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41)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41화(141/193)
| 141화. 4차 경연: 비상 대책 회의 (2)
UA의 사람이라면 누구든 김이월의 유능함을 알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회사에선 ‘아이돌이 아니라 신입 직원 한 명을 뽑은 거 아니야?’라는 농담도 나왔다. 이젠 그 말을 농담으로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오래전부터 아이돌을 꿈꿔 온 정성빈의 눈에도 김이월은 독보적이었다. 프로 아이돌은 아니지만 무언가의 프로임은 확실했다.
‘이월이? 일 잘하지. 머리도 좋고. 애가 딱 봐도 똑 부러지잖아.’
‘이거 이월이가 정리한 거래? 걘 진짜 꼼꼼하다.’
‘이월이가 의견 낸 거면 뭐, 믿고 보는 거지.’
당장 정성빈이 들은 김이월의 칭찬만 해도 몇 건이던가.
대외적인 이미지만 관리한다면 모를까, 김이월은 가장 가까운 멤버들에게도 평판이 좋았다. 자신부터 김이월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김이월에게 유난히 각박한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는 장준후나 유한수처럼 대외적으로 평판이 좋지 않거나 김이월에게 열등감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김이월 본인이었다.
김이월의 자기 비하는 습관적이다. 김이월 본인이 자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수년간 자신을 비하해 왔던 정성빈은 그런 뉘앙스를 누구보다 잘 알아차렸다.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안 줄 알았다. 김이월 같은 사람이 뭐가 모자라서 그런단 말인가?
그러나 착각이 아니었다. 김이월은 업무 태도를 지적할 때만큼은 멤버들에게 가혹했고, 그 자신에게는 업무 태도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엄격했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과 잘하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정성빈은 김이월을 보며 처음으로 느꼈다.
길어야 4시간, 바쁠 때는 한두 시간 쪽잠을 자면서 일했고 멤버들보다 부족한 부분은 어떻게든 연습으로 메꿨다.
숨 쉴 틈 없이 바빠도 매일 팬 카페에 들어가고, 멋진 무대 영상이 나오면 뿌듯해하는 걸 보면 저 형이 정말 팬분들을 좋아한다는 걸, 좋은 무대를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체감하는데.
정작 김이월은 중요한 순간이 되면…….
‘너희끼리 하면 분명 더 멋있을 거야.’
……따위의 말을 하는 것이다. 분하거나 아쉬워하지도 않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형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 건지 정확히는 몰라. 하지만 형이 자기는 팀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게 내버려 두면…… 마음이 너무 안 좋을 것 같아.”
정성빈의 말에 멤버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모두가 예시는 다르더라도 내용은 비슷했던 김이월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정성빈이 최제호와 강기연의 눈치를 살폈다. 김이월이 무대에 참여한다면 사실상 가장 고생하는 것은 저 두 사람이 될 터였다.
이미 김이월의 이탈로 한 차례 동선을 전부 수정한 두 사람은 그야말로 피로에 절어 있는 상태였다.
“제호 형이랑 기연이 부담이 커질 건 알아요. 형을 사이드 무대에 따로 빼서 앉히거나, 녹음에만 참여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함께 고민해 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손을 보탤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참여할 테니까…….”
면목 없다는 듯 정성빈이 고개를 떨궜다.
답변은 정성빈이 예상했던 것보다 흔쾌히 돌아왔다.
“저야 뭐, 방학이라 상관없어요. 대신 이번 주만 취침 시간 조금 늦춰 주세요.”
“나도 상관없어.”
“파트도 다시 나눠야 하지? 이건 내가 주우 형이랑 같이 할게!”
“그래, 성빈이 넌 의상이랑…… 다른 쪽을 더 신경 써 줘.”
김이월에게 혹독하게 훈련받은 멤버들은 자신이 할 일을 알아서 찾아갔다.
그렇게 모두는 중상을 입은 김이월과 어떻게 생방송 무대에 함께할 수 있을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 * *
입원한 지 3일이 되어 가는 오늘까지도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머리는 끔찍하게 아프지, 현기증은 계속 나지,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기를 쓰고 안 아픈 척해야지.
이 짓을 반복하고 있으니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유한수를 막기 위해 통증 해소를 쓴 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잘한 일이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유한수를 제압하긴커녕, 바닥에 주저앉아서 움직이지도 못했을 거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쇠 파이프로 맞아도 잘 싸웠던 걸까……와 같은 상상을 하던 내 병실에 매니저님이 찾아오셨다.
“몸은 좀 어때?”
“많이 좋아졌어요. 아까 선생님 회진 오셨었는데, 회복 속도가 빠르다고 하시더라고요.”
드레싱해 주시던 간호사 선생님도 상처가 유난히 빨리 아문다고 하셨다. 잘못 본 게 아닌가 의심하실 정도였으니 말이다. 덕분에 MRI 또 찍게 생겼다.
그래서 시스템에게 겉은 적당히 두고 안쪽의 상처를 집중적으로 치료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사회로 돌아가고 싶지, 희귀 인류 연구소 같은 곳으로 가고 싶은 게 아니니까.
“네가 애들한테 노트북 가져다 달라고 했다며?”
그러면서 매니저님은 노트북에 비할 데 없이 조그마한 핸드폰을 건네셨다.
“그런데 애들이 노트북은 갖다주지 말래. 그거 주면 너 일할 거라고.”
“네?”
“내가 봐도 넌 그럴 것 같아서 노트북은 안 가져왔다. 대신 무슨 일 있으면 연락은 해야 하니까 핸드폰은 가지고 있어.”
나는 솜사탕 씻은 너구리처럼 핸드폰만 가만히 손에 쥐었다.
그 뒤로는 수술비와 병원비의 정산 주체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병원비 일체는 UA에서 수납하셨단다. 설령 유한수와 합의를 하더라도 합의금을 회사에 줄 필요는 없다는 내용도 전달받았다.
“너랑 유한수 PD 사이에 트러블이 있는 걸 회사도 알고 있었으니 책임을 져야지. 치료에 드는 비용은 회사가 다 지불할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알았지?”
매니저님은 필요하다면 심리 상담도 받으라며 나중에 병원 리스트를 가져다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월아, 물어볼 게 있는데. 혹시 지금 컨디션은 괜찮니?”
“네, 말씀하세요.”
매니저님이 수납장 앞에 있던 의자를 끌어와 앉으셨다.
“불편한 얘기가 될 수도 있어. 괜찮아?”
“그럼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나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가 튀어나왔다.
“부모님하고 사이가 얼마나 안 좋은 건지, 물어봐도 될까?”
이 시점에 가족 이야기가 나온다는 건…….
“보호자 때문인가요?”
“응?”
수술할 때 보호자랑 연락을 시도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지.
아니나 다를까 매니저님이 내 시선을 피하셨다.
내 쪽에서 직접 두 사람과 연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스템이 제약을 걸어 놓고 있으니까.
하지만 제삼자의 입을 빌린다면?
“혹시, 저희 부모님하고 연락이 닿으신 거면…….”
두 사람의 연락처를 볼 수 있고, 연락도 할 수 있는 누군가가 대신 연락을 취해 준다면 누나에 관해 물을 수 있었다.
적어도 어디 사는지나, 뭐 하면서 지내는지 정도만 알고 싶은데.
“아, 그게 말이지.”
그러고선 매니저님은 말이 없으셨다.
바로 얼마 전에 인성 논란이 터진 참이다. 내 신상까지 털린 마당에, 두 사람에게 내 얘기가 흘러 들어가지 않았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순식간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누군가 온몸에 찬물을 끼얹은 기분이 들었다.
“저랑 엮이기 싫대요?”
보호자 서명이고 나발이고 안 해 줘도 좋다.
수술을 받든 말든 모르는 일이니 전산상 가족이랍시고 연락하지 말라고 했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한 번은 대화해 볼 기회를 줄 수도 있는 거잖아.
시스템을 향하려던 원망이 흩어져 사라졌다. 시스템이 없었어도 그 양반들은 이랬을 테니까.
“이월아.”
매니저님이 내 이름을 부르며 어깨를 다독이셨다.
“앞으로…… 가족 관련된 일이 있을 때 회사가 어떻게 해 주면 좋겠어?”
다정한 배려였다.
마음 같아서는 아무래도 좋다고, 볼 것도 없이 끊어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중간에서 보자니까, 뭐 하러 우리 집 근처까지 와.’
‘너 어제도 야근했다며. 양심 있으면 누님한테 밥이나 사라.’
“아니에요.”
모든 것을 억누르고 참기로 했다.
“혹시라도 연락이 오면 꼭 전해 주세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요.”
누나를 위해서.
* * *
매니저님이 돌아가신 후로는 쌓인 메시지를 확인했다.
별의별 사람들에게서 안부 연락이 잔뜩 와 있었다.
베리온 멤버들은 그렇다 쳐도, 폴로 씨랑 유르 씨까지 염려와 쾌유를 비는 문자를 보냈다.
왜들 이렇게 난리인가 싶어 기사를 검색해 봤더니 타이틀이 가관이었다. 기사만 보면 내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 줄 알 수준이었다.
‘이렇게 자극적으로 보도를 하니까 사람들이 다 놀라지.’
매니저님께 허락받은 대로 그룹 공식 계정에 잘 쉬고 있다는 글을 올린 다음, 밀린 문자에 차근차근 감사의 답장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며칠간 좀처럼 들어가지 못했던 버블팝에 접속했다.
보관함에는 수많은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 이월아 괜찮아? 절대 무리하지 말고 푹 쉬어ㅠㅠ
≫ 이월아 아프지 마
≫ 보고 싶다! 푹 쉬고 빨리 나아서 얼른 돌아와야 해!!
≫ 이월아 누가 괴롭히면 앞으론 양손에 당근 흔들고 이름부터 외쳐 누나가 다 처리해 줄게
나는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여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이월
[많이 기다리셨죠? 연락이 늦어서 죄송해요.]최소 1일 10메시지가 내 철칙이었는데. 죄책감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그럼에도 팬분들은 반갑게 나를 맞아 주셨다.
≫ 김이월 죄송 금지
≫ 네가 뭐가 미안해ㅠㅠㅠㅠㅠ 몸은 괜찮아?
≫ 이월아 누나 지금 UA에 불 지르러 간다
≫ 응 애기는 이런 걸로 미안해하는 거 아님
자주 보이는 몇몇 단어들엔 아직도 내성이 생기지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말이 담고 있는 진심이기에,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김 대리는 멀대같이 커 가지고 왜 이렇게 두통약을 달고 살아?’
‘먹을 게 없다고 더위를 먹어? 내가 김 대리 쪽 선풍기 껐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지금?’
‘김 대리야, 나 직원들 때문에 미치겠다. 뭐만 하면 독감이래. 다 독감이면 일은 누가 해?’
혹여나 내가 동태 눈깔이 되지 않도록 머릿속이 자꾸만 남 부장을 오버랩했다.
이딴 생각 안 해도 세상에서 제일 감사하고 있으니까 관둬 줬으면 좋겠다.
대신 다짐했다. 며칠 밀린 만큼 죽도록 소통하기로.
그렇게 나는 팬분들과 신나게 떠들다 잠이 들었다. 몇 시간 후 실시간 트렌드에 ‘버블팝 999+’가 뜨는 것도 보지 못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