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40)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40화(140/193)
| 140화. 4차 경연: 비상 대책 회의 (1)
X됐다.
내가 아왕실 나가자고 해 놓고 나 때문에 발표를 못 하게 생겼다. 도대체 내 머리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
‘전치 8주짜리 부상에 누적 피로도가 95%를 찍은 거면…… 진짜 죽을 뻔했다는 건가?’
순간 얼마 전까지 나를 거슬리게 했던 시스템의 말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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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책임자’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김 대리,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 일 없어? 내가 업무 더 줄까?
[SYSTEM] ‘책임자’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김 대리 참 일 어렵게 한다. 왜 하지 말라는 짓을 자꾸 하지?
[SYSTEM] ‘책임자’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김 대리, 사회에선 눈에 띄는 게 능사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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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분명…….
‘스파크가 아왕실 나간다고 누가 죽냐? 천기의 흐름이 바뀌어?’
……라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진짜 죽을 뻔한 거구나. 카운트다운도 주의를 하라는 의미에서 예고한 거였고.
이것만 보면 시스템이 내게 호의적인 구석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나한테 위기가 닥치는 걸 아주 방치하진 않았으니까. 4대 보험이라는 후속 조치도 준비해 뒀고.
더불어, 방금 전 떴던 시스템 내용을 토대로 유추해 봤을 때 아왕실 중에 부여된 페널티는 이 사건을 막는 게 목적이었던 것 같다.
그제야 모든 퍼즐이 짜 맞춰지는 듯했다.
비정상적으로 줄어들었던 예산, 악편을 감안하더라도 이상하리만치 많아진 부정적 반응과 바로 얼마 전 하차 요구까지 일었던 인성 논란까지.
직접적으로 고지하지 않았을 뿐, 페널티나 카운트다운을 통해 계속해서 내가 하차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그럼 시스템이 시키지 않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 건가?
그렇다기엔 ‘도.삶’ 출연 땐 업무도 제재도 없었다. 모든 일이 딱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으로 나뉘는 건 아니란 뜻이었다.
‘그리고…… 시키는 업무만 해서 언제 1위 할 건데?’
남은 KPI가 몇 개인지도 모르는데 머뭇거릴 수는 없었다.
확실한 건 시스템이 하지 말라는 짓은 안 하는 게 신상에 이롭다는 것뿐. 빈틈을 어떻게 찾을지는 새로운 과제였다.
이렇게까지 해서 날 아이돌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생각이 뒤엉키다 못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X발.’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로 생각하는 건 질색이다. 나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그렇게 사고의 스위치도 딱 하고 꺼져 버리면 좋으련만.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은 식은 사골국에 뜬 기름처럼 내 머릿속을 부유했다.
모르겠다. 일단은 안 죽은 것에 감사해야지.
생각할 시간은 앞으로도 차고 넘쳤지만 아왕실 결승은 코앞이었다. 심지어 이 건은 지금을 놓치면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다.
‘산재 보험 설명 떴을 때 밑에 뭐가 더 있지 않았나?’
처음 산재 보험 설명이 나왔을 땐 패닉 상태라 눈에 들어오는 글자만 읽었지만, 돌이켜 보니 밑에 뭐라고 더 적혀 있던 듯했다.
나는 다시 한번 산재 보험 설명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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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을’에게 ‘4대 보험-산재 보험’이 고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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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재 보험’ 적용 기간 중 ‘을’은 ① 업무상 재해로 인해 얻은 통증 해소, ② 업무상 재해로 얻은 부상의 빠른 회복(부상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음) 중 하나를 택할 수 있습니다.
▷ 보험 혜택은 1회에 한해 변경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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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시스템은 2주면 당시 입은 부상을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머리가 찢어진 상태에서 2주라면 수술을 마친 지금은 그보다도 짧은 시간에 나을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결승전도 미뤄졌겠다, 기적적인 회복이라고 하고 올라가면 돼.’
기왕 회복하는 김에 근 성장도 도모하고자 근로 지원 서비스를 껐다.
이걸 켜 두면 근육이 안 붙더라고. 이참에 피로도를 싹 낮추고 새로운 몸으로 태어날 셈이었다.
변경이 가능하다는 부분을 쳐다보고 있자 새로운 문구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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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책임자’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혜택 중복으로 받는 건 안 된다? 겉만 번지르르하다고 다 괜찮은 게 아니니까 내실에도 신경 써. 그럼 수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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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3초 뒤.
나는 바로 몇 시간 전 겪었던 두통이 또다시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X발, 몸이 이 XX이니까 그놈들이 걱정을 하지, XX, XXX……!’
머릿속에 욕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경험, 화생방 이후로 처음이었다.
* * *
다음 날, 정성빈이 최제호와 함께 병실에 찾아왔다.
나는 한껏 핼쑥해진 몰골로 녀석들을 맞이했다.
“얼굴이 왜 그러냐?”
이 새X는 얼굴로 시비야. 자긴 잘생겼다 이거지.
“많이 아프세요, 형? 안색이 너무 안 좋아요.”
정성빈 좀 봐라. 같은 말을 해도 이렇게 온건하고 다정하잖아.
“괜찮아. 둘 다 와 줘서 고마워.”
하나도 안 괜찮지만 들켰다간 또 나를 둘러싸고 잔소리나 왕창 할 게 뻔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논의하려고 한 게…….”
“말 끊어서 죄송해요, 형. 그런데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정성빈이 보기 드물게 말을 잘라먹고 들어왔다. 얘기하라고 하자 정성빈은 조금 머뭇거리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형, 최종 경연은 저희끼리 해 볼게요.”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발언이었다. 이놈들이 자주적으로 5인조 그룹 스파크를 향해 한 발짝 나아가다니!
스파크의 아왕실 중도 하차를 막기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해서든 다 나았다는 점을 어필하고 무대에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놈들은 기특하게도 무대는 자기들끼리 할 테니 형은 쉬고 계시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기쁨의 눈물이 나올 뻔했지만 참았다. 이미 머리가 너무 아파서 눈물이 흐르기 직전이었다. 방심하면 눈물샘도 상처도 터지고 말 거다.
“그래도 되겠어?”
“네가 그거 신경 쓸 군번이냐? 쉬라고 하면 그냥 쉬어.”
최제호까지 상냥하게 나를 말려 주었다.
기념비적인 일이군. 오늘을 내 두 번째 생일로 삼겠다.
“배려해 줘서 고마워. 너희끼리 하면 분명 더 멋있을 거야.”
“……네?”
기획이 구려서 그렇지 과거에도 스파크 놈들은 제 역할 하난 기가 막히게 잘했다. 이번에는 아이템을 떠먹여 줬으니 알아서들 잘할 것이다.
‘처음으로 5인조 스파크의 무대를 보여 주게 되는 건가?’
이 무대만 녀석들이 잘해 준다면 내가 탈퇴했을 때의 여파가 조금은 덜해질 거다.
그때가 되면 ‘저번에 보니까 김이월 없어도 되겠더만.’ 같은 반응이 나올 테니까.
“중요한 무대니까 잘해야지. 차라리 잘된 걸지도 몰라. 혹시 다른 걸로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해.”
빌어먹을 안무 외우느라 시간만 왕창 잡아먹을 거, 나 같은 뚝딱이는 여기에서 노트북으로 일하는 게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애들도 내 안무 수준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겠지. 내 몫의 의상이나 소품 예산을 빼면 돈도 더 쓸 수 있을 거고.
정성빈에게 공용 노트북 한 대만 가져다줄 수 있냐고 물으려는데, 녀석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차라리 잘됐다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형.”
“너희끼리 하는 게 퀄리티가 더 높을 거 아냐. 저번 포지션 대결 때 너랑 주우 쉬게 하길 잘했다. 아니면 기연이한테 파트를 좀 더 줘서…….”
“잠시만요. 저 지금 형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왜 형이 없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저번에도 얘기했잖아. 두 번 말해야 해?”
그러자 정성빈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니까 노트북 남는 거 있으면 한 대만 가져다줄래? 내 다이어리도. 베개 옆에 두고 왔을 건데.”
“……아니에요, 입원해 계시는 동안은 푹 쉬고 계세요.”
“응?”
“짧게라도 형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 형은 최종 경연 전까지 빨리 나을 생각만 하세요.”
왜 갑자기 태세를 전환했는진 모르겠지만 정성빈은 단호했다. 녀석의 기분이 가라앉은 게 눈에도 보일 정도였다.
“얘 전치 8주랬잖아. 그 전에 퇴원 못 해.”
최제호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나 정성빈은 꿈쩍하지 않았다.
“여섯 명이 무대에 설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형이 빠진다는 얘기는 없는 걸로 해요.”
그 말을 끝으로 정성빈은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병실을 떠났다. 나는 최제호에게 빨리 따라가 보라며 손짓했다.
‘시스템, 5인조 스파크 무대 영상 같은 건 못 줘?’
그거 한 번만 보여 주면 정성빈도 저런 말 안 할 텐데.
하지만 시스템은 가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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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책임자’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 김 대리도 참, 꼼수를 쓰려고 하는 기질이 있다니까?
+
녀석들 앞에서 애써 참고 있던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이렇게 아픈데 무급 휴가도 없고, 정성빈은 날 타박하고. 서럽다 서러워.
* * *
“후반부에 이월이 형 파트를 넣자고?”
정성빈의 통보에 이청현이 경악했다. 박주우와 강기연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왜 그래? 형이랑 얘기가 잘 안됐어……?”
“그런 건 아니야.”
박주우의 질문에 정성빈은 그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멤버들은 수술실 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서야 간신히 김이월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김이월을 보고 입을 열지 못했다.
피로 뒤덮여 알아보기 힘든 얼굴, 짓씹은 탓에 피딱지가 앉은 입술, 손등에 잔뜩 꽂힌 주삿바늘까지.
흉기가 주는 어감조차 강력해서, 모두는 김이월을 앞에 두고 죽음을 떠올려 버렸다.
잘 참고 있던 박주우는 김이월이 안정적으로 회복하고 있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 쉼 없이 울었다. 울다 그치길 반복하던 이청현은 김이월이 눈을 뜨기 무섭게 오열했다.
다행히 고비를 넘긴 김이월을 두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멤버들은 저마다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정성빈은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어제 매니저 형이 그러셨잖아. 너무 힘들면 아왕실에선 하차해도 된다고.’
‘응…….’
‘멤버들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 각자 편하게 얘기해 줬으면 좋겠어.’
정성빈에겐 원하는 방향이 있었다. 설령 멤버들이 그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는다면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도 밤새 고민했다.
그러나 그 고민은 무의미해졌다.
‘이월이 형이 그렇게 저희 설득해 가면서 나오려고 했던 프로그램이잖아요. 그 형이 중도 포기를 좋아할 사람도 아니고. 전 끝까지 해야 한다고 봐요.’
모두가 강기연의 말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만장일치로.
‘말이 전치 8주지, 퇴원하고도 형은 계속 치료받으셔야 할 거야. 무대는 우리 다섯이 해야 할 텐데 그것도 괜찮은 거지?’
정성빈은 재차 확인했다. 정성빈만큼이나 지난밤에 많은 고민을 했던 멤버들은 그 역시 동의했다.
그래서 이제는 형의 부담을 좀 덜어 주고, 형이 걱정하지 않고 회복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중요한 무대니까 잘해야지. 차라리 잘된 걸지도 몰라.’
그 말이 왜 그렇게, 화가 나던지.
그때 정성빈은 김이월에게서, 늦은 밤 홀로 연습을 하다 걸린 김이월을 겹쳐 보았다.
‘내가 너희들에 비해 훨씬 부족해서 이러는 거잖아.’
김이월이 했던 말을 정성빈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UA의 누구든 가당찮다고 말할 정도로 어이가 없는, 그 말을.
강기연과의 언쟁에서 그렇게까지 생각해 줘서 고맙다고 말한 것도 석연찮았다.
그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닌가. 같은 멤버고, 함께 동고동락했고, 누구보다 의지하는 형인데.
“이월이 형 말이야.”
정성빈은 오래도록 혼자 고민해 왔던 것을 입 밖에 꺼냈다.
“이상할 정도로 자존감이 낮다는 생각, 안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