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146)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146화(146/193)
| 146화. 4차 경연: 최종 발표 (2)
『어떤 이야기는 역사가 돼
신성한 존재에겐
모두들 주목하지』
박주우의 손짓은 몽환적인 구석이 있었다.
얼굴과 목, 소매를 훑고 내려가는 움직임이 유려했다.
지금껏 스파크가 보여 준 안무는 역동적이고 시원시원했다. 어느 장면에서 멈춰도 칼같이 맞아떨어질 각도나, 누구 하나 빼지 않는 적극성이 어느 무대에서건 선명히 드러났다.
반면 지금은 전보다 더 강약 조절이 살아 있었다. 격한 동작이 많은 건 아니지만 다섯 명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말 그대로 물 흐르듯.
비단과 비슷한 재질로 만들어진 것 같은 한복에 허리 주름까지도 일정하게 잡히는 모습이 보였다. 한 감독은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멤버들이 다음 동작을 위해 자세를 낮춘 사이, 최제호가 센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눈길을 걸은 발자국이,
도전에 따른 실패가
잊히지 못하고 남아
매일, 긴 이야기로』
최제호의 독무에 맞춰 스파크가 중앙으로 모였다 무대 위로 퍼져 나갔다. 이 부분이 최제호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최제호의 파트가 끝나 갈 때쯤, 강기연이 최제호의 옆으로 다가온 순간.
최제호는 강기연을 품에 가두고 강기연의 입가를 가렸다.
강기연이 최제호의 손을 잡아 내리며 미소 지었다.
내리깔던 시선은 오묘하게 카메라와 마주치고, 입꼬리는 약간의 씁쓸함을 담은 채 올라갔다.
『이곳에 우리는
무엇으로 적혀 있을까
나의 이름은
남는가, 흘러가는가』
부드럽던 1절의 분위기는 2절로 넘어가면서 조금 더 단단해졌다.
이 역할은 이청현이 맡았다.
쉬는 시간이나 합숙 등의 장면에서는 여느 또래 남자애들과 다를 바 없는 이청현이지만 무대 위에서는 남다른 카리스마가 있었다.
스파크 중에 무대 위에서 기 세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마는, 이청현은 유독 그 갭이 컸다.
지난 무대에서는 광견처럼 날뛰었던 이청현이 이번에는 성균관 유생처럼 고고한 난 같은 아우라를 풍겼다.
이청현이 언제, 누구에게 건네받았는지도 모를 부채를 펼쳐 살살 흔들며 제 파트를 소화했다.
그리고 2절이 끝나 갈 무렵, 차르륵 소리를 내며 이청현이 부채를 접자…….
“와아악!”
한 감독의 앞뒤, 양옆에서 진심으로 놀랐을 때 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젖은 머리칼, 박주우와 맞춘 듯 짙은 회색빛 눈동자에 유난히 흰 빛이라 더 눈에 띄는 피부까지.
『전하게 해 줘
내게도
남기고 싶은 말이 있으니』
방청객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김이월의 등장이었다. 촉촉하게 젖은 얼굴에 미소가 만개해 있었다.
짧은 파트를 마치고 김이월은 대형의 뒤쪽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여파는 컸다.
당장 여섯 명으로 맞춰진 대형에서부터 전과는 다른 안정감이 보였다.
기묘한 일이었다. 앞의 다섯 명이 실수를 하지도, 그들의 능력이 부족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어진 군무는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였다.
‘우리가 화려한 걸 못해서 안 한 게 아냐! 할 기회가 없어서 안 한 거지!’라고 말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스무 명은 족히 될 듯한 백댄서가 참여하면서 규모는 순식간에 커졌다.
거대한 흐름에 맞춰 정교한 동작들이 반복되었다.
흰색 배경에 검은 무늬가 불규칙적으로 들어간 한복을 입은 백댄서들 사이에서 청록색 한복을 입은 스파크는 확연히 눈에 띄었다.
‘설산에 핀 식물 같네.’
감각적인, 촬영 감독다운 생각이었다.
파도를 타는 듯 부드러운 동작들이 시간차를 두고 이어졌다.
그 사이를 걸으며 정성빈이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써 줘
그 안에서
함께하게 해 줘
지금 이 순간처럼』
지금까지 아왕실에서 나왔던 무대들은 대부분 투쟁과 쟁취, 왕좌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연하다. 프로그램 제목부터가 ‘아이돌 왕조실록’이니까.
그럼에도 스파크는 왕위를 차지하는 것보단 그 일련의 과정 자체를 목표로 삼고 달려왔다.
그리고 지금, 그간의 소회를 고스란히 적어 내리고 있었다.
왕이 되지 못한 자의 이야기는 중요한 게 아닌가?
남들이 보고 듣지 못할 때의 이야기는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조명받지 못한 자의 이야기는 이대로 묻히는 것이 당연한가?
그런 의문을 가진 누군가에게 대답하는 것이다.
자신들은 기억할 것이라고. 그것이 기록자의 역할이기에.
이렇게 보니 PD가 왜 스파크의 마지막 무대를 원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왕실의 주제는 왕이 되기 위한 아이돌들의 성장 이야기다. 아왕실이라는 프로그램은 곧 그 성장을 담는 기록물이고.
거기에 스파크는 본인들이 기록자를 자처하고 있었다. 이보다 더 아왕실의 정체성을 잘 보여 주는 무대가 있을까?
‘심지어 꼭 아왕실만의 얘기라기보단…….’
수년간 가사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는 아이돌 무대를 봐 왔던 한 감독은 알 수 있었다.
스파크의 노래를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들어도 새로운 해석이 나온다는 걸.
어디서나 주목받는 존재.
그를 계속해서 주시하고 그의 행동을 기록하는 자들.
그 안에서 찢어지지 않은 채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
무언가를 떠오르게 하지 않는가?
‘어찌 됐든 ‘아이돌’ 왕조실록이다, 이거지.’
제작진이 놓칠 수 없는 무대를 만들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은 반드시 챙기는 게 참 스파크다웠다. 영리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걸 역사로 만들겠다고 하지 않는가. 포부 하나는 대단했다.
음악은 점점 고조되어, 하이라이트에 도달했다.
『헛디뎌도 좋아
실패작이라도
눈에 담길 원해
꺼내 볼 수 있게』
『마음을 눌러 적어 내려
긴 밤이 끝난 후
펼쳐 볼 수 있게』
한 감독이 마주 보며 고음 파트와 애드리브를 소화하는 메인 보컬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업계에 공공연히 떠도는 이야기가 있다. 한 팀에 음색이 다른 메인 보컬이 둘 이상 있으면 그 팀은 성공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아왕실에 참가한 팀 중 보컬 역량이 가장 뛰어난 팀 역시 스파크일 것이다.
격한 춤을 추면서도 음 하나 흔들리지 않는 메인 보컬을 포함해, 누구 하나 부족함 없이 제 파트를 소화하고 있으니 어떤 감독이 저 녀석들을 예뻐하지 않을까.
오묘하게 국악기가 섞여 들면서 음악은 더욱 풍성해졌다. 악기 간의 밸런스가 섬세하게 조절되다, 어느 한 지점에 이르렀다.
짧은 공백에 맞춰 최제호가 발돋움했다.
리허설대로라면 ‘그게’ 나올 차례였다.
한 감독이 집중력을 최대한으로 높였다. 리허설 때와 똑같이 있는다면 이번에는 놓칠지도 모르니까.
최제호가 양손으로 무대를 짚고 측전했다.
그리고 두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반동을 이용해 높이 뛰었다.
반듯하게 재단된 쾌자가 공중에서 크게 원을 그렸다.
‘플래시킥인가?’
허공을 차는 각도가 예술이었다. 완벽하게 원을 그리는 동작, 수준급의 도약력, 긴 체공 시간까지. 흠잡을 곳이 없었다.
아이돌이 춤, 노래를 넘어 외국어와 게임, 미술까지 잘하는 세상이다. 아크로바틱을 할 줄 아는 아이돌 역시 많고 많았다.
그런데 최제호가 특별한 이유는 뭐냐면…….
‘몰라, 그런 거.’
그냥 살다 보면 있지 않은가? 가만히만 있어도 시선을 끄는 사람이.
최제호 역시 그런 인간이었다. 숨이 멎을 정도로 움직임 하나하나가 완벽하고, 옷과 머리카락까지 함께 춤을 추고 있다는 착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
설령 지금 인기를 얻지 못하더라도 최제호는 언제고 대성했을 종자였다. 이런 사람들이 역주행이라는 마법으로 인정받는 걸 한 감독은 많이 봐 왔다.
하물며 이렇게 스타트까지 잘 끊었으니, 별일이 있지 않는 한 최제호는 앞으로도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다.
정점을 찍은 노랫소리는 최제호의 독무가 끝나 가면서 세를 줄여 갔다.
백댄서들이 무대 중앙으로 모여 등을 지고 고개를 숙이자, 한복의 등판에 있던 검은 얼룩들이 하나의 형태를 만들었다.
스파크의 다섯 멤버들 역시 검은 글자에 녹아든 뒤였다.
최제호의 저음이 무대의 바닥에 짙게 깔렸다.
『이제 나는
흔적으로 남아
영원하겠지
오래도록』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최제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뒤돌아 걸어갔다. 비어 있는 자신의 자리로.
비로소 흰 도화지에 ‘기록할 록(錄)’자가 완성되었다.
완벽한 마무리였다.
‘양 PD, 이게 마지막 무대가 아니라 엄청 아까워하겠는데?’
암전된 무대 위에서도 스파크 멤버들이 서 있을 곳을 따라 카메라 각도를 조절하며 한 감독이 생각했다.
하지만 감동적인 건 감동적인 거고.
한 감독은 일을 해야 했다. 아직 스파크의 인터뷰와 두 개의 무대, 두 건의 인터뷰 그리고 최종 순위 발표가 남아 있었다.
그래도 방송은 잘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바로 조명이 들어왔다.
인터뷰를 하러 모인 스파크의 상반신을 잡기 위해 다시 한번 카메라의 각도를 조절하는데, 무전기가 시끄러웠다.
다급한 소리와 번잡한 분위기.
웅성거리는 관객들.
한 감독은 고개를 들어 무대를 확인했다.
무대 앞으로 모이던 스파크 멤버들이 구석에 쓰러진 김이월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앵글을 유르 쪽으로 바꾸라는 무전과 방청객을 비추지 말라는 무전이 어지럽게 오갔다.
스태프 한 명이 김이월을 업어서 옮기는 동안 유르가 능숙하게 후배들을 이끌었다.
그제야 한 감독은 잠시 지나쳤던 사실을 기억해 냈다.
메이크업으로 안색은 가렸지만 등장했을 때부터 김이월의 머리칼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는 걸.
그리고 그가, 얼마 전 전치 8주짜리 부상을 당한 환자였다는 것을 말이다.