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